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 미깡의 술 만화 백과
미깡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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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 못하는 주류의 세계와함께 철마다 먹는, 분위기에 맞춰 마시는, 상황에 따라 즐기는 술 이야기를 들어보며 어렵지않은 주류 만화 사전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즐겨보기로했다.

술 매니아 답게 목차는 1차와 2차로 나누어두었다. 1차에서 한잔, 2차에서 또 한잔 하자는 그런 의미겠지? 1차에서는 서양술을, 2차에서는 동양술에 대한 이야길 하는데, 아는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어 재미나고, 모르는 이야기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세계를 알려주는 듯 해 신기한 눈빛으로 그림을 따라가게된다.

미깡은 성인 이 된 후 이어진 술과의 추억도 꺼내어주는데 술쟁이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올려줬다 싶은 호프집 알바시절은 물론이고, 직장인의 퇴근 후 회식자리에서 마주하게된 폭탄주나 잊을 수 없는 신혼여행에서의 캔맥주에 대한 이야기. 매년 가족이 둘러앉아 매실 꼭지 따는 것은 물론이고(이제는 미깡의 딸이 그 일을 해준다) 100일 후 술만 건져내어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술정에 대한 소소한 일과들을 풀어낸다.

각 주류에는 짧은 호흡으로 술와 저자와의 인연에 대한 것, 마지막엔 술에 관한 지식도 알려주는데 길지 않아서 더욱 집중하기에도 좋았고, 각 회차속 소 주제는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 나같은 방구석 홈술러라면 그날그날 내 앞에 차려진 술상과 주류를 책 속에 담겨있는 회차와 맞추어 보며 한잔을 기울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나 1차 서양술에서의 폭탄주, 잭콕캔, 와인, 샴페인에 대한 파트, 2차 동양술에서는 희석식 소주, 막걸리, 매실주에 대한 기록과 내 추억이 많이 겹치는 것 같아서 더 빨리 읽혀지고 더 아끼게되는 페이지였다.


직장인생활 10년 정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아는 회식에서의 폭탄주 추억. 코로나 이전에는 회식도 자주했고, 시작하면서부터 소맥 말아서 젓가락으로 잔 속을 탕탕 치며 섞어주고 후루룩 다 마셔버리던 기억이 가득하다. 퇴근 후 회식장소로 가면서 숙취해소제 종류별로 목구멍에 털어넣고, 가방에 선임, 부장, 이사의 몫까지 챙겨가서 하나하나 챙겨드리며 이쁜짓하려 애쓰던 시절. 이제는 그러한 회식 문화가 사라졌고, 부서장도 술을 즐기지 않는 분으로 교체된 후로 이러한 폭탄주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게된게 떠올라 다들 이런 직장인 시절을 겪어왔구나 싶어 공감이 되었다.

이제는 뭐 남편이랑 고기집 가서 소맥 한잔으로 즐겁게 시작하는게 둘이 즐기는 소소한 폭탄주가 명맥을 이어가고있는거지.

저자의 부부가 신혼여행지에서의 잭콕 캔 추억을 떠올려주었다면 나에게는 코젤 흑맥주가 그러하다. 처음 가본 체코. 처음 마셔본 짙은색의 맥주. 입술이 닿는곳에 얹어진 굵은 설탕 알갱이, 커피인가 카라멜인가 싶은 짙은 내음과 함께 들어오는 맥주의 향. 그래서 신혼여행 다녀온지 11년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다. 언제 한번 또 우리는 체코에서 흑맥주와 꼴레뇨를 즐길지 상상만 하곤하는데 이러한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한 순간으로 남는 듯 하다.


지금도 여전히 소주는 잘 못 마시지만 대학 1학년 때에 20도가 넘는 알콜램프 속에 빠진 듯한 그 아찔한 순간. 이걸 왜 마시나 싶은데, 한방에 목구멍으로 털어놓던 동기들, 다같이 내일이 없는 듯 소주병을 둘러놓던 선배와 교수까지. 지금이야 소주의 도수가 반으로 훅 줄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쓴맛을 한 병에 꽉꽉 눌러 넣은 듯한 소주 이야기도 담겨있다.


