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안녕
유월 지음 / 서사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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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이님과 황보름 작가의 추천이라면 왠지 복잡한 인물 서사 없을 것 같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냄새도 나고, 각각의 인물이 가진 아픔도 있음직해 보였다. 어떻게 잘 버텨 나갈 것인지, 극복이라는 단어보다는 스며드는 삶에서 답을 찾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빌런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책 제목처럼 '마침내, 안녕'이라 할 만큼 딱 견뎌 낼 만큼의 빌런짓을 할 인물들은 내가 사는 세상에도 있잖아? 그럼 이 이야기도 비슷한 결을 띄지 않을까? 라는 자문자답을 해가며 큰 고민 없이 책에 빠져들었다.



📖아이는 늘 어른들을 용서한다_ 자신의 삶을 무던히 받아들이는 아이가 너무도 어른 같았다. 그 용감함이 애잔해서 도연은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

모든 게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도, 사실은 이혼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기 두려워 방패로 삼은 말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는 늘 어른들을 용서한다. 나쁜 부모조차 세상에 기댈 곳은 그들밖에 없으니까.

요즘 티비프로그램을 보면 버릇없는 아이 고치고자하는 양육방식 제시 프로, 과한 학습패턴에 지쳐있거나 이게 맞는지 확인하는 영재육성 프로, 돈 많은 유명인 자식들이 사회생활이랖시고 혼자 세상 다니며(카메라 뒤의 무수한 어른들은 안보이는척) 견문 넓히는 어린이 기행 프로까지. 이런 패턴의 리얼리티를 가장한 픽션에 질려서 티비를 안 켠지 제법되었다. 그런데 이 단편은 이야기가 다르다. 면접교섭센터에서 만난 아이는 체구는 작더라도, 이 녀석 뒤를 지탱하는 그림자는 아주 커 보였다. 제 몸보다 곱절의 능력을 발휘하여 어른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면들을 스스로 해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의 몫 마저도 다 감당할 아이의 눈빛은 딱히 누굴 원망할 새도 없이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이 목표인 삶으로 보였다.

아이가 원하는 해피엔딩은 무엇이었을까? 다 이해한다는 듯 어떠한 의견도 피력하지 않고 자신에게 얽혀있는 어른들을 지켜 볼 뿐이고, 그들의 바람대로 이뤄지도록 내버려두려하는 이준을 통해 이녀석 진짜 아프긴 한걸까? 외로움과 서글픔, 그 모든 아픔이 너무 커서 고통의 존재유무도 모르고 웃자라버린거 같아 완독 후에도 이 친구의 근심없는 성장기를 바라게되었다.


📖아이는 늘 어른들을 용서한다_ 민 교수의 말이 도연의 마음에 찬찬히 담겼다.

"그런데 백 선생, 잘 안 해도 돼요."

이준을 바라보는 도연의 시선, 도연을 향해있는 민교수의 시선. 아마 비슷한 결의 눈빛이 아닐까. 케묻지 않아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림짐작이겠지만 상대의 표정과 눈빛의 온도를 읽어가며 마음을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의 따뜻한 한마디. 언제든 당신을 향해 내 마음을 열려있다는 말에 마음을 놓아본다. 당장 실행에 옮기진 않겠지만 나를 위한 대나무밭 같은 사람이 있음에 존재 자체로도 위안을 얻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안녕을 바라며 언제든 내가 손 닿을 곳에 내 편이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교차되고 있었다.




📖건강한 감자_ 그건 언니가 도연에게 남긴 유일한 말이었다.

열심히 말고, 그냥 살아.

도연의 언니. 매번 애틋하고 매번 미안한 존재. 태움은 언니를 태워 존재를 소실시켰다. 언니는 열심히 말고, 그냥 살아보라 말했다. 어떻게든 애쓰고 열심히 살아본들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었으니 언니는 도연만이라도 덜 애쓰고 살길 바란 진심가득한 걱정의 한마디였다.

그리고, 사건을 통해 만난 시재에게도 똑같은 말로 위로를 전한 것 이었다. 이 말을 하고 언니는 사라졌지만, 시재는 이 말을 듣고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진심의 간절함과도 같아보였다.




📖도연의 첫 번째 직업_ "초심자에게 제일 필요한 건 그 미안한 마음이에요. 그 마음이 결국 공부하게 만들거든. 어떤 내담자에게는 상담사의 열심히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기도 해요. 빠른 치유가 정답은 아니니까. 당장 시작합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어렵다. 도와주겠다는 마음, 도와주고픈 의지, 빨리 작업과정이 이루어져 손에 쥐어지는 결과가 나오는게 맞는걸까 느리더라도 지긋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천천히 내딛을 수 있도록 발을 맞춰주는게 확실한 과정일까.

