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김동식 소설집 5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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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으로 꾸린 단편집인데, 결론은 다르다. 뭐랄까 일행 여럿이서 원형테이블에 앉아 같은 이야기로 고민하고있으나 저마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결론들은 달라서 의중을 도무지 모르다가 헤어진 후 진짜 속내를 듣게되는 뉘앙스랄까? 하나의 주제를 던져놓고 각자가 이해하기 나름으로 보여지는 마침표의 위치처럼 당황스럽게 와닿는다. 관계와 소통, 자아, 자존감 등 인간에 대한 성찰을 21갈래로 나누어 담아둔 타인의 행복을 시기하는 마음, 가족 간의 애증, 살인 다단게 등 미묘하게 얽힌 인간관계와 자아의 문제를 김동식표 소설로 비틀고 꼬아서 쓰윽 내민다.


📖T컴퍼니_ 당신이 행복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로 큰 행운이네요.

나의 불행은 누군가의 행복으로 보상이되고, 또 다른 누군가의 트라우마가 되는 엮이고 엮여있는 삶. 내가 아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때때로 나도 누군가의 불행을 사주하고싶을 만큼 울화가 치미는 날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먹은 날이면 나도 꼭 한번은 다리를 절듯 순간 주저앉고 버벅거리는 때가 오곤 하더라. 세치 혀가 잘못 했고, 눈알굴리며 옳지 못한 생각을 한게 들킨듯 꼭 마땅한 죄를 받는 기분이랄까. 나도 모르게 T컴퍼니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삶은 아닌지 의심하게되는 단편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 세상 선한 사람, 바보같이 착한 사람. 그들도 알게 모르게 과거에 했던 마음의 빚이 있어 이토록 애쓰며 착하게 하는게 아닐지 나는 또 의심을 하게된다.




📖행복 상한제_ 빚을 낼까? 빚쟁이가 되면 내 인생이 더 불행해질 테고, 그럼 그것들도 훨씬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잖아?

상대적인 행복의 수치. 그러나 남과 비교하면 내 행복의 지점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 A를 보고 내 처지가 비관적으로 느껴지면 A의 행복지수가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일테고, B를 보면 측은해지고 안쓰러워 보인다면 나는 적어도 B보다는 나은 행복의 지점에 머물러 있다는 걸 알게된다. 그래서 그런지 계속 비교하고 곁눈질로 하찮게 보기도하며 때론 타인의 그러한 눈길에 마음을 베이기도한다. 결국 이 행복의 수치는 내가 보고싶은 것들로만 꾸려지는 가장 사적인 수치라는 것. 그러니 이 행복 상한제에 대한 거래는 사람을 혹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이되어진다.

나를 기준으로 삼아 나보다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인가 나보다 불행해지길 원하는가는 내가 거래하기 나름이다. 300만원으로 쟤를 나보다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면, 진짜 간절히 타인의 불행을 원한다면 기꺼이 내어 주고픈 마음이 있을 수 있다. 300만원이 사라지는 것 보다 내 자존감을 올려주는게 사는데에 덜 불행할 것 같거든. 조갈나있던 행복에 대한 비교를 시원하게 하니 한 숨 돌렸다 싶지만 사람의 욕심은 왜 이리 중간이 없을까. 내가 패가망신의 길로 가더라도 상대도 똑같이 길거리에 나앉듯 불행에 흠뻑 젖어드는 꼴을 봐야 속 시원하게 느끼는 심보.

에휴- 그래 이렇게라도 최고로 행복해졌으면 된거지 모. 아무리 말린들 끝을 봐야 멈출테니 말이다. 그래그래, 누구든 한명이 옴팡지게 행복하면 된거다.(씁쓸해지는 결론. 그런데 나도 한번쯤은 거래하고 싶어지는 달콤한 제도라 제발 내 앞에는 이 직원이 눈에 안 띄면 좋겠다)



📖내가 뭘 사과해야 하는가?_ 그 아가씨를 위해서가 아니라, 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직접적인 사유가 있지 않는 것 같은데, 사과를 해야하는 이유. 사과를 강요받는 것에 대한 마음을 생각해본다. 내가 그 아가씨의 입장이었다면 똑같이 강요했을까 부터 시작하여 이 간절함을 들어주어야하는 의무가 있는 것에 대한 생각들까지. 각자의 입장에서의 미안한 마음을 놓아보고 무엇이 가장 크고 깊은 잘못을 했는지를 따지우려 하지만 결국 그 줄세우기는 치워버리게된다. 그 여자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거 같았던 경험을 갖고있으니 나 만큼의 후회도 덜고 살길 바라는 이미 해본자의 마음을 앞에두고 사과라는걸 하는 모습을 만난다. 그렇게 한다고 돈이 들지도 않고, 내가 낯부끄러운 짓을 한 것도 아니니 일단은 여기 누워있는 그가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만으로 사과라는걸 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_ 궁금하다. 그동안 번 돈을 아내를 위해 바친다 해서 이제 와 아내가 기뻐할까? 아내가 날 용서해줄까?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말을 하는 사람치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무렇지 않다 여기는 사람은 이러한 말을 뱉을 생각조차 안 하니까. 미안한데, 미안함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해소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방어 식으로 무딘척 보이고싶어하는 허세가 이런게 아닐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렇지 않고 싶은데 후회만 가득하고, 이제와 사과한들 소용이 없는건 알지만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마냥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마음. 앞서 봤던 단편 '내가 뭘 사과해야 하는가?'의 아가씨같은 마음이 차고 넘쳐 흐른 후가 이 남자의 상태가 아닐지.

