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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평점 :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 책 너무 재밌다. 그리고 웃기다.
그리고 재밌기만 한 책이 아니라 한방이 있다. 그 한방이 딱 정해진 대목이 아니라 아마 독자마다 다른 대목에서 자신이 공감하는 곳에서 훅하고 들어오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난 이미 모 일간지 칼럼과 전작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에서 이주윤 작가를 알게 되었었는데 이 책으로 완전히 팬이 되었다.
책 제목은 저자가 노처녀란 점을 강조하고 이 책의 홍보도 주로 첫번째 장의 노처녀 스토리에 포인트를 맞추는 듯 하지만 읽다보면 노처녀스토리는 그 중 일부였고 연애, 결혼, 가족부터 우리 인생 세상사에 대한 풍자오 위트가 넘치면서 사색까지 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책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엄마 아빠 캐릭터가 열일을 하고 저자의 그림도 이 책의 매력이다.
초반 노처녀 스토리에서는 연애도 노동이라는 저자의 철학이 재밌고
부모님들의 결혼하라는 성화와 저자의 반박논리가 재밌다.
어른들은 말한다. 인생 잠깐이라고. 사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장동건도 똥 싸고 방귀 뀐다고. 아무리 잘생긴 얼굴도 삼 개월만 보면 질리는 거라고. 하지만 정말 아무나 만나 같이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나 만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게 아니다. ‘비혼’이네 독신주의네 그런 거창한 말로 포장할 생각도 없다. 그저 함께하고픈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 찾으러 다니기에는 바쁘고 귀찮고, 막상 찾았대도 이번에는 잃을까 겁이 난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나에게 연애란 곧 노동이다. 공들여 씻고 화장하는 일. 어지러운 서랍 속을 뒤져 위아래 짝이 맞는 속옷을 찾아내는 일.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에 억지웃음을 지어주는 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보고하는 일. 사소한 문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는 일. 가끔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생각을 애써 설명해야만 하는 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겹게만 느껴진다. 그리하여 나는 연애하는 모든 이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두번째 장에서는 <전기장판 위의 사색>이라는 주제로
사내 장기 자랑에 대한 재밌는 에피소드,크리스마스 다음 날, 안티에이징, 거북이 구조 특공대, 재혼은 미친 짓이야, 엄마를 위한 화장실, 맞선 사절 등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마지막 세번째 장에서는 <엄마는 내가 왜 좋아?>라는 제목으로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저자의 여행 철학, 달려라 이봉주, 밤과 음악 사이 방문기, 좆까라 그래, 시간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읽은 이 책의 한방 대목은 ‘즐거운 하루’라는 챕터였다.
지원했던 대학에 모조리 떨어졌던 날, 좋아 죽고 못 살던 애인이 바람피우는 모습을 목격했던 날, 직장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표를 냈던 날…..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의 나는 얼마나 슬피 울었던가. 신이 나타나 그날들과 오늘 하루 중 하루를 선택하여 다시 살아보라고 말한다면 나는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을 말할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료한 하루 심심해서 몸이 배배 꼬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눈물 흘릴 일은 없었으니 그것 만으로도 꽤 괜찮은 날이지 워야 오늘은 정말 재미없는 하루였다. 이다지도 재미없는 하루를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재미없다면 더는 바랄 것도 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