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 - 대체 가능
단요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같을거라 기대하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들. 자신은 절대 닮지 않았다며 외형적 동일함마저 부정하면서, 자식에게서 보여지는 면에서는 동일함을 바라는 모순적인 태도. 결코 민호와 같은 선상에 놓지 않으려하는 성정을 통해서 주인공의 대략적인 캐릭터를 가늠 할 수 있었다. 혈연지간이라는 가장 사적인 존재의 교류는 항상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 점에서 민형과 민호는 갈렸고, 그 뿌리를 쥐고 태어난 우연과 지연 마저도 아버지와 삼촌을 빼닮아있음을 느꼈다. 민형이 치를 떨던 혈연, 허나 부정 할 수 없는 성향. 결국 죽음을 바라는 존재는 동생이 아니라 그만큼 닮아있는 자신을 향해 있음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많이 들어봤던 저자의 필명. 2020년대에 알려진 작가 단요. 저자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으나 생각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야기꾼처첨 느껴졌다. 알려진 '다이브'의 청소년 소설 갈래는 물론이고, 스릴러 분야의 '피와 기름', SF소설로 문윤성 SF문학상까지 수상했던 '개의 설계사'만 봐도 우리에게 해줄 말이 많은 사람인듯하다.

모친의 장례식장에서 쌍둥이 딸 중 한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시점은 모든 죽음들과 엮여있는 아들이자 아빠인 민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모친의 장례를 정리한 후 이제 딸의 장례를 준비해야하는 상황. 그런데 생각보다 민형은 담담하다. 이미 예견했던 사망이 아님에도 상주로서의 자세가 내가 아는 보통이들과는 확연히 다름을 느끼게 만든다. 형제들에겐 퍼다주기 바빴던 부모이지만 자신은 어떠한 것도 지원받지 못한 채 저 혼자 장성했고, 노모의 병원비를 담당하며 이른바 아들노릇을 도맡아왔다. 자신의 총명한 머리를 닮았다면 쭉 잘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녀석들은 재수에 재수를 거듭했고, 한놈은 어렵사리 민형의 모교 치대에 입학, 또 한놈은 이번에도 고배를 마신다. 닮아도 너무 닮은 두 딸 중 한명의 사망. 그 당황스러운 순간 민형은 저 아이가 지연인지 우연인지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 쓸모있는 놈이 살아야하고 인정받아야함이 마땅하다 여기는 자에게 딸의 구분보다 의사의 딸에 걸맞는 실효성을 먼저 떠올려 죽은자와 산자의 역할을 바꾸려 산 자에게 도모하길 원한다. 이 정신없는 감정과 역할의 변화 속에서 민형은 어떻게 들키지 않고 오랫동안 원하는 바를 유지할지에만 집중한다. ... 역시 제 정신 아니다.



📖민형은 자신의 꼬락서니가 오래전의 그 노인들 같지 않은가 생각했다.

현실을 붙잡는 대신 무한히 이연시키는 방식으로 삶을 지탱하는 사람들, 수술을 감내할 바에는 죽고 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시절이 차라리 나았다.

초라하게 살지 않으려 아등바등했고, 인정받기위해 간절하게 애써왔다. 아플 때 수술받고, 적절한 처치를 받으며 덜 고된 삶을 기대하며 여기까지 온 민형이었다. 닮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길을 걷게된 민호와는 확연히 다르며 이 곳처럼 의료가 열악한 곳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하고 단순히 오늘의 고통을 버틸 진통제만 바라는 삶은 더더욱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속으로 하찮아하는 민형이었다. 자신의 모친만 봐도 그러하다. 밑빠진 독에 물 부어 민호를 갱생시키려 애썼으나 금전적인 지원은 의사라는 이유로 중간에 끼인 둘째인 자신이 감당하고 있었다. 사회성이 결여된것 처럼 여기더라도 능력이 있고, 재력이 있다면 어느정도 커버가 되는 세상이다. 직업이 의사이니 능력이 좋아 환자가 끊이지 않는다면 병원에서든 수술방에서든 존경을 받게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돈으로 대변된다. 그걸로 때때로 최저점의 인성만 무마시킨다면 사는데에 큰 지장이 없다는걸 온몸으로 느껴왔다. 시골 페이닥터이며 주말부부가 된다한들 아내와 자식들은 모든 인프라가 꾸려진 곳에서 생활패턴에서부터 상위버전이 기초적인 것으로 살 수 있다면 모든걸 감내할 수 있다 생각했다. 영끌이라 할 만큼 알아주는 동네에 집을사고 그 학군에서 기반을 닦는다면 쌍둥이 딸들은 어쩌면 자신보다 더 높은 클래스의 삶을 누릴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삶의 행복 척도가 돈과 명예인 사람의 아주 전형적인 자세였다.




📖당신은 그 기질이 심해. 좀 극심해. 특히 자기 성에 안 차면 사람으로도 안 보는 게 느껴져. 상대 사정을 봐주면서 좋게 좋게 넘어갈 줄 알아야 하는데, 기어코 어느 때건 손모가지를 잘라 버리려고 해. 그러니까 안 잘린 사람들도 옆에서 보면서 질려 하지. 그건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아. 내가 한 번만 삐끗하면 저 인간 태도가 어떻겠구나 하고......

못하면 욕을 먹어야지. 못할 수도 있는데 못하는 놈이 잘하는 사람들처럼 살려는건 잘못이고. 교만이든 탐욕이든, 일종의 죄야

죄가 있으면 용서도 있어야지. 세상 사람들이 꼭 당신처럼만 생각하는 건 아니라니까.