아무렇지 않고 싶은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사람은 없더라. 내가 봐온 몇 안되는 이들은 다 이러했다.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 말로 다 포현하지 못할 감정이지만 말 밖에 못하는 그 또한 미안한 마음.

역시나 훌훌 읽히는데 다 읽고 나면 머리가 멍 해진다. 나 또한 이러한 생각을 한 적이 있던가? 나는 이 상황이라면 주인공과 똑같은 행동을 할까? 미안하지만 미안하지 않다는게 내 진심이 맞는걸까? 분위기에 휩쓸려 사과를 한다거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니까 내 진심과는 다르게 세상에서 모나지 않게 살려고 선택을 했던적은 없던가를 되묻게된다. 그러다 욱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서 T컴퍼니가 필터처럼 눈 앞에 씌워진다. 에라이 하는 마음에 행복 상한제가 있다면 나는 어떤 오더를 넣을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그렇다고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여기는데 내가 뭘 사과해야만 했던 것인지. 그간 읽은 짤막한 장면들을 내 삶에 연결해본다. 나라는 인간에게 질문을하고, 너라는 존재에 대해 나와의 관계성을 찾아가며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가설을 남기는 중이다. 김동식표 소설의 5번째 이야기 역시 계속된 질문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약을 박아두는데 내 생엔 이러한 사건이 없고, 이러한 결정이 없으리라는 보장을 못하겠다. 그래서 짧은 단편이 끝나면 혼자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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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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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건설 노동자들은 '노가다'라는 비하적인 표현으로 지칭되며 꼭 필요하지만 나서서 하지 않으려는 직군으로 분류가 되었다.

국어사전에서 '노가다'라는 명사를 검색해보면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며, 막일, 막일꾼으로 불리우는 일본어이다. 노동자라는 명확한 명사가 있음에도 그 뜻을 알면서도 하대하던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건설 노동자로서의 전문성과 노하우는 무시되었다. 사회를 꾸려나가는 역할이지만 그 능력에 대한 가치는 외면하고있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같은 직군에 속한 사람들끼리라도 뭉쳐야하는데, 임금 체불, 단가 후려치기, 하청에서 하청으로 이어지는 임금 착취는 집밖에서도 대우 받지 못하는 이들을 집 안에서도 외면하는 꼴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 환경 속 2007년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꾸려진다.

기본 8시간 근무 외의 추가 작업 시간에는 수당을 지급받게 되고, 이해관계 속에 얽혀있던 그들의 갑질은 예전보다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장시간의 근로로 인해 피로누적에 대한 우려도 있었는데 정해진 휴식 시간과 함께 식사시간, 폭염기간의 오침시간 확대에 대한 것들까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나아지려 애쓰는걸 볼 수 있었다. 서로가 알아줘야 밖에 나가도 대우받는다는 말, 그 말이 어떤건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기도 했다.

노조 활동. 이는 목소리를 높이고, 의견을 피력하고 개선점을 도모하는 과정. 공중에 흩어지던 말들을 모아 대변하는 행위. 그게 노조였다. 하지만 마음같지 않은 것들도 수반된다. 왜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왜 가족들의 신변에 걱정을 쏟아야하는지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나는 귀동냥, 눈동냥으로 얻은게 많아 그런지 노조활동보다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여건상 뛰어들게 된 노동현장. 아이를 키우며 먹고 살아야했음에도 집에서 밥이나하지, 술집 도우미나 하지 라는 말들에 마음이 까이고 서러움이 딱지처럼 앉았을 시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내가 당신들보다 잘하리라'라는 독한 마음이 얼마나 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를 알게 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 당장의 병원비보다 애드 통닭 시켜주고 맛있는거 사주는 것에 더 큰 행복을 느낀 이들의 애틋함이 철근 못지 않게 단단하게 엮여있음을 느낀다.


가끔, 이런 이야기도 한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추울 때 추운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한다고. 그래서 그러한 직종은 죄다 외국인이 그 역할을 대변하기도 했다. 날씨와는 상관 없이 하루에 정해진 물량을 다 채워야했고, 그렇지 못하면 임금을 보장받지도 못했다. 욕설과 체불은 어찌 그리 세트처럼 나란히 오는 가 싶은 걸 보면 하대하는 사람들의 성향은 다들 하나같이 동등함이 아니라 우월함에 희열을 느끼는 근로환경을 조성했다.

싸움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여건. 왜? 돈을 안 주니까! 정당한 요구인데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흐름은 노동조합으로 목소리를 같이 키우는 방식이었다. 일용직, 일 한 만큼 받아가는 사람들. 그런데 당연한 수순을 어그러뜨리니 결국 이러한 꼴을 보이게된다.