우리는 보다 빠른 치유와 확실한 변화를 바라며 전문 기관을 찾게된다. 돈이든 시간이든 내담자에게는 소비되는 몫이 클 테니 무엇이 되었든 리스크를 줄이고자하는 지원의 조언은 선임으로서의 당연한 작업 지시였으리라 봐 진다.

📖도연의 첫 번째 직업_ 막막했던 말들이 견고하게 막아둔 둑을 무너뜨리듯 터져 나왔다.

"그래도 말로 뱉고 나니 좀 낫죠?"

지원의 나지막한 말에 도연은 무엇이 나은지 알지 못한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연에게 언니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치부는 아니지만 입 밖으로 뱉는 순간 상대는 일면식도 없는 언니를 어떻게 평가 할 지 모르는 것도 있었고, 무작정 위로로 덮어 없애려 할 듯한 타인의 말이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잘못 한 것이 없는 언니였고, 또한 잘못 한 것이 없는 도연이지만 이 말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괜찮다고만 말할 그 무수한 입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과거형을 시작해 조금씩 틔워가는 그날의 이야기. 누구에게 툭 하고 털어 본 적이 없었으니 이게 나아지는건지 알 수 없는 마음상태.

단지 상대가 담담하게 들어주고, 이야기를 마칠 때 까지 기다려주는 과정. 과한 액션 없이 담백한 청중이 되어주는 것. 지금껏 그러한 사람이 없어 입을 다물고있었던 도연이었나보다. 애써 뱉어보는 위로와 황급히 표정을 고쳐먹고 슬프고 애석해하는 피드백이 없는 것이 더 감사하기도 하거든.



📖탈주하는 기차_ "지금 모습 그 자체로도 괜찮아요. 굳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

...

"오늘이 아니면 얘기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바짝 말라가는 풀 같으니까 햇볕 그만 쬐고 물 좀 많이 마셔요. 볕에 타 죽을까 봐 걱정돼."

...

...

누군가의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일로 만난 사람에게 마음 따위 주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어떤 것도 맡기지 않겠다고, 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참지 않겠다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겠다고.

꼭 언니로 인해 이러한 마음을 고쳐먹은 게 아니었다. 나를 우선으로 두려고 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을 주면 그만큼의 기대를 하게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상대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서운함이 자라났다. 그러니 나부터 지키나는 마음. 그게 필요했다.



📖너무 가까워 보이지 않는 것들_ "그걸 모르겠다. 괜찮아지고 있는지 아닌지 헷갈리는데 괜찮아져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도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족 얘기 하는게 공포였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거 보면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

책 제목 '마침내, 안녕'은 어느 독자가 말해 준 것 처럼 고대하던 안녕처럼 보였다. 이제는 웃으며 손 인사 할 수 있을 정도의 겨를을 지닌 것. 완전히 없던 일이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덜하고, 숨쉬는 타이밍을 찾아낸 삶이라는 말 같아서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살아집니다, 살아도 됩니다.'를 말해주는 삶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슬픔 없는 사람 없고, 고난 없는 사람 없으며, 아픔 없는 사람 또한 없는거 안다. 각자가 가진 삶의 생채기가 가장 쓰리고 아프다.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삶인데, 살다보면 그 고통은 무던히 견뎌야하는 당연한 과정이고, 타인을 살피는 데에 치중하는 생을 살게되는게 어른의 삶이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 비중을 좀 줄여도 괜찮다는 점을 다양한 관계속에서의 이유를 내어주었다. 다양한 인간군상은 '도연'에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맞춰주며 살아 갈 수 없음과 함께 도연이 가진 히스토리에 대한 특별함보단 그럴수도 있는 삶이라는걸 보여주고자했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우울과 불안, 분노와 자책을 가진 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상황. 어떠한 이유가 된들 상처는 존재했고, 그 속에서 어떻게 극복하느냐 보단 어떻게 흘려보내도 되느냐로 시선을 옮겨보고싶어진다. 극복이라는 것 대신에 회복과 흘려보내는 과정. 흘러가는대로 나둬보면서 그렇게 그때의 나와 멀어진다면 '마침내, 안녕'할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삶. 그리고 그 비워진 자리에 채워갈 또 다른 나의 삶을 반기며 '마침내,안녕'하며 맞아주는 과정이 있어 도연에 대한 걱정어린 마음을 덜어보게된다.



