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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현재의 탄생 - 오늘의 세계를 만든 결정적 1년의 기록
엘리사베트 오스브링크 지음, 김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오늘의 세계를 만든 결정적 1년의 기록
<1947 현재의 탄생>
여태까지 전혀 보지도 읽지도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책이었다.
논픽션, 역사 르포르타주라고 분류를 하는 것 같은데 그 장르 중에서도 아주 신선한 접근으로 풀어나가고 그로부터 도출된 메세지 역시 새로웠다.
아주 디테일하고 색다른 관점에서 보는 1947년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무지 흥미로웠고 내가 특히 몰랐고 관심없었던 유럽의 전후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배울 수 있어 더 그랬던듯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계DNA가 태동한 순간을 1947년으로 보고 한 해 동안의 세계사를 다룬 독특한 르포르타주를 써냈다. 1947년의 1월부터 12월까지 시간 흐름을 따라가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의 조각을 포착하고 연결하는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이다.

전후 1945년부터 50년대까지 어렴풋이 이런저런 일이 있었겠지하고 짐작했던 것들의 대부분의 결정적인 포인트는 1947년이었다. 파리조약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었고 사람들은 벌써부터 과거의 비극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 한다. 전범 재판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가고, 냉전의 열기는 점점 타오른다. 미국은 CIA를 창설한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중책을 맡은 UN 특별 위원회는 시오니스트와 아랍연맹, 각국의 외교적 손익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소련은 핵 보유국이 되고, 이후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자리 잡을 무기인 AK소총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책에서는 영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을 분할 독립시킨 대목이나 지하드를 선포, 페르 엥달을 비롯한 나치 잔존 세력들의 스칸디나반도에서의 부활등도 비중있게 다룬다. 파리에서의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성공도 다룬다.

저자는 이 책을 현재형으로 쓰면서 독자들에게 더 생생하게 메세지를 전달했고 그야말로 종횡무진 한다고 할만큼 평범한 개인의 역사를 당대를 뒤흔든 지정학적 사건들과 대등하게 병치시키는가 하면, 동시적으로 벌어지는 모순적인 변화를 병치시킴으로써 아이러니의 감각을 증폭시킨다는 평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덜란드에서는 그 누구도 ‘독일’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 독일에 점령당했던 이후로 이들을 향한 매우 강한 적개심이 존재한다. 새로운 법이 통과되면서 독일 혈통을 지닌 2만 5000명의 네덜란드 국민들이 ‘적대적 대상’으로 낙인 찍히고, 국외로 강제 추방 된다. 유대인이나 자유주의자, 반反나치주의자도 예외는 없다.
폭력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네덜란드계 독일인들은 한 시간 안에 자신들이 가져갈 수 있는 모든 짐을 싸야 하는데, 이때 짐의 무게는 50킬로그램을 넘으면 안 된다. 그런 다음 이들은 교도소나 네덜란드와 독일의 국경 근처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고, 추방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한다. 이들의 주택과 사업체는 국가에 몰수된다. 이렇게 ‘검은 튤립 작전’이 진행된다.
그런 다음에는? 평화가 찾아올까? 깨끗이 정화되었다는 느낌이 들까?

가혹하게 처벌받는 독일이 아닌, 어느 정도 방패와 방어벽의 기능을 하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독일이 오히려 유럽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이유로, 올해 영국의 독일 점령에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독일이 ‘안정적이고 생산적인’ 국가로 거듭나도록, 이를 위해 과거의 실패와 범죄가 아닌 재건과 미래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에 주안점을 둔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기소 건수를 줄이기로 결정한다.

6월 10일, 북유럽보험회의는 조속히 새로운 불가항력 조항, 이른바 '포스 마주어(force majeure)'를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원폭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배상금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