부지런한 엄마 밑에서 자란 딸래미들은 매실에 대한 기억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땡글거리는 열매를 씻고 말리고, 이쑤시개로 툭툭 떼어내는 꼭지의 잔손질. 너무 향긋하고 맛있게 느껴져 엄마의 잔꾐에 넘어가 아작하고 씹었을 때 손발끝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신맛의 강렬함. 또 한번 딸래미 속인 것에 뿌듯해하는 엄마의 쳐진 눈꼬리하며, 그 사이 항아리 소독하고 닦아내고 엎어둔 것 다시 원위치 시킨 후 켜켜이 담느라 바쁜 아빠. 어떠한 의식을 치르는 듯 진지하고 각이 살아있던 손놀림까지. 은행에서 얻어온 숫자 큰 달력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매실주 뜨는 날. 그 날이 되면 또 한번 이뤄지는 매실주에 대한 경건한 손놀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했던게 남아있음에도 올해도 또 하는 우리집의 연례행사. 명절에 삼촌들 오면 챙겨주고, 감사한 사람들, 부탁해야하는 순간에 빈손이 부끄럽지 않도록 챙기게되는 고귀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던 매실주. 그래서 그런가 미깡의 술 이야기는 술에 대한 기록 뿐만 아니라 술이 가지고 있는 독자의 추억까지 끄집어 내는 능력을 갖고 있어 마음에 드는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술을 안 먹는 사람은 여전히 안 먹을테고,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알고싶고 다양하게 즐기고싶은 술의 세상. 어떠한 이야기는 추억을 끄집어내기 딱 좋은 향긋한 술의 단락이 있고, 에일 맥주 같은 파트들은 전문적으로 찾아보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칠 귀한 지식이라 알은체 해보고싶어지는 부분이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영화속 한잔, 거기에 더티 버전의 마티니라니. 언제 한번 바에서 시켜보고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파트.

사케집에서 맨 아래에 적혀있는 제일 싼 제품 말고, 이제는 알은체하며 라벨 보고 사케 고르는 능력을 키워보는 단락까지. 잔잔바리 지식으로 술쟁이 레벨 올리기 이만큼 좋은게 있을까 싶은 에세이.



뒤풀이 외전의 '좋아하는 술을 계속 마시기 위해' 애써야하는 필수 생활습관까지.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다양하고 맛있게 술 즐기려면 진짜 미깡의 말대로 해야 할 듯 하다. 먹는게 좋고, 마시는게 행복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즐기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깡이 건내주는 주류 생활 모음이 근래에 만나본 제일 재미난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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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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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전 지식 없던 인간은 시봉이가 개라는 것과 어지간해선 도전 하지 않는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라는 것에 대한 압박과 걱정이 컸다. 일단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멀찍이서 관상용처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바라보는 것만 좋아한다. 이건 자라온 환경에 대한 영향일 수도 있을 듯 하다. 물론 온전이 이시봉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개-사람에 대한 연대가 있을법한 이야기에 젖어들며 편히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이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며 읽으려 도전했다. 일단 휴가 때 읽으려 했으나 근 한달이 걸려서야 완독하게되었고, 명랑한 이시봉을 앞세운 채 서로의 전유물로만 남기려했던 각자만의 사랑과 욕심 속에서 상황에 관계없이 반박없고 원망없는 이놈, 이시봉 요녀석만이 견주를 향한 애틋한 시선뿐임을 알게되었다.


제목부터 여기 주인공은 시봉인 듯 하지만, 남겨진 시봉을 데려다 키우는 시습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리고 시봉을 데리고 왔지만 여기엔 없는 아버지. 시봉의 부모, 그 부모를 보살피던 김상우와 박유정이 두터운 이야기의 핵심일테고, 시봉을 둘러싼 어딘가 하나씩은 헛점이 있는 정용, 수아, 리다, 동생 시현의 세상이 그려지고, 시봉을 데리고 왔으나 지금은 사망한 아버지 주변으로 동료였던 이시봉아저씨를 통해 차마 가족에게 꺼내지 못했던 회사에서의 이야기들을 듣게된다. 김상우와 박유정, 그리고 앙시앙 하우스의 대표인 정채민이 비숑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려 했던 이유. 그리고 박유정의 아들인 김태형의 존재까지. 거기에 사이사이 끼워지는 비숑과 스페인 왕가의 이야기는 너무 촘촘하게 설명이 되어있어 진짜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해 나 마저도 시봉이가 진짜 왕가의 뼈대있는 개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빼곡한 글 뿐이며 어떠한 사진이나 그시절 초상화로 남겨뒀을 법한 그림이 삽입되어있지 않음에도 눈에 그려지는 풍경들. 허리는 잘록하고, 치마는 풍성하며, 목이 버텨줄까 싶은 부풀린 머리를 한 왕비 마리아 루이사와 그녀의 머리스타일을 빼다 박았을 듯한 비숑들까지. 바로 직전까지 그들의 초상화를 본 것 처럼 선명해서 역시나 저자다운 표현력에 감탄하게된다. 그래서 계속 홀린듯 보게되고, 또 한편으론 시봉이 쟤가 뭐라고를 연발하며 이들의 격한 감정들을 따라가게된다.

