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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게임 ㅣ 김동식 소설집 10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1년 3월
평점 :

여기 나오는 인물의 이름은 익히 아는 이름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단편들마다 주제는 달라지지만 등장인물 이름이 똑같다. 그렇다고 인물이 앞에 있던 단편과 같으냐? 또 그건 아니라는 점. 익숙한 이름에서 다른 성향을 찾아 볼 수 있는 것. 등장인물로 인해 소비되는 에너지가 없어 좋고, 인간의 다면성을 보여주고픈 느낌도 들어서 이 사람이 평생 하나의 성향을 가지진 않는다는 걸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카드리뷰는 이러하다. '사고실험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부조리. 극한의 상황에 놓인 한 인간의 딜레마. 인륜과 생계, 증오와 용서, 욕망과 정의 등.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은 22편의 이야기'라 적혀있다. 밸런스 게임은 꼭 이렇게 무엇을 선택하면 다른 무엇은 가지지 못하게된다. 모든 선택의 책임은 본인이 지게 되고, 모든 선택의 후회 또한 본인이 감내해야하는데 이를 통해 어떻게 변해가고 어떠한 성향으로 바뀌는지도 보는 맛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밸런스 게임에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더할때마다 짧은 이야기지만 여운은 길고, 반성을 하게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내가 너무 세상에 찌들어 있나 싶기도 하면서,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결코 착한 사람은 아님을 반성한다. 현실에도 이러한 고민은 수도 없이 하게되며, 하나의 선택지를 고르는 순간 하나는 영영 가질 수 없는 것인데 그래도 삶은 살아하고, 시간은 흐른다는걸 안다.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했고, 어떠한 득을 봤는지. 잃은건 무엇이고, 어떠한걸 후회하는지. 마냥 다 가질 수 없는 이 밸런스 게임에 내 세상을 옮겨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좀 더 잘까? 지금 정신차리고 일어날까? 부터 고민하는 모든게 밸런스 게임같은 삶에서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은 포기를 하게될지 세어보다 포기를 선언한다. 하나, 둘 손꼽아 체크 하다가 이 마저도 계속 할까 말까를 고민하고있으니 오늘 무의식 중에 숨 쉬는 만큼 아주 자잘하고 사사로운 밸런스 게임이 수두룩 할 것이 분명해보여 괜한 짓이라는 걸 깨우치게된다.

📖밸런스 게임_ 단지 그게 옳기 때문에 지키는 거 아닙니까! 난 인간이니까! 돈 때문에 타인의목숨을 해쳐선 안 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아니까! 아, 됐고! 난 100만 원을 택하겠습니다!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
1000만 원을 선택하면 한 사람이 죽고, 100만 원을 선택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100만 원을 선택하고 이 곳을 떠나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1000만 원을 선택한다면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 전제가 주어진다. 더욱 찝찝한 건 1000만 원을 선택하면 생각지 못한 행운에 순수하게 기뻐하게 될 것이고, 100만 원을 선택한다면 아쉬움에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일단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게 되더라도 무언가를 얻어 낼 순 있다. 일단 수중에 돈이 주어지는데 그 값어치가 달라지고, 내 기억에 남는 미련이 문제가 된다. 전자와 후자. 도의와 개인적인 실의에 대한 오로지 자신만 기억하고 자신만 후회할 것의 찝찝함의 껀덕지. 매번 이러한 전제는 꼭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야만 더 큰 득을 보게되는데 그 댓가가 마음에 걸린다.
기억의 잔상 유무와는 상관 없이 나는 100만 원을 택하게 될 듯 하다. 도의적인 것도 있겠지만, 설령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한들 은연중 드는 생각 마저도 남을 해하거나 옳지 못한 것에 대한 찝찝함을 평생 안고 살게 될 텐데(기억 못해도 이 1000만 원에 대한 흔적을 찾으려 기를 쓰고 알아볼 내 성격상 그러하다) 나는 딱 그정도. 간장 종지만큼의 득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기에 원초적 결정을 따르지 않을까. 남들 다 천만 원의 득을 본들 내 편한대로 살고싶으니 말이다.(이래서 부자가 못 되는걸까?)