고생은 고생대로 한다 생각하며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는 중인데, 이른바 남편 잘 만다 어려운거 없이 사는 아내가 고마워 할 줄 모르며 한탄한다 여긴다. 쌍둥이 독박육아가, 주말부부로서 도움을 못 받는 형편이, 모든게 능력과 세상이 만든 삶의 레벨에 민형보다 훨씬 뒤쳐져있지만 결혼 잘 해 잘 누리고 살면 이정도는 감내해야하는게 아니냐는 듯 채린을 보는 민형의 시선. 민형의 편에서 보면 채린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기도했다. 둘이 처음 만난 시점에는 민호가 있었고, 외도의 과정에도 민호가 있었으니 괜한 트집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으며, 이렇게 기질 비교와 사람의 성향에 대한 훈계는 곧 민호가 더 나은사람인냥 삐딱하게 받아들이기 딱 좋은 꼴로 민형을 쑤셔댔다.




📖용서가 믿음의 연장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겁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장래에 바뀌리라는 믿음을 전제하고 이루어지는 행위니까요. 비교할 만한 일로는...... 처벌은 과거에 대한 행위고, 잊는 건 아예 시간을 벗어나려는 시도지요.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미래를 현재로 끌어옴으로써 계속되기 마련이니까,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용서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민형이 벌려놓은 사건에 한 발짝 떨어져있는 존재. 하지만 각자의 성향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엮여있는 인물들 간의 서사를 대강 아는 조카 우혁의 말들에서도 민형은 마냥 좋은 사람이 아님을 자각하면서, 민호 또한 마냥 나쁜 사람이 아님을 전해듣는다. 민형은 그게 더 싫었다. 올바르지 못했던 삶인데 다들 부정하거나 과거를 꾸짖기보다 지금에라도 잘 살려 애쓰는걸 되려 응원하고있는 꼴이 보기 싫었다. 어머니든 형이든, 조카든 하나같이.

이렇게 같은 배에서 찰나의 시간차로 나온 사이인데 너무 다른 삶을 살고, 각각의 기질 추구하는 바가 다른 둘. 그냥 그게 싫은 거였다. 믿는 이유가 뭐지? 그만큼 믿음을 주지 못하는 행실로 살아왔는데도 꾸준히 지지받는 삶이 꼴사나웠고, 민형의 기준에서는 이미 나락에 다다른 놈은 채린이든 쌍둥이 딸이든, 형이든, 조카든 다 이렇게 챙겨주는지. 사람 됨됨이가 어떻든 평판이 어떻든 적어도 민형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정해놓은 기준에는 한참 모자른데 말이다. 이 또한 죽은 채린에게 물어본다면 위에 언급했던 문장과 똑같은 소릴 하지 않을까.




📖뭔가 계속 뺏기는 기분이 들어. 우린 그냥 탁구공인 거야. 탁구대 위에서 왔다 갔다. 그러다가 테이블 너머로 떨어져서 아예 사라지고. 사라지면 잠깐 공을 찾아보다가, 그냥 다른 공 구해서 새 게임 하고. 삼촌이 우릴 좋아하는 건, 공이 있으면 탁구를 칠 수 있기 때문이고, 우리는 특히 재미있는 게임이 되는 공이기 때문이야.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 난 그렇게 느껴.

쌍둥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빠. 집에 없는 아빠. 돈만 벌어오는 아빠. 엄마를 외롭게 했던 아빠. 엄마를 죽게 만든 아빠. 아빠의 자리를 채우지 못했던 아빠. 능력에 따라 대우했던 아빠. 대학간 사람만 챙기는 아빠. 위로와 응원보다는 도출된 결과를 더 중요시했던 아빠. 삼촌에게 자격지심이 있는 아빠. 의대다니는 딸을 선택했던 아빠. 죽은 딸에 대한 슬픔은 없던 아빠. 딸 장례보다 환자 수술이 더 중요했던 아빠. 완전범죄를 꿈꿨던 아빠.

엄마를 도왔던 삼촌. 엄마를 사랑했던 삼촌. 아빠와 정반대의 삼촌. 쌍둥이를 잘 챙겼던 삼촌. 아빠라 부르고싶었던 삼촌. 쌍둥이를 구별할 줄 알았던 삼촌. 하지만 내 아빠가 될 순 없는 삼촌. 다정하고 한없이 상냥하더라도 그 이상이 될 수 없는 삼촌.

쌍둥이들에게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랑도, 넘치는 애틋함도 바랄 수 없었다. 각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상황극을 하다보니 엇비슷 하더라도 아귀가 맞는 돌봄은 아니었다는 점. 그러니 쌍둥이는 보여지는 이들에게 애정을 갈구했으나 어디든 제대로 받아 볼 수 없었다. 쌍둥이들은 민형 민호 형제들에게 때때로 필요한 아이템이었고, 제 기능을 다 하면 버려진다고 느끼게된다. 꼭 필요하진 않다는 확신을 받았다. 영영 아빠가 원하는 딸이 될 수 없다는걸 느끼면서 안착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아이들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민형을 묘사하는 문장들에서 이혁진의 광인 속 준연을 닮아있었다. 완벽하고자 했으며, 타인에게 인정받는 젠틀함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모든 문장들이 자기방어의 수단처럼 비춰졌다. 아내가 자살하든, 딸을 바꿔치기하여 죽음을 알리든, 쌍둥이 동생을 살해하든 그 모든 악행은 자신이 살려고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뉘앙스를 흘린다.

