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성국 발해 주춧돌 2
이이화 지음, 김태현 그림 / 사파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우리의 주변에서 발해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실, 아니 알려져 있는 사실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까닭인지 몰라도 발해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실이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말갈족이 발해를 세울때 구성원으로 참여한 까닭에 발해의 역사를 논할때 우리나라 역사인지 남의 나라 역사인지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광개토대왕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발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 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모르는 사실이 너무나 많았다.고구려 유민을 데리고 대조영이 발해를 세웠으며, 동쪽의 예의바른 나라라 하여 해동성국이라 불렀다는 정도로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 역사는 아는 만큼 우리가 지켜낼 수 있다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발해의 내용을 대강 알아보면,고구려가 망하고 나자 당나라는 10만 여명의 고구려 유민을 만리장성 가까운 영주땅으로 옮겨 살게 하였고,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동모산을 중심으로 하여 대조영이 698년에 `진국`이라는 나라 이름에서 713년 `발해국`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며 229년의 역사가 시작 된다.

 대조영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정복활동을 세차게 벌여 나라의 기초를 다져간다.

 2대 무왕을 거쳐 3대 문왕 시기에는 나라 안의 살림살이를 다지고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며,제 10대 선왕시기에는 일본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외국의 문물을 받아 들이려 노력을 많이 했으며 바로 이 시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해동성국`이라고 불리워 지게 된다.

 발해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면 무쇠 농기구를 널리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으며, 소와 돼지 등을 가축으로 많이 길렀고,생산되는 가죽은 겉옷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5경 15부 62주의 지방제도와 중앙기구는 3성 6부를 두었으며, 군사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불의 신을 가장 숭배하였으며, 마구, 축국, 투호, 바둑, 장기등의 문화 생활과 샤머니즘을 토대로 한 민중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발해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 별로 없어 더 많은 내용을 소개하고 싶지만, 너무 많은 사실을 적게 될 것 같아 여기서 줄이고자 한다.천천히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노구를 이끌고 추위에 떨며 상경성의 궁터, 동경성이 있던 두만강 가도 거닐며 발해의 역사 흔적을 찾아 헤매셨던 선생님을 생각하며,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먼저 잘 알고 지켜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보충을 다녀와서 틈틈이 정리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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