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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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은 M이모로부터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 이모는 아니지만 마음이 가던 사람. 그래서 대화를 하다보면 더욱 마음이 가는 관계들이 있다. 이 곳으로 이사를 오게된 이유도, 그녀의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지. '아주 재미있는 동네야. ... 언제 너도 한번 놀러오렴. 좋아할 것 같은데'라는 말은 몇달 후 진짜 작가의 동네로 이사를 오게 만들었다.

폭이 좁은 골목과 낮은 집들. 개 두마리가 성곽길을 따라 사이좋게 뛰어다니고, 폭우가 그치면 성곽 위로 솟은 나무들 사이에서 새들이 부산스럽게 지저귀고,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평상이나 골목의 벤치에 앉아 볕도 쬐고 적적한 서로의 일상에 말벗이 되어주는 동네.

어쩌면 이 모습들은 잊고 살아왔고 더이상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같은 동네의 모습을 닮아있다. 큐브조각들처럼 쌓아올린 아파트촌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풍경과 마음들이 모여있는 곳. 작가는 교통이 편리하고 다양한 문화생활이 가능한 곳이 아닌 이 동네를 택했다. M이모가 마지막으로 머문 이 곳이라면 자신의 마음에도 제대로 쉬게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거겠지?



마당 없는 집_ 생의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각각의 것들이 자라나면 자라나는 대로 그냥 두고 보는 것. 이것이 게으른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원예 방식이다.

마당이 없는 주택이지만 옥상이 있는 주택이기도 하지. 애초에 품었던 원대한 텃밭 농부의 꿈은 이루지 못 할 지라도 작약과 장미. 몇 종류의 허브와 딸기, 대추토마토를 보면 고작? 이라는 생각도 하겠지만 옥상 농부는 그 마저도 행복이고, 이름모를 무성하고 푸르른 잡초 또한 나름의 싱그러움을 주는 눈요기의 새로움이라 해두고 싶다. 쟤네들도 이름이 있겠지만 우리가 모를 뿐이고, 바람에 날려온 씨앗일수도 있고, 새가 몰래 물어다놓고 갔을 수도 있는 작은 흙더미. 거기에 바람과 빗물이 키운 풀들이라 생각하면 이 녀석의 삶의 의지는 몹시 대단하고 박수받아도 될 만한 가치있는 삶이겠더라.

마당이 없는 집이지만 작은 화분들이 있고, 화분들에 화려한 꽃나무들은 없더라도 큰 관심 없이도 잘 자라주는 이름모를 풀꽃들의 대견함도 가진 곳이다. 멀리 차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보이는 산의 풍경은 사계절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않는 것 만으로도 여기 오길 잘했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듯 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머리속에 존재하는 형상이 있다. 꽃은 꽃집에 가야하고, 과일을 직접 따먹는 즐거움은 체험 농장에만 가야 된 다는 생각들. 내 손을 뻗었을 때 쉽사리 닿을 곳에 이러한 것들이 있다는 생각하면 마당없는 집은 마당만 없는 집이란 결론을 내어보며 나를 더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만들게 해주었다. 나도 마당없는 집을 찾아봐야하나?


슬픔이 가르쳐준 것_ 사람들이 그토록 서투른 말들을 건네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겐 봉봉이라는 친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살고있는 존재가 있다. 작가의 삶 일부를 함께한 봉봉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의 초입에 나온 M이모 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임이 확실해보인다. 사는 데에 일밖에 모르던 나의 절친한 P를 보아도 그녀의 존재속에 개는 반려동물 그 이상의 의미로 크게 자리잡고 있더라. 때때로 내가 놀리듯 개가 분리불안이 온게 아니라 견주가 분리불안으로 난리친다고. 걔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텐데 애닳는 맘은 알겠지만 어지간히 하라며 잔소리하기도 했던 나였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에도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해 안타까워한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이 생명을 두고 멀리 갈 수 없다며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는 대신 자신의 차까지 배로 싣고 제주일주를 한다고 했다.

내가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고, 아직 키워 본 적이 없다보니 그 친구들이 주는 사랑의 크기도 가늠이 안되긴 한다.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랑에 대한 교감은 사람 대 사람으로 이뤄지는 것과 또 다른 동물과 사람간의 큰 마음의 울림이 있겠지. 사랑도 줬고 슬픔도 다 주고간 봉봉. 봉봉 덕에 작가는 위로가 주는 단어의 크기와 무게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모두 이별에 대한 위로를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겪어는 봤을 테지만 모두가 그 일에 대한 당사자가 아니니 우린 모두 짐작만 해 볼 뿐이다. 가늠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려운 슬픔의 깊이이니 선배들은 경사보다 조사에 더더욱 빠지지 않아야한다고 했고, 위로랍시고 아무말이나 늘여놓지 말고 그냥 진득하니 앉아있고 머물러주라고 했었나보다.



마흔 즈음_ 진짜 생일이 아닌데도 생일상을 준비해준 할머니와 가짜 생일파티가 뭐냐고 타박하는 대신 친구들 편에 기꺼이 선물을 들려 보내준 친구들의 보호자가 지닌 다정한 마음에 대해서 이따금 나는 생각해본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내가 여전히 인간의 선의를 믿고 있는 건 이런 기억들이 내 안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따수운 사람들 속에서 자란 사람이었기에 작가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선한 시선과 반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구나. 역시나 좋은 사람들 곁에 있다면 나 역시도 자동으로 물들어 간다는게 정말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글 이었다.

가짜 생일 파티라니! 그런데 모여든 마음과 축하의 한마디들은 가짜가 아니라 더욱 마음 몽글몽글해진다.