어떤 이의 가장, 누군가의 아버지, 또 세상 귀한 자식, 애틋한 가족인데 이 현장에만 발을 딛으면 모든게 의미를 잃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노동에는 마침표가 없다. 세상이 굴러가고 사회가 유지되려면 노동이 필요하고, 타인의 수고스러움이 필요로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정적이며 쉬쉬하는 세상으로 보여지길 원한다. 노동의 가치는 알지만 빛을 보게 하면 안되는 듯 한 쉬쉬하는 세태. 이른바 블루컬러가 존중받는 사회까지 바라지 않는다. 블루컬러의 노동자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식하고 알아 주는 것만이라도 사회가 당연시 여겨주길 바라며 이 책의 근로자들에게 힘을 싣어본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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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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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즈음 되면 활동 반경이 정해져있고, 만나는 사람도 손에 꼽히며, 도전보다는 좀 더 나은 안전함과 편안함을 추구하게된다. 그래서 빨리 집에 가고 싶고, 내 몸 뉘일 익숙한 곳을 찾게되고, 마음 덜 쓰고 지낼 곳에서 머리쓰는 일을 줄이게된다. 그게 내 집이고, 부모와 함께 있는 공간이다. 어릴적부터 나를 키워 온 사람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들. 입 바른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해 줄 구성원들 속에서 머무는 순간. 타인의 세치 혀에 눌리고, 시선에 찔리며 아파 했던 순간을 보상받는 곳. 거기에다가 덧붙여지는 재정상태와 사회적 치안에 대한 안심까지.

오죽하면 결혼 비용이 우주여행보다 비싸다할까. 출산하기엔 하고 싶은 일들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으며 그 틈에서 사회생활을 병행하며 내집마련한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하면 두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명언을 남긴 세대들. 다들 으레 그 나이 즈음에 한다는 것들을 무던히 해나간 이들은 '평범함'이 아니라 '비범함'으로 보여지기도한다.


구희 작가는 독립을 꿈꾸지만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임을 깨닫는다. 무심한 듯 내 울타리가 되어주고 단단하고 묵직한 천장이 되어 세상 풍파를 아무렇지 않게 막아주는 이들. 당연할 수 없는 것인데 당연한 것이라 여기도록 버텨주는 부모와 가족이라는 집단속에서 마음이 들뜨거나 갈피를 못 잡을 때마다 이들이 있기에 캥거루 족이라 일컫지만 이 폭닥함 품을 더욱 지키고싶어한다.

구희 작가와 달리 나는 20대 중반 부모의 울타리를 박차고 내 세상을 새로 꾸렸다. 독립이 아니라 새로운 가정을 꾸린거니 독립과 함께 호적 갈아타기(?)가 되어버렸지. 그러하니 구희 작가가 말하는 30대 캥거루족과는 상반된 30대 가정이 있는 아줌마다. 그래서 내 삶과 비교하며 구희작가가 걱정하는 세상이 자신에게 향해있는 시선들에 대한 우려를 조금은 알고있다. 더군다나 구희 작가 직업에 대한 특성까지. 어느하나 같을 수 없는 나(=독자)와 구희 작가의 환경. 그래서 저자가 마음쓰는 구석들을 더 편견없이 보려했다. 긴 글 보단 짤막한 대화와 그림을 통해 무겁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안일하게 보지 않으려했다.

저자 : 캥거루족, 웹툰작가, 서른이 넘음. 부모와 함께 서울 거주. 독립할 생각 없음

독자 : 독립함, 8to5 주5일 근무 직장인, 서른이 넘음. 결혼 후 남편과 지방 거주. 독립한 상태이며 2세 계획 없음

어떻게 이렇게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을까.

저자는 네버랜드 속의 영원을 바라지만 자신이 나이 드는 만큼 부모의 인생 속도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에 걱정이 커진다. 인생 퀘스트는 어느정도 헤쳐나갔다 싶은데 성인 이후 직장인이 된 다음, 독립과 결혼, 출산에서 절고 있는건 아닌지. 주변 친구들과 다른 노선으로 가는게 괜찮은지 우려하고 조바심에 머리가 복잡해짐을 표현했다.


여기에는 독립은 꼭 해야하는 것인지, 결혼은 필수인지,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과정의 일부인지를 고민하지만 여기에는 확고한 해답이나 선택에 대한 굳은 확신은 없다. 그저 구희 작가 나름의 선택이었고 딱 그만큼 느끼는 행복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엄마와 아빠가 꾸린 세상에서 불안함을 덜고 사는 것. 답답하기도하고 믿었던 사람이 툭툭 뱉어내는 잔소리에 마음이 까이기도한다.


