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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에서 계획하여 출간한 건 아니지만 '새의 선물'과 함께 '빛의 과거' 그리고 지금의 '시간의 감촉'이 은희경표 시간 3부작으로 불리워지고 있었다. 지나온 시간과 기억, 관계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는 것으로 묶어두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시선, 젊은 날의 기억, 인생의 더 깊은 시간에 머무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럼 나는 시간의 순이 아닌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는 노년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시간의 감촉부터 읽어보는게 이해와 공감, 순응과 선행학습의 일부가 될 거라는 믿음으로 보았다. 말은 이렇게 허울좋게 하지만 가장 최근 작품이니 익숙한 문장 구사가 이뤄질거라는 생각이 컸다. 책은 총 4부작으로 하여 한동안 교류가 뜸했던 자매 사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제는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간병을하고 고단함을 같이 지켜주어야했고, 자신들을 기점으로 뿌리가 내려진 딸과 손녀를 돌봄에 있어 일어나는 단상들. 손녀와 외할머니, 이모할머니 셋이 함께하는 여행. 그리고 그때 했던 이야기들을 곱씹어가며 남은 생에서 일어날 일들에 관한 대화들을 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산 사람의 몸안에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이 들어 있다'고 했다. 나란히 함께 할 것 같았던 1월생의 안나와 12월생의 경선. 쌍둥이 같지만 그저 태어난 해가 끝과 끝에 걸려있을 뿐 성격과 외향이 다르다. 나란히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가족사로 인해 찢어져 살게된 둘. 그렇게 갈려진 세상은 평생 나란할 것 같은 둘을 전혀 다른 세상을 꾸리게 만든다. 어쩌면 제일 처음부터 달랐을지도 모르지.
다르게 살아서 서로의 세상을 동경했을 것이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살았으리라. 한 때는 미워했고, 또 한 때엔 부러웠을 각자의 세계. 이제는 정말 달라졌고, 미래를 이야기하기보단 과거를 더듬어보며 시절을 되새기는것으로 각자가 없었던 시절 속 서로를 위로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는 관계였다. 자매라는 관계. 심지어 터울이 얼마 안 되니까. 안나와 경선을 보면 그런생각도 든다. 최근에 보았던 '끝나지 않는 노래'속 수선과 봉선도 나이가 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과거 속 그들을 자주 불러들일까? 심지어 그들은 쌍둥이이며, 한부모 가장의 엄마들이었다. 안나와 경선보다 더 애틋한 관계이니 더더욱 끈끈하게 노년을 바라보며 과거를 이야기하겠지. 그렇다면 4살 터울인 나와 언니는 또 어떻게 늙어갈까를 생각하게했다. 안나와 경선처럼 전혀 다른 바운더리를 꾸리고 중년을 보내고 있다. 또 그렇게 교차되기보단 서로가 알지 못하는 갈래로 더 깊게 파고는 중이다. 그래서 안나와 경선을 보며 나의 노년 미리보기 클립같이 여겨지기도 했다.
경선의 세상은 좀 더 많은 굴곡과 갈림길이 있었으리라 짐작하게했다. 가정을 이뤄봤고,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또 작은 생명을 키워내고있다. 경선의 딸인 다은은 남편과 헤어지려마음을 먹는다. 경선은 이미 이혼을 했고, 과거의 배우자는 서류상 남이 된 후 시간이 흘러 생을 마치기도 했다. 그 P라는 존재는 죽고난 후에도 경선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도한다. 어쩌면 P 덕분에 안나 할머니, 아픈 경선 할머니, 세상이 신기한 손녀 다니엘 이렇게 셋이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얻어졌으니 마냥 미워 할 수만도 없겠다.
📖사람은 병과 실수와 약점을 통해서도 교감한다. 고통과 맞닥뜨리는 걸 피해버리면 화해할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만다. 갚을 길 없는 빚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안나와 경선은 모친의 죽음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대응을 했었다. 깊어지는 병환에 발길을 끊은 안나였다. 외면한게 아니라 안나는 살려고 그런거라 보였다. 병환에는 답이 없으니까 가타부타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관계에 관해서는 끝없이 질투하게됨을 느낀다. 나이가 든다고 달라지진 않더라는 걸 둘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었다. 중요한건 안나에게만 묻곤했다는 경선의 푸념. 용서받고 사랑받으며 거리감이 없었던건 경선이었다던 안나의 서글픈마음까지. 믿음과 의무, 사랑과 용서. 받아보면 당연하고 못받으면 아쉬운 마음. 나이가 적든 많든 그건 어쩔 수 없이 사람이면 받게되는 아쉬운 마음인가보다. 그리고 후회는 늘 늦고, 용서와 바로잡음은 늘 한발 뒤에 있어 제때 이뤄지지 못하더라.