나의 생일도 애매하고 어수선한 친구관계로 눈치게임하는 학기초라 태어나서 생일파티는 딱 한번 했던걸로 기억한다. 생일파티에 초대는 많이 받아봤어도 정작 내가 주인공이 되던건 진짜 손가락에 꼽히는 것. 친구관계가 넓과 활달한 편도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을 빌려서 많은 친구들과 테이블을 붙여 생일파티하던 게 셈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80년대 후반 태생들은 알거다. 롯*리아에서 생일파티 예약을 하면 거기 직원 언니 오빠들이 풍선도 불어서 벽에 붙여놔주고 인원수에 맞춰서 길게 테이블을 붙여서 햄버거를 케익처럼 쌓아주는게 그 시절 최고의 파티 룸이었다.)

그러한 서운함을 어른들이 헤아려주고 가짜 생일파티라는 설명에도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해주라고 아이들에게 눈을 맞춰가며 따숩게 이야기 했을 것을 떠올려보면 마음의 울림은 크고 화려한 물질보다는 진심이 그득히 품은 그 마음 자체 라는걸 다시한번 느낀다. 가짜 생일파티에 참석한 진짜 친구들은 지금 작가처럼 다들 마흔 즈음이 되었을텐데 그들의 아이들이 이러한 가짜 생일파티를 하게된 친구가 있다하면 똑같이 이야길 해주겠지? 선한 마음과 고운 시선은 내리사랑과 같은 결이니 미루어 짐작해더라도 오차없이 다 같은 맘일거라 확신을 하고싶다.



사람의 마음에는 눈에 띄진 않지만 고유의 결과 길이 나있다. 손끝에 살짝 스치기만해도 아리도록 상처를 내는 사람이 있고, 계속 쓰다듬고싶어지는 여리고 풍성한 모질로 기분좋아지게하는 사람의 마음. 직접 손으로 느낄만큼의 직관적이진 않지만 우리는 안다. 손끝의 촉감만이 이 감촉을 느낄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는 참 부드럽고 포근해지는 마음을 갖고 있다. 어쩌면 봉봉의 등털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은 짐작도 해본다.

전단지를 붙이러 이 동네까지 걸어 올라와 잠시 한숨을 돌리는 이에게 물이라도 건네주지 못한게 내심 미안했다는 생각. 길에서 파지줍는 노인에게 우리집에 종이 많다며 약속시간을 잡아두고 챙겨주는 발걸음. 집을 수리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노고에 감사함을 챙겨주고파 봉투에까지 가지런히 넣어두는 정성. 자신의 슬픔이 채 아물진 못했으나 동네 지인의 강아지를 맡아서 챙겨주는 시선. 눈이 가득 쌓인 집앞을 치우기 전에 작은 눈사람 하나를 챙겨놓고 시작하는 마음만은 아직 어린이인 다큰 어른.

곁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같이 물들고, 동요되어 기분좋아질 듯한 존재. 물질적인 아름다움보다 사람의 행동하나하나가 어여삐 보일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것들이다. 악하고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하는 삶 속에서 참 예쁘게 자란 어른의 마음을 보았다. 진득하니 주변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이 감정이 행복의 또다른 감각임을 배웠다.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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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병률 지음 / 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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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예약을 해서 구입했다. 그만큼 또 알게모르게 나는 작가의 책을 기다렸나보다. 전작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은게 2019년 9월 이맘때였으니깐 3년만에 펴낸 신작이었다. 알라딘 서점 에세이 담당 MD님은 이 책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일에 관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그리고 사랑이 주는 공기에 관해 쓴 산문이라고 소개했다.


시인에게 사랑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삶이고, 사람'이라 말해주었다. 작가만의 감성이 있다. 그 감정을 오롯이 녹혀낸 산문집이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이 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확하며 어떠한 것이 모자란지는 비교 불가한 것. 자기에게 최적화된 사랑을 찾는 일련의 과정과 순간의 마음들을 담아두었다.


이번 책에도 작가의 사진이 함께 기록되어있다. 때때로 그는 글을 쓰는 작가인지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인지 헷갈릴정도이다. 잘 쓴 글과 함께 잘 찍은 사진들. 글에도 사진에도 작가의 감성이 가득하다. 한장 한장 넘기는 페이지의 글이 적다 한들 후다닥 넘겨버릴 수 없는 경험을 또 해 볼 듯 하다. 사진에 한참을 머물고, 단어 하나하나에 남겨진 여운을 매만지며 아껴 읽어야겠다.





손 잡아주지 못해서_ 손을 보는데 마음이 미어지는 사람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손만으로 그 사람의 많은 걸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 어쩌면 손에 보이는 것은 얼굴 표정일 수도 있으며 사연일 수도 있으며 마음일 수도 있는 것.

... ...

언젠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말해주겠노라. 참 많이도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때가 지금이 아닌 것은 나 당신을 오래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도, 나중에 명백히 말하겠노라.


각자의 인생에 스쳐가는 타인1, 타인2로 여기던 사람을 내 사정거리의 등장인물로 바꿀 때. 그리고 그 사람들과 눈맞춤이 아니라 피부로 직접 닿으며 나의 감각을 전하는 시초가 손이라 생각된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가장 흔한 스킨십이 될 수도 있는 손잡기.

손을 맞잡는 것, 깍지를 끼는 것, 손등을 매만지는 것, 손끝을 툭툭 건들여 보는 것, 그리고 차마 직접 닿을 수 없는 상황이라 시선으로 상대의 손을 쓸어내리기도 하는 것. 그 모든것에는 각기다른 감정과 마음의 쓰임이 존재한다.

손을 보고 마음이 미어질 수 있다는 건 그간 나눴던 대화나 눈맞춤으로 한참동안 나눴던 그 감정의 끝이 상대의 손에 머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장 쉬운 손잡기인데 가장 어려운 스킨십이 되어버린 둘. 언젠가를 빌미로 언제 한번은 꼭 당신의 손을 잡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꺼내어 보겠노라 다짐을 하지만 기약없는 다짐인걸 알고있다. 필요로 할 때 손 잡아 주지 못한 미안함을 독백으로라도 뱉어보며 진심은 그게 아님을 내비쳐본다. 상대도 분명 알고 있겠지.