결국 이러나 저러나 혼자 살 순 없고, 어떻게든 닿아있음을 인정한다. 어찌 살지,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에 정을 줄지를 계속 고민하고 자기 물음을 이어가는 고민 가득한 어른이의 만화이니 나만 이러고 있지 않음에 위안을 삼고싶은 어른이가 있다면 이 책으로 다같이 가쁜숨 한번 고르며 어른이가 어른으로 되는 찰나에 응원을 받길 바라게된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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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녹음 중 - 노래와 웃음이 함께하는 티키타카 부부의 일상
인생 녹음 중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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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에세이를 만났다. 아마 작년 여름 즈음이었지? 남편이 보여준 영상이 하나 있었다. 남편이 말하길 쌀알같은 부부인데 하는짓(!)이 꼭 우리같다는 말과 함께 귀엽고 웃긴게 꼭 나같다는 말을 하며 보여준 것들. 나는 남편에게만 한정적인 또라이기질(?)이라 할 만큼 엉뚱하고 기발하고 괴짜같은 면이 존재했기에 어떤 말을 하는지 대충 감이 오더라. 차 안에서 하는 이야기와 집에서 식탁에 마주앉아 하는 이야기들이 으레 하고있는 부부의 일상적인 이야기와 함께 무해하고 다정한 면들이 많이 보여서 좋았다. TV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SNS 쇼츠에 보면 이혼을 하니 마니로 안 좋은 영상들만 가득한 세상인데 이렇게 달달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면이 보이니 좋더라구. 나는 이런 잔잔한 바이브가 좋은 사람인걸 한번 더 느끼며 이 부부의 에세이가 나온다 하길래 알라딘으로 사전 예약까지하며 받아서 단숨에 후루룩 읽어버렸다.

아내는 경영학, 남편은 디자인계열. 이것부터가 우리 부부랑 많이 닮아있더라. 어째 전공까지 똑같은가 싶으면서도 11년차인 우리 부부 못지 않게 7년차이며 아직 둘이 살고있는 티키타카 부부. 일상의 대화와 차 안에서 하는 이야기와 노래 따라 부르기. 우리만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이 부부들도 그리 살고 있었어. 우리만 특이한게 아니라는 생각을하면서 영상으로 봐 왔던 것들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에세이도 읽어갔다.

일명 '결혼 장려 영상'이라는 유튜브 채널 답게 단짠단짠한 현실에서도 하루치 웃음만큼은 꼭 붙들어온 부부만의 행복 실마리의 모음. 여기에는 가슴 찡한 프러포즈와 함께 결혼식 준비과정, 사는게 만만치 않다만은 그럼에도 의지하며 살아내는 순간들, 서로 다르게 살아왔던 이들이 함께 맞추어 사는 방법, 그리고 함께 하는 것에 기쁨을 찾는 방식까지. 총 4장의 이야기들은 영상에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들까지 틈틈이 채워져있어 구독자들 뿐만 아니라 이제 막 관심이 가는 분들까지 쉽게 후루룩 읽어 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드라마 속 아침처럼_ 시답잖은 이야기도 있지만 가끔은 이 시간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가 오갈 때도 많다.

미국 드라마 속 아침 풍경이 부러워 시작된 그들의 모닝 티타임. 내가 일찍 출근하다보니 매일은 아니고, 주말 아침에 이뤄지는 홈카페로 비슷하게 이야기의 시작을 틔워본다. 주방 블루투스에 음악을 틀어두고 그날그날 다른 핸드드립 커피에 빵순이 와이프가 좋아하는 디저트들을 꺼내놓고 여유를 부려보는 시간. 8인용 긴 식탁에 굳이굳이 둘이 들러붙어서 커피잔 보고 멍때리기도하고 베란다에서 스며드는 햇살이야기로 시작하는 날씨이야기까지. 부부라고 매일매일 미주알고주알 이야길 할 순 없다. 더군다나 맞벌이 부부라면 더 그러하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메신저로 해도 되겠지만 그러한 방식보다 얼굴보고, 눈빛 읽어가며 하는 이야기가 좋다. 목소리로 전해지는 내용에 그가 바라는게 무엇인지 읽어낼 눈빛과 표정까지 얻어가는 과정. 연애를 그렇게 오래하고, 결혼생활을 제법 길게 해왔지만 내가 당신이되고, 당신이 내가 될 순 없으니까. 매번 그렇게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상대의 진심을 찾아가는 순간을 마련해보는거지.



📖건강한 마음은 집밥에서부터_ 우와! 맛있겠다! 잠깐, 이건 사진으로도 남겨야겠어.

집밥을 강요한 부모도 없었고, 집밥을 중요시여기는 남편도 아니었다. 나는 근무시간 이외에 출퇴근 시간도 남편보다 곱절로 긴 상황이라 집밥보다는 고생 덜 하게 배달이나 나가서 먹는걸 말하는 남편이다. 헌데 내가 자처하는 집밥의 삶이다. 한 끼라도 제대로 먹고싶고, 행복하게 먹고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아침은 출근하는 차 안에서 쉐이크나 과일로, 점심은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그러니 저녁만큼 소중한 한 끼가 없다. 오랜시간 식당일을 해오신 친정엄마의 솜씨를 완벽하게 닮지는 못했지만, 어깨넘어로 배운 것 + 맞벌이 부부의 딸로 살면서 일찍 주방일에 뛰어든 것. 그리고 이쁘게 차려먹고싶고, 맛있는걸 갈망하는 먹순이라 SNS를 통해 습득하게된 잔지식이 오늘날 집밥 만렙의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가리는 것 없고, 까탈도 없는 사람이라 뭘 해주면 다 잘 먹는 사람. 그래서 남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몇년동안 집밥 사진으로 빼곡하게 채워져있다. 귀찮아서 매일매일 업로드 못하는게 문제이긴 하다. 아무리 맛있게 한들 잘한다고 칭찬과 응원을 해주는 사람의 말 한마디와 리액션, 싹싹 긁어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없다면 주방일도 빨리 흥미를 잃었을지 모른다. 역시나 한 사람만 신난다고 행복한게 아닌가봐. 즐겁헤 해주고, 행복하게 받아들여주는 이른바 쿵짝이 잘 맞아야 한다는 걸 나의 경우도, 여기 티키타카 부부에게도 해당이 되니 이렇게 밥을 짓게되나보다.