영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 있어 온전히 모든 감정과 서사를 전달 할 수 있을지, 어느 에피소드에 중점을 둘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문장들이 가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 적절한 무게를 잘 전달해주길 바란다. 자칫 그 순간에 머무는 고립된 마음으로 보여지지 않도록 대사를 하는 배우의 톤 완급조절도 중요할테니, 글 맛 잘 살려줄 배우가 나타나 도연을 책 밖으로 꺼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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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돈 얘기해도 될까요?
주언규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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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출판사의 책 소개는 저자 주언규가 내어놓은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조언집이라 말하고있다. 제일 가까운 형님이 차 떼고 포 떼고 바로 밀어넣는 현실 후기라 말한다면 소개가 더 정확할까? 무작정 열심히 살라고 하지도 않았고, 무작정 큰 꿈을 가지라는 말도 안했다. 마지막에 기록해 둔 '실패를 이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다섯 가지'의 항목을 보면 실패가 두려우면 그 리스크를 앉아서라도 도전하지 말고 비용을 최소화 해서 작게 시작하라 말하기도 했고, 성공이 없을까봐 주저한다면 검증된 성과를 벤치마킹을 하면서 제 깜냥에 맞는 출발선에 서서 달리라고 해준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이게 직설적일 수도 있겠다만 몇번의 고비에서 절어본 사람이라면 이게 훨씬 먹히는 말 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무른 위로보단 막막한 현실 속에서 다시 일어설 방법을 툭툭 내비쳐주는 게 받아먹기 더 쉬울 사람들일테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잰걸음 이골이 난 상태라면 이 즈음에서 주언규의 조언을 들어봐도 좋겠다.



📖후회를 실패로 두지 마세요_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더 나은 반응을 보일지 고민한다. 이런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결국 더 좋은 선택을 하게 되면서 성공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래서 실패 후 그자리에 주저 앉느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 후다닥 자리를 털고 일어나느냐로 갈리겠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첫 직장 선임이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실패는 할 수 있다. 실수도 당연하고.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니 오히려 그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번째는 실수였고, 두번째는 습관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알려주더라. 실수가 습관이 되어서는 안되고, 착오를 예사로 보아서도 안된다는 것. 실수에 예민해야하고, 습관에 젖어들어서도 안되는다는 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갔던 길도 제대로 한번 더 살펴보는 행동. 그게 후회를 줄이는 확실한 습관이라는 점이 저자가 하는 말과 비슷한 결 처럼 느껴졌다.



📖무너진 자신감을 회복하는 방법_ 신뢰가 생길 때 우리는 '쌓인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신뢰가 없어졌을 때 '무너진다'고 말한다. 자신감은 태도가 아니라 구조이다. 작게, 자주, 실현 가능한 약속부터 시작해라.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는 '작은 승리'들이 결국 미래의 나에게 강력한 신뢰와 자산이 된다.

모래성게임이었다. 신뢰는 손으로 토닥이면 더욱 견고해졌고, 야금야금 긁혀 나가다보면 모래 무덤이 버틴다 한들 눈 깜짝 할 사이에 스러지는 꼴을 보게된다. 그게 자신감이기도했고 타인에게 얻어지는 신뢰도이기도 하다. 별거 아닌거 같아도 나중엔 그 모든게 별거가 되는 우스운 꼴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며 모든게 허물어지더라도 자신감과 신뢰는 나의 지지대 처럼 양쪽을 버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도록 끝까지 유지해야함을 언급했다.