​나를, 당신을, 세상을, 세계를_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바다에 가자는 말은 사실은 사랑한다는 말이며, 노을을 보러 가자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이며, 깊은 밤 불쑥 산책을 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는 것도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단어 그대로 사용하는 횟수가 줄어드는걸 느낀다. 혹시나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싶은 앞선 걱정과 함께 내맘과 같지 않은데 나만 둥둥 떠다니며 고백해버리면 지금의 이 사이도 없는 것이 되어버릴까 싶은 불안감도 여전하다. 그러니 내가 했을 때 행복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툭툭 내어보며 바다를 가보자, 노을이 예쁘대,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라는 말로 슬쩍슬쩍 마음을 비쳐본다.

이러한 마음을 작가는 글로 남겨주셨고, 적재님은 노래 '별 보러 가자'로 마음을 표현 해 놓으신 듯 하다.

일말의 숨김 없이 직설적으로 말해도 좋을 나의 남편에게도 오늘 써 먹어 봐야겠다. 이제 날도 선선해지고 하니 밤 산책 가보지 않겠냐고.




당신이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_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잃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기억하겠지만 사랑을 기억하는 편이 제일 나을 겁니다. 살아갈 힘을 남기자면 그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묘한게, 한번 끓여놓으면 쉬이 식지 않는 두툼한 주전자처럼 뭉근하게 지속되는 지속성이 제법 탁월하다는 것. 이 것 또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보온성이 좋은 감정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던 순간의 열정도, 지속하는 지금의 따뜻함도,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그 사랑에 마침표를 찍어 둘 중 어떤이의 부재가 되는 순간이더라도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길게 지속될 것임을 안다. 그 온기 덕에 나는 살아가고있고, 이후의 삶도 살아 낼 여력을 만들어 줄 듯 하다. 없어도 사는 데에 지장은 없겠지만 있으면 버텨낼 재간을 부리게 해주니 나에겐 제법 쓸만한 무언가로 정해두고 싶다. 그대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살면서 가장 행복해하며 사랑한 순간을 긁어모아 오라 하고싶다. 흩뿌려놓으면 별거 아닌 잔챙이 같아도 모아서 양손 가득 움켜지면 제법 포근함하니 당신에게도 누리게 해주고싶다.

​타인을 사랑하는 감정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씀씀이도 모두다 사랑인거다. 하늘 위에 쏟아질 것 처럼 가득한 별들에도 각각의 이름이 있고, 이리저리 이어보며 하나로 합쳐놓은 걸 별자리로 부르는 것 처럼, 각각의 마음들도 사랑이고 함께 나누고 마음을 확인하며 선을 이어보는 일련의 과정도 사랑이다. 그래서 서로 뻗어낸 손이 닿아 이어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나보다. 내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잡아주어 알아주니 말이다.

내가 사랑해서 행복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마음이 놓이고, 내 사랑이 당신의 언저리에 닿아 있음을 느껴서 감사한 것. 설령 원하는 결말이 아니더라도 그때 타오르던 나를 더 아껴주고 북돋워 줄 수 있는 힘을 남겨 놓는 것. 사랑의 온도를 꺼트리지 않는 것. 그 마음을 가르쳐주려도 오랫동안 단어를 가다듬어 책으로 내어주신 듯 하다. 사랑에 헛헛해지는 순간이 오면 이 책으로 마음 좀 뎁혀놓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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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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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청소년 문학이라고 청소년만 읽을 수 있게 제재하는 것도 아니니 살짝 설익은 어른인 나도 참 재밌게 읽었고 다음 회차에 뽑힐 작품도 기대를 하게 되더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느끼게 될지. 그리고 그들보다 조금 먼저 어른이 된 내가 가진 생각은 그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지를 생각하며 읽으면 또 다른 재미의 구석을 찾아 낸 듯 흥미로워진다.


부모의 보살핌 대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정인. 학교에서 근로를 허락한 알바생이기도하고, 때때로 폐지를 주워 빈지갑을 채우는 중학생. 세세하게 이 친구의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고 몇몇 단어만으로도 느껴지는 고단함과 빠듯함.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은 한번뿐인 수학여행의 설렘을 기다리는데, 정인에게는 통신문에 적힌 354,260원 이라는 금액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세 시간을 아르바이트 하는 정인에겐 시급 9,160원으로 알바를 하고, 알바가 없는 날이면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가방 가득 폐지를 주워 빈 지갑을 메꾼다.

그렇게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세 번, 틈틈히 폐지를 주워 꼬박 한달을 일해야 채워질까 말까한 금액이다. 나 같아도 설레겠다. 이렇게까지 돈을 써가며 간다면, 단 며칠간에 그 금액을 홀랑 써버리면 당장 다음날부터 이뤄질 고된 일상에 눈이 질끔 감기고 깊은 숨이 몰아 쉬어질 설레임 같은 것.

읽을수록 어찌 이리도 셈이 밝은 아이가 있나 싶다. 정인의 처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어른이라면 어린녀석이 돈만 밝히는 속물처럼 볼 수도 있겠다만 이렇게 정인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걸 보니 급하게 영글어버린 아이 같아 안쓰러움만 커지더라.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그 모든걸 알아서 다 쥐고있는 모습을 보자니 살짝 불안함도 느껴졌다. 정인의 곧은 생각을 툭툭 치면서 어떻게든 꿰어보려는 헬렐 벤 샤하르가 슬그머니 들러 붙은 것 때문. 윤기나는 검은 털과 금빛의 눈. 고양이의 털인지, 건물사이의 어둠인지, 아니면 고양이에게 숨어있는 인간의 그림자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래도 헬렐은 악마니까 막 퍼주듯 정인을 돕진 않겠지.