소위 그사세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과 사뭇 다르다는 것. 자기들만의 나라가 있는 듯, 그 곳에서는 그들이 만든 룰을 따르고, 그들이 창시해낸 역사를 이어가려는 것. 그게 내가 만난 앙시앙 하우스의 꺼풀이였다. 정채민 대표가 꾸려놓은 판에 뛰어든 사람들. 그게 법이라 믿고 행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속게 되고, 빠져들게 되며 비숑들을 추대하게 만드는 과정. 하필 거기에 시봉도 한 몫 할 수 밖에 없는 뿌리였음에 시습이 정채민 대표를 외면하더라도 한 번은 앙시앙 하우스를 밟게 되어, 이 사달이 나게 되지 않았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번은 겪었어야할 시봉의 혈통이 가진 마음아픈 역사 정도?


이시봉은 사람의 이름을 띄고 있지만, 결국 개다. 그리고 그 개의 마음을 빼다 박은 시습을 통해 세상을 흘깃거리며 주변을 보게 만든다. 백수 청년. 새벽에 시봉과 아파트 뒷산 산책과 공원 혼술 걸치고 내려오는 한량같은 삶. 학교 중퇴에 무력감만 쥐고 사는 듯한 청년을 따라가다보면 그와 반대로 사는 여동생 시현의 세상도 보게되고, 헬스에 미친 정용이나 입이 험한 편의점 알바생인 수아를 통해 웹툰같은 인물들 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인물들로 다시금 덧씌워진다. 사람과 대면하는 것 보다 개와 마주하는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 그리고 가족보다 더 애틋한 관계 속에서 '이 작은게 뭐라고....'를 연발하며 명랑하고 짧으며 투쟁 없으나 반박도 없고, 무얼해도 견주만 바라보는 이 놈의 순수한 본능 덕에 사는 것임을 느끼게 만든다.


박유정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종교인이 종교만 생각하고,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만 생각하고, 고리대금업자가 이자만 생각하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만 보려만 한다는 점. 그게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풀어내는 사랑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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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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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총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이야기를 이끄는 '장'에게 이유없는 납치 이슈가 보이는데 이걸 기점으로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닥쳐온건지를 풀어낸다. 1부는 책 제목과 동일한 말뚝에 대한 이야기. 장이 살고있는 대한민국, 그리고 장 앞에 높여진 말뚝으로 인해 세상이 주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마지막 3부는 장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한 이유를 하나씩 쓸어담으며 어떻게 정리하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왜 하필 장에게 이러한 시련들이 몰려왔던건지를 알려주는데, 왜 그리 말뚝만 보면 이유없이 눈물이 난건지 알려주는데 후반으로가면 장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짠함보다. 장을 둘러싼 세상을 사는 이들의 짠함에 뜨거운 눈물을 보태게된다.


다들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장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다. 해주와 더 오래 함께하고싶었고, 태이가 미운 날도 있었으나 그냥 어디서든 잘 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진희 선배에게 업무 압박으로 출근하기 싫은 요건 하나가 더 추가되지 않았음 하는 마음도 컸다. 행원이 된 후 시작이 지역으로 파견이 아니라 본사에 있고 싶었고, 왜 자신이 유부녀를 꾀는 사람으로 오해받아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왜? 왜? 내가 왜? 라는 물음을 세상에 던지지만 수긍할만한 그럴듯한 답은 얻지 못한다.

태이의 유품을 들고온 데보라가 장의 차에서 틀던 데이식스의 해피를 들으며 장이 원하는 삶이 딱 이거라 싶은 느낌을 받는다. 더욱 서러운건 그 노래 가사마저 자신이 행복하다는 느낌표 가득한 말들은 하지 않는다. 계속 물음을 던진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대로 계속해서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요? 라며 이만큼 힘들었는데 이제는 행복해도 되는거 아니겠냐고 답을 정해놓고 계속 묻는다. 그냥 쉽게 쉽게 살고 싶은데 장의 하루하루는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 딱 이 노래의 가사 화자가 장을 보고 쓴거라 보여지는 말뚝들 속 장의 세상이다.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세상이기도하다.

결국 소설 속 장이나 현실의 나나 뭘 더 얻으려 하는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돈다발이 뚝 떨어지길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삶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한 사람인데, 그게 어렵다. 아마 말뚝이 된 이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욕심을 내고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계엄 상황까지 만들어 세상을 흔드는 자들 만큼의 힘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걱정없이, 매일 웃는 날을 바라는데 그에 대한 답은 어느 누구도 주지 않았다.