소설은 당연히 비극으로 달음질친다. 딸도 바꿔치기 한 판에 뭐가 두려울까 싶은 이의 눈은 살기어린 상태로 변질되어간다. 정도를 알았다면 이렇게 선을 넘지 않았겠지. 아내와 어떠한 이유에서 사별한들 자식들을 지키려 했을테고, 오랜시간 함께해오지 않은 공백을 메우려고 애를 썼을거다. 입시가 내맘같지 않은걸 안타까워하며 재수 삼수의 길을 응원하지만 꼭 그게 답일까 하며 하향지원이라던가 다른 길을 찾아보자 구슬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아빠들은 그러했다. 하지만 민형은 손에 쥐는게 남들보다는 많아야하고, 타인의 시선과 속닥거리는 세치 혀에서 빈틈을 주지 않으려한 결말이니 책속이 아니라 책밖의 어딘가에서 엇비슷한 삶을 사는 이가 존재할거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잘나 보여야하고, 그만큼 진짜 잘난 맛으로 사는 사람. 자신이 부모를 통해 얻어내지 못한 처우에 관한건 응어리로 남아있다고 칠 수 있다. 그러하지 않은 유년시절이 어디있던가. 헌데, 지연과 우연을 바꾸는 시점부터 이 사람은 상종하기 어려운 캐릭터임을 느끼게했다. 정말 생물학적 아버지니까 죽고 살고를 지정 할 수 있는 결정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며 최근 드라마 '미지의 서울'의 미지와 미래를 나란히 두며 나와 닮은, 하지만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한 헌신의 정도를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고, 나와 같은 존재로서 일생을 비교당하고 곁눈질하는 삶. 합을 맞추어 나아가는 2인 3각의 게임처럼 평생을 어깨동무하며 구령을 맞출 수 없는게 사람의 인생이다. 나 만큼이나 나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의 애틋함을 강조하는게 드라마이고 책속의 쌍둥이들이었다. 그러한 미워죽겠지만 결국 내 반쪽이라 생각하는 이들의 관계성을 철저하게 무시한 둘의 다른 성장. 주변인의 태도와 받아들이는 이의 다른 해석이벌어진 틈으로 스며들어 이 지경까지 간거라 보지만 악은 악을 키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약을 구하는 수단으로 민형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설정을 해 둔 뉘앙스와 함께, 우혁과의 자리를 가지며 삼촌 둘의 평판을 조카의 입장에서 들어보려고 했다는 점(내가 해석한 민형의 캐릭터는 그 시간조차 아깝고, 우혁을 믿고 조언을 들을만큼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지)은 눈이 돌아간 상태의 민형이 받아들인 상황일까를 생각한다. 악에 받친 민형이라면 에둘러 약을 구하기보단 그냥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약을 얻는게 더 빨랐을텐데 말이지. 그리고 본인의 생각이 곧 법이라 여길만큼 생각하는 자가 이제와서 타인의 평판에 궁금증을 가진다는 것 마저도.

어그러진 인간, 쓸데없이 확고한 신념, 왜 이러한 비뚤어진 마음은 한쪽으로 치우쳐있어 하나를 잡아먹어야 성에 차는건지. 사람의 후천적인 악의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이 모든 이야기들이 소설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현실에선 옮겨놓지 않고싶은 인물로 기억 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침내, 안녕
유월 지음 / 서사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송은이님과 황보름 작가의 추천이라면 왠지 복잡한 인물 서사 없을 것 같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냄새도 나고, 각각의 인물이 가진 아픔도 있음직해 보였다. 어떻게 잘 버텨 나갈 것인지, 극복이라는 단어보다는 스며드는 삶에서 답을 찾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빌런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책 제목처럼 '마침내, 안녕'이라 할 만큼 딱 견뎌 낼 만큼의 빌런짓을 할 인물들은 내가 사는 세상에도 있잖아? 그럼 이 이야기도 비슷한 결을 띄지 않을까? 라는 자문자답을 해가며 큰 고민 없이 책에 빠져들었다.



📖아이는 늘 어른들을 용서한다_ 자신의 삶을 무던히 받아들이는 아이가 너무도 어른 같았다. 그 용감함이 애잔해서 도연은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

모든 게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도, 사실은 이혼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기 두려워 방패로 삼은 말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는 늘 어른들을 용서한다. 나쁜 부모조차 세상에 기댈 곳은 그들밖에 없으니까.

요즘 티비프로그램을 보면 버릇없는 아이 고치고자하는 양육방식 제시 프로, 과한 학습패턴에 지쳐있거나 이게 맞는지 확인하는 영재육성 프로, 돈 많은 유명인 자식들이 사회생활이랖시고 혼자 세상 다니며(카메라 뒤의 무수한 어른들은 안보이는척) 견문 넓히는 어린이 기행 프로까지. 이런 패턴의 리얼리티를 가장한 픽션에 질려서 티비를 안 켠지 제법되었다. 그런데 이 단편은 이야기가 다르다. 면접교섭센터에서 만난 아이는 체구는 작더라도, 이 녀석 뒤를 지탱하는 그림자는 아주 커 보였다. 제 몸보다 곱절의 능력을 발휘하여 어른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면들을 스스로 해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의 몫 마저도 다 감당할 아이의 눈빛은 딱히 누굴 원망할 새도 없이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이 목표인 삶으로 보였다.

아이가 원하는 해피엔딩은 무엇이었을까? 다 이해한다는 듯 어떠한 의견도 피력하지 않고 자신에게 얽혀있는 어른들을 지켜 볼 뿐이고, 그들의 바람대로 이뤄지도록 내버려두려하는 이준을 통해 이녀석 진짜 아프긴 한걸까? 외로움과 서글픔, 그 모든 아픔이 너무 커서 고통의 존재유무도 모르고 웃자라버린거 같아 완독 후에도 이 친구의 근심없는 성장기를 바라게되었다.