49P_ 할머니도 늘 '세상에 났으면 밥값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니까. 도대체 밥값이란 건 뭐길래 아끼면 아낄수록 더 버거워지는 걸까? 한 사람이 세상에 나서 먹는 밥값을 다 셈함면 그게 그 사람의 인생값일까?


내가 느끼는 밥값의 구실이라 하면 인간다운 최소한의 정도 즈음 되겠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밥값에는 제 그릇에 넘치는 욕심이 있어서는 안되고, 제 한몸 편하자고 남들에게 폐를 끼쳐서도 안되고, 육신이 건강하다면 생산적인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고, 기본적인 도의를 지키는 주체 정도?

(생각해보니 안되는 것들이 참 많네. 또 어찌 보면 내가 지금껏 먹어온 밥값을 금전적으로 계산한다면 집이며 차며 신용까지 최대한 담보를 잡아서 가장 큰 금액으로 대출을 해야 될 지도 모르는데,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것을 구별해 선한 사람으로 살면 된다는 거니깐 할머니의 밥값 계산법은 어찌보면 헐하게 정산된것이라 감사하게 여겨야겠다.)

정인에게는 모든 정산법이 돈과 연계되어있다. 복지사가 챙겨주는 물품은 할머니에겐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이라 인식 할 수도 있겠고, 고물상에서 후하게 처주는 폐지값도 어쩌면 나중에 다 돌려 갚아야 하는 밥값의 복리 이자로 머릿속에 맴돌수도 있겠다. 아이에겐 타인이 주는 호의도 결국 자신의 처지로 인해 받은 추가 수당 같은 셈법이니 말이다.

어른이 되고보니 정인보다 밥값 못하는 어른이 참 많았다. 그에 비해 정인은 빨리 영글고 시기에 맞지 않게 익어가는 듯 하지만 제법 단단하고 묵직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듯 해서 이정도의 친구라면 몇 년 후의 정인은 밥값을 선불계산하고있는 청년으로 자라지 않을까 싶다. 할머니가 손주를 참 잘 키우셨고, 손주는 알아서 잘 컸구나 싶은 아줌마의 참견과 괜한 뿌듯함.


74P_ "난 네 운명을 바꿔 줄 수 있다니까."

"바꿀 수 있다면 그게 운명이에요? 구청에서 개명 신청하는 것도 아니고."


헬렐의 유혹에 이 녀석은 뭐이리 단호한가? 원래 이 시기의 아이라면 한번정도 혹하는 마음에 헬렐의 달콤한 말과 환상에 스르륵 넘어가며 진득하니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리는 반성의 시간도 가져보고, 유혹을 뿌리친 후 다시금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전래동화같은 결말을 기대해야하는데 시작부터 대쪽같다. 그래서 정인이 맘에 든다. 그래그래. 요즘 친구들이 이렇게 똑부러져요! 오랜 시간 살아온 헬렐의 능력치에 부합하지 않는 새로운 상대이니 근성 넘치는 이 모습을 보고 얼마나 이겨먹고 싶을까.

나중에라도 구청에 가면 피식 웃을지도 모르겠다. 구청 민원 창구에 개명 신청을 받고, 다른 한켠에는 운명 교체 신청을 받는 창구라니! 거기엔 헬렐이 사람을 채용하려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정인이는 똑부러지다가도 아이같은 생각이 불쑥 튀어나오는 영락없는 중학생 이구나 싶어진다.



좋지만 좋지 않은 것. 나에게 좋을 수도 있지만 남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며 즐겁진 않으려는 제법 확고한 신념. 정인은 그렇게 잠깐은 즐거울지 몰라도 부당하게 얻어지는 이득과 행복에는 영 관심이 없어보인다. 할머니의 밥값지론이 아이에게 크게 다가왔나보다.

소원도 뭘 알아야 빈다고 했던 정인이니, 하고싶은 것도 뭘 해본 아이라야 할게 늘어나겠지. 자신을 한번씩 약올리던 태주였지만 그거야 정인이만 못들은체하고 마음에 담아주지 않은다면 굳이 머리써가며 몸써가며 악마에게 부탁을 해서 괴롭힐 이유따윈 없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헬렐은 넘어올듯 넘어오지 않고, 지금껏 해왔던 인간들의 유혹방식과는 사뭇 다른 정인을 어떻게든 꾀하고픈 눈빛이다.나약한 고양이 같지만 결국 악마니까. 한 번 즈음은 정인을 낭떠러지로 내몰아 웃음지을 눈을 가진 자 임을 계속 주시하게된다.


230P_ "그치만 이건 진짜가 아니에요. 어쩌면 나중엔 제가 만약에를 찾을 수도 있고, 파우스트라는 사람이랑 상담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한 번 더 진짜를 살아 볼게요."



'만약에~'로 시작된 인간의 요청은 헬렐를 부르는 주문과도 같았다. 인간이 한 선택에 헬렐은 그걸 구체화 시켜주었고, 말하는대로 이뤄진 현상을 누린 인간은 헬렐에게 마음을 먹히고 말겠지. 그걸 맛 보고 더이상 먹지도 누리지도 않겠다는 단호함은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주체로서 참 대단하다고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었다.

원래 한 잔은 너무 많고, 천 잔은 너무 적다고 했다. 악마의 셈법이 맞았다. 처음의 시도는 어려웠고, 반복되며 익숙해지다가 그 이상의 것을 탐하며 그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고 더욱 악해지는게 악마가 만들어놓은 인간의 사용법이었다.

