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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개정판
조예은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평점 :

네이버웹툰 <시프트>의 원작소설이기도한데, 2017년이라면 그 즈음 장르소설도 읽지 않았고, 웹툰은 들여다보지도 않는터라 생판 처음 마주하는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조예은 저자의 최근 작품을 거진 다 봐온 팬으로서 초창기의 글은 어떠할지 기대도 되고, 표현이 다듬진 상태이니 기대를 더해보며 읽어가게 만들었다. '고통을 옮기는 자'라는 부제. 그 능력이 어떻게 활용되어질지 가늠해보며 시작한다.
인적이 드믄 해변의 폐건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시작이다. 피 웅덩이 한 가운데 반쯤 잠겨있던 변사체, 한 살마이 죽었다기에는 너무 많은 혈액. 갑자기 발병한 것으로 보이는 말기 피부암의 흔적. 단서라고는 날이 고르지 않은 식칼 한 자루. 어떠한것도 맞아떨어지지 않는 조사의 과정. 형사는 이 사건에 누군가의 병을 옮기는 능력이 연관되어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 과정또한 익히 알고 있다. 형사는 이 능력을 어찌 알고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죽은 자는 어떠한 사건으로 최후를 맞이했는지 시간을 거스르고, 과거를 뒤적이는 장면들 속에서 형사 이창이 그토록 찾았던 이유까지 닿아보며 고통을 옮기는 자를 통해 우리가 모르던 더러운 세상의 꼴을 긁어내어보게된다.
이 이야기가 시작 될 수 있도록 해준건 찬이었다. 책의 부제와도 같은 '고통을 옮기는 자'가 그였고, 그로 인해 사람의 욕심이 어느쪽으로 기우는지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며 당신은 어느쪽이냐는 질문을 하는 듯 했다. 누군가의 고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옮겨주는 역할이니 온전히 그 아픔을 담아내어야하는 상황. 그걸로 부를 취득하는 한승목 형제. 역시나 타인의 능력과 그에 수반되는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 권선징악의 흐름을 기대한다면 한승목 형제의 끝은 우리가 원하는 수순으로 이어지겠지만 왠지 모르게 찬이가 그보다 더 빨리 이 생활을 끝낼 듯 하다. 사람의 욕심이란게 끝이 없거든. 한승목 형제 또한 별반 다를 바 없는 욕망 가득한 인간이니 그를 가만히 냅두진 않을 듯 하다.
무수한 가정들 속에서도 어떠한 이유인지 찬은 란을 지키려했고, 란은 찬이 자신때문에 한승목 형제의 거위로 사는거라 생각했다. 란이 생각하기엔 찬에게 자신은 짐이 될 수 밖에 없고, 계속 챙겨줘야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치부했고, 찬은 반대로 자신에게 가장 애틋한 존재라서 앞뒤 잴 것 없이 품으려했다. 이러한 관계들은 서로가 더욱 애틋 할 수록 애절한 끝으로 이어지는게 아쉽기만하다.

📖그토록 기적을 찾아 헤맸는데 돌아온 건 차갑고 괴이한 진실뿐이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만 겨우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대가 없는 기적, 정말 그런 게 존재할리 있냐고 온 세상이 자신에게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대가 없는 기적은 없고, 희생 없는 간절함도 없다. 그건 나를 갈아 넣더라도 상대만 괜찮다면 나 역시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계산적으로 봐도 맞지 않고,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손해보는 장사라 혀를 끌끌 차더라도 일단 되면 하게되는 인생 장사였다.

📖"왜 사람들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걸 거는 걸까요? 어떻게 스스로를 버리고 타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무언가를 바랄 수 있죠? 어렸을 땐 그저 인간이란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떤 이들을 보며나, 가령 형이나 형사님같은...... 그런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가 가지 않아요."
이 이야기의 시작이, 저자가 쉽게 답을 써 내려가지 못했던 무수한 고심의 이유가 란의 문장으로 대변되는게 아닐지 생각하게된다.
모든 것을 거는 건 인간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결을 띄고 있음을 느낀다. 욕망의 끝을 보여준 한승목 형제는 물론이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박용석이 타인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선과 악이 대립되듯 목숨을 걸되 자신의 이득을 바라기보단 타인(사랑하는 이)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반대의 부류. 동생을 구하고자, 조카를 살려보고자 물불 가리지 않는 이 둘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문장이지만 또렷하게 빛나는 눈빛이 그려지니 이 비유법을 거슬려하지 않길 바란다) 그 간절함을 어떻게든 들어주고싶고, 일말의 힘 이라도 보태어 주고싶어진다. 영생을 위한 것, 부의 축적을 위한 검은 미래와 계속 대비되는 둘의 선택 과정들. 박용석이 그렇게 사위(四圍)를 둘러보며 꾸리는 사건에는 본인이 중심점이었고, 찬과 이창은 가장자리까지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어떻게든 자기 사람들을 품어주려는 순간들을 확인하게된다. 처음엔 죄책감이라는 심지로 인해 그런가 싶기도 하다가, 또 어떠한 면에서는 누구보다 내 사람을 챙기고자 하는 목적이 담담하게 에워싼다.
찬에서 란으로 옮겨가는 능력, 누나에서 조카로 이어지는 창의 간절한 희망. 잇닿아 있는 마음은 사람을 살려낸다. 시시하다 싶어하며, 진부하다며 입을 모으더라도 결국은 권선징악을 바라게되는 독자로서의 바람은 글을 쓰는 이나 글을 읽는 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에 한시름 놓게 되기도 한다.
최근 저자의 책에 비해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가는 힘이 살짝 부족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거야 내가 출간 시점에서 읽지 않았고, 최근작을 많이 읽어서 일 수도 있겠으니 이거는 독자의 취향 영역이라 두면 좋겠다. 액션스릴러 소설로 분류가 되지만, 으레 상상하기도 하고 혹은 내가 모르는 어떤 지역에서 조용히 이뤄지고 있을수도 있겠다 싶은 가정으로 소설이 꾸려져있다. 저자가 밟아온 출간의 순간을 역행한게 아쉽지만(가장 먼저 읽었다면 또 다른 일렁임이 있었겠지) 그래도 훌훌 읽히고, 결국 사람이 제일 무섭지만, 또 가장 애틋한 존재임을 다시금 느끼게 만든다.
'대신 울어주고 싶고, 내가 대신 아파해주고 싶어요. 다신 그대의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았으면 해요. 누군가를 넘치게 좋아한다는 건, 참 신기하게도 그렇더라고요.'라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게하는 찬과 란, 창과 채린. 꼭 연인 사이가 아니라도 넘치게 애틋한 인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