📖아이는 늘 어른들을 용서한다_ 민 교수의 말이 도연의 마음에 찬찬히 담겼다.

"그런데 백 선생, 잘 안 해도 돼요."

이준을 바라보는 도연의 시선, 도연을 향해있는 민교수의 시선. 아마 비슷한 결의 눈빛이 아닐까. 케묻지 않아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림짐작이겠지만 상대의 표정과 눈빛의 온도를 읽어가며 마음을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의 따뜻한 한마디. 언제든 당신을 향해 내 마음을 열려있다는 말에 마음을 놓아본다. 당장 실행에 옮기진 않겠지만 나를 위한 대나무밭 같은 사람이 있음에 존재 자체로도 위안을 얻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안녕을 바라며 언제든 내가 손 닿을 곳에 내 편이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교차되고 있었다.




📖건강한 감자_ 그건 언니가 도연에게 남긴 유일한 말이었다.

열심히 말고, 그냥 살아.

도연의 언니. 매번 애틋하고 매번 미안한 존재. 태움은 언니를 태워 존재를 소실시켰다. 언니는 열심히 말고, 그냥 살아보라 말했다. 어떻게든 애쓰고 열심히 살아본들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었으니 언니는 도연만이라도 덜 애쓰고 살길 바란 진심가득한 걱정의 한마디였다.

그리고, 사건을 통해 만난 시재에게도 똑같은 말로 위로를 전한 것 이었다. 이 말을 하고 언니는 사라졌지만, 시재는 이 말을 듣고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진심의 간절함과도 같아보였다.




📖도연의 첫 번째 직업_ "초심자에게 제일 필요한 건 그 미안한 마음이에요. 그 마음이 결국 공부하게 만들거든. 어떤 내담자에게는 상담사의 열심히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기도 해요. 빠른 치유가 정답은 아니니까. 당장 시작합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어렵다. 도와주겠다는 마음, 도와주고픈 의지, 빨리 작업과정이 이루어져 손에 쥐어지는 결과가 나오는게 맞는걸까 느리더라도 지긋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천천히 내딛을 수 있도록 발을 맞춰주는게 확실한 과정일까.

우리는 보다 빠른 치유와 확실한 변화를 바라며 전문 기관을 찾게된다. 돈이든 시간이든 내담자에게는 소비되는 몫이 클 테니 무엇이 되었든 리스크를 줄이고자하는 지원의 조언은 선임으로서의 당연한 작업 지시였으리라 봐 진다.

📖도연의 첫 번째 직업_ 막막했던 말들이 견고하게 막아둔 둑을 무너뜨리듯 터져 나왔다.

"그래도 말로 뱉고 나니 좀 낫죠?"

지원의 나지막한 말에 도연은 무엇이 나은지 알지 못한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연에게 언니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치부는 아니지만 입 밖으로 뱉는 순간 상대는 일면식도 없는 언니를 어떻게 평가 할 지 모르는 것도 있었고, 무작정 위로로 덮어 없애려 할 듯한 타인의 말이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잘못 한 것이 없는 언니였고, 또한 잘못 한 것이 없는 도연이지만 이 말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괜찮다고만 말할 그 무수한 입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과거형을 시작해 조금씩 틔워가는 그날의 이야기. 누구에게 툭 하고 털어 본 적이 없었으니 이게 나아지는건지 알 수 없는 마음상태.

단지 상대가 담담하게 들어주고, 이야기를 마칠 때 까지 기다려주는 과정. 과한 액션 없이 담백한 청중이 되어주는 것. 지금껏 그러한 사람이 없어 입을 다물고있었던 도연이었나보다. 애써 뱉어보는 위로와 황급히 표정을 고쳐먹고 슬프고 애석해하는 피드백이 없는 것이 더 감사하기도 하거든.



📖탈주하는 기차_ "지금 모습 그 자체로도 괜찮아요. 굳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

...

"오늘이 아니면 얘기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바짝 말라가는 풀 같으니까 햇볕 그만 쬐고 물 좀 많이 마셔요. 볕에 타 죽을까 봐 걱정돼."

...

...

누군가의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일로 만난 사람에게 마음 따위 주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어떤 것도 맡기지 않겠다고, 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참지 않겠다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겠다고.

꼭 언니로 인해 이러한 마음을 고쳐먹은 게 아니었다. 나를 우선으로 두려고 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을 주면 그만큼의 기대를 하게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상대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서운함이 자라났다. 그러니 나부터 지키나는 마음. 그게 필요했다.



📖너무 가까워 보이지 않는 것들_ "그걸 모르겠다. 괜찮아지고 있는지 아닌지 헷갈리는데 괜찮아져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도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족 얘기 하는게 공포였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거 보면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

책 제목 '마침내, 안녕'은 어느 독자가 말해 준 것 처럼 고대하던 안녕처럼 보였다. 이제는 웃으며 손 인사 할 수 있을 정도의 겨를을 지닌 것. 완전히 없던 일이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덜하고, 숨쉬는 타이밍을 찾아낸 삶이라는 말 같아서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살아집니다, 살아도 됩니다.'를 말해주는 삶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슬픔 없는 사람 없고, 고난 없는 사람 없으며, 아픔 없는 사람 또한 없는거 안다. 각자가 가진 삶의 생채기가 가장 쓰리고 아프다.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삶인데, 살다보면 그 고통은 무던히 견뎌야하는 당연한 과정이고, 타인을 살피는 데에 치중하는 생을 살게되는게 어른의 삶이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 비중을 좀 줄여도 괜찮다는 점을 다양한 관계속에서의 이유를 내어주었다. 다양한 인간군상은 '도연'에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맞춰주며 살아 갈 수 없음과 함께 도연이 가진 히스토리에 대한 특별함보단 그럴수도 있는 삶이라는걸 보여주고자했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우울과 불안, 분노와 자책을 가진 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상황. 어떠한 이유가 된들 상처는 존재했고, 그 속에서 어떻게 극복하느냐 보단 어떻게 흘려보내도 되느냐로 시선을 옮겨보고싶어진다. 극복이라는 것 대신에 회복과 흘려보내는 과정. 흘러가는대로 나둬보면서 그렇게 그때의 나와 멀어진다면 '마침내, 안녕'할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삶. 그리고 그 비워진 자리에 채워갈 또 다른 나의 삶을 반기며 '마침내,안녕'하며 맞아주는 과정이 있어 도연에 대한 걱정어린 마음을 덜어보게된다.