불행은 순차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분배가 되지 않는 항목이라는 점이 야속하다. 돈 50만원이 없어 대출을 신청하지만 그마저도 자격이 되지 않아 거절당하고, 직급에 눌려서 부당한 지시를 받기도한다. 시작점이 다르니 누군가는 쉽게 얻는 것이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담보잡힐 만큼의 어려운 순간이라는 점에서 말뚝들을 보면 얼마나 애닳고 살았을까 싶음이 전해져 눈물이나고 마음이 쓰인다.

순탄한 적이 없던 삶, 불행은 연거푸 들이닥친다는 머피의 법칙보다 무서운 룰, 매번 두가지의 선택지를 모두 쥘 수 없는 밸런스 게임 같은 세상이다. 장의 명함을 입에 물고 말뚝이 된 자의 행적을 따라 갈 것인지, 반대의 세상을 사는 대민그룹의 차남의 꽁무니를 따를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만 놓고 봐도 장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그간 살아온 삶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패가 될텐데 아니나 다를까 욕망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것을 택한다. 이걸 고르면 변하지 않을 빤한 세상이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그걸 고집한다.

어느 시점부터는 장이 왜 납치를 당했는지, 왜 그냥 돌려보낸 건지, 진실로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쏠리지 않는다. 이건 말뚝 1호가 왜 명함을 입에 물고 그렇게 세상에 떨어진 건지 궁금하지 않아하며 빨리 수습하거나 가림막으로 주목 받는 것을 차단하려는 걸 통해 세상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건을 덮고, 시간이 흘러감에 자연스레 잊혀지길 원하고 있음도 내비쳤다. 장의 사건을 진지하지 못하게 받아들이는 형사, 말뚝을 가리고 담아가는 것에 어떠한 이유도 묻지 않고 위에서 지시하니 그대로 따르기만 하게 되는 행동. 이상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반박하지 않는 시대상이 책 속에 옮겨 져 있다.

한무더기로 나타나 울게 만드는 말뚝들. 사람들이 실컷 울고 마음을 쓸 시간을 안 줬던 그간의 사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쟝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사건을 되돌려보면서 계속 나를 탓하고 나를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필'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원망이라도 해야 덜 억울하겠다 싶은 무수한 사회적 재난들. 잔잔하던 세상에 어느 날 느닷없이, 그렇게 훅 하고 들어오는 슬픔은 꽁꽁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 아니었다. 그렇게 바닷가에도 머물러있고, 광화문 광장에도 몰려있고, 내 집에도 머무르고 있었다. 매일 마주했지만 외면했던 슬픔의 덩어리들이다. 맘 껏 애도하길 바라며 말뚝은 눈물을 끌어냈고, 속이라도 시원하게 눈물을 흘리게 판을 꾸려주었다. 내 앞에 당도한 슬픔마저 물리적인 것들로 인해 제지 당하지 못하도록 아주 옴팡지게 울어주고 마음써주고 싶어진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재력이든, 사회적인 지위든, 명성이든 할 수 있는건 다 해보는 무서운 사람들. 사건은 덮어버리는 대기업의 차남, 계엄을 선포한 나라의 대표와 반대되는 사람들. 밸런스 게임에서 누가봐도 질 수 밖에 없는 선택지인 이들을 알면서도 지지하는건 우리의 삶은 장기전이기 때문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동행하게된다. 그놈의 '언젠가'를 믿기 때문에 그 마음이 모이고 모여 몸집을 키웠을 때의 한방을 믿기에 지는 싸움에 미련함을 덧대는게 아닐까.

뭘 더 크게 바라지 않는다. 바라는게 크면 되갚아야하는 것도 그만큼 늘어나니까. 그러니 딱 내가 감당 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욕심내지 않고 쥘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을 원하게된다. Tell me it's okay to be happy!


