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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이야기는 총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이야기를 이끄는 '장'에게 이유없는 납치 이슈가 보이는데 이걸 기점으로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닥쳐온건지를 풀어낸다. 1부는 책 제목과 동일한 말뚝에 대한 이야기. 장이 살고있는 대한민국, 그리고 장 앞에 높여진 말뚝으로 인해 세상이 주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마지막 3부는 장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한 이유를 하나씩 쓸어담으며 어떻게 정리하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왜 하필 장에게 이러한 시련들이 몰려왔던건지를 알려주는데, 왜 그리 말뚝만 보면 이유없이 눈물이 난건지 알려주는데 후반으로가면 장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짠함보다. 장을 둘러싼 세상을 사는 이들의 짠함에 뜨거운 눈물을 보태게된다.
다들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장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다. 해주와 더 오래 함께하고싶었고, 태이가 미운 날도 있었으나 그냥 어디서든 잘 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진희 선배에게 업무 압박으로 출근하기 싫은 요건 하나가 더 추가되지 않았음 하는 마음도 컸다. 행원이 된 후 시작이 지역으로 파견이 아니라 본사에 있고 싶었고, 왜 자신이 유부녀를 꾀는 사람으로 오해받아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왜? 왜? 내가 왜? 라는 물음을 세상에 던지지만 수긍할만한 그럴듯한 답은 얻지 못한다.
태이의 유품을 들고온 데보라가 장의 차에서 틀던 데이식스의 해피를 들으며 장이 원하는 삶이 딱 이거라 싶은 느낌을 받는다. 더욱 서러운건 그 노래 가사마저 자신이 행복하다는 느낌표 가득한 말들은 하지 않는다. 계속 물음을 던진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대로 계속해서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요? 라며 이만큼 힘들었는데 이제는 행복해도 되는거 아니겠냐고 답을 정해놓고 계속 묻는다. 그냥 쉽게 쉽게 살고 싶은데 장의 하루하루는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 딱 이 노래의 가사 화자가 장을 보고 쓴거라 보여지는 말뚝들 속 장의 세상이다.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세상이기도하다.
결국 소설 속 장이나 현실의 나나 뭘 더 얻으려 하는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돈다발이 뚝 떨어지길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삶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한 사람인데, 그게 어렵다. 아마 말뚝이 된 이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욕심을 내고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계엄 상황까지 만들어 세상을 흔드는 자들 만큼의 힘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걱정없이, 매일 웃는 날을 바라는데 그에 대한 답은 어느 누구도 주지 않았다.
불행은 순차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분배가 되지 않는 항목이라는 점이 야속하다. 돈 50만원이 없어 대출을 신청하지만 그마저도 자격이 되지 않아 거절당하고, 직급에 눌려서 부당한 지시를 받기도한다. 시작점이 다르니 누군가는 쉽게 얻는 것이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담보잡힐 만큼의 어려운 순간이라는 점에서 말뚝들을 보면 얼마나 애닳고 살았을까 싶음이 전해져 눈물이나고 마음이 쓰인다.
순탄한 적이 없던 삶, 불행은 연거푸 들이닥친다는 머피의 법칙보다 무서운 룰, 매번 두가지의 선택지를 모두 쥘 수 없는 밸런스 게임 같은 세상이다. 장의 명함을 입에 물고 말뚝이 된 자의 행적을 따라 갈 것인지, 반대의 세상을 사는 대민그룹의 차남의 꽁무니를 따를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만 놓고 봐도 장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그간 살아온 삶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패가 될텐데 아니나 다를까 욕망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것을 택한다. 이걸 고르면 변하지 않을 빤한 세상이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그걸 고집한다.
어느 시점부터는 장이 왜 납치를 당했는지, 왜 그냥 돌려보낸 건지, 진실로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쏠리지 않는다. 이건 말뚝 1호가 왜 명함을 입에 물고 그렇게 세상에 떨어진 건지 궁금하지 않아하며 빨리 수습하거나 가림막으로 주목 받는 것을 차단하려는 걸 통해 세상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건을 덮고, 시간이 흘러감에 자연스레 잊혀지길 원하고 있음도 내비쳤다. 장의 사건을 진지하지 못하게 받아들이는 형사, 말뚝을 가리고 담아가는 것에 어떠한 이유도 묻지 않고 위에서 지시하니 그대로 따르기만 하게 되는 행동. 이상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반박하지 않는 시대상이 책 속에 옮겨 져 있다.
한무더기로 나타나 울게 만드는 말뚝들. 사람들이 실컷 울고 마음을 쓸 시간을 안 줬던 그간의 사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쟝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사건을 되돌려보면서 계속 나를 탓하고 나를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필'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원망이라도 해야 덜 억울하겠다 싶은 무수한 사회적 재난들. 잔잔하던 세상에 어느 날 느닷없이, 그렇게 훅 하고 들어오는 슬픔은 꽁꽁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 아니었다. 그렇게 바닷가에도 머물러있고, 광화문 광장에도 몰려있고, 내 집에도 머무르고 있었다. 매일 마주했지만 외면했던 슬픔의 덩어리들이다. 맘 껏 애도하길 바라며 말뚝은 눈물을 끌어냈고, 속이라도 시원하게 눈물을 흘리게 판을 꾸려주었다. 내 앞에 당도한 슬픔마저 물리적인 것들로 인해 제지 당하지 못하도록 아주 옴팡지게 울어주고 마음써주고 싶어진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재력이든, 사회적인 지위든, 명성이든 할 수 있는건 다 해보는 무서운 사람들. 사건은 덮어버리는 대기업의 차남, 계엄을 선포한 나라의 대표와 반대되는 사람들. 밸런스 게임에서 누가봐도 질 수 밖에 없는 선택지인 이들을 알면서도 지지하는건 우리의 삶은 장기전이기 때문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동행하게된다. 그놈의 '언젠가'를 믿기 때문에 그 마음이 모이고 모여 몸집을 키웠을 때의 한방을 믿기에 지는 싸움에 미련함을 덧대는게 아닐까.
뭘 더 크게 바라지 않는다. 바라는게 크면 되갚아야하는 것도 그만큼 늘어나니까. 그러니 딱 내가 감당 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욕심내지 않고 쥘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을 원하게된다. Tell me it's okay to be happy!
📖하니포터 11기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