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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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에겐 먼 이야기라 생각하며 살았으나 그건 오만한 삶의 태도였다. 찰나는 언제든 존재했고, 멀게만 여겨진 순간들마저 발치에 다다를 때가 있음을 느끼는 시기다. 만물이 소생한다며 꽃같은 3월에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읽었다. 그리고 그 여운을 길게 적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이 봄이 채 가기도 전에 '죽은 다음'을 골랐다. 이건 앞서 읽었던 이야기에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고, 내가 겪어왔던 몇해 전 봄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기도했다.

겨울에서 봄. 그렇게 나를 에워싼 몇몇의 가족들과 작별을 했다. 상주가 되기도했고, 유가족이 되기도했었다. 그래도 몇번 해본 놈이라고 처음과 다르게 두번째부터는 장례식장에서 돌아가는 일들이 눈에 보였다. 골라야 할 것, 먼저 계산해야 할 것, 시간에 따라 해야하는 순서, 그리고 어떻게 보내는 것까지도. 경황없이 여기저기 불려가며 사인하고 카드긁고, 이체하던 내가 눈에 비춰보이면서, 똑같은 표정을 한 사촌동생을 붙들고 같이 가서 선택했고, 집에서 챙겨간 손수건을 쥐어주고, 밥숟가락을 목구멍에 밀어 넣도록 감시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어질 다음 순서, 걸릴 시간을 한번이지만 아주 또렷하게 겪고나니 고단함이 가득 베인 상주의 얼굴이 애틋해져 내 외투를 둘둘 감아 친척들 안 볼때 구석에 뉘여서 눈을 붙이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더라.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고, 겪어낸 사람만이 아는 '죽은 다음'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그게 여기에 담겨있다.

목차에는 장례를 치르는 절차를 뼈대로 삼아 그 상황마다 해야하는 일들, 그 순간마다 도와주시는 장례 담당자들의 인터뷰와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생소한 장례언어와 과정을 또렷하게 담아내였다. 상을 치뤄본 사람들에겐 그 과정을 복기하는 기회를 주었고, 아직 겪어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절차가 있음을 알려주는 가이드북과도 같은 책이다. 주제분류가 사회과학, 사회문제, 사회학으로 구분지어져있지만 직업탐구의 영역이기도하며 장례라는 것에 대한 르포라 할 수도 있겠다. 나라가 지정해 둔 정규 교육과정을 이탈없이 다 이수했던 사람임에도 당장에 닥쳐온 이 장례과정은 생소했고 두려웠다. 모든 걸 내가 결정해야하는데 아무도 가르쳐 준 이가 없었다. 금기시 되어지는 사항도 아닌데 쉬쉬하기는 커녕 입밖으로 꺼내어주는 세상이 아니었다. 결국 맞딱들여야 알게되는 현실이다. 이 또한 장례 노동에 관한 근로자들의 현장이며, 살면서 반드시 겪어내게될 순간이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글이다.

처음 접하는 이들은 많이 낯선 내용 일 것이며, 생소한 환경이다. 시신 복원이라는 것도, 장례지도사의 성별을 따지우는 분위기도,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먼저 선뜻 이야기를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알아야하는 근로 현장이며 진행 절차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서 근로자의 날을 빌어 이렇게 장례 노동에 관한 이야기와 내 생각들을 써내려본다.


사람 한명이 생을 다했는데 그를 둘러싼 많은 이들이 울기도하고 애닳아하기도하지만 분노하기도하고, 고인을 두고 싸우기도한다. 이 과정은 마음 쓰임의 극단적인 지점을 자극하기도하며, 모든 절차는 돈으로 치르게되다보니 타인의 손을 빌려 이 수고로움을 정리하며 고인의 끝을 마무리짓는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과 자금의 문제이기도했다. 그래서 고인은 말이 없고, 남은 사람만 곱절로 힘든 과정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자신의 생의 끝을 본 후 수습할 '남은 자'들에 대한 걱정이다. 당사자는 소위 죽으면 그뿐인데,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한 걱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겪어본 자들이 알지 않겠는가. 나 또한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로 살아왔으니 더욱 그러하겠다. 이렇게 살면서 터득한 학습 효과는 무섭게 와닿는다.

'잘' 죽는 것. 이왕이면 '잘'. 죽는 것 마저도 '잘'하고픈 욕심을 부려보는 것. 그래서 '잘'마치고 '잘'가라는 인사를 받고픈 마음이 가장 크겠지.



📖이거 괜찮은 직업이다_ 나도 죽으면 금방은 슬퍼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다시 웃고 일상을 살아가겠지요.

서운해 할 이유가 아니다. 당연한 거다. 그게 삼 사람의 일이고 생이 남아있는 자들의 당연한 몫의 이치이다. 알면서도 서글퍼질 수도 있겠다만 마냥 서운해하고 마냥 애닳아한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 이왕지사 서로 웃으며 안녕하고 웃으며 떠올리길 바라게된다. 간소한 장례를 원하고, 마냥 슬퍼만 하지 않길 바라는 이유는 남겨진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라는 점이 공통된 마음이었다.