📖하니포터 11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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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게임 김동식 소설집 10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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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오는 인물의 이름은 익히 아는 이름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단편들마다 주제는 달라지지만 등장인물 이름이 똑같다. 그렇다고 인물이 앞에 있던 단편과 같으냐? 또 그건 아니라는 점. 익숙한 이름에서 다른 성향을 찾아 볼 수 있는 것. 등장인물로 인해 소비되는 에너지가 없어 좋고, 인간의 다면성을 보여주고픈 느낌도 들어서 이 사람이 평생 하나의 성향을 가지진 않는다는 걸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카드리뷰는 이러하다. '사고실험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부조리. 극한의 상황에 놓인 한 인간의 딜레마. 인륜과 생계, 증오와 용서, 욕망과 정의 등.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은 22편의 이야기'라 적혀있다. 밸런스 게임은 꼭 이렇게 무엇을 선택하면 다른 무엇은 가지지 못하게된다. 모든 선택의 책임은 본인이 지게 되고, 모든 선택의 후회 또한 본인이 감내해야하는데 이를 통해 어떻게 변해가고 어떠한 성향으로 바뀌는지도 보는 맛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밸런스 게임에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더할때마다 짧은 이야기지만 여운은 길고, 반성을 하게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내가 너무 세상에 찌들어 있나 싶기도 하면서,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결코 착한 사람은 아님을 반성한다. 현실에도 이러한 고민은 수도 없이 하게되며, 하나의 선택지를 고르는 순간 하나는 영영 가질 수 없는 것인데 그래도 삶은 살아하고, 시간은 흐른다는걸 안다.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했고, 어떠한 득을 봤는지. 잃은건 무엇이고, 어떠한걸 후회하는지. 마냥 다 가질 수 없는 이 밸런스 게임에 내 세상을 옮겨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좀 더 잘까? 지금 정신차리고 일어날까? 부터 고민하는 모든게 밸런스 게임같은 삶에서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은 포기를 하게될지 세어보다 포기를 선언한다. 하나, 둘 손꼽아 체크 하다가 이 마저도 계속 할까 말까를 고민하고있으니 오늘 무의식 중에 숨 쉬는 만큼 아주 자잘하고 사사로운 밸런스 게임이 수두룩 할 것이 분명해보여 괜한 짓이라는 걸 깨우치게된다.


📖밸런스 게임_ 단지 그게 옳기 때문에 지키는 거 아닙니까! 난 인간이니까! 돈 때문에 타인의목숨을 해쳐선 안 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아니까! 아, 됐고! 난 100만 원을 택하겠습니다!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

1000만 원을 선택하면 한 사람이 죽고, 100만 원을 선택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100만 원을 선택하고 이 곳을 떠나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1000만 원을 선택한다면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 전제가 주어진다. 더욱 찝찝한 건 1000만 원을 선택하면 생각지 못한 행운에 순수하게 기뻐하게 될 것이고, 100만 원을 선택한다면 아쉬움에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일단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게 되더라도 무언가를 얻어 낼 순 있다. 일단 수중에 돈이 주어지는데 그 값어치가 달라지고, 내 기억에 남는 미련이 문제가 된다. 전자와 후자. 도의와 개인적인 실의에 대한 오로지 자신만 기억하고 자신만 후회할 것의 찝찝함의 껀덕지. 매번 이러한 전제는 꼭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야만 더 큰 득을 보게되는데 그 댓가가 마음에 걸린다.

기억의 잔상 유무와는 상관 없이 나는 100만 원을 택하게 될 듯 하다. 도의적인 것도 있겠지만, 설령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한들 은연중 드는 생각 마저도 남을 해하거나 옳지 못한 것에 대한 찝찝함을 평생 안고 살게 될 텐데(기억 못해도 이 1000만 원에 대한 흔적을 찾으려 기를 쓰고 알아볼 내 성격상 그러하다) 나는 딱 그정도. 간장 종지만큼의 득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기에 원초적 결정을 따르지 않을까. 남들 다 천만 원의 득을 본들 내 편한대로 살고싶으니 말이다.(이래서 부자가 못 되는걸까?)



📖남편의 세 가지 비밀_ 부부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지? 왜 그걸 숨기지? 뭐길래? 믿음이 있다면 숨길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믿음이 없는 부부관계가 지속될 수 있나? 생각은 점점 불어나, 비밀을 듣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 되었다.

알아서 좋을 것 없고, 몰라서 고심할 것도 없다면 때로는 모르는게 약이 될 수도 있다. 안다고 바뀔 것이 없고, 알아서 해결될 가닥이 없다면 나는 차라리 모르고 살길 바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비밀? 비밀이라 할 것도 없는 것들을 꼽아본다. 굳이 말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비밀이 된다면 우리 부부도 비밀이 많은 사이가 아닐까? 딱히 말을 해줘야 하는 이유도 없고, 말 한들 근심의 싹이나 찜찜함의 꼬투리를 제공 하게 된 다면 우린 그냥 각자의 선에서 해결과 침묵을 고수하고있다. 이게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도의 차이겠지만, 이 단편의 후반부로 갈 수록 침묵을 일관했던 이유에 대한 파장은 커진다. 아.... 각자가 생각하는 사사롭거나,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는, 내 선에서 해결될.... 그런 일들이 발치에 채이는 별거 아닌것 부터 시작했다가 별의 별거가 될 수도 있음을 느낀다. 아! 이게 그거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 이래서 항시 뒷통수 조심하라 하나보네.



📖미워하는 마음_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 시절, 왜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을까? 떨리는 눈으로 내려다보던 홍혜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일곱 장의 카드 중에는 악마10 카드가 없었다.