돈과 커리어,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먼저 겪어내온 저자의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조언집.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80만 인생 멘토인 저자.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나 개미처럼 일해서 모으는 게 다인 나같은 사람에겐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른바 장사를 하거나 자기 사업을 할 생각조차 없던 사람이고, 장난스레 말하듯 대감님집 노비로 사는게 천생 직업이라 생각하고있는 직장인으로서 몇 번의 좌절을 거쳤고, 자산을 불리는 실전 경험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처음 사업을 시작 했을 때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반복되는 실패에서 느꼈던 혼란, 시작점이 달랐던 사람들을 보며 갖게된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도 가감없이 들려준다. 처음부터 탄탄대로가 아니었고, 지금까지 곧게 성공의 퀘스트만 뚫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 중요하게 여겼던 것과 불안과 두려움 틈에서 버텨낸 시간을 말하는데, 말하는 방식은 학교 선배나 회사 선임이었던 사람이 사석에서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테이블에서 짝다리로 팔을 괴며 툭툭 던지는 말로 느껴진다. 거창하지 않다는 뜻이고, 무게잡지 않는다는 말이기도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뜨듯한 위로의 온도나 보드라운 응원의 토닥임이 없다. 뜬구름없이 다 잘될 거라는 무책임한 응원이 없어 되려 마음에 든다. 마냥 쓰지도, 마냥 달지도 않아 적당히 귀로 듣고 목구멍으로 쓴 소주 삼키며 내 것으로 야금야금 부어넣는 이야기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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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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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게 사용하고 뱉어내는 말들 속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말의 온도. 일상에서 오가는 무수한 말들에서 온전히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있는 것인지, 단어를 앞세운 그림자의 진짜 글꼴은 어떠한 언어로 번역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모국어이지만 어렵고 매번 공부하듯 들여다보게되는 말들. 당신과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동일한데 일상 속 오역, 오해는 참 많은 갈래로 나뉘어져 감정이 퍼져있다. 당장 올해 수능을 칠 것도 아니면서 늘 머리를 싸메고 들여다보는 당신들과 나누었던 언어영역에 대한 무수한 해석들. 그래서 번역가의 시선을 빌려 조금 더 예민하게 보고자 이 책을 챙겨봤다. 입 꾹 다물고 살아가는 것 같아도 은연중 흘려내어진 말들. 그걸 곧이 곧대로 말한적은 얼마나 될까를 가늠해보며 이 말들을 번역하고 또 가다듬어 진짜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까지를 글밥 벌어먹고 사는 번역가의 능력에 기생하여 조금이나마 수월한 말뜻 풀이를 해보려한다. 나도 여자지만 여자의 언어는 복잡했고, 척하면 척이길 바라는 상사의 언어는 상급의 수준이며, 한 줌에 쥐어도 될 만한 간결한 말들을 던져놓고 다 이해하길 바라는 부모의 언어까지. 뭐 이뿐 일까. 지구 반대편의 어떤 나라 작은 부족의 언어보다 더 다양하게 갈려지고 쓰여지는 내 사람들의 언어들. 당신들을 이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제대로 알아먹고 싶어서 오역하는 말들에 대한 것들을 살펴보고싶어졌다. 정답지를 보기 전에 오답노트 먼저 훑어보며 틀렸던 것 복기하는 것 마냥 오역하는 말들이라도 완벽하게 알고나면 당신과 나의 대화가 조금이나마 쉬워지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라도 챙겨본다. 당신의 말을 좀 더 완벽히 알아먹어 당신의 든든한 누군가가 되고픈 마음으로 곱씹고 되뇌일 준비를 해본다.


이른바 유명하고, 이름난 번역가가 되기 전까지의 불안과 고민을 담고있다. 불안은 어떠한 단어들로 표현한들 상대에게 내가 느끼는 떨림을 온전히 전해 둘 수 없다. 어느 직업이든 다 그러하겠지만 나름의 고충과 나를 갈아넣은 시간에 대한 보상은 생각보다 단박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다려야하고 버텨야했고, 오늘보다 괜찮을 내일이 와주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요행을 바라지만 그 마저도 부정탈까 맘껏 티내며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각자가 느끼는 불안과 앞일을 알 수 없음에 오는 초조함은 저자가 '세상을 번역하겠습니다. 나는 번역인입니다.'로 당당하게 포부를 밝힌 문장 뒤에 집채만한 그림자의 걱정과 반복된 작업들이 있었던 것임을 알기에 이겨낸게 아니라 버텨냈구나 라며 조용히 끄덕이게된다.



📖많이 보고 싶을지도 모르니까_ "우리 한번 꼬옥 껴안자."

"응?"

"많이 보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저자와 딸의 이야기, 저자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의 언어이지만 무른 내 마음을 툭툭 건들이게 한다. 불어터진 물만두도 아닌데, 툭툭 건드는 딸의 한마디에 찌르르 눈물이 새어나오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또 하염없이 뭉그러지고 만다.

특히나 딸이 해주는 말들은 또래의 언어보다 좀 더 깊고 따뜻했다. 이것도 집안 내력일까? 아님 유전자와 태교로 인한 무언가의 우월한 유전 능력일까. 아이가 하는 말에 독자 이모는 또 찌르르 급소를 찔린듯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다녀오라는 말보다, 잘 하고 오라는 말 대신에, 아빠라는 존재에게 많이 보고 싶을테니 그동안 자신의 온기를 가득 안고가라는 듯이 힘껏 안아주는 이 아이는 뭘 알고 이러는걸까? 글밥 먹는 아빠는 문맥에서 벗어난 말이라 더욱 깊게 살피며 문장과 아이의 표정을 읽으려 애쓴다. 아이가 말해준 문장에 아빠는 오만가지의 가설도 세웠다가 쓸데없이 훗날 오지도 않을 미래를 예견해본다. 망상같은 오역인걸 알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의 진짜 속내를 알고싶은 아빠의 마음이겠지.



