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에세이라 해야할까? 굳이 구분짓지 않는 그냥 에세이라 봐야할까. 개와 함께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생후 3개월 차 강아지를 입양 후 일어난 일들의 이야기다. 동물을 만지지 못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저자. 어릴적 봐온 대문 앞 개 조심 팻말은 어떤 세계로부터의 경고처럼 느껴졌던 과거의 기억. 학창시절 친구가 키우던 하얀 몰티즈를 안아보라 건네주어었지만 본능적으로 물러섰던 그날의 감각. 뭉클거리고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생명의 촉감이 무서웠던게 아닐까 생각해보는 그 시절의 마음들. 그런데도 저자는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스스로도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리산 언저리의 보호소에서 저자의 서울집으로 온 강아지. 인간과 닿아 본 적이 없는 어린 생명이 개를 만지지도 못하는 인간의 집에 함께 살기로 한 것. 저자의 두려움보다 작은 녀석이 버텨낼 세상보다는 비교가 되지 않을거라 짐작하며 어린 개의 필사적 용기에 마음을 나눠주는 과정을 적어두었다. '한 개의 일생'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된 사람. 그 개 한 마리와 사람사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라 말하고싶다. 어느날 비 자발적으로 어린 개와 살게 된 초보 반려인의 순간들.

나는 저자의 어린 시절과 닮아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남들은 강아지라 해도 내 눈에는 그저 개로만 보이고, '우리 애는 안 물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내 귀를 통해 필터링 된 말은 '주인은 물지 않는데 당신은 모르겠네요.'라며 고깝게만 들린다. 남들은 사람 좋아 달려오는거라지만, 내 눈에는 나를 물어 뜯으려 달려오는 걸로만 보이는 효과. 그 대상이 크든 작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내 눈엔 '개'일 뿐인 사람이다.

그래서 나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개와 함께하는 삶'에 완독 후 심경의 변화는 없다. 내 삶에서 개가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가장 친한 친구조차 자신의 작은 개를 무서워하는걸 알기에 집에서 만날때엔 반려견을 본가에 보내고 만나기도했다. 죽일듯이 물려고 달려오거나 위협을 받은 적은 없으나 생명에 대한 두려움인지 해석하지 못하는 동물의 언어를 못 받아들이는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개와 함께하는 삶이 여전히 낯설기만하다. 책임 질 것이 많아지며, 내 세상의 일부를 공유함으로서 얻어지는 기쁨이 더 큰 삶의 방식. 서로를 돌보고있다는 믿음을 통해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삶에 반려인과 반려견의 애틋함을 얹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깊어진걸 느끼게 만든다.


잠깐 왔다가 다시 헤어질 찰나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을걸 알기에 이 순간이 어렵고 이후의 시간들이 걱정되는 것이다. 함부로 맡아 키우지도 못하는것이 이유이기도 하며, 개의 생에 모든 순간을 도맡아야 한다는 점. 내 삶의 테두리 속으로 인간이 오는 것 만큼 개가 와주는 것이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이다. 잠깐 행복과 즐거움 뒷편에 그림자 처럼 따라올 슬픔의 순간도 있을테고, 살짝은 미워질 수도 있는 날들이 있다는 것. 그게 한 '개'의 일생과 동시에 '나'의 일생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는 점. 이건 손깍지를 낀 채로 평생 함께 해야만 하는 끝없는 생의 동반자임을 알아야했다.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지만 완전히 맞지도 않았다.

"크다고 무서운 거 아니거든요."

나는 저자의 이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완전히 맞지도 않다는 소심한 반박을 해 본다. 나는 평생동안 반려견을 키워 본 적이 없다. 조부모의 시골집에 있던 개들이나 아버지의 공장을 지키던 순박하니 순하던 개들 조차 나에겐 사파리 월드 투어 할 때 버스를 따라오던 맹수 못지 않은 대상들이다. 한발, 두발 다가 올 때면 어깨가 움츠려들고 손에 땀이 난다. 나도 안다. 그 아이들보다 내가 몇배나 덩치가 크고 사물을 던져서라도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존재임을 알지만 무섭다. 크다고 무서운거 아니고, 작다고 안 무서운게 아니다. 그냥 개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견주님들은 이런 마음에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줌도 안되는 작은 개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치고 지나갈까봐 무서운거고, 큰 개는 친해지고픈 마음에 다가올테지만 나같은 인간은 두눈 질끈 감도록 만드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거 있잖아, 관상용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유리막이 있거나 리드줄을 짧게 쥐어주어 나한테까지 달려들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유지 될 때, 개모차에 싣려있거나 견주의 가방에 포옥 들어가있어 나한테 뛰어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한껏 귀여워 해 줄수 있는 사람. 당신들의 개가 미운게 아니라 내가 두려운거니까 속상한 마음을 덜어주길 바란다며 구구절절 설명해주고 싶다.

