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 - '엉뚱한 질문'으로 세상을 바꾸는 SF 이야기 내 멋대로 읽고 십대 3
김보영.박상준 지음, 이지용 감수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SF장르를 동경하고 사랑하지만 자주 읽지는 못하는 독자다. SF소설이 아닌 색다른 시도가 돋보여서 집어든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이란 걸 알고 살짝 실망했지만 읽어보니 청소년이 아닌 나같은 아저씨가 읽어도 재밌다. 재밌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의외의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되고 이런 저런 화두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진기한 책이었다.


이 책이 SF소설이 아니면 뭐라고 말해야 될까?...SF세계로의 초대장? 여튼 이 책은 한국 대표 SF 작가 김보영과 서울SF아카이브 대표 박상준이 실제 인터넷 설문 조사로 모집된 질문들에 답하며 토론한 이야기들을 엮은 형식이다.


이 책의 설정은 솔직히 좀 유치한 면이 있다. 자기가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로봇이  50년 뒤에 인류가 멸망하는데 그 멸망을 막기 위해 토론을 한다고? 로봇의 엉킨 데이터가 정돈되어 인류를 멸망으로부터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데…  여튼 그래서 작가 지망생, SF 덕후, 공대생, 기자, 영화제 직원 다섯 사람이 토론을 하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재밌는 질문들이 많이 나오는데  ‘몸을 기계로 바꿀 수 있다면 성별에 의미가 있을까요?’, ‘블랙홀에 빠지면 어떻게 되나요?’, ‘SF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왜 그렇게 지구를 침공하나요?’ 등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을만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들이다.


책의 구성은 4부로 나뉘는데 총 10가지의 질문에 2부 ‘나와 다른 너’에서는 젠더에 대한 SF적 상상, 미래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철학, 인류는 어떤 방식으로 진화하게 될까 등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최근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혐오’와 ‘차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3부 ‘우리는 영원하지 않다’에서는 인류의 종말과 미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 4부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는 인류의 우주 진출, 외계인, 시간여행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인상적인 대목들을 발췌해보면


Q. 지구가 아닌 어딘가에는 제3의 성도 있을까요?


상덕: 그거 바로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 이야기네요!

《어둠의 왼손》 어슐러 르 귄 Ursula Le Guin, 1969

사회적 성을 포함해 성 문제를 다룬 걸작이자 여성학의 고전이죠. 이 소설 속 행성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변해요. 이런 세계에서는 성 역할이 고정될 방법이 없어요. 르 귄은 성 역할이 고정되지 않은 유토피아를 상상한 거죠.

처음에 주인공은 이런 외계인을 보고 혼란을 느껴요. 하지만 그 세계에서 한동안 지내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친구와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교류를 한 뒤에는, 자기 별에 돌아가서 성 역할이 나뉜 세계에 오히려 혼란을 느껴요. 이 소설의 멋진 점은 독자들도 책을 읽고 나면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거죠.


(……)

공순: 제3의 성을 찾기 위해 지구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어요. ‘테트라하이메나’라는 단세포 생물은 성이 일곱 가지나 된다고 하죠. 이 생물은 스물한 가지 조합으로 번식할 수 있어요. 그리고 식물이나 작은 생물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암수한몸은 일반적이다시피 해요.

어류와 양서류에도 흔하죠. 성별을 바꿀 수 있는 물고기만 400종이 넘는 것 아세요?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도 그중 하나죠.


중세 온난기

4세기에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웠다는 연구가 있어요. 유럽에서는 작물이 풍작이었고 특히 포도가 잘 익었다고 하죠. 먹을 것이 많고 풍요로우니 사람들이 신을 찬미하게 되고, 남아도는 노동력으로 성과 교회를 대량으로 지으면서 중세가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반면 미 대륙은 가뭄으로 흉작이 이어졌고, 그게 잉카 문명 멸망의 원인이라고도 해요.

그러다 14세기쯤에는 다시 지구가 추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기근이 이어지고 흑사병이 돌면서, 사람들이 이제 신을 믿지 않게 되며 중세는 몰락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Q. SF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왜 그렇게 지구를 침공하나요?


작가: 상덕이 말했다시피 그것도 하나의 은유지요.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악마의 역할을 SF에서는 외계인이 대신하는 거예요.

상덕: 적이 인류가 아닌 존재라는 점에서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날려 버릴 수 있으니까요. 무자비하게 퇴치해도 문제가 안 되게 말이죠. 단순한 스토리를 만들기 좋은 소재죠.

직원: 좀비처럼 말이죠?

상덕: 웰스의 《우주 전쟁》은 처음으로 지구 바깥의 적을 상상한 작품이에요. 《우주 전쟁》이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되었을 때, 시민들이 정말 외계인이 침략했다고 믿고 대피 소동을 벌인 에피소드는 유명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