좋은 기억만, 행복했던 순간만 남겨놓아도 추억할 거리들은 차고 넘칠테니, 웃으며 애틋한 존재로 남고싶은 마음이 이해가된다.


📖'없음'과 '있었음' 사이에 채울 슬픔조차 알지 못했던 것은 나의 개인적인 무지가 아니었다. 어느 책에서 말한 것처럼 "죽음은 우리의 교과 과정에 빠져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배운 것이 없다. 장례는 더욱더.

화장기사인 이해루님의 인터뷰를 통해 장례란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기보단 고인의 시신을 처리하는 기간이란 말에 공감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지의 순간에서 나를 다스릴 겨를도 없이 고인을 보내는 과정은 일시정지가 되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위 라인작업물처럼 느껴지기도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전적으로 믿을 수 밖에 없고, 내 모자란 손 대신 당신들의 능숙한 손을 빌어 준비 할 수 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준다.

어느 집단이든 결국 집구석 싸움같더라. 연령을 구분지으며 일컫는 나이든 능숙한 장례인? 어리고 선한, 젋은 장례인?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힘 좋은 남자 장례인? 보기드문 여자 화장기사? 성별을 바라는 것 또한 아니다. 그들에게 직장이고, 나에게는 내 일을 대신 맡아 할 장례인, 그러니 그러한 담당자 자체일 뿐이다.

어느 시점부터, 누가 무얼 바라고 이러한 선긋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멀찍이 3자의 입장에서 보았고, 맞딱들여 겪어봤던 사람으로서 그냥 내가 알지 못하고 갖지 못하는 능력을 대신해줄 전문가만 연결되길 바라게된다.


나도 나이를 먹은건지 이제는 결혼식장 보다 장례식장을 더 자주 가고있음을 느낀다. 몇번 가보니 주변을 쓰윽 흝어본 후 대강의 그림이 나온다. 가족관계, 자손의 여부, 재력의 정도, 사회생활로 엮여진 이해관계의 범위까지. 헌데 이제는 내 삶의 끄트머리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부양가족은 있지만, 내 장례를 치뤄 줄 자식은 없다. 나이들어 효도받자고 애를 낳을 순 없다. 어찌어지 하다보면 나는 연고 없는 자의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하는 단락이기도했다. 그래서 이 파트가 흘려 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우스개소리로 가는데엔 순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득해서 보이지 않다가도 언젠가 발치에 닿아있을 죽음과 내 마지막을 수습할 누군가에 대한 걱정을 하기 마련이다. 이 부분에서는 법륭상의 연고자의 범위와 보건복지부 행정 처리 지침의 장사 업무에 관한 사항을 자세하게 기록하고있다. 그리고 더더욱 생소하게 느껴지는 공영장례에 대한 복지 개념도 정리를 해 두었다. 중 후반부에 적어둔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애도할 권리'로 이어진다는 말에 사후 지켜져야하는 존엄을 머릿속에 정리해본다.

장례지도사, 화장기사, 시신 복원사, 수의 제작자. 장례업 노동자가 말하는 임종에서 빈소까지. 한달음에 끝이 나는 정리과정. 인간의 마지막이라 여겼던 곳에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장례 노동자들의 작업환경과 그들의 노고까지.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절대 사라질 수 없고, 홀대 받아서는 안 되는 직업군. 운명, 기술, 마음, 제도, 문화를 횡단하며 모든 것들의 죽음에 애도를 덧붙여 일하는 노동자들이 담아두고 살았던 이야기들로 낯선 상복을 입고 앉아있던 몇년 전 나를 떠올리게 했다.

많은 장례식장도 가 봤고, 사흘동안 낯선 장례식장 바닥에서 셀수 없을 정도로 절을 하고 공허해하던 상주의 삶을 살아봤던 이가 읽어 낸 책 한권. 생각 이상으로 더욱 와닿고 감사하며 고생스러웠을 손길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들이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직업군을 소개하고 근로 환경에 대해 토론하면서 이 책이 중요한 교육 자료로 삼아주면 좋겠다. 알지못했던 직업세계에 대한 영역 확장의 기회를 마련해주면 어떨지. 그리고 자라는 청소년들은 이 직업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어떠한 작업을 하는 근로자인지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통해 직업의 다양성과 결코 내 삶과 분리 시킬 수 없는 사람들임을 가르쳐주면서 죽음과 애도의 방식, 고인을 배웅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존재로서의 대우, 혈연관계를 벗어난 죽음에 대한 태도와 고인을 애도하는 범위 확장성까지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개선점을 찾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교사인 친구들에게 이 책을 슬쩍 권해보고싶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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