📖안나는 경선과 다니엘이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를 맞대 누른 뒤 손등을 스치고 손바닥에 사인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니엘이 경선에게 새집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나로서는 생소하고, 어쩌면 영영 할 일이 없는 어린 핏줄과의 진지한 약속이며 둘 만의 의식. 시작은 같았을지 모르는 생의 스타트였지만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삶을 살다보니 아주 많이 벌어진 격차이며 다른 풍경의 구간들임을 보여준다. 틀린게 아니라 다를 뿐인데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똑같이 하고자 하더라도 결코 같을 수 없는 관계의 약속같기도 하다.
스쳐 지나갈 장면이겠지만 나 또한 결코 할 수 없는 관계이자 의식이라 안나의 시선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약속이 많아서 당분간은 죽을 수도 없다며 자신처럼 책임감 강한 암환자에게는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기적의 치료법이라고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할게 많다. 그리고 포기했던 것들 마저도 다시금 해볼만한 여력을 주고있다. 시간은 많고(암환자라고 모두가 타이머를 갖고 있다 절망은 말자) 돈도 있고, 이것저것 다 해준다며 자기가 빨리 크길 바라는 다니엘도 있다. 테이블 위에 놓여지는 수많은 커트러리를 다 쓰는 식사와 망고빙수도 먹어볼 기회, 다니엘이 만들어줄 집, 다니엘이 힘들지 말라고 나의 처음과 너의 처음이 될 아스팔트 도로하며, 해외여행에서 처음으로 다같이 맞춰 입었던 티셔츠를 다시 꺼내 입고 여행할 기회까지.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이것저것 다 해본거 같아도 아직 못해본게 많은 기대될 처음들.
다니엘의 처음 못지 않게 안나와 경선 또한 처음 접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살아봄직하고 그래서 내일을 기대하게되는건 이제 막 10대가 시작된 다니엘이나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넘어간 둘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인다. 그들이 여행 내내 게임이라고 했던 처음에 관한 이야기는 살고싶게 만드는 기폭제같기도 했다.
읽고나면 이 이야기는 어떤 걸 말하고싶었던걸까를 생각하게한다.
안나가 경선을 챙기는 간병일기, 안나의 일상 기록, 경선과의 추억더듬기, 다니엘과 함께 떠나는 할머니와 해외여행, 나이든 자매가 늦었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 터놓기. 뭐 어떤거든 다 끼워맞추자면 가능한 일상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 시대로 비유하자면 정년퇴직한 선생님의 일상 브이로그의 다양한 컨텐츠랄까? 평생을 교사로 살아왔고 이제는 즐겁게 나이들며 그간 돌보지 못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있는 할머니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유튜브와 글로 담아두었습니다. 라는 소제목이 붙겠지. 왕래가 없었던 자매의 간병, 이모 할머니와 함께 학원 라이딩가기, 암환자의 병원 검진 동행, 산책은 중요해, 살면서 버려도 될것과 영원히 곁에두고 싶은 물건들 구분하는 정리의 신... 뭐 이러한 것들의 다양한 컨텐츠가 된 안나의 일상같았다. 그래서 우울하기보단 노년의 세월까지 살아도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있고, 다 알아주지 못한 상대의 감정들이 있었고, 다음을 기약하며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훗날의 내가 해봄직한 것들을 나열하며 좀 더 늙어도 사는게 재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우울한 노년이 아니라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또 저런대로 나이들어가고 이야기가 흘러가며 살아지더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린 특별하고 특이한 순간을 기대하지 않는다. 유순하며 때로는 나른하기도 하지만 멈추진 않는 시간에 살고 있어서 지겨울 틈이 없을 거라는 것. 그러니 달라서 서운 할 필요도 없고, 못 어울릴 일도 없던데 네가 내 나이가 되면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지 않겠냐는 인생 선배의 일상같았다. 밋밋할 순 있겠지만 멀겋게 보이진 않는 어른의 시간. 그래서 지금보다 곱절의 나이즈음? 나도 경선과 안나와 같은 연배가 되었을 그 즈음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