이것도 나이와 체력과 열정의 차이일까? 미워하는 마음이 나이가 들 수록 점점 줄어듬을 느낀다. 10대와 20대 시절 누구보다 강렬하게 좋아했고, 싫어했음을 분명하게 나누었다. 별거 아닌 것에도 부정을 표혔고, 그게 타인마저도 알 만큼 티를 내며 다녔다. 이른바 관종처럼 살았다. 그런데 이게 나이가 든 탓인지, 거기에 쓸 체력까지 없는 것인지, 이도저도 아닌 그러한 마음 자체를 중요하게 꼽지 않게된다. 그래서 더욱 이 천사와 악마카드에 쓰인 비율에 신경써서 고르게된다. 타인을 위해 악마10을 고르고, 내가 얻어갈 행운을 0으로 맞교환 하는 방식은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누군가의 불운을 바라면서까지 내 행운의 수치를 낮추고 싶지 않다. 안보면 그만이고 모르쇠로 내 삶만 집중하면 그만이니까. 일단 마음은 그렇게 먹지만, 타인의 불행까지 신경쓸 삶의 관심도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악마10 카드가 없는 걸 본 홍혜화 처럼 나에게도 그 카드가 없이 되돌아온다? 이건 또 말이 달라지지. 머리를 싸메고 나를 그만큼이나 미워할 어떤 이를 머릿속에서 추려본다. 내가 간과하고 있던게 있었지. 내가 이렇게 살아 온 만큼 나를 또 죽도록 싫어할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신경 안 쓰고 싶다만 머리를 굴려가며 나를 싫어할 인간을 추려본다. 모르면 몰랐지, 아... 이걸 안 만큼 오늘 잠은 다 잤다. 젠장.


📖그녀는 아들을 죽였는가, 죽이지 않았는가_ 어차피 대중들은 물고 뜯을 거리가 필요할 뿐입니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던져주면 그걸 가지고 잘 놀지요. 소수의 사람이 핵심을 짚어줘도, 대중들의 관심은 오로지 눈앞의 개뼈다귀뿐입니다.

사건의 인과관계.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는 팩트. 그건 중요치 않더라. 자극적인 키워드 몇개 던져주면 대중은 알아서 소설을 쓰고, 그 글에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직접 본 것 처럼 살을 덧붙이는데 이는 본업이 의심 될 정도로 그럴듯한 소설을 말아준다. 그 '카더라' 덕에 사람들은 홀리고 홀려대는 효과로 더더욱 매체를 통해 물타기를 하게됨을 느낀다. 이 단락을 보니 며칠 전 손보미 '세이프 시티'도 떠올랐다. 결국 대중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잣대를 기준삼아 그게 맞다는 듯 이야기를 꼬아서 지 편한대로 받아들이게된다. 그러니 이걸 이용한 회장과 죽은 아이 어머니가 똑똑한 선택을 했다는 씁쓸한 결론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회장은 큰 손실을 줄였고, 아이 엄마는 그래도 여러가지 선택지 중에 가장 큰 득을 보는 결정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영영 묻어두는게 그들간의 룰이겠지.



📖가해 총량_ 사람은 모두 각자의 '가해 총량'을 타고납니다. 평생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거죠. 그 가해 총량을 제게 파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누군가를 해하면 결국 끝은 자신을 향해 겨눠져 있다는 사실. 알면서 때때로 외면하고 사는 삶. 타인을 해하고 받은 댓가는 미리 당겨 쓴 자신의 생의 일부라는 걸 늘 염두해 두라는 듯한 권선징악의 냄새가 풍기며 은비까비같은 전래동화의 교훈을 가진 어른을 위한 고전의 뉘앙스다.


📖모두 다 결정되어 있다_ 다른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삶에 고난과 역경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번외 공간인 이곳에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어도, 내가 선택하는 게 그나마 좀 낫지 않겠습니까?

결국,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살며 겪은 그 불행은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었고, 나의 무력보다 최선을 다했기에 그나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들 중 내가 좀 더 슬프고, 좀 더 힘들었던 걸 택했던 갈래였다. 아버지의 이른 사망 대신 자신이 화상을 입었고, 자신의 암투병을 할 지언정 딸의 극심한 사춘기의 선택지를 밀어내어 버렸다. 아내가 외도하여 내 곁의 내 사람을 떠나보낼 지언정, 내 부모의 사망을 막았던 악몽같은 나날. 최악과 최악 중 내 평안은 미뤄둔 결정의 결과물이었다. 몇번이나 환생한다 한들 다른 선택을 하진 않겠지.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들에는 오롯이 나를 최 후 순위로 둔 행복의 줄세우기이자,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는 방식이었다.

마치, 우리가 22편의 밸런스 게임을 통해 내가 할 결정을 대입하며 고심했던 그 모든 이유의 해답이기도 했다.