📖성공은 운이야_ 그들이 말하는 '성공은 운'이란 말을 오역해선 안된다. 아마 본인들도 그 말의 허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성공은 '오로지 운'도 아니고 '오로지 노력'도 아니다. 개화할 정도로 충분히 쌓아 온 노력이 좋은 때를 만나 결실로 구체화하는 게 성공이 아닐까. 그러니 남들이 운이 먼저라고 하든, 노력이 먼저라고 하든, 또 다른 뭔가가 먼저라고 하든 일단 멈춰서 고민하기보다 뚜벅뚜벅 제 길을 갔으면 좋겠다.

아마도 가장 오역하기 쉬운 말이라 본다. 운도 운 나름이고, 노력도 노력 나름이다. 운과 타이밍, 노력과 기회. 그 적절한 연결고리가 잘 꿰어져야 성공하는 사람으로 불리우지 않을까? 받아들이는 청중으로서의 오역이 걱정되겠지만 운을 운으로 듣지 않고 운도 노력으로 받아들인 상태로 들을테니 청중들이 하게될 오역에 큰 걱정은 덜어두어도 좋겠다. 이러한 연사들은 다들 운이라 했고, 알아먹는 사람들은 부단한 노력이라 들으니까. 이럴 때엔 다들 하나같이 똑같은 필터를 써서 걸러듣는지. 사회화된 인간의 자체 번역기가 잘 돌아가는 상황이라 여겨주자.




📖못돼 처먹음은 직역해 버려_ 정말이지 눈물 나게 다정한 맛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영화보다 현실에 잘 어울린다.

다정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과 내막의 힘을 믿는다. 단어와 문장이 가진 표현력보다 그 글들이 사람의 입을 통해 뱉어졌을 때 뉘앙스와 말투에 가속도가 붙어 사람을 찌르기도하고, 사람을 살리기도한다. 못돼 처먹음은 말하는 저는 모르고 듣는 사람은 다 안다. 그리고 다정함은 오래된 학습의 힘과 습관화된 일상의 언어가 되어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모두 사람을 말랑하게 만든다. 그래서 글들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뱉어내어질 때 극명한 온도차를 느끼곤한다. 나도 살고, 당신도 살고싶은 마음이 크다면 우리 다정한 언어로 살자. 그렇게 말랑하고 달게 살아보자.


저자는 이 업을 해 오는 동안 겪었던 감정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다들 한 번쯤 겪게되는 상황에서 놓여진 나와 당신의 같은 이야기 서로 다른 이해에 관한 것들도 포함 해 두었다. '우리끼리는 좀 더 애정을 쏟아 서로의 원문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라는 저자의 말에서 소중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완벽히 알아먹고 곱씹어 누리는 사이가 되고자 애쓰고 있음을 느꼈다.

오역은 오해를 일으키기 딱 좋은 '안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일대 다수의를 청중으로 두는 번역가의 세상 뿐만 아니라, 일대 일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수도 없는 번역과 오역, 진심과 오해의 사이를 오가며 반듯하고 온전한 마음의 전달을 위해 무던히도 애씀을 느낀다. 모국어라도, 그렇게 긴 정규교육과정에서 빼먹지 않고 학습을 해온 언어임에도 늘 뒷통수를 맞는 겪이고, 반성에 반성을 거듭한다.

마지막에 언급한 것 처럼 우리 좀 더 다정한 말의 맛을 모두가 누렸으면 한다. 그렇게 달고 말랑한 말들로 서로를 찌르지 않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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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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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세이라 해야할까? 굳이 구분짓지 않는 그냥 에세이라 봐야할까. 개와 함께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생후 3개월 차 강아지를 입양 후 일어난 일들의 이야기다. 동물을 만지지 못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저자. 어릴적 봐온 대문 앞 개 조심 팻말은 어떤 세계로부터의 경고처럼 느껴졌던 과거의 기억. 학창시절 친구가 키우던 하얀 몰티즈를 안아보라 건네주어었지만 본능적으로 물러섰던 그날의 감각. 뭉클거리고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생명의 촉감이 무서웠던게 아닐까 생각해보는 그 시절의 마음들. 그런데도 저자는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스스로도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리산 언저리의 보호소에서 저자의 서울집으로 온 강아지. 인간과 닿아 본 적이 없는 어린 생명이 개를 만지지도 못하는 인간의 집에 함께 살기로 한 것. 저자의 두려움보다 작은 녀석이 버텨낼 세상보다는 비교가 되지 않을거라 짐작하며 어린 개의 필사적 용기에 마음을 나눠주는 과정을 적어두었다. '한 개의 일생'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된 사람. 그 개 한 마리와 사람사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라 말하고싶다. 어느날 비 자발적으로 어린 개와 살게 된 초보 반려인의 순간들.