📖저희 부부도 싸우다마다요_ 다시 연결하고 화합하려는 모든 행위는 선한 쪽이다. 우리는 산과 악 사이 중간 어디쯤 불확실한 곳에서 선해지고자 애를 쓰는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모난 곳을 부드럽게 다듬어 잘 덮어주어야 한다.

타고난 성향과 기질이 있다. 거기에 윤활제 같은 융통성도 포함이다. 싸워서 이겨먹을 생각이 없는 사람과 어떻게는 내 화를 표출해서 해소하려는 사람의 대면. 뭐가 이길까? 한껏 위협적인 상태로 몸을 불려 이른바 래서판다가 화내는 몸짓을 하더라도 상대가 한없이 귀여워하거나 화를 돋울 만큼 맞받아치는 능력을 빗겨가버리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연애때도 그랬고, 결혼생활에서도 큰소리가 안 난다. 잘못을 빨리 인정하는 편. 그리고 싸워봤자 마음만 상하니 해결책을 먼저 모색하는 방식. 남편 말이 맞더라. 싸워서 뭐할거냐고. 그래봤자 마음만 상하는데. 휘어지기 보다 부러지는 편을 선택해온 나같은 사람이 무조건 옳지 않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 부러지기보단 살짝은 느슨해지며 그 찰나동안 다른 방식으로 나와 상대 모두 다치는 일 없이 유순하게 해결해가는 방식을 가르쳐준사람. 그러고보면 똑같은 성향이라 생각했는데 은근 다른 면이 많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_ 남편에게는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다.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매일 아침, 관심을 듬뿍 담은 눈으로 상대를 관찰하면서 시작된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와 칭찬을 식물에 물 주듯 흘려 넣는다. 내가 뾰족하게 가시 돋친 말을 할 때에도 한결같다. 억센 채소를 약불에 푹 삶고 조리듯 나를 안고 달랜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내 마음도 찜기 속 숨이 팍 죽은 양배추처럼 야들야들하고 투명해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대문자F라 했지만 정작 나는 대문자T인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후하지 못하며 나를 갉아먹어 사는 사람. 한결같이 반듯해야하는 삶을 살다보니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 속이 곪아있다. 헌데 배우자는 나와 반대의 성향이라는 점. 그 면들 덕에 내가 지치지 않고 살아감을 느낀다. 칭찬에 인색한 나에게 한 없이 예쁘다 해주고 잘한다는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도전에 망설일 때 일단 해보라며 뒤에서 지켜봐주는 캐릭터. 자전거도 이 사람에게 처음 배웠던 것 처럼. 뒤에서 잡아 줄 테니 일단 가보라는 말로 돌아갈 곳을 마련해주는 존재.

저자가 말한 한결같은 사랑에 집중적 노출 효과. 이런게 아닐까. 어린시절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의 허기. 성장과정에서 얻어내지 못했던 자존감. 그걸 이 나이에 얻어내다보니 이러한 감정을 겪게 해주는 사람에게 더 잘 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된다. 역시나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상대를 더욱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며, 그 사람 옆에 있어도 내가 부끄럽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쓰게 만든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조언_ 누구의 조언도 듣지 마세요.

다 같을 순 없고, 다 내맘 같지 않다는 걸 많이 깨우치던 결혼준비과정. 나는 또래에 비해 조금 이른 결혼이었다. 20대 중반에 결혼했음에도 이른 편이었다. 대학 동기들 중에서도 두번째였고, 그 즈음 회사 여직원 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놈이 가장 먼저 청첩장을 돌리는 걸로 이목을 얻었다. 그러니 세상 떠들석하고 화려하고 특별하게 하고팠으며 어떤 이들에게 조언을 받더라도 또래가 아닌 적어도 10년 이상 차이나는 직장인 선임이나 SNS에서 밖에 얻을 수 없었다. 왜 하냐는 말부터, 조금이라도 늦게 해라,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른다, 다이아 프로포즈는 받았냐, 명품 가방은 당연히 받고 가는거 맞지? 집은 해온대? 라는 말로 사람의 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아니라 부의 척도를 물어보는 사람들. 그시절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명품 가방보다는 나랑 같이 가주는 공연이나 책방 데이트로 돈 써주는게 더 좋았고, 한쪽이 오롯이 감당하는 집보다는 각자 번 돈 모아서 대출 없이 작은 집에서부터 내 명의로 시작하는게 더 뿌듯한 사람이었다. 부모에게 손 벌리기 보다 떳떳하게 내가 번 걸로 기댈 구석 안 만드는게 후련했던 사람. 스드메의 화려함? 우리부부는 첫 만남이 내 첫 직장이었던 웨딩홀 직원과 웨딩스튜디오 포토그래퍼의 만남이었기에 그 허울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간단하지만 딱 해야 할 것만을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고보니 재력 줄재기나 기싸움 모두 그들의 입맛에 맞춰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역할 분배부터 경제권 쥐기도 그러했다. 둘이 사는데 니꺼 내꺼 하다보면 싸움나기 딱 좋고, 엉덩이 가벼운 사람이 먼저 하는게 속편한 내 성향과 받았으면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의 빠릿한 눈치로 한 사람이 음식하면 정돈은 상대가 해주었고, 빨래 개어 차곡차곡 쌓아두면 어느새 다가와 아코디언처럼 주르르 쌓아 턱으로 받치고 한달음에 옮겨주는 쿵짝맞는 삶의 바통넘기기. 이러한 방식은 아무도 조언해주지 않았다.