영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 있어 온전히 모든 감정과 서사를 전달 할 수 있을지, 어느 에피소드에 중점을 둘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문장들이 가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 적절한 무게를 잘 전달해주길 바란다. 자칫 그 순간에 머무는 고립된 마음으로 보여지지 않도록 대사를 하는 배우의 톤 완급조절도 중요할테니, 글 맛 잘 살려줄 배우가 나타나 도연을 책 밖으로 꺼내주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혹시, 돈 얘기해도 될까요?
주언규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출판사의 책 소개는 저자 주언규가 내어놓은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조언집이라 말하고있다. 제일 가까운 형님이 차 떼고 포 떼고 바로 밀어넣는 현실 후기라 말한다면 소개가 더 정확할까? 무작정 열심히 살라고 하지도 않았고, 무작정 큰 꿈을 가지라는 말도 안했다. 마지막에 기록해 둔 '실패를 이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다섯 가지'의 항목을 보면 실패가 두려우면 그 리스크를 앉아서라도 도전하지 말고 비용을 최소화 해서 작게 시작하라 말하기도 했고, 성공이 없을까봐 주저한다면 검증된 성과를 벤치마킹을 하면서 제 깜냥에 맞는 출발선에 서서 달리라고 해준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이게 직설적일 수도 있겠다만 몇번의 고비에서 절어본 사람이라면 이게 훨씬 먹히는 말 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무른 위로보단 막막한 현실 속에서 다시 일어설 방법을 툭툭 내비쳐주는 게 받아먹기 더 쉬울 사람들일테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잰걸음 이골이 난 상태라면 이 즈음에서 주언규의 조언을 들어봐도 좋겠다.



📖후회를 실패로 두지 마세요_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더 나은 반응을 보일지 고민한다. 이런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결국 더 좋은 선택을 하게 되면서 성공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래서 실패 후 그자리에 주저 앉느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 후다닥 자리를 털고 일어나느냐로 갈리겠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첫 직장 선임이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실패는 할 수 있다. 실수도 당연하고.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니 오히려 그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번째는 실수였고, 두번째는 습관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알려주더라. 실수가 습관이 되어서는 안되고, 착오를 예사로 보아서도 안된다는 것. 실수에 예민해야하고, 습관에 젖어들어서도 안되는다는 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갔던 길도 제대로 한번 더 살펴보는 행동. 그게 후회를 줄이는 확실한 습관이라는 점이 저자가 하는 말과 비슷한 결 처럼 느껴졌다.



📖무너진 자신감을 회복하는 방법_ 신뢰가 생길 때 우리는 '쌓인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신뢰가 없어졌을 때 '무너진다'고 말한다. 자신감은 태도가 아니라 구조이다. 작게, 자주, 실현 가능한 약속부터 시작해라.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는 '작은 승리'들이 결국 미래의 나에게 강력한 신뢰와 자산이 된다.

모래성게임이었다. 신뢰는 손으로 토닥이면 더욱 견고해졌고, 야금야금 긁혀 나가다보면 모래 무덤이 버틴다 한들 눈 깜짝 할 사이에 스러지는 꼴을 보게된다. 그게 자신감이기도했고 타인에게 얻어지는 신뢰도이기도 하다. 별거 아닌거 같아도 나중엔 그 모든게 별거가 되는 우스운 꼴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며 모든게 허물어지더라도 자신감과 신뢰는 나의 지지대 처럼 양쪽을 버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도록 끝까지 유지해야함을 언급했다.