그럼에도 정인은 '여기까지'임을 이야기했고, 환상이 아닌 진짜를 살겠다는 말은 지금껏 헬렐이 만나온 인간과는 또 다른 부류임을 확신하게 했다. 매의 눈보다 매서운 금빛의 고양이 눈이 휴가 중 점찍은 달콤한 인간다웠다. 아주 찐하고 재미난 휴가를 보낸 헬렐은 얼마나 더 많은 가정을 세워 인간을 꾀할지는 모르겠으나 헬렐의 악마 인생사 중 최초로 이긴 인간으로 남을 순 있겠지만 최후의 인간만은 아니길 빌어본다. 인생사가 재미난 이유는 모두 각자의 소설을 하나씩 쓰고 있기 때문이니 정인보다 더 올곧고 반듯한 아이는 알게 모르게 더 많다는 걸 슬그머니 흘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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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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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했던 작가의 작품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다음 소설도 기대가되며 다른 추천사나 MD들의 작품평을 보지 않고 바로 예약구매를 하게된다. 작가의 필력을 믿고, 끝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을 알기 때문이지. 2년전 이맘때인 2020 여름이겠다. 백온유작가의 작품인 '유원' 알게되었던 때가 지금처럼 더운 여름이었지. 청소년문학상 수상 작품을 읽고싶게만드는 한줄평에 이끌리듯 읽게되었고 책을 읽기 했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결국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자기 문답은 청소년기이든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어른이든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도 했으니 말이다.

📖10P_ 식물적인 인간을 돌보는 일과 식물을 기르는 일은 어느정도 닮아 있다. 하지만 눈으로 바라보는 하늘에도 구름이 차오르는지, 엄마가 바라보는 나무에 과연 새가 앉고 바람이 드는지, 그런 것들이 의무니다. 엄마의 세상은 멈춘 오래인 듯했으니까.

이야기는 '시안' 시선에서, '해원' 입장에서 이야길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툭툭 내어둔다.

시작은 '시안' 이야기. 엄마를 간병하는 것에 자신을 내어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린시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시안을 돌봐주던 엄마. 포비돈을 바르고 상처를 후후 불어주면 상처가 쓰리고 따갑지만 나를 돌봐주고 있는 엄마의 존재에 안도감을 느끼며 통증이 가라앉던 순간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버린 상태. 욕창이 생겨도 쓰리다는 한마디 하지 않는 식물인간 상태의 엄마를 돌보는 시안은 생각이 많아진다. 평범하던 일상속의 엄마를 떠올리다가도 이렇게 텅빈 눈으로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면 시안이 바라는 기적과 일말의 기대는 괜한짓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어린 나이다. 자기 성적에 툴툴거리며 입시준비를 해야하는 학생이다.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부모보단 또래 친구가 좋을 나이. 그런 아이에게 비빌 언덕같은 존재여야할 엄마의 병수발. 급히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 시안은 이미 자신을 놓아버렸음을 느꼈다. 6년의 병수발은 어른도 하기 힘든데 아이는 속은 성한곳이 있긴 한걸까 싶어지는 걱정만 더해진다.

📖13P_ 나도 요즘 애들인데. 대단한 희생처럼 보여도 막상 닥치면 다른 애들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망도, 외면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어쩌다가 사실을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요즘 애들 맞지, 3인데. 막상 닥치면 한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어른들도 많고, 도망치며 놓아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병에 장사 없다고 하지 않던가.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보장만 있다면 믿음 하나로도 살아낼텐데 이건 당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니 하는 말들이라 생각된다.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 나오더라도, 두눈 질끈 감고 모른척 하고파도 결국 엄마인데 누가 돌보나 싶어지는 마음. 아는데 알아도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묵묵히 해오는 시안. 그런 모습에서 나는 불안감이 느껴지나 모르겠더라. 계속 담아두고 묵혀두며 쌓아만 올리다보면 어느샌가 차고 넘쳐 터져버리거나 와르르 무너질까 싶은 조마조마한 심정.

이야기의 시작부분인데 시안의 상황을 들으니 고생했다는 말보단 너는 지금 괜찮냐는 질문을 먼저 해주고 싶었다. 진짜 괜찮은게 맞는건지 물어봤자 당연 괜찮다는 대답을 텐데, 나는 대답보단 속이기 어려운 아이의 눈빛을 보고싶었다. 혹시나 엄마의 시선처럼 비어있으면 어쩌지 싶은 걱정과 차라리 울어버리면 속이라도 시원할텐데 싶은 마음. 무엇이더라도 자신의 상태를 표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커졌다.

📖76P_ 모든 노력과 정성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 이야기속의 프록시모라는 전염병의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엄마를 간병하는 시안. 속의 이야기라고 특별할 것이 없고, 주변에서도 많이 겪어왔고 아직도 진행형인 이야기들. 환자를 위해 애써보는 보호자. 그런 보호자를 반복되는 좌절을 보면 무어라 쉽사리 조언도 못하게되는 주변인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엄마를 자극하며 감각을 되살려보고파하고, 좋아하시던 페퍼민트 차를 우려 입안을 적셔보는 수고로움. 반복되는 일상이며 진전없는 과정이지만 그럼에도 경건하게 하는 의식과도 같은 행동. 아마 모든 노력과 정성은 시안이 그렇게라도 해야만 생명을 유지 같아 하게되는 습관화된 자기위안의 표출과도 같았다.

📖142P_ SNS 접속했을 , 해일은 잔인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친구들은 이상 자신을 좋아하지도 기다리지도 않았다. 증오할 사람이 필요한 사람들이 해일의 공간에서 해일을 짓밟고 있었다.