그래, 지들이 나랑 살거 아닌데 저 인간들 말 들어봤자 뭐하겠어. 나는 나대로 사는거지!


📖잠자리에 들며_ 함께 한 오늘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함꼐 나눈 웃음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내일은 얼마나 더 큰 기쁨으로 가득찬 하루가 될지를 이야기한다.

휴대폰 없이 잠들기로 했던 이 부부는 잠들기까지 그 공허한시간을 제법 다양한 방법으로 채워갔다. 남편이 말도안되는 구연동화를 해 주었던 파트가 있는데 티키타카 부부의 상상력으로 뻗어간 고등어이야기가 있었다면, 우리집 양반은 휴대폰 불빛을 천장으로 쏘아 손가락으로 그림자 놀이를 해주는 날들이 있었다.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꿈찔꿈찔 놀라며 깨는날이 이어지던 어떤 날엔 자기전에 손그림자 놀이로 비둘기며 강아지며 토끼를 만들어 꿈속에서 동물들이랑 놀고있으라며 우리 엄마아빠도 안 해주던 잠자리 동물극을 꾸려주기도 했다.

여기저기 알게 모르게 비공식적인 잠데르센 양성소가 있는건가 싶은 남편들의 극한 N잡 후기를 보면 남편들은 아내랑 사는게 아니라 다 큰 딸 하나를 장모에게 인계받아 키우고 있는건 아닌지 비질비질 웃음을 흘리게된다.

아내와 남편이 직접 쓴 40여 편의 일상 기록은 언제든 꺼내보려고 진즉 적어두었던 일기처럼 보이기도하고, 아직 업로드 되지 않은 영상꾸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잘 적혀있다. 잘 살고있고, 많이 행복하다며 미사여구를 줄줄이 꿰어가며 적어둔 글이 아니라 적당히 담백하고 적당히 단맛이 도는 사람 사는 이야기라 어느 파트를 펼쳐 읽더라도 자극적이지 않아 좋았다.

거기다가 단순하지만 귀엽고, 담백하지만 오래 여운이 감도는 그림체는 영원히 얼굴 공개 없이(?) 이렇게 환상에 젖게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판타지적 요소가 곁들여져있기도하다. 아내덕후로 영상 계정을 담아두던 저자인데, 그러고보면 내 블로그는 일정부분 남편덕후로서의 기질이 다분한 사진과 글들이 있는거 같아 가수 덕질 이전에 남편덕질력이 충만한 본투비 덕후의 삶 처럼 여겨지기도한다.

우리 부부는 5년의 연애 + 결혼 11년차의 부부다. 결혼을 한 후 이듬해 부터 블로그를 통해 야금야금 써온 나의 일주일치 일상 이야기. 그래봐야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평범한 직장인 나부랭이의 일과인데 틈틈이 섞여있는 일상이야기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읽어봐주시고(매주 화요일 오전 8시 자동 업로드. 웃긴건 업로드 되자마자 조회수가 쭉쭉 올라가는게 신기한 구경거리라는 점) 아직도 신혼처럼 살고, 사는게 행복해보인다는 이야길 많이 들어왔다. 연애 할 때는 닮았다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어왔고(둘다 얼굴이 순박한 곰상이라 했다) 둘이 살면 싸울 일도 없어 보인다는 무서운 소리도 들었다. 싸울일이 왜 없겠는가. 헌데 한 사람이 아르르 거리며 성난 시츄처럼 짖어대도(=나) 다른 한 사람이 만물을 꿰뚫어보듯 선한 보살의 표정을 지으면 도무지 전투력이 샘솟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의 톤만 들어도 단박에 알아차리고 모르게 하고싶어도 숨길 능력을 상실해버린 이 사람과의 사는 재미. 나는 결혼 잘 한거 같은데, 당신은 망해서 어쩌냐고. 그러면 남편은 거기에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한다. 장모님이 반품은 받아주는데 환불은 안된다고 했으니까 어쩌겠어. 내가 고쳐써야지 라는 말로 나랑 사는 것에 책임감(!)을 갖고 데리고 살기로 했다며 셀프 토닥토닥 거리는 어이없고 웃음이 새어나오는 사람과의 관계.