돈과 커리어,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먼저 겪어내온 저자의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조언집.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80만 인생 멘토인 저자.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나 개미처럼 일해서 모으는 게 다인 나같은 사람에겐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른바 장사를 하거나 자기 사업을 할 생각조차 없던 사람이고, 장난스레 말하듯 대감님집 노비로 사는게 천생 직업이라 생각하고있는 직장인으로서 몇 번의 좌절을 거쳤고, 자산을 불리는 실전 경험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처음 사업을 시작 했을 때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반복되는 실패에서 느꼈던 혼란, 시작점이 달랐던 사람들을 보며 갖게된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도 가감없이 들려준다. 처음부터 탄탄대로가 아니었고, 지금까지 곧게 성공의 퀘스트만 뚫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 중요하게 여겼던 것과 불안과 두려움 틈에서 버텨낸 시간을 말하는데, 말하는 방식은 학교 선배나 회사 선임이었던 사람이 사석에서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테이블에서 짝다리로 팔을 괴며 툭툭 던지는 말로 느껴진다. 거창하지 않다는 뜻이고, 무게잡지 않는다는 말이기도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뜨듯한 위로의 온도나 보드라운 응원의 토닥임이 없다. 뜬구름없이 다 잘될 거라는 무책임한 응원이 없어 되려 마음에 든다. 마냥 쓰지도, 마냥 달지도 않아 적당히 귀로 듣고 목구멍으로 쓴 소주 삼키며 내 것으로 야금야금 부어넣는 이야기라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익숙하게 사용하고 뱉어내는 말들 속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말의 온도. 일상에서 오가는 무수한 말들에서 온전히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있는 것인지, 단어를 앞세운 그림자의 진짜 글꼴은 어떠한 언어로 번역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모국어이지만 어렵고 매번 공부하듯 들여다보게되는 말들. 당신과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동일한데 일상 속 오역, 오해는 참 많은 갈래로 나뉘어져 감정이 퍼져있다. 당장 올해 수능을 칠 것도 아니면서 늘 머리를 싸메고 들여다보는 당신들과 나누었던 언어영역에 대한 무수한 해석들. 그래서 번역가의 시선을 빌려 조금 더 예민하게 보고자 이 책을 챙겨봤다. 입 꾹 다물고 살아가는 것 같아도 은연중 흘려내어진 말들. 그걸 곧이 곧대로 말한적은 얼마나 될까를 가늠해보며 이 말들을 번역하고 또 가다듬어 진짜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까지를 글밥 벌어먹고 사는 번역가의 능력에 기생하여 조금이나마 수월한 말뜻 풀이를 해보려한다. 나도 여자지만 여자의 언어는 복잡했고, 척하면 척이길 바라는 상사의 언어는 상급의 수준이며, 한 줌에 쥐어도 될 만한 간결한 말들을 던져놓고 다 이해하길 바라는 부모의 언어까지. 뭐 이뿐 일까. 지구 반대편의 어떤 나라 작은 부족의 언어보다 더 다양하게 갈려지고 쓰여지는 내 사람들의 언어들. 당신들을 이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제대로 알아먹고 싶어서 오역하는 말들에 대한 것들을 살펴보고싶어졌다. 정답지를 보기 전에 오답노트 먼저 훑어보며 틀렸던 것 복기하는 것 마냥 오역하는 말들이라도 완벽하게 알고나면 당신과 나의 대화가 조금이나마 쉬워지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라도 챙겨본다. 당신의 말을 좀 더 완벽히 알아먹어 당신의 든든한 누군가가 되고픈 마음으로 곱씹고 되뇌일 준비를 해본다.


이른바 유명하고, 이름난 번역가가 되기 전까지의 불안과 고민을 담고있다. 불안은 어떠한 단어들로 표현한들 상대에게 내가 느끼는 떨림을 온전히 전해 둘 수 없다. 어느 직업이든 다 그러하겠지만 나름의 고충과 나를 갈아넣은 시간에 대한 보상은 생각보다 단박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다려야하고 버텨야했고, 오늘보다 괜찮을 내일이 와주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요행을 바라지만 그 마저도 부정탈까 맘껏 티내며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각자가 느끼는 불안과 앞일을 알 수 없음에 오는 초조함은 저자가 '세상을 번역하겠습니다. 나는 번역인입니다.'로 당당하게 포부를 밝힌 문장 뒤에 집채만한 그림자의 걱정과 반복된 작업들이 있었던 것임을 알기에 이겨낸게 아니라 버텨냈구나 라며 조용히 끄덕이게된다.



📖많이 보고 싶을지도 모르니까_ "우리 한번 꼬옥 껴안자."

"응?"

"많이 보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저자와 딸의 이야기, 저자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의 언어이지만 무른 내 마음을 툭툭 건들이게 한다. 불어터진 물만두도 아닌데, 툭툭 건드는 딸의 한마디에 찌르르 눈물이 새어나오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또 하염없이 뭉그러지고 만다.

특히나 딸이 해주는 말들은 또래의 언어보다 좀 더 깊고 따뜻했다. 이것도 집안 내력일까? 아님 유전자와 태교로 인한 무언가의 우월한 유전 능력일까. 아이가 하는 말에 독자 이모는 또 찌르르 급소를 찔린듯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다녀오라는 말보다, 잘 하고 오라는 말 대신에, 아빠라는 존재에게 많이 보고 싶을테니 그동안 자신의 온기를 가득 안고가라는 듯이 힘껏 안아주는 이 아이는 뭘 알고 이러는걸까? 글밥 먹는 아빠는 문맥에서 벗어난 말이라 더욱 깊게 살피며 문장과 아이의 표정을 읽으려 애쓴다. 아이가 말해준 문장에 아빠는 오만가지의 가설도 세웠다가 쓸데없이 훗날 오지도 않을 미래를 예견해본다. 망상같은 오역인걸 알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의 진짜 속내를 알고싶은 아빠의 마음이겠지.



📖성공은 운이야_ 그들이 말하는 '성공은 운'이란 말을 오역해선 안된다. 아마 본인들도 그 말의 허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성공은 '오로지 운'도 아니고 '오로지 노력'도 아니다. 개화할 정도로 충분히 쌓아 온 노력이 좋은 때를 만나 결실로 구체화하는 게 성공이 아닐까. 그러니 남들이 운이 먼저라고 하든, 노력이 먼저라고 하든, 또 다른 뭔가가 먼저라고 하든 일단 멈춰서 고민하기보다 뚜벅뚜벅 제 길을 갔으면 좋겠다.

아마도 가장 오역하기 쉬운 말이라 본다. 운도 운 나름이고, 노력도 노력 나름이다. 운과 타이밍, 노력과 기회. 그 적절한 연결고리가 잘 꿰어져야 성공하는 사람으로 불리우지 않을까? 받아들이는 청중으로서의 오역이 걱정되겠지만 운을 운으로 듣지 않고 운도 노력으로 받아들인 상태로 들을테니 청중들이 하게될 오역에 큰 걱정은 덜어두어도 좋겠다. 이러한 연사들은 다들 운이라 했고, 알아먹는 사람들은 부단한 노력이라 들으니까. 이럴 때엔 다들 하나같이 똑같은 필터를 써서 걸러듣는지. 사회화된 인간의 자체 번역기가 잘 돌아가는 상황이라 여겨주자.




