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까짓, 털 - 나만 사랑하는 너 이까짓 1
윰토끼 지음 / 봄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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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토끼가 하늘거리는 털을 자랑하고 있다. 외국 영화에서 나오는 멋쟁이 신사의 대명사인 콧수염이 아니다.

뭔가 말만 해도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겨드랑이 털이다.


책 <이까짓, 털>에서는 털 관련 에피소드들을 시원시원하게 오픈하고 있다. 

털이 남들보다 조금 있는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웃고 울고할 이야기들.

'털' 경험담으로 책 한권을 낼 정도로 이야기가 많은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엮은게 아니라 

저자 혼자의 경험담이라는 것도 웃픈 일이다.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에피소드를 뽑으라면 역시, 수염이다.


"언니는 왜 수염이 있어?" 

저자가 교회에 같이 다니는 어린아이한테 들은 질문이다.

아마 여기서 생략된 말은 '여자인데' 일 것이다. 즉, "언니는 왜 (여자인데) 수염이 있어?"다.


그렇다. 여자는 털이 없는 존재 아니었나?

나도 여자지만, 어렸을 때는 여자는 털이 아예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여자도 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수염은 남자만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받은 가장 큰 충격은 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처럼 다리털이 진하고 길게 나는것도 충격이었지만(다행히 수북하진 않았다)

겨드랑이에 털이 나더니 이제는 입술과 코 사이, 인중에도 수염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뭇거뭇해진 코 밑을 보며 멀쩡했던 성 정체성이 잠깐 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성인이 되서야 제모를 할 수 있다고 하고, 그렇다고 면도기로 밀면 털이 더 많아지고 굵어진다 해서

몸 곳곳이 검은 털들이 무척 거슬리면서도 끝끝내 밀지 않고 성인이 될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 그렇게 버티는 동안 지적을 참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털 많은 여자인 내가 이상하고 잘못된 존재 같아 걱정하며 하루빨리 고쳐야만(털을 죄다 밀어버려야)한다 생각했다. 

그러다 점점 화가 났다. 남들보다 털 많은 남자들도 있지만, 남자들이 털이 많은 편이라 해서 나처럼 걱정하거나 지적 받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털 많은 남자는 싫으면 밀면 된다는 선택지가 있지만, 여자는 털이 적든 많든 모조리 밀어버려야만 한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남자든 여자든 털이 나는 것은 똑같은데 말이다.


책에 모나리자 에피소드가 나온다. 모나리자가 아름답다 극찬하지만, 처음 딱 봤을 때 든 생각은 '눈썹이 없는데?' 였다.

저자 또한 모나리자를 보며 예쁜 여자라면 같고 있는 짙고 숱많은 눈썹이 없어 아름다운 건가? 싶었다고 한다.


몇 백년 전 유럽에서는 몸에 있는 털을 죄다 뽑는 것이 미인이었다. 당시 여왕 엘리자베스 1세도 눈썹과 속눈썹까지 다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미인'이 되기 위해 털을 뽑았다면 지금은 '정상적인 여자'가 되기 위해 털을 뽑아야 한다는것이 참 씁쓰레하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또 영화 <색, 계>에서 탕웨이의 겨드랑이 털이 화면에 크게 잡히는 씬이 있었는데, 배우의 연기력보다 겨털이 주목받을 정도로 이슈였었다. 국내 영화 <러브픽션>도 배우 공효진의 겨털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두 영화의 차이점은 <색, 계>는 시대 고증을 위해서, 러브픽션은 기존의 여성상을 깨기 위한 신선한 장치로서 겨털을 촬영한 점이다. 

<미녀는 괴로워>의 일본판 버전도 흥미로웠다. 한국판 버전의 여주인공 시그니처가 '마리아'였다면 일본판은 '만세 포즈'이다.

두 팔을 번쩍 올려 크게 만세를 외치는 자세를 취하는데, 

아름다워지기 위해 전신성형을 하면서 눈썹과 머리카락을 제외한 모든 털을 제거한 것까지 자랑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성형하기 전 모든 면에서 비난과 조롱을 받아왔던 주인공이 얼굴 다음으로 본인이 변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 깔끔한 겨드랑이를 보인것이다. 하지만 겨드랑이가 항상 털 없이 매끈해야 하는건 당연한것이기에 그걸 유지하기 위해 드는 수고스러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편 못생긴 코로 꼽히는 매부리코도 의외로 장점이 있는데, 바로 코털이 안 보이는 것이다. 

오똑하며 옆으로 봤을때 콧구멍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코는 그만큼 코털 관리를 요구한다. 

나 또한 그 생각을 했었기에 푸하핫 웃음이 나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피부색도 진할 수록 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예전에 하얀 피부를 갖겠다며 외출을 확 줄여 조금이나마 피부를 덜 태운 해가 있었는데, 왠걸.. 털이 전보다 더 잘보이는 것 아닌가. 

나처럼 어두운 피부색이 고민이라면, 이걸로 좀 위안 삼길 바래본다.ㅎㅎ


미워 죽겠는 털. 왜 있는걸까?

네이선 렌츠의 <우리 몸 오류 보고서>에서 진화는 생존과 연결되지만 퇴화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없어져도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꼭 반드시 없어져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게 아닌 이상 굳이 퇴화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털은 우리한테 미운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에게 남아있는건 없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털이 체온유지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말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하지만 부끄러워 차마 얘기를 못 꺼내곤 하는 털 문제.

내 생각들을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일화들과  처음 들어보는 털에 대한 지식(?)들에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털로 고민하는 모든 여자들이여~한번 꼭 보길!

털로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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