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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평점 :
개정판이지만 나는 이 작품을 처음 마주한다. 그간 저자의 소설은 열심히 챙겨봤다 생각했는데 근간만 읽었지 초반 작품을 볼 생각도 안했더라. 읽고나니 짠했다. 각각의 시대별로 살아낸 그들이 짠하고 그러한 세상의 흐름이 짠했다. 나 또한 이 시대에 떨어져 두자나 수선과 봉선이었다 한들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세상이 팍팍하고 퍽퍽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고있는 은하의 세상도 목이 메인다. 2011년 출간 당시 시점으로 보면 고시원을 전전하는 대학생과 복학생, 알바생 그 어디 즈음이니 아마 내 또래이지 싶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엄마들한테 가서 종종 밥은 얻어먹고 오는지. 별거 아닌 안부와 시덥잖은 세상 이야길 하면서 그들의 세상이 안녕한지 듣고 싶어진다.
가끔 이러한 시대를 잇는 엄마와 엄마의 엄마들 이야길 읽다보면 '나는 이렇게 안 살꺼야!' 라고 외치며 저 혼자 삐죽 삐져나와 돌파구를 찾는 존재들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속에선 그러한 마음이 차오르다 목구멍에서 막혀 표출되지는 못하는 인물이 태반이다. 봉선만은 아니길 바라지만 결국 저의 반쪽과도 같은 수선의 곁으로 돌아온다. 치기어린 반항이 시작이었으나 젊은날의 일탈로 마무리되는 감질나는 기행이 끝난 것 같아 씁쓸하다. 사랑을 갈구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들은 부부간의 정으로 한정짓지 않았다. 받은 사랑이 없었으니 줄 마음도 없었음을 생각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모정을 갈구한다. 아주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에게 자란 두자는 어리광 대신 제 목숨 건사하기 위해서 집안일과 농사일에만 몰두해야했고 그게 당연해서 새엄마의 사랑보단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어필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쌍둥이 수선과 봉선은 엄마인 두자를 통해 세상을 아는 것이 아니라 저 둘이서 살 부대끼고 살아내면서 세상을 배웠고 눈칫밥을 삼켰다. 엄마의 고생을 보고 자랐기에 저들끼리 의지하며 커갔고,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엄마 목구멍에도 떡을 밀어넣어주었다. 그녀들의 아이들은 아빠보단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컸고, 타인에게 받은 상처는 사촌들끼리 보듬고 위로받았다. 폭닥한 모정을 바라지만 녹록치 않은 삶인걸 알기에 은하와 동하는 자기 상처를 움켜쥐며 살았다. 이유없는 학폭이든 학자금대출과 생활비로 인해 얻어진 쪼그라드는 삶이든 삼켜냈다. 징징거리고 하소연 하기엔 엄마들이 더 가여웠으니까. 그렇게 어두운 놀이터에서, 좁고 갑갑한 고시원에서 서러움을 먹어 없애려고했다.
당신도 여자이고 한 집안의 며느리였음에도 아들을 낳았고 대를 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떵떵거리는 목소리. 딸이라도 낳게되면 몸 추스리기 보단 책잡힐까봐 밭일을 나가는게 당연했고, 도통 사내놈 낳을 기미가 안 보이면 첩이라도 들이는걸 눈 감고 귀 막으며 감내했던 시절. 여자가 교육은 받아서 무엇하냐며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 보다 풀 메고, 살림하며 서방에게 따뜻한 밥 먹이는 것이 최고인줄 아는 삶. 그렇게 낳아지고 방치된 딸들은 엄마의 분신처럼 똑같은 삶을 이어가는게 당연하다 보는 세상의 눈들이 야속하기만하다. 배우고 익히는 것 보다 오빠나 남동생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며 살림에 보태는 수단으로서의 목숨들. 억척스러운 과거의 그녀들 삶에 켜켜이 들어 차 있는 은하의 세상이 교차 할 때마다 시대가 변한들 아까운 청춘은 여전했고 밖으로 나와 틔우지 못하고 이내 스러지고 마는 은하가 아픈 손가락으로 남게한다.
때로는 허상을 그리는 SF소설이나 호러 미스터리보다 시대를 반영한 소설들이 더욱 잔인하고 쓰라리게 다가오기도한다. 드라마나 소설, 그리고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 귀동냥으로 얻어낸 것들이 너무 많기에 허구의 것들 보다 더욱 깊에 박히고 오랫동안 그 마음이 머문다. 정권이 변한들 시대가 바뀐들 생각보다 쉬이 바뀌지 않는 가족간의 온도와 대우. 다들 아랫세대들을 향해 자신들이 살아낸 시절보다 먹고 살기 좋아졌고 세상 편해졌다 한들 바뀐 세태에 비해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가장 낮은 계층이자 가장 늦게 바뀌는 집단. 행복의 대물림을 바라진 않지만 고난의 대물림이 되어선 안되는데 시대가 바뀌는 것 처럼 고난의 모양이 같이 바뀌며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는 듯 해서 마음이 쓰이고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화사하게 피우지 못하고 피어나기도 전에 시들어져버리는 삶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쪼그려 앉아 눈맞춰 줄 생각도 없는 여린 들꽃같은 생이 지천에 널려있는 듯 해 마음이 깔깔해질 뿐이다.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새엄마의 생존여부라도 알고싶어하던 혈혈단신의 두자. 같이 죽자고 하지나 말지 제 모습을 닮아있는 딸들에게 내치지 말고 치맛자락에 숨겨 잠깐이라도 보듬고 눈맞추고 고생했다 미안하다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아 더욱 서럽고 외로웠던 수선과 봉선. 감당하기 힘들면 엉엉 울어제끼고 힘들다고 입 밖으로 토해내듯 풀어냈음 덜 애잔했을 이르게 철든 은하와 동하. 그들의 삶에 기생하고 희생을 당연시했고 날이선 말들로 수도 없이 찔러댄 사람들(가족이 아니라 일꾼으로 대하던 시어머니, 바람난 아버지와 남편, 고마운줄 모르던 형제, 재력이 벼슬이었던 학폭의 동급생)
끝나지 않을 노래이며 끝나지 않는 생의 고통 대물림. 말끔히 잘려지지 않을 듯한 생의 고난. 시대가 변함에 있어 형태만 바뀔 뿐이지 형질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생의 고달픔. 태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한들 태어나 살아내는 것에는 행복이 우선시 되는게 당연한 것임에도 욕심이라 여기게되니 뭘 기대하며 살아야될런지 생각은 많은데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아 내 쉬는 숨이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