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이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평점 :
이 또한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닐 수 있겠구나, 소설인 척 하는 한 인물의 르포 내지 자서전이 될 수도 있음을 염두해두고 읽게 만들었다.
우범지대에 사는 모범생, 상식과 교양이 없는 명문대생,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장학생, 스펙에 뒤떨어지는 대기업 사원, 좋은 사람을 만나는 운과 현명한 선택으로 투자에 성공까지 거머 쥔 사람. 아르바이트, 과외 교사, 은행 직원의 다양한 직군을 거치는 동안 만나게되는 인물들과 그들을 통해 얻게되는 성찰. 누구는 손절의 아이콘이라 했다. 재이를 두고 가난하게 컸어?의 밈의 주인공이라 봐야 할지, 진흙밭을 제발로 걸어 나온 유일한 사람이라고 봐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재이의 이야길 듣다보면 과거의 나일지, 지금의 너일지는 자기안의 물음을 반복해본다. 비춰지는 순간마다 뜨끔거리게 하는 재이에게 나는 뭘 기대하고, 뭘 바라는 것인가. 소설인지 나를 염탐하는 이가 써낸 르포인지 결국 끝까지 의심을 해 가며 읽게 만든다. 이건 소설 인 척 하는 누군가의 자서전이자 누군가를 긴 호흡으로 추척하며 써내려간 짠한 삶의 일대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런건가 싶어하며 사는 사람도 있을테고, 원래 그런게 아닐수 있구나를 깨우치는 사람도 있었다. 전자가 재이의 형제들 내지 달동네 아이들이었다면 후자가 재이였다. 바뀐 환경, 달라진 반친구, 다르게 대해주는 어른들을 통해 또 다른 상냥하고 다정한 관계가 있음을 배웠다. 알려주지 않아 몰랐던 아이의 시야였다. 도움을 받았고, 고마워 할 줄 알았고, 욕설이 없는 상냥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누군가를 돕는 것에 행복을 느낄수 있고, 내 것이 아닌 것에는 감사히 빌려쓰고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고,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축하 받을 만한 일이며, 챙기고 아끼는 것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점. 달라지는 환경과 변화하는 인간관계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터득하며 자신의 위치를 옮겼기에 가능한 결말이었다.
본가에서 가족들과의 갈등이 빚어질 때 빠지지 않는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 읽다보면 쌍둥이는 재이의 또 다른 자아 처럼 여겨졌다. 삶은 매번 갈림길 앞에 있었으며 A와 B중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 오는데 안주할 때마다 머무는 선택은 쌍둥이의 몫이고, 변화되는 세상을 택하는 방향은 재이의 몫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렇게 차츰차츰 간극이 벌어지다 성인이 된 후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축하 받는 결혼과 대우받는 배우자. 기대하지 않는 결혼과 분수에 맞지 않는다 여기며 배우자가 될 사람의 직업에 대한 의구심까지 품는 대화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 재이에게는 제 살길 찾아간다고 험한 말 했던 과거는 잊은 채 한 집에서 얽혀 살던 쌍둥이에게는 하대하는 사이. 때로는 천륜이라는 것도 놓아야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스스로 가족애(愛)의 빈곤함을 고른 것이다.
평범의 오류. 다들 그렇게 살지 않냐는 듯한 일반화의 범주 밖. 재이는 그런 기본의 부류 밖의 가정이었다. 집과 부모와 형제가 같이 산다고 하여 모두가 다복한 가정이 아니듯, 정규 교육과정을 다 밟아온 청소년기를 보냈다 한들 다른 속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범을 이야기 하는 사람 앞에서 평범 이하의 세상을 살아왔다는 확신이 들 때엔 체념을 하게된다. 이들과 나는 다른 부류구나. 섞일 수 없는 삶이구나. 그러니 동경하는 마음이 아니라 별개의 생각과 갈려지는 삶의 목표를 기대하는게 덜 슬프겠다는 답을 찾은 듯 했다. 이제사 살아온 삶의 일대기를 뜯어 고칠 수 없으니 체념이 빠른 답이고 덜 지치는 방향이었다.
