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 미깡의 술 만화 백과
미깡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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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 못하는 주류의 세계와함께 철마다 먹는, 분위기에 맞춰 마시는, 상황에 따라 즐기는 술 이야기를 들어보며 어렵지않은 주류 만화 사전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즐겨보기로했다.

술 매니아 답게 목차는 1차와 2차로 나누어두었다. 1차에서 한잔, 2차에서 또 한잔 하자는 그런 의미겠지? 1차에서는 서양술을, 2차에서는 동양술에 대한 이야길 하는데, 아는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어 재미나고, 모르는 이야기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세계를 알려주는 듯 해 신기한 눈빛으로 그림을 따라가게된다.

미깡은 성인 이 된 후 이어진 술과의 추억도 꺼내어주는데 술쟁이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올려줬다 싶은 호프집 알바시절은 물론이고, 직장인의 퇴근 후 회식자리에서 마주하게된 폭탄주나 잊을 수 없는 신혼여행에서의 캔맥주에 대한 이야기. 매년 가족이 둘러앉아 매실 꼭지 따는 것은 물론이고(이제는 미깡의 딸이 그 일을 해준다) 100일 후 술만 건져내어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술정에 대한 소소한 일과들을 풀어낸다.

각 주류에는 짧은 호흡으로 술와 저자와의 인연에 대한 것, 마지막엔 술에 관한 지식도 알려주는데 길지 않아서 더욱 집중하기에도 좋았고, 각 회차속 소 주제는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 나같은 방구석 홈술러라면 그날그날 내 앞에 차려진 술상과 주류를 책 속에 담겨있는 회차와 맞추어 보며 한잔을 기울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나 1차 서양술에서의 폭탄주, 잭콕캔, 와인, 샴페인에 대한 파트, 2차 동양술에서는 희석식 소주, 막걸리, 매실주에 대한 기록과 내 추억이 많이 겹치는 것 같아서 더 빨리 읽혀지고 더 아끼게되는 페이지였다.


직장인생활 10년 정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아는 회식에서의 폭탄주 추억. 코로나 이전에는 회식도 자주했고, 시작하면서부터 소맥 말아서 젓가락으로 잔 속을 탕탕 치며 섞어주고 후루룩 다 마셔버리던 기억이 가득하다. 퇴근 후 회식장소로 가면서 숙취해소제 종류별로 목구멍에 털어넣고, 가방에 선임, 부장, 이사의 몫까지 챙겨가서 하나하나 챙겨드리며 이쁜짓하려 애쓰던 시절. 이제는 그러한 회식 문화가 사라졌고, 부서장도 술을 즐기지 않는 분으로 교체된 후로 이러한 폭탄주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게된게 떠올라 다들 이런 직장인 시절을 겪어왔구나 싶어 공감이 되었다.

이제는 뭐 남편이랑 고기집 가서 소맥 한잔으로 즐겁게 시작하는게 둘이 즐기는 소소한 폭탄주가 명맥을 이어가고있는거지.

저자의 부부가 신혼여행지에서의 잭콕 캔 추억을 떠올려주었다면 나에게는 코젤 흑맥주가 그러하다. 처음 가본 체코. 처음 마셔본 짙은색의 맥주. 입술이 닿는곳에 얹어진 굵은 설탕 알갱이, 커피인가 카라멜인가 싶은 짙은 내음과 함께 들어오는 맥주의 향. 그래서 신혼여행 다녀온지 11년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다. 언제 한번 또 우리는 체코에서 흑맥주와 꼴레뇨를 즐길지 상상만 하곤하는데 이러한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한 순간으로 남는 듯 하다.


지금도 여전히 소주는 잘 못 마시지만 대학 1학년 때에 20도가 넘는 알콜램프 속에 빠진 듯한 그 아찔한 순간. 이걸 왜 마시나 싶은데, 한방에 목구멍으로 털어놓던 동기들, 다같이 내일이 없는 듯 소주병을 둘러놓던 선배와 교수까지. 지금이야 소주의 도수가 반으로 훅 줄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쓴맛을 한 병에 꽉꽉 눌러 넣은 듯한 소주 이야기도 담겨있다.


부지런한 엄마 밑에서 자란 딸래미들은 매실에 대한 기억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땡글거리는 열매를 씻고 말리고, 이쑤시개로 툭툭 떼어내는 꼭지의 잔손질. 너무 향긋하고 맛있게 느껴져 엄마의 잔꾐에 넘어가 아작하고 씹었을 때 손발끝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신맛의 강렬함. 또 한번 딸래미 속인 것에 뿌듯해하는 엄마의 쳐진 눈꼬리하며, 그 사이 항아리 소독하고 닦아내고 엎어둔 것 다시 원위치 시킨 후 켜켜이 담느라 바쁜 아빠. 어떠한 의식을 치르는 듯 진지하고 각이 살아있던 손놀림까지. 은행에서 얻어온 숫자 큰 달력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매실주 뜨는 날. 그 날이 되면 또 한번 이뤄지는 매실주에 대한 경건한 손놀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했던게 남아있음에도 올해도 또 하는 우리집의 연례행사. 명절에 삼촌들 오면 챙겨주고, 감사한 사람들, 부탁해야하는 순간에 빈손이 부끄럽지 않도록 챙기게되는 고귀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던 매실주. 그래서 그런가 미깡의 술 이야기는 술에 대한 기록 뿐만 아니라 술이 가지고 있는 독자의 추억까지 끄집어 내는 능력을 갖고 있어 마음에 드는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술을 안 먹는 사람은 여전히 안 먹을테고,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알고싶고 다양하게 즐기고싶은 술의 세상. 어떠한 이야기는 추억을 끄집어내기 딱 좋은 향긋한 술의 단락이 있고, 에일 맥주 같은 파트들은 전문적으로 찾아보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칠 귀한 지식이라 알은체 해보고싶어지는 부분이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영화속 한잔, 거기에 더티 버전의 마티니라니. 언제 한번 바에서 시켜보고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파트.

사케집에서 맨 아래에 적혀있는 제일 싼 제품 말고, 이제는 알은체하며 라벨 보고 사케 고르는 능력을 키워보는 단락까지. 잔잔바리 지식으로 술쟁이 레벨 올리기 이만큼 좋은게 있을까 싶은 에세이.



뒤풀이 외전의 '좋아하는 술을 계속 마시기 위해' 애써야하는 필수 생활습관까지.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다양하고 맛있게 술 즐기려면 진짜 미깡의 말대로 해야 할 듯 하다. 먹는게 좋고, 마시는게 행복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즐기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깡이 건내주는 주류 생활 모음이 근래에 만나본 제일 재미난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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