📖못돼 처먹음은 직역해 버려_ 정말이지 눈물 나게 다정한 맛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영화보다 현실에 잘 어울린다.

다정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과 내막의 힘을 믿는다. 단어와 문장이 가진 표현력보다 그 글들이 사람의 입을 통해 뱉어졌을 때 뉘앙스와 말투에 가속도가 붙어 사람을 찌르기도하고, 사람을 살리기도한다. 못돼 처먹음은 말하는 저는 모르고 듣는 사람은 다 안다. 그리고 다정함은 오래된 학습의 힘과 습관화된 일상의 언어가 되어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모두 사람을 말랑하게 만든다. 그래서 글들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뱉어내어질 때 극명한 온도차를 느끼곤한다. 나도 살고, 당신도 살고싶은 마음이 크다면 우리 다정한 언어로 살자. 그렇게 말랑하고 달게 살아보자.


저자는 이 업을 해 오는 동안 겪었던 감정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다들 한 번쯤 겪게되는 상황에서 놓여진 나와 당신의 같은 이야기 서로 다른 이해에 관한 것들도 포함 해 두었다. '우리끼리는 좀 더 애정을 쏟아 서로의 원문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라는 저자의 말에서 소중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완벽히 알아먹고 곱씹어 누리는 사이가 되고자 애쓰고 있음을 느꼈다.

오역은 오해를 일으키기 딱 좋은 '안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일대 다수의를 청중으로 두는 번역가의 세상 뿐만 아니라, 일대 일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수도 없는 번역과 오역, 진심과 오해의 사이를 오가며 반듯하고 온전한 마음의 전달을 위해 무던히도 애씀을 느낀다. 모국어라도, 그렇게 긴 정규교육과정에서 빼먹지 않고 학습을 해온 언어임에도 늘 뒷통수를 맞는 겪이고, 반성에 반성을 거듭한다.

마지막에 언급한 것 처럼 우리 좀 더 다정한 말의 맛을 모두가 누렸으면 한다. 그렇게 달고 말랑한 말들로 서로를 찌르지 않길 바라게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에세이라 해야할까? 굳이 구분짓지 않는 그냥 에세이라 봐야할까. 개와 함께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생후 3개월 차 강아지를 입양 후 일어난 일들의 이야기다. 동물을 만지지 못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저자. 어릴적 봐온 대문 앞 개 조심 팻말은 어떤 세계로부터의 경고처럼 느껴졌던 과거의 기억. 학창시절 친구가 키우던 하얀 몰티즈를 안아보라 건네주어었지만 본능적으로 물러섰던 그날의 감각. 뭉클거리고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생명의 촉감이 무서웠던게 아닐까 생각해보는 그 시절의 마음들. 그런데도 저자는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스스로도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리산 언저리의 보호소에서 저자의 서울집으로 온 강아지. 인간과 닿아 본 적이 없는 어린 생명이 개를 만지지도 못하는 인간의 집에 함께 살기로 한 것. 저자의 두려움보다 작은 녀석이 버텨낼 세상보다는 비교가 되지 않을거라 짐작하며 어린 개의 필사적 용기에 마음을 나눠주는 과정을 적어두었다. '한 개의 일생'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된 사람. 그 개 한 마리와 사람사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라 말하고싶다. 어느날 비 자발적으로 어린 개와 살게 된 초보 반려인의 순간들.

나는 저자의 어린 시절과 닮아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남들은 강아지라 해도 내 눈에는 그저 개로만 보이고, '우리 애는 안 물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내 귀를 통해 필터링 된 말은 '주인은 물지 않는데 당신은 모르겠네요.'라며 고깝게만 들린다. 남들은 사람 좋아 달려오는거라지만, 내 눈에는 나를 물어 뜯으려 달려오는 걸로만 보이는 효과. 그 대상이 크든 작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내 눈엔 '개'일 뿐인 사람이다.

그래서 나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개와 함께하는 삶'에 완독 후 심경의 변화는 없다. 내 삶에서 개가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가장 친한 친구조차 자신의 작은 개를 무서워하는걸 알기에 집에서 만날때엔 반려견을 본가에 보내고 만나기도했다. 죽일듯이 물려고 달려오거나 위협을 받은 적은 없으나 생명에 대한 두려움인지 해석하지 못하는 동물의 언어를 못 받아들이는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개와 함께하는 삶이 여전히 낯설기만하다. 책임 질 것이 많아지며, 내 세상의 일부를 공유함으로서 얻어지는 기쁨이 더 큰 삶의 방식. 서로를 돌보고있다는 믿음을 통해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삶에 반려인과 반려견의 애틋함을 얹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깊어진걸 느끼게 만든다.


잠깐 왔다가 다시 헤어질 찰나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을걸 알기에 이 순간이 어렵고 이후의 시간들이 걱정되는 것이다. 함부로 맡아 키우지도 못하는것이 이유이기도 하며, 개의 생에 모든 순간을 도맡아야 한다는 점. 내 삶의 테두리 속으로 인간이 오는 것 만큼 개가 와주는 것이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이다. 잠깐 행복과 즐거움 뒷편에 그림자 처럼 따라올 슬픔의 순간도 있을테고, 살짝은 미워질 수도 있는 날들이 있다는 것. 그게 한 '개'의 일생과 동시에 '나'의 일생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는 점. 이건 손깍지를 낀 채로 평생 함께 해야만 하는 끝없는 생의 동반자임을 알아야했다.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지만 완전히 맞지도 않았다.

