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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익숙하게 사용하고 뱉어내는 말들 속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말의 온도. 일상에서 오가는 무수한 말들에서 온전히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있는 것인지, 단어를 앞세운 그림자의 진짜 글꼴은 어떠한 언어로 번역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모국어이지만 어렵고 매번 공부하듯 들여다보게되는 말들. 당신과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동일한데 일상 속 오역, 오해는 참 많은 갈래로 나뉘어져 감정이 퍼져있다. 당장 올해 수능을 칠 것도 아니면서 늘 머리를 싸메고 들여다보는 당신들과 나누었던 언어영역에 대한 무수한 해석들. 그래서 번역가의 시선을 빌려 조금 더 예민하게 보고자 이 책을 챙겨봤다. 입 꾹 다물고 살아가는 것 같아도 은연중 흘려내어진 말들. 그걸 곧이 곧대로 말한적은 얼마나 될까를 가늠해보며 이 말들을 번역하고 또 가다듬어 진짜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까지를 글밥 벌어먹고 사는 번역가의 능력에 기생하여 조금이나마 수월한 말뜻 풀이를 해보려한다. 나도 여자지만 여자의 언어는 복잡했고, 척하면 척이길 바라는 상사의 언어는 상급의 수준이며, 한 줌에 쥐어도 될 만한 간결한 말들을 던져놓고 다 이해하길 바라는 부모의 언어까지. 뭐 이뿐 일까. 지구 반대편의 어떤 나라 작은 부족의 언어보다 더 다양하게 갈려지고 쓰여지는 내 사람들의 언어들. 당신들을 이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제대로 알아먹고 싶어서 오역하는 말들에 대한 것들을 살펴보고싶어졌다. 정답지를 보기 전에 오답노트 먼저 훑어보며 틀렸던 것 복기하는 것 마냥 오역하는 말들이라도 완벽하게 알고나면 당신과 나의 대화가 조금이나마 쉬워지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라도 챙겨본다. 당신의 말을 좀 더 완벽히 알아먹어 당신의 든든한 누군가가 되고픈 마음으로 곱씹고 되뇌일 준비를 해본다.
이른바 유명하고, 이름난 번역가가 되기 전까지의 불안과 고민을 담고있다. 불안은 어떠한 단어들로 표현한들 상대에게 내가 느끼는 떨림을 온전히 전해 둘 수 없다. 어느 직업이든 다 그러하겠지만 나름의 고충과 나를 갈아넣은 시간에 대한 보상은 생각보다 단박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다려야하고 버텨야했고, 오늘보다 괜찮을 내일이 와주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요행을 바라지만 그 마저도 부정탈까 맘껏 티내며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각자가 느끼는 불안과 앞일을 알 수 없음에 오는 초조함은 저자가 '세상을 번역하겠습니다. 나는 번역인입니다.'로 당당하게 포부를 밝힌 문장 뒤에 집채만한 그림자의 걱정과 반복된 작업들이 있었던 것임을 알기에 이겨낸게 아니라 버텨냈구나 라며 조용히 끄덕이게된다.

📖많이 보고 싶을지도 모르니까_ "우리 한번 꼬옥 껴안자."
"응?"
"많이 보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저자와 딸의 이야기, 저자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의 언어이지만 무른 내 마음을 툭툭 건들이게 한다. 불어터진 물만두도 아닌데, 툭툭 건드는 딸의 한마디에 찌르르 눈물이 새어나오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또 하염없이 뭉그러지고 만다.
특히나 딸이 해주는 말들은 또래의 언어보다 좀 더 깊고 따뜻했다. 이것도 집안 내력일까? 아님 유전자와 태교로 인한 무언가의 우월한 유전 능력일까. 아이가 하는 말에 독자 이모는 또 찌르르 급소를 찔린듯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다녀오라는 말보다, 잘 하고 오라는 말 대신에, 아빠라는 존재에게 많이 보고 싶을테니 그동안 자신의 온기를 가득 안고가라는 듯이 힘껏 안아주는 이 아이는 뭘 알고 이러는걸까? 글밥 먹는 아빠는 문맥에서 벗어난 말이라 더욱 깊게 살피며 문장과 아이의 표정을 읽으려 애쓴다. 아이가 말해준 문장에 아빠는 오만가지의 가설도 세웠다가 쓸데없이 훗날 오지도 않을 미래를 예견해본다. 망상같은 오역인걸 알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의 진짜 속내를 알고싶은 아빠의 마음이겠지.

