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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어떠한 사전 지식 없던 인간은 시봉이가 개라는 것과 어지간해선 도전 하지 않는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라는 것에 대한 압박과 걱정이 컸다. 일단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멀찍이서 관상용처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바라보는 것만 좋아한다. 이건 자라온 환경에 대한 영향일 수도 있을 듯 하다. 물론 온전이 이시봉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개-사람에 대한 연대가 있을법한 이야기에 젖어들며 편히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이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며 읽으려 도전했다. 일단 휴가 때 읽으려 했으나 근 한달이 걸려서야 완독하게되었고, 명랑한 이시봉을 앞세운 채 서로의 전유물로만 남기려했던 각자만의 사랑과 욕심 속에서 상황에 관계없이 반박없고 원망없는 이놈, 이시봉 요녀석만이 견주를 향한 애틋한 시선뿐임을 알게되었다.

제목부터 여기 주인공은 시봉인 듯 하지만, 남겨진 시봉을 데려다 키우는 시습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리고 시봉을 데리고 왔지만 여기엔 없는 아버지. 시봉의 부모, 그 부모를 보살피던 김상우와 박유정이 두터운 이야기의 핵심일테고, 시봉을 둘러싼 어딘가 하나씩은 헛점이 있는 정용, 수아, 리다, 동생 시현의 세상이 그려지고, 시봉을 데리고 왔으나 지금은 사망한 아버지 주변으로 동료였던 이시봉아저씨를 통해 차마 가족에게 꺼내지 못했던 회사에서의 이야기들을 듣게된다. 김상우와 박유정, 그리고 앙시앙 하우스의 대표인 정채민이 비숑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려 했던 이유. 그리고 박유정의 아들인 김태형의 존재까지. 거기에 사이사이 끼워지는 비숑과 스페인 왕가의 이야기는 너무 촘촘하게 설명이 되어있어 진짜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해 나 마저도 시봉이가 진짜 왕가의 뼈대있는 개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빼곡한 글 뿐이며 어떠한 사진이나 그시절 초상화로 남겨뒀을 법한 그림이 삽입되어있지 않음에도 눈에 그려지는 풍경들. 허리는 잘록하고, 치마는 풍성하며, 목이 버텨줄까 싶은 부풀린 머리를 한 왕비 마리아 루이사와 그녀의 머리스타일을 빼다 박았을 듯한 비숑들까지. 바로 직전까지 그들의 초상화를 본 것 처럼 선명해서 역시나 저자다운 표현력에 감탄하게된다. 그래서 계속 홀린듯 보게되고, 또 한편으론 시봉이 쟤가 뭐라고를 연발하며 이들의 격한 감정들을 따라가게된다.
소위 그사세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과 사뭇 다르다는 것. 자기들만의 나라가 있는 듯, 그 곳에서는 그들이 만든 룰을 따르고, 그들이 창시해낸 역사를 이어가려는 것. 그게 내가 만난 앙시앙 하우스의 꺼풀이였다. 정채민 대표가 꾸려놓은 판에 뛰어든 사람들. 그게 법이라 믿고 행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속게 되고, 빠져들게 되며 비숑들을 추대하게 만드는 과정. 하필 거기에 시봉도 한 몫 할 수 밖에 없는 뿌리였음에 시습이 정채민 대표를 외면하더라도 한 번은 앙시앙 하우스를 밟게 되어, 이 사달이 나게 되지 않았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번은 겪었어야할 시봉의 혈통이 가진 마음아픈 역사 정도?
이시봉은 사람의 이름을 띄고 있지만, 결국 개다. 그리고 그 개의 마음을 빼다 박은 시습을 통해 세상을 흘깃거리며 주변을 보게 만든다. 백수 청년. 새벽에 시봉과 아파트 뒷산 산책과 공원 혼술 걸치고 내려오는 한량같은 삶. 학교 중퇴에 무력감만 쥐고 사는 듯한 청년을 따라가다보면 그와 반대로 사는 여동생 시현의 세상도 보게되고, 헬스에 미친 정용이나 입이 험한 편의점 알바생인 수아를 통해 웹툰같은 인물들 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인물들로 다시금 덧씌워진다. 사람과 대면하는 것 보다 개와 마주하는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 그리고 가족보다 더 애틋한 관계 속에서 '이 작은게 뭐라고....'를 연발하며 명랑하고 짧으며 투쟁 없으나 반박도 없고, 무얼해도 견주만 바라보는 이 놈의 순수한 본능 덕에 사는 것임을 느끼게 만든다.

박유정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종교인이 종교만 생각하고,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만 생각하고, 고리대금업자가 이자만 생각하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만 보려만 한다는 점. 그게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풀어내는 사랑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