📖남편의 세 가지 비밀_ 부부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지? 왜 그걸 숨기지? 뭐길래? 믿음이 있다면 숨길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믿음이 없는 부부관계가 지속될 수 있나? 생각은 점점 불어나, 비밀을 듣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 되었다.
알아서 좋을 것 없고, 몰라서 고심할 것도 없다면 때로는 모르는게 약이 될 수도 있다. 안다고 바뀔 것이 없고, 알아서 해결될 가닥이 없다면 나는 차라리 모르고 살길 바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비밀? 비밀이라 할 것도 없는 것들을 꼽아본다. 굳이 말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비밀이 된다면 우리 부부도 비밀이 많은 사이가 아닐까? 딱히 말을 해줘야 하는 이유도 없고, 말 한들 근심의 싹이나 찜찜함의 꼬투리를 제공 하게 된 다면 우린 그냥 각자의 선에서 해결과 침묵을 고수하고있다. 이게 각자가 생각하는 중요도의 차이겠지만, 이 단편의 후반부로 갈 수록 침묵을 일관했던 이유에 대한 파장은 커진다. 아.... 각자가 생각하는 사사롭거나,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는, 내 선에서 해결될.... 그런 일들이 발치에 채이는 별거 아닌것 부터 시작했다가 별의 별거가 될 수도 있음을 느낀다. 아! 이게 그거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 이래서 항시 뒷통수 조심하라 하나보네.

📖미워하는 마음_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 시절, 왜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이 많았을까? 떨리는 눈으로 내려다보던 홍혜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일곱 장의 카드 중에는 악마10 카드가 없었다.
이것도 나이와 체력과 열정의 차이일까? 미워하는 마음이 나이가 들 수록 점점 줄어듬을 느낀다. 10대와 20대 시절 누구보다 강렬하게 좋아했고, 싫어했음을 분명하게 나누었다. 별거 아닌 것에도 부정을 표혔고, 그게 타인마저도 알 만큼 티를 내며 다녔다. 이른바 관종처럼 살았다. 그런데 이게 나이가 든 탓인지, 거기에 쓸 체력까지 없는 것인지, 이도저도 아닌 그러한 마음 자체를 중요하게 꼽지 않게된다. 그래서 더욱 이 천사와 악마카드에 쓰인 비율에 신경써서 고르게된다. 타인을 위해 악마10을 고르고, 내가 얻어갈 행운을 0으로 맞교환 하는 방식은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누군가의 불운을 바라면서까지 내 행운의 수치를 낮추고 싶지 않다. 안보면 그만이고 모르쇠로 내 삶만 집중하면 그만이니까. 일단 마음은 그렇게 먹지만, 타인의 불행까지 신경쓸 삶의 관심도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악마10 카드가 없는 걸 본 홍혜화 처럼 나에게도 그 카드가 없이 되돌아온다? 이건 또 말이 달라지지. 머리를 싸메고 나를 그만큼이나 미워할 어떤 이를 머릿속에서 추려본다. 내가 간과하고 있던게 있었지. 내가 이렇게 살아 온 만큼 나를 또 죽도록 싫어할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신경 안 쓰고 싶다만 머리를 굴려가며 나를 싫어할 인간을 추려본다. 모르면 몰랐지, 아... 이걸 안 만큼 오늘 잠은 다 잤다. 젠장.