나는 저자의 어린 시절과 닮아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남들은 강아지라 해도 내 눈에는 그저 개로만 보이고, '우리 애는 안 물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내 귀를 통해 필터링 된 말은 '주인은 물지 않는데 당신은 모르겠네요.'라며 고깝게만 들린다. 남들은 사람 좋아 달려오는거라지만, 내 눈에는 나를 물어 뜯으려 달려오는 걸로만 보이는 효과. 그 대상이 크든 작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내 눈엔 '개'일 뿐인 사람이다.

그래서 나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개와 함께하는 삶'에 완독 후 심경의 변화는 없다. 내 삶에서 개가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가장 친한 친구조차 자신의 작은 개를 무서워하는걸 알기에 집에서 만날때엔 반려견을 본가에 보내고 만나기도했다. 죽일듯이 물려고 달려오거나 위협을 받은 적은 없으나 생명에 대한 두려움인지 해석하지 못하는 동물의 언어를 못 받아들이는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개와 함께하는 삶이 여전히 낯설기만하다. 책임 질 것이 많아지며, 내 세상의 일부를 공유함으로서 얻어지는 기쁨이 더 큰 삶의 방식. 서로를 돌보고있다는 믿음을 통해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삶에 반려인과 반려견의 애틋함을 얹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깊어진걸 느끼게 만든다.


잠깐 왔다가 다시 헤어질 찰나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을걸 알기에 이 순간이 어렵고 이후의 시간들이 걱정되는 것이다. 함부로 맡아 키우지도 못하는것이 이유이기도 하며, 개의 생에 모든 순간을 도맡아야 한다는 점. 내 삶의 테두리 속으로 인간이 오는 것 만큼 개가 와주는 것이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이다. 잠깐 행복과 즐거움 뒷편에 그림자 처럼 따라올 슬픔의 순간도 있을테고, 살짝은 미워질 수도 있는 날들이 있다는 것. 그게 한 '개'의 일생과 동시에 '나'의 일생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는 점. 이건 손깍지를 낀 채로 평생 함께 해야만 하는 끝없는 생의 동반자임을 알아야했다.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지만 완전히 맞지도 않았다.

"크다고 무서운 거 아니거든요."

나는 저자의 이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완전히 맞지도 않다는 소심한 반박을 해 본다. 나는 평생동안 반려견을 키워 본 적이 없다. 조부모의 시골집에 있던 개들이나 아버지의 공장을 지키던 순박하니 순하던 개들 조차 나에겐 사파리 월드 투어 할 때 버스를 따라오던 맹수 못지 않은 대상들이다. 한발, 두발 다가 올 때면 어깨가 움츠려들고 손에 땀이 난다. 나도 안다. 그 아이들보다 내가 몇배나 덩치가 크고 사물을 던져서라도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존재임을 알지만 무섭다. 크다고 무서운거 아니고, 작다고 안 무서운게 아니다. 그냥 개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견주님들은 이런 마음에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줌도 안되는 작은 개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치고 지나갈까봐 무서운거고, 큰 개는 친해지고픈 마음에 다가올테지만 나같은 인간은 두눈 질끈 감도록 만드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거 있잖아, 관상용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유리막이 있거나 리드줄을 짧게 쥐어주어 나한테까지 달려들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유지 될 때, 개모차에 싣려있거나 견주의 가방에 포옥 들어가있어 나한테 뛰어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한껏 귀여워 해 줄수 있는 사람. 당신들의 개가 미운게 아니라 내가 두려운거니까 속상한 마음을 덜어주길 바란다며 구구절절 설명해주고 싶다.

📖돌봄 노동은 지속적 노동이다. 티가 나지 않는 일을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매일매일 성실하게 해야 한다. 그러다 조금만 소흘해져도 확 티가 난다. 하나하나 신경 써서 돌보지 않으면 연약한 동물은 금세 불쌍해지고 만다. ... ... 내 몸을 움직인다. 녀석을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안쓰러워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부지런함을 강요하진 않지만 내 눈에 밟혀서 할 수 밖에 없는 것들. 수도 없는 빗질과 일상이 되어버리는 돌돌이. 만사가 귀찮아져도 가게되는 산책. 비 와도 나가야하는 프로 산책러로서의 숨쉬듯 이뤄지는 일상. 어느새 내 의지는 뒷전으로 미뤄진 채 작은 녀석이 고개를 한껏 쳐 들고 올려보는 바둑알같은 눈망울에 지고마는 것이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내가 함께 가주지 않으면 사방이 틀어막힌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으니까. 내가 데리고 왔으니, 내가 데리고도 나가줘야지 라는 의무감. 어쩌면 사람이 개를 키우는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길들이는 거라 봐도 무방한 공생의 관계다. '이봐, 주인! 그렇게 방구석에서 굴 파고 들어갈 새가 어딨어? 어서 나를 데리고 나가! 그래야 당신도 살고, 나도 살지! 당신은 나(=개) 때문이라도 우울할 틈을 만들어선 안된다구. 우리 같이 살 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거 유념해 두라구!૮₍´˶• ᴥ •˶`₎ა'