밖의 세상인 코로나도 그러했고, 아이들이 겪은 프록시모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염병이 시작되던 초기의 슈퍼전파자들은 질타를 받았고 병균을 옮아왔다는 식으로 세상에 유해한 존재로 제대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일상을 삼켜버렸고, 인간관계의 단절과 함께 집단화로 이뤄진 사회를 갈라버렸다. 모든 사건의 근원은 이들이 되어버렸다. 제일 만만한 핑계거리가 겪이다. 이들 때문에 모든 것이 지경이 되었다는 결론이 지어져버렸으니 자취를 감추고 다른 이로 살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그러길 바라는 모두의 바람처럼 보였다.

📖190P_ 차는 엄마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번도 제대로 즐긴 적이 없는데 몫의 한잔으로 약간의 여유와 평화가 생긴 같았다. 향은 선생님과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전체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매일 엄마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 우리던 페퍼민트 . 이제는 엄마의 곁에서 바라보던 시안과 간병인 선생님 앞에 놓여진다. 그간 말하지 못한 속에 담아둔 이야기들. 간병인 선생님에게도 도움이 필요한 아픈 자식이 있음을 먼저 말하며 시안의 마음을 툭툭 흔들어줬다. 오랜 간병의 기간동안 겪었을 수많은 감정들을 서로 공유하며 모든 마음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길 바라신 했다. 자신을 탓하고 스스로를 겨냥하지 않았음 싶어하는 어른이 바라보는 어린 보호자의 불안정한 마음 달래기 같은 시간.

📖191P_ 너무 슬퍼하지 .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거야. 사람은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너는 조금 일찍 하게 거라고 생각해 .

덤덤하고 당연한 삶의 과정처럼 말하는 선생님의 이야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은 늙고 병들게 되어있다. 그게 사람마다 조금 다른 기간을 . 이르다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간이 다른 이들보다 뒤늦게 찾아오기도하며, 단기간에 끝나기도 한다는 . 그저 순간이 다른 것이지 특별함이 없다. 다만 시안에겐 이르고 길게 다가옴을 알리며 시안은 엄마를 먼저 돌보고, 선생님은 아들을 먼저 간병할 뿐임을 확실히 알려주셨다. 돌봄을 받고 자라지만 순간의 기억은 쉽게 증발해버린다. 그러다 손이 누군가게 절실한 필요가치가 있겠다 여겨질 즈음 우린 돌봄이 아니라 간병이라는 다른 단어로 돕게 된다는걸 느낀다. 손길이 제법 쓸모 있어졌다는 사실처럼 여기면 서글퍼질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207P_ 그냥, 순간 흉내내고 싶었던 같다. 보통의 고등학생을. 나도 시간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척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잠깐의 텀을 두고 도착한 아빠의 답장을 보고는 미련 없이 집을 나올 있었다. 허락을 받은 걸로도 충분했다.

특별할 없는 대화들이지만 시안의 입장에서는 맘을 먹은 문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집에서 자고 가도 되냐는 물음인데 질문을 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웠고 자신을 못난 아이로 내몰았을까. 아빠의 답장에 이정도면 된거다 싶은 단념을 하기까지 시안은 얼마나 자신을 찌르고 있었을지.

때로는 세월이 어른을 만드는게 아니라 순간순간 처해진 상황들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하다. 불행이 성급한 성장을 야기하며, 순순히 상황을 삼켜 이르게 어른이 되어버린 시안.

📖220P_ 우리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누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마지막 대화라는 알았다면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엄마는, 우리는,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삶에서 30 미리보기라도 있었다면, 설령 그게 낚이듯 된통 당해버린 예고제라도 있어준다면 일말의 준비라도 할텐데 정말 인생은 얄짤없다. 재난을 준비하기는 커녕 빠릿한 대응이라도 있도록 알게모르게 넌지시 눈치라도 주면 좋겠는데 우리는 그건 낌새를 알아차릴 감각이 없다. 그래서 아쉽고 아리다. 이게 마지막 대화일지 마지막 눈맞춤일지 아무도 몰라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때를 후회한다. 천년만년을 바라지 않는데도 이별은 갑작스러웁고 단숨에 삼켜야했다.

시안의 순간들을 들여다보면 과거의 나와 겹쳐보인다. 어눌하지만 그래도 대화가 되었고, 퉁퉁 불어버리고 윤기를 잃었으나 약하게나마 온기가 있던 이의 손을 맞잡을 때엔 그나마 차도가 있겠지. 더디겠지만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라는 했는데 다급한 이별을 하고나니 모든 순간이 이렇듯 급작스러울까봐 두렵기도 했다. 나에게 만약이 없을까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식의 극적인 반전이 없을까봐 싶은 불안감.

그래도 이건 소설이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뻔하지만 시시하겠지만 그래도 라며 시안에게는 시간이 길면 좋겠단 바람이 생겼다.


📖264P_ 우리는 서루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사람들일지도 모르지만, 미래에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 나았다.

모든 시작은 혜원의 가족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을 마음이었다. 전염병의 시작점은 혜원의 가족이지만 어느새 증발해버린 그들. 남은건 전염되어 후유증을 앓고있는 껍데기만 남은 엄마. 일상을 회복하고 개명까지 과거의 모든것을 지워 멀쩡한듯 살아가는 혜원을 보았을 복잡한 감정과 어린시절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이 뒤엉켜 괴로워하지만 그렇다고 시안은 혜원의 행복까지 갉아먹을 없었다. 혜원의 행복을 덜어낸들 엄마는 달라지지 않음을 아니까.

나의 일상은 이렇게 바뀌었고, 시안은 너와 같은 시대를 살지만 방향은 확실히 달라졌음을 혜원이 느끼게 해주었다. 여전히 혜원이 좋고 행복했던 어린시절을 아는 사람이지만 같이 있을 더이상 행복 없어 각자의 삶에만 집중을 하기로 한다. 때로는 모른척 사는 . 어디서 아주 살고 있겠지 하며 더이상의 안부를 묻지 않고 짐작만 하며 사는 . 그래야 내가 있는 . 시안은 그걸 선택한 걸로 보였다.