내가 읽고있는 순서는 뒤죽박죽이지만 이게 김동식 소설집의 마지막 10번째 책이었다. 역시나 치고 빠지는데에 능한 단편 전문 소설가였다. 그리고 단순한 인물 구조여서 집중하기 좋았고, 그가 툭 던져놓은 화두를 덥썩 물고나면 한동안 씹고 뜯어가며 그 이야깃거리를 한참동안 곱씹게된다. 몇장 안 되는 단편이었지만 단편 속 주인공이 되거나 주변인물이 되어 내가 선택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나름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결국 그거다. 사람답게 살길 바라고, 염세적인 척 하며 살지만 남들 못지 않게 무탈하고 따수운 세상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입버릇처럼 주둥아리만 착한 사람으로 살다보니 이러한 선택의 중심에 서 있다면 욕심을 내어 볼지, 손해를 볼 지언정 사람다운 결정을 할지 아직도 확신이 안 선다. 그래서 고마웠다. 이 밸런스 게임을 통해 그래도 나는 선하고 싶은 욕구가 조금이라도 더 있는 인간이구나. 짐승 아닌 인간인 것에 감사하며, 이러한 밸런스 게임을 무수히 하게 될 미래의 나에게 미리 훈계하고 싶어진다.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다운 선택을 해라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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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 시티 소설Q
손보미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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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그녀(나), 그(남편), 임윤성, 최진유,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세이프 시티에서 이뤄진다. 세이프 시티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선택적으로 기억을 삭제하는 기술의 보급화. 그걸 목도하기 위해 임윤성이 무던히도 애쓰는 과정. 처음엔 나와 상관 없는 기사거리라 여겼으나 나와 엮여있는 사건. 내 사고를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했던 남편. 흉기를 휘두른 자는 피해자인 나를 못 알아보는 상황. 임윤성의 아내 최진유는 부부동반 모임에서와는 다르게 나와 있을 때 다른 갈래의 행태를 취한다. 넷이서 함께 할 때와는 다른 행동과 말들. 그들이 진짜 원하는 바는 무엇이고,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어떠한 것이길래 부부끼리든 이 모임에서든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인지. 믿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다들 함구하려는 지를 함께 생각하게된다. 불리워 지는 것에만 치중한 '세이프 시티'안에서 어느 것도 안전하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를 따라가본다.



📖인간의 기억은 변합니다. 한때는 아주 중요했던 사실,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억을 잊은 줄도 모른 채 잊어버리죠. 인간은 고유하지 않아요. 한 인간이 고유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죠.

천년만년 기억하고싶은 것들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기억은 왜곡되고, 또 일부는 휘발되어 소실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유한하지 못하다는 것. 이건 어쩔 수 없는 팩트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외부의 자극으로 그것을 변형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필한다. 이게 인간의 존엄성이라며 기억을 품고있는 인간을 껍데기 삼아 보존하려하는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를 수면위로 끌어올린다. 그게 임윤성과 그녀가 대립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자리. 여기에 임윤성은 극단적인 상황을 예시로 들며 반대 입장을 하고있는 그녀를 자극시킨다. 범죄자의 존엄성까지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비윤리적인 것에도 공평과 형평성을 논해야하는게 마땅한지를 이들의 대화에 독자의 의중을 끌어내고있다.

기억을 없애는 기술이 상용화 된다는 가정 하에, 우리는 어떤 것 부터 소거하게 될까. 그리고 우선 적용되는 대상을 누구로 선정할 것인가에대한 것도 이목을 끌기 딱 좋다.

임은 범죄자를 거론하며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하며 운을 띄운다. 그녀는 범죄자에게 존엄섬이 있음을 언급하며 비윤리적인 것에 대한 선정에 반문한다. 나는 임도, 그녀도 아닌 다른 편에서 서고싶다. 악행을 저지르고 단순히 기억을 지움으로서 형벌이 가벼워진다? 형량을 줄이는 것 보다 기억 자체를 소거 한다는 것은 죄책감 마저도 지워서 無의 상태로 만든다는 것인데, 과연 그게 형벌일까? 갱생하겠다며 꽁으로 얻어낸 얕은 속내 같아 적어도 그들을 우선 적용해선 안된다 여기는 입장이다. 역시 결론이 나오지 않는 논쟁이다.

헌데, 이 이야기의 끝엔 임이든 그녀든 누군가는 목표점에 도달하게 될 뉘앙스를 풍겨온다.


