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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의 도중
호시노 미치오 지음, 박재영 옮김 / 엘리 / 2019년 3월
평점 :
일본의 에세이들을 가끔 즐겨 읽는데 주로 특이한 이력의 괴짜, 덕후인듯 하지만 그들의 책을 읽고 나면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고 자기의 행복을 쟁취하는 멋진 사람이라는걸 깨닫게 되는 그런 류를 좋아한다. 오히려 나 자신의 속물근성에 행동, 실천하지 않고 꿈만 꾸고 있는 비겁함을 죄책하게 된다.

이 책 <긴 여행의 도중> 역시 그런 책이다. 호시노 미치오라는 사진작가의 책인데 알래스카에 가서 에스키모들과 생활하다 캄챠카 반도에서 불곰들의 습격에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은 아주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4~50편의 짧은 글들을 모았고 아주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지만 깊은 내공이 옅보이는 글들이다. 한편으로 그래서 더 읽기 쉽고 잘 익혀서 완독하게 되는 책인듯 하다.

가제본을 받아서 그런지 사진작가의 책인데 그 멋진 자연의 사진들이 한 장도 없는 점이 많이 아쉬웠고 하나같이 자연과 관련된 글들이었다. 군데군데 눈길을 잡고 놔주지 않는 대목들이 있는데 나의 느낀점이나 감상을 적기 보다는 그저 인상깊었던 대목들을 간직하다 가끔 들쳐보고 캬~하고 싶은 책이었다.
실컷 읽고 마지막 부분 역자후기를 보니 이 책이 유고집으로 편집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글들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졌다.

알래스카의 진정한 크기는 새의 눈이 되어 하늘에서 봐야 알 수 있다. 아득히 멀리 이어지는 산맥, 어디까지나 펼쳐지는 들판, 유유히 흐르는 큰 강...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주지만 대상과의 거리에 따라 주는 정보가 다르다.
인간이나 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자연이 숨쉬고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아는 것이 언제나 놀라웠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항상 생각하게 만들었다.

성인이 되고 우리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아마 가장 그리운 것은 그 시절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시간 감각이 아닐까? 과거도 미래도 없이 그저 순간순간을 살아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향수, 과거나 미래는 우리가 마음대로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며 사실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 환상에서 애처로울 정도로 벗어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