지금도 그러한 감염병속 일상. 3년째로 접어든 상황 속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속에서는 끝없는 두려움과 함께 ''보다 '' 무사안일을 간곡히 바라고있다. 이젠 딱히 피할 곳도 없다. 간병인 선생님의 이야기처럼 겪을 일들이라는 . 그게 언제가 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다른이의 간병을 받을 밖에 없는 삶임을 기억해둔다.

시안의 생각과 행동들은 모든 간병인들이 겪을 만한 고민과 감정이었다. 어려서 그럴 있다는 식으로 감정을 하찮게 여겨선 안된다. 모든 인간이면 자신의 삶과 분리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것이고, 뜻하지 않은 감염으로 감염 매체게를 원망하며 그들과 나를 계속 비교하게 것이다. 당연한 마음쓰임이다. 그걸 어떻게 대처하느냐와 마음을 밀어버리고 오늘 내가 바라보는 이를 얼마나 사랑해주고 표현해주어야 하나 싶은 마음분배가 필요해보인다.

모든 분노와 화를 누르고 나는 마음을 다해 후회 없이 이를 사랑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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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저주토끼
정보라 지음 / 아작 / 2017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2022년 부커상 후보 지명으로 다시금 주목받지 않았더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장르. 김초엽 작가 덕분에 한국 과학 소설의 장르라는 재미를 맛본건 사실이지만, 그로테스크적이며 근사한 스릴러라는 역설적인 감상평들로 겁이 많은 쫄보는 시도조차 안했던 작품이다. 그러다 뒤늦게 김겨울작가의 책 소개 영상을 보고 몇 페이지만 읽어보고 무섭고 쫄리면(?) 단박에 포기해야지 싶은 마음으로 시도를 했다.


​결론은 시도는 했으나 중도 포기는 없었다.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하고, 약간 음산하면서도 쌔한느낌이 드는 단편들의 모음이다.(이건 싸하다는 느낌보다는 '쌔하다'경상도 방언이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고싶다) 총 10편의 단편모음이고, 이 책의표지는 2022년 4월 리커버판으로 나온 표지로 초판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초판본 표지보다 이번 리커버판의 표지가 더더욱 이 책의 느낌과 잘 어울렸다.


저주토끼‣ 이건 마치 학교 도서관에서 인기는 없지만 오랫동안 그 책장 한켠을 지탱하고있는 설화의 느낌이 가득하다. 이런건 책표지도 무지 딱딱하고 두껍다.


할아버지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로 시작된 외형만 예쁜 저주토끼. 할아버지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그 친구의 한을 풀어주려는 듯 저주 토끼를 만들어 친구의 경쟁사였던 회사의 가족들을 나락으로 내몰았다. 방식은 정말 토끼스러웠지. 야금야금 찔끔찔끔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걸 폭삭 내려앉게 만든다. 선물을 빙자해 넘겨진 저주토끼는 창고로가서 서류더미를 갉아먹고 회사를 갉아내고, 그 집안 사람들의 명줄까지 갉아먹어버렸다. 그리 된 순간 할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게된다. 타인을 저주하였기에 그 저주를 품고 갈망했던 할아버지 역시 순탄한 죽음을 얻어내진 못했다. 이걸 권선징악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타인이 스스로 죽게 만들 정도로 저주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픈걸까.


할아버지는 단지 정통의 방식으로 해오던 올곧은 술도가 친구가 생을 마감한 것에 애닳던 마음 중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이 집안의 가업이 좀 특이하긴해) 불행하게 살아주길 바랐던 마음 뿐이었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되는거라 가르치고픈 어른들이 만들어낸 설화같지만 잠을 자려고 누우면 요 며칠동안 내가 어떤 이를 미워했고, 어떻게 망하길 바라며 지내왔던가를 되감기 하게 된다. 명치 언저리에 막아둔 미워만 해야하는 마음이 아주 잘 빚어지고 숙성되어지면 불현듯 어딘가 잇닿아 정말로 그리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미워하며 살아야겠단 허망한 바람도 가져본다.


그래서말인데 저주토끼, 저주인형, 그거 진짜 간절하면 될..... 수도 있으려나?


머리‣ 저주토끼는 제목 그대로 저주받은 토끼이거나 토끼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예측이 되지만 '머리'는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다르게 흘러갔다. 그래서인지 단편들 중 가장 영상으로 잘 구현되는 작품이었고, 불현듯 나에게도 머리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변기를 들여다보게되었다.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여기며 읽어도 될텐데 수시로 앉아 속내를 드러내는 변기에 앉았다 일어설때면 장면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단 말이지.


생활밀착형 이야기 소재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나도 궁금했던 이야기였다. 나의 배설물과 오물들, 한때는 나의 일부였던 머리카락뭉치들까지 그렇게 레버 하나를 누른다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빨려나가버리면 다시 멀끔해지는 변기. 한때 나의 일부였던 것들이 떨어져 나간 순간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기피의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것. 결국 나의 혐오를 먹고 자란 머리는 나와 같은, 아니 떨어져나간 그 순간에서 시간이 멈춘듯 지금의 나보다 더 젊고 생기있는 피조물이 되어 되려 늙어버린 나를 혐오하고있다. 한때 나의 분신이었지만 이제는 그 분신의 혐오대상이 되어버린 진짜 나란 존재.


존재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혐오의 대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시 처한 상황에 따라 혐오의 대상은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그대는 일관되며 흔들림없이 특정한 대상만을 혐오하며 기피 할 수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모든 조건이 바뀌더라도 변함이 없을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느끼게 만든다. 결국 또 다른 상황에 놓이면 당신도 모든 이들의 혐오 대상이 되기에 아주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려준다. 과연 이 단편을 읽은 그대들은 변기앞에서 뚜껑을 닫으며 담담하게 나올 수 있을까?


