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 세계사

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난젠 & 피카드 지음, 남기철 옮김 / 오브제 / 2019년 3월

그야말로 1만년 동안의 섹스과 관련된 인류의 역사책이었다. 시대순으로 섹스와 관련된 인류학, 인문학 이야기들을 엮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멋진 음담패설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섹스 문화를 선명하게 복원시켜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며 성의 영역이 어떻게 오늘날의 인류문화를 만들어냈는지 알려주지만

사실 공공장소에서 이 책을 펼쳐놓고 읽기에는 꺼려진다.  또 아무나한테 이 책의 내용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기에도 힘들다. 이렇게 블로그에 책 리뷰를 쓰는 것도 사실 썩 내키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유쾌하고 재밌게 읽겠지만 어떤 사람은 얼굴이 붉어질 수 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독일 뮌헨의 젊은 저널리스트 그룹 ‘난젠&피카드Nansen&Piccard’이다. “호모사피엔스는 1만 년 전부터 섹스에 대해 광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우리 조상들은 “동굴에 포르노그래피를 그렸고 파피루스에 음담패설을 썼으며 이상한 계율이나 금기 사항, 견해 등을 생각”해냈다. 심지어 수메르인들은 관음증 증세가 심했다. 그들은 “남자가 아내의 음부를 오랫동안 바라보면 부자가 되거나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하룻밤에 최소 네 번 성적 만족감을 느끼는 게 여성들의 권리”였다.

따분한 나열식의 역사이야기가 아닌 제목만 들어도 호기심이 발동하는 다양한 주제로 챕터들이 구성된다.

푬페이의 그룹섹스모자이크

지속시간의 비밀

그리스인들의 음담패설

마호메트의 섹스 카운슬링

칭기즈칸은 수백명의 자식의 아버지였다.

섹스파트너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모수오족

카사노바가 페미니스트였다고?

타이어가 콘돔으로부터 탄생했다며?

등의 주제들, 그리고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꼭 읽어보고 싶은 주제들이 가득했다.

18세기에 살았던 인류 최고의 플레이보이 카사노바는 정열적인 페미니스트였고, 19세기에 살았던 타이어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는 아내 몰래 부엌에서 실험하다가 우연히 콘돔을 발명하기도 했다. 점잖고 교양 있던 영국의 산부의과 의사 그랜빌은 1833년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바이브레이터를 개발했고, 여성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1866년 작품은 자크 라캉 정신분석의 토대가 됐다. 2013년 킴 카다시안의 풍만한 엉덩이는 미의 기준이 됐고, 2015년 이슬람 여성 미아 칼리파는 포르노 여왕이 됐다.

저자가 특별히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도 인상 깊었다.

저자들은 후기를 통해 도리어 한국의 독자들에게 심상치 않은 질문을 던진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들. “한국의 여러 특정 지역에서는 남성의 성기를 우상시해 나무나 돌로 만든 페니스를 숭배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또, “제주도에 있는 러브랜드 테마파크는 독일에서 유명합니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이 그곳을 방문하나요? 아니면 독일인 같은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건가요?”

“한국에 ‘비디오 방’이라고 불리는 비디오 가게가 있는데 으슥하고 폐쇄된 방에서 커플들이 비디오를 볼 수 있게 만든 공간이지만, 사실 여기서 그들이 다른 무언가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비디오 가게들이 한국에 있나요?” 이 저널리스트 그룹은 자신들의 이메일 주소까지 공개하며 한국 성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됐던 사건들을 알려달라고 간청까지 한다.

마호메트는 이렇게 조언했다. “짐승처럼 아내에게 마구 달려들어선 안 된다. 부부 사이에 메신저가 있어야 한다.” 그러자 어떤 이가 다시 물었다. “메신저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마호메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키스와 달콤한 속삭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