30년 가까이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만나 결혼해 이해 못할 것들 투성이 이지만 그럼에도 맞춰 사는 재미. 싫다고만 하기보다 덕분에 새롭게 해볼 기회가 많아 진 걸 복이라 여기며 사는 약간은 무던하고 또 조금은 긍정적인 사람의 에너지.

우리는 녹음이라는 좋은 아카이브 방식을 놓치긴 했지만 일상 이야기에 끼워보는 사진과 함께, 내가 주르르 적어두는 글들로 우리만의 애틋한 이야기를 촘촘하게 채워보고 가득히 담아놓는걸로 그렇게 쭈욱 살고싶어진다.

우리도 우리 나름의 인생 기록을 하고있었던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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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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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에겐 먼 이야기라 생각하며 살았으나 그건 오만한 삶의 태도였다. 찰나는 언제든 존재했고, 멀게만 여겨진 순간들마저 발치에 다다를 때가 있음을 느끼는 시기다. 만물이 소생한다며 꽃같은 3월에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읽었다. 그리고 그 여운을 길게 적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이 봄이 채 가기도 전에 '죽은 다음'을 골랐다. 이건 앞서 읽었던 이야기에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고, 내가 겪어왔던 몇해 전 봄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기도했다.

겨울에서 봄. 그렇게 나를 에워싼 몇몇의 가족들과 작별을 했다. 상주가 되기도했고, 유가족이 되기도했었다. 그래도 몇번 해본 놈이라고 처음과 다르게 두번째부터는 장례식장에서 돌아가는 일들이 눈에 보였다. 골라야 할 것, 먼저 계산해야 할 것, 시간에 따라 해야하는 순서, 그리고 어떻게 보내는 것까지도. 경황없이 여기저기 불려가며 사인하고 카드긁고, 이체하던 내가 눈에 비춰보이면서, 똑같은 표정을 한 사촌동생을 붙들고 같이 가서 선택했고, 집에서 챙겨간 손수건을 쥐어주고, 밥숟가락을 목구멍에 밀어 넣도록 감시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어질 다음 순서, 걸릴 시간을 한번이지만 아주 또렷하게 겪고나니 고단함이 가득 베인 상주의 얼굴이 애틋해져 내 외투를 둘둘 감아 친척들 안 볼때 구석에 뉘여서 눈을 붙이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더라.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고, 겪어낸 사람만이 아는 '죽은 다음'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그게 여기에 담겨있다.

목차에는 장례를 치르는 절차를 뼈대로 삼아 그 상황마다 해야하는 일들, 그 순간마다 도와주시는 장례 담당자들의 인터뷰와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생소한 장례언어와 과정을 또렷하게 담아내였다. 상을 치뤄본 사람들에겐 그 과정을 복기하는 기회를 주었고, 아직 겪어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절차가 있음을 알려주는 가이드북과도 같은 책이다. 주제분류가 사회과학, 사회문제, 사회학으로 구분지어져있지만 직업탐구의 영역이기도하며 장례라는 것에 대한 르포라 할 수도 있겠다. 나라가 지정해 둔 정규 교육과정을 이탈없이 다 이수했던 사람임에도 당장에 닥쳐온 이 장례과정은 생소했고 두려웠다. 모든 걸 내가 결정해야하는데 아무도 가르쳐 준 이가 없었다. 금기시 되어지는 사항도 아닌데 쉬쉬하기는 커녕 입밖으로 꺼내어주는 세상이 아니었다. 결국 맞딱들여야 알게되는 현실이다. 이 또한 장례 노동에 관한 근로자들의 현장이며, 살면서 반드시 겪어내게될 순간이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글이다.

처음 접하는 이들은 많이 낯선 내용 일 것이며, 생소한 환경이다. 시신 복원이라는 것도, 장례지도사의 성별을 따지우는 분위기도,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먼저 선뜻 이야기를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알아야하는 근로 현장이며 진행 절차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서 근로자의 날을 빌어 이렇게 장례 노동에 관한 이야기와 내 생각들을 써내려본다.


사람 한명이 생을 다했는데 그를 둘러싼 많은 이들이 울기도하고 애닳아하기도하지만 분노하기도하고, 고인을 두고 싸우기도한다. 이 과정은 마음 쓰임의 극단적인 지점을 자극하기도하며, 모든 절차는 돈으로 치르게되다보니 타인의 손을 빌려 이 수고로움을 정리하며 고인의 끝을 마무리짓는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과 자금의 문제이기도했다. 그래서 고인은 말이 없고, 남은 사람만 곱절로 힘든 과정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자신의 생의 끝을 본 후 수습할 '남은 자'들에 대한 걱정이다. 당사자는 소위 죽으면 그뿐인데,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한 걱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겪어본 자들이 알지 않겠는가. 나 또한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로 살아왔으니 더욱 그러하겠다. 이렇게 살면서 터득한 학습 효과는 무섭게 와닿는다.

'잘' 죽는 것. 이왕이면 '잘'. 죽는 것 마저도 '잘'하고픈 욕심을 부려보는 것. 그래서 '잘'마치고 '잘'가라는 인사를 받고픈 마음이 가장 크겠지.



📖이거 괜찮은 직업이다_ 나도 죽으면 금방은 슬퍼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다시 웃고 일상을 살아가겠지요.