확실히 달랐다. 부모를 멀리하는 재이와는 달리 아버지와 함께 분식을 먹으러 올 수 있고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건. 서열이 아니라 조화를 택한 부녀의 관계성. 돕고자하는 어른의 배려. 그걸 보고 자란 재희의 반듯함. 순하고 선하다는 말의 표본화. 아마 나였어도 재이의 입장이라면 재희가 그립고 부럽지만 곁에 둘 친구로 남기진 않을 듯 하다. 나도 모르게 악의가 싹터 재희를 친구의 시선보다 삶의 이용 수단으로 써 먹으려 눈에 힘을 주게 될 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상대의 선함이 자칫 나의 악의로 물들까봐 미리 차단하는 마음을 재희는 영영 모르겠지.
나에게 부모가 없었다면, 언니가 없었다면,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된 언니들이 없었다면, 대학 동기 언니오빠가 없었다면, 첫 직장에서의 사수가 없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때마다 조언을 구할 존재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떠한 것을 배워갔을까. 참을성, 책임감, 인내심, 배려, 양보, 상냥함, 기다림, 협동. 전부 비슷비슷하게 보일 지라도 각각의 상황에서 어떠한 감정과 행동을 꺼내 사용해야 할 지를 단박에 알아차리는 것. 허둥대지 않고 유연하게 사람들 속에 섞여 유순하게 흘러들어갈지에 대한 타이밍 싸움. 매 순간마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교육을 통한 사회화가 잘 된 아바타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바타여서 슬픈게 아니라 아바타여서 다행이었다. 입력값에 맞춰 출력값이 옳게 도출되었으니까.
변하지 않는 가족, 변할 마음 조차 없는 관계. 내가 옳다고 바꾸려해서는 안되는 그들의 개념이었다. 그들의 세상에는 그게 맞는 선택지였다. 개선이 될 수 있었다면 아마 진즉 다른 방향으로 시야를 틀었을 것이다. 누가 그러지 않던가,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변할 사람이었음 애초에 바뀌었어야 했다. 변할 마음이 없었고, 달라질 이유를 모르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서로가 답답해하며 자신이 이롭다 여기던 방향으로 바꿀 수 없었다. 차라리 놓아버리는 것, 그게 마음이 편하다는 걸 나이가 들며 달라지는 인간 무리의 다양성에 발 담궈가며 얻은 태도이기도 했다.
나쁜 뜻은 없었다는 것, 심지어 좋은 마음으로 그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지금에서야 두 경우를 다 겪고나니 느끼는 사람의 태도였다. 악의 없는 솔직함과 자기 자리와 상대방의 자리에 대한 이해를 하며 비춰내는 솔직함. 상처를 받는 것은 매번 재이의 입장인데 지금껏 혈육에게 받아온 상처와는 별개의 마음의 생채기가 있다. 당시에는 날을 세우진 않았지만 홀로 받는 마음의 상흔. 서로가 몰라서였고, 서로가 겪지 못했던 삶이라 그런것임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은조 언니와 재희, 고대표에게 마음이 더 가는 이유는 가르쳐주는 마음에 높낮이가 없었고, 때로는 한 발짝 멀리 뒷걸음을 유지한 채 반듯하게 봐주려 애쓰는 시선이 있었다고 느낀다.
모두가 내 맘 같진 않다. 아마 그건 어렸던 재이나 어른의 재이나 똑 같이 느낄 것이다. 다만, 얼마나 덜 상처받고 덜 바라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이젠 알 것이다. 상대의 마음에 대한 방어기제를 적용 할 줄 안다는 것이겠지.
상냥하게 알려주는 가족이 있고, 차근차근 일러주는 어른. 보고 따라하고픈 마음이 드는 또래와 닮고 싶다 여겨지는 형제가 있다는 것. 그게 인복이었고, 바른 가정이었고, 옳은 관계성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당연하다 생각하던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어린 재이를 통해 알았고, 어렸던 나를 떠올리며 나 또한 재이였던 적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오로지 주변 환경 탓 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었는지, 어떻게 따라 하려 했던지를 생각하며 모난 시절임에도 그럴수도 있다고, 괜찮다고, 다시 해보자고 하던 수많은 손길의 쓰다듬음을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