📖성공은 운이야_ 그들이 말하는 '성공은 운'이란 말을 오역해선 안된다. 아마 본인들도 그 말의 허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성공은 '오로지 운'도 아니고 '오로지 노력'도 아니다. 개화할 정도로 충분히 쌓아 온 노력이 좋은 때를 만나 결실로 구체화하는 게 성공이 아닐까. 그러니 남들이 운이 먼저라고 하든, 노력이 먼저라고 하든, 또 다른 뭔가가 먼저라고 하든 일단 멈춰서 고민하기보다 뚜벅뚜벅 제 길을 갔으면 좋겠다.
아마도 가장 오역하기 쉬운 말이라 본다. 운도 운 나름이고, 노력도 노력 나름이다. 운과 타이밍, 노력과 기회. 그 적절한 연결고리가 잘 꿰어져야 성공하는 사람으로 불리우지 않을까? 받아들이는 청중으로서의 오역이 걱정되겠지만 운을 운으로 듣지 않고 운도 노력으로 받아들인 상태로 들을테니 청중들이 하게될 오역에 큰 걱정은 덜어두어도 좋겠다. 이러한 연사들은 다들 운이라 했고, 알아먹는 사람들은 부단한 노력이라 들으니까. 이럴 때엔 다들 하나같이 똑같은 필터를 써서 걸러듣는지. 사회화된 인간의 자체 번역기가 잘 돌아가는 상황이라 여겨주자.

📖못돼 처먹음은 직역해 버려_ 정말이지 눈물 나게 다정한 맛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영화보다 현실에 잘 어울린다.
다정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과 내막의 힘을 믿는다. 단어와 문장이 가진 표현력보다 그 글들이 사람의 입을 통해 뱉어졌을 때 뉘앙스와 말투에 가속도가 붙어 사람을 찌르기도하고, 사람을 살리기도한다. 못돼 처먹음은 말하는 저는 모르고 듣는 사람은 다 안다. 그리고 다정함은 오래된 학습의 힘과 습관화된 일상의 언어가 되어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모두 사람을 말랑하게 만든다. 그래서 글들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뱉어내어질 때 극명한 온도차를 느끼곤한다. 나도 살고, 당신도 살고싶은 마음이 크다면 우리 다정한 언어로 살자. 그렇게 말랑하고 달게 살아보자.
저자는 이 업을 해 오는 동안 겪었던 감정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다들 한 번쯤 겪게되는 상황에서 놓여진 나와 당신의 같은 이야기 서로 다른 이해에 관한 것들도 포함 해 두었다. '우리끼리는 좀 더 애정을 쏟아 서로의 원문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라는 저자의 말에서 소중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완벽히 알아먹고 곱씹어 누리는 사이가 되고자 애쓰고 있음을 느꼈다.
오역은 오해를 일으키기 딱 좋은 '안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일대 다수의를 청중으로 두는 번역가의 세상 뿐만 아니라, 일대 일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수도 없는 번역과 오역, 진심과 오해의 사이를 오가며 반듯하고 온전한 마음의 전달을 위해 무던히도 애씀을 느낀다. 모국어라도, 그렇게 긴 정규교육과정에서 빼먹지 않고 학습을 해온 언어임에도 늘 뒷통수를 맞는 겪이고, 반성에 반성을 거듭한다.
마지막에 언급한 것 처럼 우리 좀 더 다정한 말의 맛을 모두가 누렸으면 한다. 그렇게 달고 말랑한 말들로 서로를 찌르지 않길 바라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