서운해 할 이유가 아니다. 당연한 거다. 그게 삼 사람의 일이고 생이 남아있는 자들의 당연한 몫의 이치이다. 알면서도 서글퍼질 수도 있겠다만 마냥 서운해하고 마냥 애닳아한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 이왕지사 서로 웃으며 안녕하고 웃으며 떠올리길 바라게된다. 간소한 장례를 원하고, 마냥 슬퍼만 하지 않길 바라는 이유는 남겨진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라는 점이 공통된 마음이었다.

좋은 기억만, 행복했던 순간만 남겨놓아도 추억할 거리들은 차고 넘칠테니, 웃으며 애틋한 존재로 남고싶은 마음이 이해가된다.


📖'없음'과 '있었음' 사이에 채울 슬픔조차 알지 못했던 것은 나의 개인적인 무지가 아니었다. 어느 책에서 말한 것처럼 "죽음은 우리의 교과 과정에 빠져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배운 것이 없다. 장례는 더욱더.

화장기사인 이해루님의 인터뷰를 통해 장례란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기보단 고인의 시신을 처리하는 기간이란 말에 공감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지의 순간에서 나를 다스릴 겨를도 없이 고인을 보내는 과정은 일시정지가 되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위 라인작업물처럼 느껴지기도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전적으로 믿을 수 밖에 없고, 내 모자란 손 대신 당신들의 능숙한 손을 빌어 준비 할 수 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준다.

어느 집단이든 결국 집구석 싸움같더라. 연령을 구분지으며 일컫는 나이든 능숙한 장례인? 어리고 선한, 젋은 장례인?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힘 좋은 남자 장례인? 보기드문 여자 화장기사? 성별을 바라는 것 또한 아니다. 그들에게 직장이고, 나에게는 내 일을 대신 맡아 할 장례인, 그러니 그러한 담당자 자체일 뿐이다.

어느 시점부터, 누가 무얼 바라고 이러한 선긋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멀찍이 3자의 입장에서 보았고, 맞딱들여 겪어봤던 사람으로서 그냥 내가 알지 못하고 갖지 못하는 능력을 대신해줄 전문가만 연결되길 바라게된다.


나도 나이를 먹은건지 이제는 결혼식장 보다 장례식장을 더 자주 가고있음을 느낀다. 몇번 가보니 주변을 쓰윽 흝어본 후 대강의 그림이 나온다. 가족관계, 자손의 여부, 재력의 정도, 사회생활로 엮여진 이해관계의 범위까지. 헌데 이제는 내 삶의 끄트머리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부양가족은 있지만, 내 장례를 치뤄 줄 자식은 없다. 나이들어 효도받자고 애를 낳을 순 없다. 어찌어지 하다보면 나는 연고 없는 자의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하는 단락이기도했다. 그래서 이 파트가 흘려 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우스개소리로 가는데엔 순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득해서 보이지 않다가도 언젠가 발치에 닿아있을 죽음과 내 마지막을 수습할 누군가에 대한 걱정을 하기 마련이다. 이 부분에서는 법륭상의 연고자의 범위와 보건복지부 행정 처리 지침의 장사 업무에 관한 사항을 자세하게 기록하고있다. 그리고 더더욱 생소하게 느껴지는 공영장례에 대한 복지 개념도 정리를 해 두었다. 중 후반부에 적어둔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애도할 권리'로 이어진다는 말에 사후 지켜져야하는 존엄을 머릿속에 정리해본다.

장례지도사, 화장기사, 시신 복원사, 수의 제작자. 장례업 노동자가 말하는 임종에서 빈소까지. 한달음에 끝이 나는 정리과정. 인간의 마지막이라 여겼던 곳에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장례 노동자들의 작업환경과 그들의 노고까지.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절대 사라질 수 없고, 홀대 받아서는 안 되는 직업군. 운명, 기술, 마음, 제도, 문화를 횡단하며 모든 것들의 죽음에 애도를 덧붙여 일하는 노동자들이 담아두고 살았던 이야기들로 낯선 상복을 입고 앉아있던 몇년 전 나를 떠올리게 했다.

많은 장례식장도 가 봤고, 사흘동안 낯선 장례식장 바닥에서 셀수 없을 정도로 절을 하고 공허해하던 상주의 삶을 살아봤던 이가 읽어 낸 책 한권. 생각 이상으로 더욱 와닿고 감사하며 고생스러웠을 손길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들이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직업군을 소개하고 근로 환경에 대해 토론하면서 이 책이 중요한 교육 자료로 삼아주면 좋겠다. 알지못했던 직업세계에 대한 영역 확장의 기회를 마련해주면 어떨지. 그리고 자라는 청소년들은 이 직업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어떠한 작업을 하는 근로자인지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통해 직업의 다양성과 결코 내 삶과 분리 시킬 수 없는 사람들임을 가르쳐주면서 죽음과 애도의 방식, 고인을 배웅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존재로서의 대우, 혈연관계를 벗어난 죽음에 대한 태도와 고인을 애도하는 범위 확장성까지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개선점을 찾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교사인 친구들에게 이 책을 슬쩍 권해보고싶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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