사람이 개를 키운다 하지만, 때때로 개가 사람을 키워냄을 느낀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할 수도 있겠다만 적어도 내가 아는 견주들은 반전된 상황에서 살고 있었다. 나태지옥에 빠져 있다가도 돈을 벌어와야 이 녀석에게 맛있는 간식이나 주기적인 예방접종을 해 줄 수 있고, 우울의 구렁텅이에 허우적거리다가도 밖에 나가야 맘편히 배변을 할 수 있으니 한쪽손엔 리드줄을 다른 한쪽엔 배변봉투를 쥐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간다. 인간관계에 엮여있는 것들이 손에 꼽히는 사람이었다가도 공원에서 개들이 서로의 체취를 맡을 동안 일면식 없는 견주들끼리 말문을 터 보며 몇살인지 주사는 어디까지 맞췄는지, 요즘 좋은 강아지보험은 뭐인지 물어보며 수다쟁이가 되곤 한다. 이렇게 개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다 큰 놈이 부모말은 안 들어도 개가 해달라는거 해주려고 자진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그 오래된 속담을 거스르게 만드는게 사람의 품에서 부비적거리는 뜨끈하고 털이 보드라운 이 놈들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은, 진심은 꼭 같은 인간이어야만 한다는 룰을 깨어주는 것이다. 그저 서로 마음껏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는걸 보여주는 저자와 루돌이의 세상임을 알게 해줬다.

이렇게 말은 하고있지만, 나는 여전히 견주와 개의 세상을 다 알지 못한다. 다양한 미디어로 접해온 머리로 아는 지식일 뿐이다. 사람일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30년 넘게 내 삶에 개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거라 여기는 중이지만 자식도 없는데, 노년에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기는 남편 이외의 다른 것들에 정을 주게 된다면 당연히 강아지가 될 수도 있을테니 가능성은 조금 열어보고 싶다. 단, 조건은 내 두 손에 안겨있을 강아지라는 존재가 부디 나보다 생의 길이가 짧아 이 놈을 혼자 두고 떠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유념해볼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사랑하는 강아지든 내가 다 책임지지 못한다면 남겨진 존재들이 너무 서글플테니 그 짐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 어린 개든 다 큰 개든 나는 여전히 무섭고 뒷걸음질 치는 겁쟁이 일지라도, 이들의 애틋함을 존중하며 이들의 세상을 응원한다. 내가 하지 못하고 내가 책임지지 못하는 관계를 아주 찐득하게 유지하는 멋진 사람들이니 말이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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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개정판
조예은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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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웹툰 <시프트>의 원작소설이기도한데, 2017년이라면 그 즈음 장르소설도 읽지 않았고, 웹툰은 들여다보지도 않는터라 생판 처음 마주하는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조예은 저자의 최근 작품을 거진 다 봐온 팬으로서 초창기의 글은 어떠할지 기대도 되고, 표현이 다듬진 상태이니 기대를 더해보며 읽어가게 만들었다. '고통을 옮기는 자'라는 부제. 그 능력이 어떻게 활용되어질지 가늠해보며 시작한다.

인적이 드믄 해변의 폐건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시작이다. 피 웅덩이 한 가운데 반쯤 잠겨있던 변사체, 한 살마이 죽었다기에는 너무 많은 혈액. 갑자기 발병한 것으로 보이는 말기 피부암의 흔적. 단서라고는 날이 고르지 않은 식칼 한 자루. 어떠한것도 맞아떨어지지 않는 조사의 과정. 형사는 이 사건에 누군가의 병을 옮기는 능력이 연관되어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 과정또한 익히 알고 있다. 형사는 이 능력을 어찌 알고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죽은 자는 어떠한 사건으로 최후를 맞이했는지 시간을 거스르고, 과거를 뒤적이는 장면들 속에서 형사 이창이 그토록 찾았던 이유까지 닿아보며 고통을 옮기는 자를 통해 우리가 모르던 더러운 세상의 꼴을 긁어내어보게된다.


이 이야기가 시작 될 수 있도록 해준건 찬이었다. 책의 부제와도 같은 '고통을 옮기는 자'가 그였고, 그로 인해 사람의 욕심이 어느쪽으로 기우는지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며 당신은 어느쪽이냐는 질문을 하는 듯 했다. 누군가의 고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옮겨주는 역할이니 온전히 그 아픔을 담아내어야하는 상황. 그걸로 부를 취득하는 한승목 형제. 역시나 타인의 능력과 그에 수반되는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 권선징악의 흐름을 기대한다면 한승목 형제의 끝은 우리가 원하는 수순으로 이어지겠지만 왠지 모르게 찬이가 그보다 더 빨리 이 생활을 끝낼 듯 하다. 사람의 욕심이란게 끝이 없거든. 한승목 형제 또한 별반 다를 바 없는 욕망 가득한 인간이니 그를 가만히 냅두진 않을 듯 하다.