📖돌봄 노동은 지속적 노동이다. 티가 나지 않는 일을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매일매일 성실하게 해야 한다. 그러다 조금만 소흘해져도 확 티가 난다. 하나하나 신경 써서 돌보지 않으면 연약한 동물은 금세 불쌍해지고 만다. ... ... 내 몸을 움직인다. 녀석을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안쓰러워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부지런함을 강요하진 않지만 내 눈에 밟혀서 할 수 밖에 없는 것들. 수도 없는 빗질과 일상이 되어버리는 돌돌이. 만사가 귀찮아져도 가게되는 산책. 비 와도 나가야하는 프로 산책러로서의 숨쉬듯 이뤄지는 일상. 어느새 내 의지는 뒷전으로 미뤄진 채 작은 녀석이 고개를 한껏 쳐 들고 올려보는 바둑알같은 눈망울에 지고마는 것이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내가 함께 가주지 않으면 사방이 틀어막힌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으니까. 내가 데리고 왔으니, 내가 데리고도 나가줘야지 라는 의무감. 어쩌면 사람이 개를 키우는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길들이는 거라 봐도 무방한 공생의 관계다. '이봐, 주인! 그렇게 방구석에서 굴 파고 들어갈 새가 어딨어? 어서 나를 데리고 나가! 그래야 당신도 살고, 나도 살지! 당신은 나(=개) 때문이라도 우울할 틈을 만들어선 안된다구. 우리 같이 살 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거 유념해 두라구!૮₍´˶• ᴥ •˶`₎ა'

사람이 개를 키운다 하지만, 때때로 개가 사람을 키워냄을 느낀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할 수도 있겠다만 적어도 내가 아는 견주들은 반전된 상황에서 살고 있었다. 나태지옥에 빠져 있다가도 돈을 벌어와야 이 녀석에게 맛있는 간식이나 주기적인 예방접종을 해 줄 수 있고, 우울의 구렁텅이에 허우적거리다가도 밖에 나가야 맘편히 배변을 할 수 있으니 한쪽손엔 리드줄을 다른 한쪽엔 배변봉투를 쥐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간다. 인간관계에 엮여있는 것들이 손에 꼽히는 사람이었다가도 공원에서 개들이 서로의 체취를 맡을 동안 일면식 없는 견주들끼리 말문을 터 보며 몇살인지 주사는 어디까지 맞췄는지, 요즘 좋은 강아지보험은 뭐인지 물어보며 수다쟁이가 되곤 한다. 이렇게 개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다 큰 놈이 부모말은 안 들어도 개가 해달라는거 해주려고 자진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그 오래된 속담을 거스르게 만드는게 사람의 품에서 부비적거리는 뜨끈하고 털이 보드라운 이 놈들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은, 진심은 꼭 같은 인간이어야만 한다는 룰을 깨어주는 것이다. 그저 서로 마음껏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는걸 보여주는 저자와 루돌이의 세상임을 알게 해줬다.

이렇게 말은 하고있지만, 나는 여전히 견주와 개의 세상을 다 알지 못한다. 다양한 미디어로 접해온 머리로 아는 지식일 뿐이다. 사람일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30년 넘게 내 삶에 개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거라 여기는 중이지만 자식도 없는데, 노년에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기는 남편 이외의 다른 것들에 정을 주게 된다면 당연히 강아지가 될 수도 있을테니 가능성은 조금 열어보고 싶다. 단, 조건은 내 두 손에 안겨있을 강아지라는 존재가 부디 나보다 생의 길이가 짧아 이 놈을 혼자 두고 떠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유념해볼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사랑하는 강아지든 내가 다 책임지지 못한다면 남겨진 존재들이 너무 서글플테니 그 짐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 어린 개든 다 큰 개든 나는 여전히 무섭고 뒷걸음질 치는 겁쟁이 일지라도, 이들의 애틋함을 존중하며 이들의 세상을 응원한다. 내가 하지 못하고 내가 책임지지 못하는 관계를 아주 찐득하게 유지하는 멋진 사람들이니 말이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