차가운 손가락‣ 사람이 가장 나약해지는 순간을 이용해 내 멘탈을 쥐고 흔드는 기분이랄까? 내가 누군지도, 어떻게 하다 이 사고가 난건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걱정해주는 온화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선인지 악인지도 구분 못할 상황에서 나를 이끄는 친절함. 그게 친절함이라 믿고픈 간절한 내 상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떨림이나 흔들림 없는 상대의 한마디에 곧이곧대로 휩쓸리는 존재.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너는 누구인지, 또 여긴 어딘지도 모르는 이게 현실인지 허망한 망상속인지도 아무것도 확실한게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된거라는거야? 그래서 어둠속에서 알려주는 목소리와 손은 내가 바라는 망상인거야? 아님 잡지 말아야 했을 최악의 선택이라는거야?


아니 이도 저도 아닌 내 안에 또다른 자아라는걸까? 그래서 이건 무엇이라 받아들여야하는거야?


​몸하다‣ 이 단편을 통해 '몸하다'는 단어와 뜻을 처음 익혔다. 진짜 한달에 한번 나를 죽일듯이 쥐어짜고 아프게 만드는 그것이 멈추지 않을 때 나도 피임약을 병원 처방으로 복용해 본 적이 있다. 그러한 흔한 현상을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만들 수도 있구나 싶은 신기한 발상. 피임약의 부작용이 임신이라니. 그것도 약을 잘못 먹어 몸을 돌보지 못한 채 아이가 생겼으니 제대로 된 아이를 만나려면 애 아빠를 뒤늦게라도 만들라는 병원의 답변. 기괴하면서도 다급해지는 주변인들이 더욱 어이없게 만들었다.(신문에 이걸 광고까지 할 줄이야. 대뜸 뱃속의 무성한 존재에게 인간다움을 줄 존재는 남자 사람 뿐이라는거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빠를 만들어야만 온전한 아이로 태어난다는 전문이의 재촉은 어째 아빠 없이 세상의 빛을 보는 아기는 축하받지 못할 생명일 뿐이라는 느낌을 전해주고팠나보다. 의사의 시선과 말투에선 당신은 아이를 품을 수단에 불과한 것이고, 남성이자 아버지라는 존재가 함께여야만 온전한 사람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살아오면서 많은 가족 구성 조합을 만나봤다. 사람 구실 못하는 부모도 많이 봤고, 온전한 가정속에서 계속 어긋나기만한 자식들도 많았다. 한때 방송매체에서 보여주던 단란한 가족이라고 그려냈던 아빠/엄마/오빠/여동생의 조합도 지금생각하면 그냥 다양한 경우의 수 중 일부인데 그게 올바른 해답인양 강요해왔었다. 편부모이든, 조부모의 보살핌이든, 온전한 부모의 아래에서 자라는 자녀이든. 그건 다양한 가족의 형태라는 거지.


남성이 가족 구성원에 존재한다고 핏덩이가 인간화 된다는 과정은 언제 들어도 기괴하며 비 효율적인 생명탄생 과정이다. 이건 마치 남성이라는 인간만 있다면 모든 생명체와 결합하여 인간이 만들어진다는 것과 다를게 뭐 있나 싶은 삐딱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단편속에서 아빠 없이 자라는 아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시선을 받고 자랄지 걱정이 가득해진다.


덫‣ 단편 '머리'로 예습이 되었던 기괴함은 '덫'을 만났을 때 조금 덜 놀라게 해주었다. 하지만 문장을 모아 장면으로 떠올려 본다면 아마 잔인함은 '덫'이 더 강렬했다. 가족도 필요 없다. 당장 쥐어지는 황금이 더 우선이었다. 피를 뚝뚝 흘리는 동물이든, 가족이든, 그렇게 죽어나가는 아내나 아이도 그냥 황금을 얻어내는 것에 대응하는 제물로 여기는 이의 눈빛은 문장에서도 서슬퍼런 모습을 품고 있다. 인간의 물욕은 짐승따위, 가족따위,식인따위 모든걸 뛰어넘는 절대적인 존재로 앞세워졌다. 돈에 눈이 먼다는 것, 돈에 눈이 뒤집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자를 표본삼아 한 말로 정의하고싶다.



열편의 단편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발상으로 시작된 이야기들이 많았다. 내가 자주 접하던 소재의 이야깃거리들이 아니라서 집중해서 읽게 되었고, 그리고 짧은 이야기의 끝맺음속에서 뒷 이야기는 멋대로 상상하며 구현하기에 충분하도록 적절한 시점에서 마침표를 찍어두었더라.


옛날 옛날에~ 로 시작되는 이야기들 중에 은비까비에 나오지 못하고, 배추도사 무도사에서도 다루지 못한 아주 조금 무섭고 어려운 전래동화의 느낌을 주는 단편들도 있었다. 과학소설로 분류가 되어있지만 내가 읽어온 SF소설과는 또 다른 뿌리를 내민 소재였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싶으면서도, 이렇게 되어도 괜찮을까 싶은 걱정도 한웅큼 남겨둔다. 그저 둥글게 살고싶고, 모나는 것 없이 두루뭉술하게 흘러가길 바라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 모든 소재의 이야기들이 현실에 없길, 이후의 삶에서도 나타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해본다.


이제 큰일났다. 변기만 보면 뭐가 꿈틀 올라오는게 아닌지 걱정이 되고, 어두컴컴할 때 불현듯 눈이 떠진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리면 어쩌지 싶고, 낯선이가 건내주는 물건을 함부로 만져선 안될거 같으며, 건물주가 되는게 가정 파탄의 수순이 일반적이구나 여기면 어쩌지 싶은 쫄보의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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