무수한 가정들 속에서도 어떠한 이유인지 찬은 란을 지키려했고, 란은 찬이 자신때문에 한승목 형제의 거위로 사는거라 생각했다. 란이 생각하기엔 찬에게 자신은 짐이 될 수 밖에 없고, 계속 챙겨줘야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치부했고, 찬은 반대로 자신에게 가장 애틋한 존재라서 앞뒤 잴 것 없이 품으려했다. 이러한 관계들은 서로가 더욱 애틋 할 수록 애절한 끝으로 이어지는게 아쉽기만하다.

📖그토록 기적을 찾아 헤맸는데 돌아온 건 차갑고 괴이한 진실뿐이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만 겨우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대가 없는 기적, 정말 그런 게 존재할리 있냐고 온 세상이 자신에게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대가 없는 기적은 없고, 희생 없는 간절함도 없다. 그건 나를 갈아 넣더라도 상대만 괜찮다면 나 역시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계산적으로 봐도 맞지 않고,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손해보는 장사라 혀를 끌끌 차더라도 일단 되면 하게되는 인생 장사였다.



📖"왜 사람들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걸 거는 걸까요? 어떻게 스스로를 버리고 타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무언가를 바랄 수 있죠? 어렸을 땐 그저 인간이란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떤 이들을 보며나, 가령 형이나 형사님같은...... 그런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가 가지 않아요."

이 이야기의 시작이, 저자가 쉽게 답을 써 내려가지 못했던 무수한 고심의 이유가 란의 문장으로 대변되는게 아닐지 생각하게된다.

모든 것을 거는 건 인간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결을 띄고 있음을 느낀다. 욕망의 끝을 보여준 한승목 형제는 물론이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박용석이 타인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선과 악이 대립되듯 목숨을 걸되 자신의 이득을 바라기보단 타인(사랑하는 이)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반대의 부류. 동생을 구하고자, 조카를 살려보고자 물불 가리지 않는 이 둘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문장이지만 또렷하게 빛나는 눈빛이 그려지니 이 비유법을 거슬려하지 않길 바란다) 그 간절함을 어떻게든 들어주고싶고, 일말의 힘 이라도 보태어 주고싶어진다. 영생을 위한 것, 부의 축적을 위한 검은 미래와 계속 대비되는 둘의 선택 과정들. 박용석이 그렇게 사위(四圍)를 둘러보며 꾸리는 사건에는 본인이 중심점이었고, 찬과 이창은 가장자리까지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어떻게든 자기 사람들을 품어주려는 순간들을 확인하게된다. 처음엔 죄책감이라는 심지로 인해 그런가 싶기도 하다가, 또 어떠한 면에서는 누구보다 내 사람을 챙기고자 하는 목적이 담담하게 에워싼다.

찬에서 란으로 옮겨가는 능력, 누나에서 조카로 이어지는 창의 간절한 희망. 잇닿아 있는 마음은 사람을 살려낸다. 시시하다 싶어하며, 진부하다며 입을 모으더라도 결국은 권선징악을 바라게되는 독자로서의 바람은 글을 쓰는 이나 글을 읽는 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에 한시름 놓게 되기도 한다.

최근 저자의 책에 비해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가는 힘이 살짝 부족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거야 내가 출간 시점에서 읽지 않았고, 최근작을 많이 읽어서 일 수도 있겠으니 이거는 독자의 취향 영역이라 두면 좋겠다. 액션스릴러 소설로 분류가 되지만, 으레 상상하기도 하고 혹은 내가 모르는 어떤 지역에서 조용히 이뤄지고 있을수도 있겠다 싶은 가정으로 소설이 꾸려져있다. 저자가 밟아온 출간의 순간을 역행한게 아쉽지만(가장 먼저 읽었다면 또 다른 일렁임이 있었겠지) 그래도 훌훌 읽히고, 결국 사람이 제일 무섭지만, 또 가장 애틋한 존재임을 다시금 느끼게 만든다.

'대신 울어주고 싶고, 내가 대신 아파해주고 싶어요. 다신 그대의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았으면 해요. 누군가를 넘치게 좋아한다는 건, 참 신기하게도 그렇더라고요.'라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게하는 찬과 란, 창과 채린. 꼭 연인 사이가 아니라도 넘치게 애틋한 인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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