📖그녀는 아들을 죽였는가, 죽이지 않았는가_ 어차피 대중들은 물고 뜯을 거리가 필요할 뿐입니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던져주면 그걸 가지고 잘 놀지요. 소수의 사람이 핵심을 짚어줘도, 대중들의 관심은 오로지 눈앞의 개뼈다귀뿐입니다.
사건의 인과관계.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는 팩트. 그건 중요치 않더라. 자극적인 키워드 몇개 던져주면 대중은 알아서 소설을 쓰고, 그 글에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직접 본 것 처럼 살을 덧붙이는데 이는 본업이 의심 될 정도로 그럴듯한 소설을 말아준다. 그 '카더라' 덕에 사람들은 홀리고 홀려대는 효과로 더더욱 매체를 통해 물타기를 하게됨을 느낀다. 이 단락을 보니 며칠 전 손보미 '세이프 시티'도 떠올랐다. 결국 대중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잣대를 기준삼아 그게 맞다는 듯 이야기를 꼬아서 지 편한대로 받아들이게된다. 그러니 이걸 이용한 회장과 죽은 아이 어머니가 똑똑한 선택을 했다는 씁쓸한 결론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회장은 큰 손실을 줄였고, 아이 엄마는 그래도 여러가지 선택지 중에 가장 큰 득을 보는 결정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영영 묻어두는게 그들간의 룰이겠지.

📖가해 총량_ 사람은 모두 각자의 '가해 총량'을 타고납니다. 평생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거죠. 그 가해 총량을 제게 파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누군가를 해하면 결국 끝은 자신을 향해 겨눠져 있다는 사실. 알면서 때때로 외면하고 사는 삶. 타인을 해하고 받은 댓가는 미리 당겨 쓴 자신의 생의 일부라는 걸 늘 염두해 두라는 듯한 권선징악의 냄새가 풍기며 은비까비같은 전래동화의 교훈을 가진 어른을 위한 고전의 뉘앙스다.

📖모두 다 결정되어 있다_ 다른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삶에 고난과 역경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번외 공간인 이곳에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어도, 내가 선택하는 게 그나마 좀 낫지 않겠습니까?
결국,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살며 겪은 그 불행은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었고, 나의 무력보다 최선을 다했기에 그나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들 중 내가 좀 더 슬프고, 좀 더 힘들었던 걸 택했던 갈래였다. 아버지의 이른 사망 대신 자신이 화상을 입었고, 자신의 암투병을 할 지언정 딸의 극심한 사춘기의 선택지를 밀어내어 버렸다. 아내가 외도하여 내 곁의 내 사람을 떠나보낼 지언정, 내 부모의 사망을 막았던 악몽같은 나날. 최악과 최악 중 내 평안은 미뤄둔 결정의 결과물이었다. 몇번이나 환생한다 한들 다른 선택을 하진 않겠지.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들에는 오롯이 나를 최 후 순위로 둔 행복의 줄세우기이자,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는 방식이었다.
마치, 우리가 22편의 밸런스 게임을 통해 내가 할 결정을 대입하며 고심했던 그 모든 이유의 해답이기도 했다.
내가 읽고있는 순서는 뒤죽박죽이지만 이게 김동식 소설집의 마지막 10번째 책이었다. 역시나 치고 빠지는데에 능한 단편 전문 소설가였다. 그리고 단순한 인물 구조여서 집중하기 좋았고, 그가 툭 던져놓은 화두를 덥썩 물고나면 한동안 씹고 뜯어가며 그 이야깃거리를 한참동안 곱씹게된다. 몇장 안 되는 단편이었지만 단편 속 주인공이 되거나 주변인물이 되어 내가 선택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나름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결국 그거다. 사람답게 살길 바라고, 염세적인 척 하며 살지만 남들 못지 않게 무탈하고 따수운 세상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입버릇처럼 주둥아리만 착한 사람으로 살다보니 이러한 선택의 중심에 서 있다면 욕심을 내어 볼지, 손해를 볼 지언정 사람다운 결정을 할지 아직도 확신이 안 선다. 그래서 고마웠다. 이 밸런스 게임을 통해 그래도 나는 선하고 싶은 욕구가 조금이라도 더 있는 인간이구나. 짐승 아닌 인간인 것에 감사하며, 이러한 밸런스 게임을 무수히 하게 될 미래의 나에게 미리 훈계하고 싶어진다.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다운 선택을 해라 이것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