"크다고 무서운 거 아니거든요."

나는 저자의 이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완전히 맞지도 않다는 소심한 반박을 해 본다. 나는 평생동안 반려견을 키워 본 적이 없다. 조부모의 시골집에 있던 개들이나 아버지의 공장을 지키던 순박하니 순하던 개들 조차 나에겐 사파리 월드 투어 할 때 버스를 따라오던 맹수 못지 않은 대상들이다. 한발, 두발 다가 올 때면 어깨가 움츠려들고 손에 땀이 난다. 나도 안다. 그 아이들보다 내가 몇배나 덩치가 크고 사물을 던져서라도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존재임을 알지만 무섭다. 크다고 무서운거 아니고, 작다고 안 무서운게 아니다. 그냥 개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견주님들은 이런 마음에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줌도 안되는 작은 개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치고 지나갈까봐 무서운거고, 큰 개는 친해지고픈 마음에 다가올테지만 나같은 인간은 두눈 질끈 감도록 만드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거 있잖아, 관상용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유리막이 있거나 리드줄을 짧게 쥐어주어 나한테까지 달려들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유지 될 때, 개모차에 싣려있거나 견주의 가방에 포옥 들어가있어 나한테 뛰어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한껏 귀여워 해 줄수 있는 사람. 당신들의 개가 미운게 아니라 내가 두려운거니까 속상한 마음을 덜어주길 바란다며 구구절절 설명해주고 싶다.

📖돌봄 노동은 지속적 노동이다. 티가 나지 않는 일을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매일매일 성실하게 해야 한다. 그러다 조금만 소흘해져도 확 티가 난다. 하나하나 신경 써서 돌보지 않으면 연약한 동물은 금세 불쌍해지고 만다. ... ... 내 몸을 움직인다. 녀석을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안쓰러워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부지런함을 강요하진 않지만 내 눈에 밟혀서 할 수 밖에 없는 것들. 수도 없는 빗질과 일상이 되어버리는 돌돌이. 만사가 귀찮아져도 가게되는 산책. 비 와도 나가야하는 프로 산책러로서의 숨쉬듯 이뤄지는 일상. 어느새 내 의지는 뒷전으로 미뤄진 채 작은 녀석이 고개를 한껏 쳐 들고 올려보는 바둑알같은 눈망울에 지고마는 것이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내가 함께 가주지 않으면 사방이 틀어막힌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으니까. 내가 데리고 왔으니, 내가 데리고도 나가줘야지 라는 의무감. 어쩌면 사람이 개를 키우는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길들이는 거라 봐도 무방한 공생의 관계다. '이봐, 주인! 그렇게 방구석에서 굴 파고 들어갈 새가 어딨어? 어서 나를 데리고 나가! 그래야 당신도 살고, 나도 살지! 당신은 나(=개) 때문이라도 우울할 틈을 만들어선 안된다구. 우리 같이 살 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거 유념해 두라구!૮₍´˶• ᴥ •˶`₎ა'

사람이 개를 키운다 하지만, 때때로 개가 사람을 키워냄을 느낀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할 수도 있겠다만 적어도 내가 아는 견주들은 반전된 상황에서 살고 있었다. 나태지옥에 빠져 있다가도 돈을 벌어와야 이 녀석에게 맛있는 간식이나 주기적인 예방접종을 해 줄 수 있고, 우울의 구렁텅이에 허우적거리다가도 밖에 나가야 맘편히 배변을 할 수 있으니 한쪽손엔 리드줄을 다른 한쪽엔 배변봉투를 쥐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간다. 인간관계에 엮여있는 것들이 손에 꼽히는 사람이었다가도 공원에서 개들이 서로의 체취를 맡을 동안 일면식 없는 견주들끼리 말문을 터 보며 몇살인지 주사는 어디까지 맞췄는지, 요즘 좋은 강아지보험은 뭐인지 물어보며 수다쟁이가 되곤 한다. 이렇게 개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다 큰 놈이 부모말은 안 들어도 개가 해달라는거 해주려고 자진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그 오래된 속담을 거스르게 만드는게 사람의 품에서 부비적거리는 뜨끈하고 털이 보드라운 이 놈들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은, 진심은 꼭 같은 인간이어야만 한다는 룰을 깨어주는 것이다. 그저 서로 마음껏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는걸 보여주는 저자와 루돌이의 세상임을 알게 해줬다.

이렇게 말은 하고있지만, 나는 여전히 견주와 개의 세상을 다 알지 못한다. 다양한 미디어로 접해온 머리로 아는 지식일 뿐이다. 사람일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30년 넘게 내 삶에 개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거라 여기는 중이지만 자식도 없는데, 노년에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기는 남편 이외의 다른 것들에 정을 주게 된다면 당연히 강아지가 될 수도 있을테니 가능성은 조금 열어보고 싶다. 단, 조건은 내 두 손에 안겨있을 강아지라는 존재가 부디 나보다 생의 길이가 짧아 이 놈을 혼자 두고 떠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유념해볼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사랑하는 강아지든 내가 다 책임지지 못한다면 남겨진 존재들이 너무 서글플테니 그 짐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 어린 개든 다 큰 개든 나는 여전히 무섭고 뒷걸음질 치는 겁쟁이 일지라도, 이들의 애틋함을 존중하며 이들의 세상을 응원한다. 내가 하지 못하고 내가 책임지지 못하는 관계를 아주 찐득하게 유지하는 멋진 사람들이니 말이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