📖그날 밤 거기에서 일어난 '진짜'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거기서 일어난 일. 안전하지 않다고 미리 고지한 지역, 늦은 시간, 관리가 안되는 건물의 화장실, 흉기를 든 사람, 맨몸으로 달려든 여자. 범죄자는 환자의 관점으로 시선이 넘어감. 처벌이 아니라 치료의 수순. 거기서 그러한 사건이 일어 날 수 밖에 없던 정황이나 범죄자가 행한 목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범죄자가 환자가 될 것인가? 와 더불어 환자로 전환되어 때마침 진행하던 실험의 대상자로 전환 될 것인가? 만 주목하고있겠지.

피해를 입었고,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소외된 자들은 언론도, 경찰도, 시민마저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세상임을 한번 더 확신하게된다. 그렇다 보니 임이 범죄자를 최초의 대상자로 선정하여 언론을 등에 업고 시행하려는 게 당연한 소릴지도 모르겠다. 최소 인원으로 최대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니 쉽사리 놓칠 수 없는 타이밍인 것이다. 이른바, 이 지랄맞은 타이밍.

📖그러므로 그들은 같은 '편'이라고 할지라도 서로를 불신하고 무시하고 증오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다른 '편'에 섰다는 이유로 서로를 절대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쟤는 되는데, 왜 나는 안돼?'라는 심리. 편하게 죄를 탕감받는 범죄자. 좋아보이는 그거 나도 할래! 로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벌떼처럼 달려들게되는 군중심리. 부작용에 대한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 무작정 요청하는 생떼 같은 것. 그러니 어찌해도 공감하기 어려운 각자의 입장들. 화두는 던져졌고, 그걸 가지고 지지고 볶고 신나게 서로를 물어뜯는 판은 조성되었다. 임은 이전과 달리 더 편하게 시행 할 수 있는 구실을 얻어냈다.



📖그녀는 그게 회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게 뭐지? 그냥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뿐이야.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세이프 시티로 운영되는 레벨에 맞춰 안전하다 하는 1구역과 2구역으로만 다니게되고, 현수막으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낡은 건물엔 들어가지 않는 것. 설령 지나치더라도 차로만 다니지 대로변을 걸어다니며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 그건 또 어떻게 보면 3구역 4구역 사람들이 모조리 범죄자로 여기는 무의식 중 의식의 편견일 수도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하위 구역 사람들에게도 기억 교정술을 우선 적용해야하는 상위 집단이 되는 걸로 치부하고 있는건 아닐지. 1구역 사람들만 남는다면 그게 최선의 선택이고 최고의 안전 구역이라 할 수 있을지. 이 모든 것이 각자의 관점이며 편견이고 착각이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잘 안 하거든. 딴 세상의 일이지. 하지만 악행은 달라.

우리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사건 사고를 마주 할 때마다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피해자가 안쓰럽고 걱정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당사자가 내가 되거나 내 가족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은 것에 대한 다행스러운 마음이 클 수 밖에 없다. 상대를 걱정하긴 하나, 결국 내가 살고 봐야하는 거니까. 내가 살아야 남을 걱정하든 돕든 할 테니 일단 나는 무탈하다는 것에 마음 놓인 채 측은한 마음을 갖게된다. 이게 도덕적 우월감인지 사회화가 잘 되어진 인간의 공감능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게 악에 대한 것으로 전제가 옮겨지면 매번 다른 변수가 생긴다.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예측이 안 되는 것이다.

일단 저자가 수면위로 끌어올리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인지했고, 주인공과 대립대는 임윤성, 부부인 최진유는 겉으로는 같은 결을 띄고 있지만 남편과 마주하지 않는 다른 공간에서는 다른 목적을 두고 약자의 편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돕게된다. 주인공과 같이 살지만 어떠한 도움이 되지 않는 듯 그려지는 남편의 입장. 평소와는 다른, 극한의 상황에 놓여졌을 때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을 목격함에 있어 주인공은 속내를 드러내거나 예민한 논쟁에 대해서는 말을 줄인다. 그래서 그녀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에 의견을 내며 어떠한 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일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일단 임에게는 대립을 할 텐데 생각보다 답답한 면을 보이기도한다.

판세는 기억교정에 대한 작용, 범죄자에 대한 우선 적용을 찬성하지만 피해자이며 당사자인 본인은 반대하기에 어떻게든 여론을 돌릴 방향을 모색한다.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살짝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한다. 기억 교정술을 시행하되 그 대상을 그 자로 해서는 안된다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끄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큰지라 주인공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주인공이 좀 더 힘이 있었더라면, 차라리 최를 업고 다른 방향으로 틀게 되더라도 그것만 아닌 것으로 돌려 결론을 찢어내더라도 후반부 이야기는 좀 더 재미나게 읽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된다.

완독을 하고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라는 말이 제일 정확한 듯, 이야기는 다소 답답함만 남긴채 끝을 맺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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