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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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뭐요? 나는 분명히 푸른 빛으로 칠했는데 왜 분홍이 된거요?”

“이봐요, 나는 샛노란 색으로 칠했다고요 그런데 왜 회색이죠?”

“헉, 내 볼록한 귀여운 브라운관들은 어디로 간 거요? 뭐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고 ? 말세야 말세.”

피카소와 고흐와 백남준이 살아 돌아와, 자신들의 그림 앞에서 복원가들에게 항의를 한다면?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들이 항의해야 대상은 빛과 먼지와 세월이다. 아, 백남준작가는 삼성에 항의를 할지도 모른다. 다다익선을 할 때 브라운관을 제공해 준 건 삼성, 30년도 되지 않는 세월동안 이렇게 브라운관이 납작해지고 얇아질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가 하면 데미안 허스트는 쿨하다. 프롬알데히드에 담아 놓은 자신의 상어 3조각이 변질 될 기미가 보이자, 별일 아닌 듯 상어를 바꾼다. 상어를 바꾸는 비용은 당연 작품을 사는 사람몫이다.


숭례문이 불탔다. 그리고 복원, 복원된 숭례문은 예전의 그 숭례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복원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장 닮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대적인 발전의 일부를담아도 되는걸까.

얼마 전 브라하에서는 한 할머니가 오래 된 예수님 그림을 본인이 마음대로 복원하면서 (일명 원숭이예수님)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가, 후에 오히려 인기 있는 관광지이자 아이콘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옛날 그림이나 조각들에 대한 복원의 원칙과 그 속에 담긴 과학 지식과 역사등을 사례로 엮어 풀어내고 있다.

테세우스의 배, 낡아가니 판자 하나씩 하나씩, 바꾸다 보니 이제 예전 테세우스의 부품은 남아있지 않다. 이건 테세우스의 배가 맞을까, 아니면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모방품일까.



예전엔 복원에 침이 쓰였다고 한다. 실제 침에 소화효소 등이 있어 낡고 굳은 먼지들을 살살 녹여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자외선 레이저(라식수술 등에 쓰이는 )가 사용된다. 침과 레이저라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리고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들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뒷면에 왁스나 밀랍을 발라 복원을 했는데, 뻣뻣해지면 그림의 생기가 줄어든다고 한다.

구본웅화가가 그린 이상을 왁스등으로 복원했더니 조금 다른 이상이 되었다. 초췌하고 낡아보이던 이상의 얼굴이 조금 더 강렬해졌다.(아래 첫 번째 그림)

세월이 흐르면 그림에도 주름이 잡힌다고 한다. 그림에 쫘악 쫘악 금처럼 가는 균열, 그런데그런 균열을 선호하는 작가들은 오히려 그림을 오븐에 구워 그런 느낌을 내려 하기도 한다.

너무나 유명한 <진주귀걸이 소녀>눈 레이저 등으로 봤더니 원래 배경에 초록색 커튼이 있었으나, 퇴색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색면화가로 유명한 로스코의 그림들은 빛에 탈색되는 경우가 많아, 그 퇴색된 부분엔 프로젝터로 원래 색을 비춰지게 한다. 빛으로 변색된 그림을 빛으로 복원한다. 백남준의 브라운관 작품들은 더 이상 브라운관이 생성되지 않아 고심이다. 지금의 최신형 모니터로는 그 뚱뚱한 브라운관의 곡면이나 미세한 지직거림과 떨림을 표현할 수 없다.

그림은 벌레, 물, 화재, 이동 등에 취약하다. 특히 이동시에는 전문가인 쿠리어가 일을 총괄하며, 고흐그림을 옮길때는 1300만원짜리 박스에 담아 비행기로 이송했다고 한다.


주로 우리는 그림을 감상하고, 화가의 뒷이야기를 읽고 즐거워 한다. 혹은 아름다운 색과 선앞에서 넋을 잃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런 그림들과 조각들이 온전히 그 모습으로 그 오랜 세월 있음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복원가들에 대해 알게 해 주는 책이다. 뭉크의 그림들은 복원가들에겐 골칫거리라고 한다. 실험 정신이 투철해서인지, 뭉크는 자신의 그림들을 노지에 내 놓기로 유명하다. 실험정신이 아니라, 뭉크는 자신의 그림들을 자연속에서 노화되도록, 그래서 본인과 같이 늙어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제목처럼 예술가의 손길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세월 앞에서는 과학자의 손길로 유지된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최신기술로 유지되길 바랄까, 아니면 자신처럼 자연의 손길에 맡겨 어느 순간 그저 이치에 맞듯 사라지길 바랄까. 감상자의 입장에선 모나리자가 혹은 고흐의 작품들이 빛바래고 낡아 사라진다면 슬프겠지만.

이제 그림을 볼 때 그 뒷면도 감상하게 될 것 같다. 저 그림들엔 복원가들의 침이나 땀이 녹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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