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저주토끼
정보라 지음 / 아작 / 2017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2022년 부커상 후보 지명으로 다시금 주목받지 않았더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장르. 김초엽 작가 덕분에 한국 과학 소설의 장르라는 재미를 맛본건 사실이지만, 그로테스크적이며 근사한 스릴러라는 역설적인 감상평들로 겁이 많은 쫄보는 시도조차 안했던 작품이다. 그러다 뒤늦게 김겨울작가의 책 소개 영상을 보고 몇 페이지만 읽어보고 무섭고 쫄리면(?) 단박에 포기해야지 싶은 마음으로 시도를 했다.


​결론은 시도는 했으나 중도 포기는 없었다.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하고, 약간 음산하면서도 쌔한느낌이 드는 단편들의 모음이다.(이건 싸하다는 느낌보다는 '쌔하다'경상도 방언이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고싶다) 총 10편의 단편모음이고, 이 책의표지는 2022년 4월 리커버판으로 나온 표지로 초판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초판본 표지보다 이번 리커버판의 표지가 더더욱 이 책의 느낌과 잘 어울렸다.


저주토끼‣ 이건 마치 학교 도서관에서 인기는 없지만 오랫동안 그 책장 한켠을 지탱하고있는 설화의 느낌이 가득하다. 이런건 책표지도 무지 딱딱하고 두껍다.


할아버지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로 시작된 외형만 예쁜 저주토끼. 할아버지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그 친구의 한을 풀어주려는 듯 저주 토끼를 만들어 친구의 경쟁사였던 회사의 가족들을 나락으로 내몰았다. 방식은 정말 토끼스러웠지. 야금야금 찔끔찔끔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걸 폭삭 내려앉게 만든다. 선물을 빙자해 넘겨진 저주토끼는 창고로가서 서류더미를 갉아먹고 회사를 갉아내고, 그 집안 사람들의 명줄까지 갉아먹어버렸다. 그리 된 순간 할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게된다. 타인을 저주하였기에 그 저주를 품고 갈망했던 할아버지 역시 순탄한 죽음을 얻어내진 못했다. 이걸 권선징악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타인이 스스로 죽게 만들 정도로 저주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픈걸까.


할아버지는 단지 정통의 방식으로 해오던 올곧은 술도가 친구가 생을 마감한 것에 애닳던 마음 중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이 집안의 가업이 좀 특이하긴해) 불행하게 살아주길 바랐던 마음 뿐이었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되는거라 가르치고픈 어른들이 만들어낸 설화같지만 잠을 자려고 누우면 요 며칠동안 내가 어떤 이를 미워했고, 어떻게 망하길 바라며 지내왔던가를 되감기 하게 된다. 명치 언저리에 막아둔 미워만 해야하는 마음이 아주 잘 빚어지고 숙성되어지면 불현듯 어딘가 잇닿아 정말로 그리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미워하며 살아야겠단 허망한 바람도 가져본다.


그래서말인데 저주토끼, 저주인형, 그거 진짜 간절하면 될..... 수도 있으려나?


머리‣ 저주토끼는 제목 그대로 저주받은 토끼이거나 토끼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예측이 되지만 '머리'는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다르게 흘러갔다. 그래서인지 단편들 중 가장 영상으로 잘 구현되는 작품이었고, 불현듯 나에게도 머리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변기를 들여다보게되었다.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여기며 읽어도 될텐데 수시로 앉아 속내를 드러내는 변기에 앉았다 일어설때면 장면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단 말이지.


생활밀착형 이야기 소재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나도 궁금했던 이야기였다. 나의 배설물과 오물들, 한때는 나의 일부였던 머리카락뭉치들까지 그렇게 레버 하나를 누른다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빨려나가버리면 다시 멀끔해지는 변기. 한때 나의 일부였던 것들이 떨어져 나간 순간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기피의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것. 결국 나의 혐오를 먹고 자란 머리는 나와 같은, 아니 떨어져나간 그 순간에서 시간이 멈춘듯 지금의 나보다 더 젊고 생기있는 피조물이 되어 되려 늙어버린 나를 혐오하고있다. 한때 나의 분신이었지만 이제는 그 분신의 혐오대상이 되어버린 진짜 나란 존재.


존재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혐오의 대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시 처한 상황에 따라 혐오의 대상은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그대는 일관되며 흔들림없이 특정한 대상만을 혐오하며 기피 할 수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모든 조건이 바뀌더라도 변함이 없을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느끼게 만든다. 결국 또 다른 상황에 놓이면 당신도 모든 이들의 혐오 대상이 되기에 아주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려준다. 과연 이 단편을 읽은 그대들은 변기앞에서 뚜껑을 닫으며 담담하게 나올 수 있을까?


차가운 손가락‣ 사람이 가장 나약해지는 순간을 이용해 내 멘탈을 쥐고 흔드는 기분이랄까? 내가 누군지도, 어떻게 하다 이 사고가 난건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걱정해주는 온화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선인지 악인지도 구분 못할 상황에서 나를 이끄는 친절함. 그게 친절함이라 믿고픈 간절한 내 상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떨림이나 흔들림 없는 상대의 한마디에 곧이곧대로 휩쓸리는 존재.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너는 누구인지, 또 여긴 어딘지도 모르는 이게 현실인지 허망한 망상속인지도 아무것도 확실한게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된거라는거야? 그래서 어둠속에서 알려주는 목소리와 손은 내가 바라는 망상인거야? 아님 잡지 말아야 했을 최악의 선택이라는거야?


아니 이도 저도 아닌 내 안에 또다른 자아라는걸까? 그래서 이건 무엇이라 받아들여야하는거야?


​몸하다‣ 이 단편을 통해 '몸하다'는 단어와 뜻을 처음 익혔다. 진짜 한달에 한번 나를 죽일듯이 쥐어짜고 아프게 만드는 그것이 멈추지 않을 때 나도 피임약을 병원 처방으로 복용해 본 적이 있다. 그러한 흔한 현상을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만들 수도 있구나 싶은 신기한 발상. 피임약의 부작용이 임신이라니. 그것도 약을 잘못 먹어 몸을 돌보지 못한 채 아이가 생겼으니 제대로 된 아이를 만나려면 애 아빠를 뒤늦게라도 만들라는 병원의 답변. 기괴하면서도 다급해지는 주변인들이 더욱 어이없게 만들었다.(신문에 이걸 광고까지 할 줄이야. 대뜸 뱃속의 무성한 존재에게 인간다움을 줄 존재는 남자 사람 뿐이라는거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빠를 만들어야만 온전한 아이로 태어난다는 전문이의 재촉은 어째 아빠 없이 세상의 빛을 보는 아기는 축하받지 못할 생명일 뿐이라는 느낌을 전해주고팠나보다. 의사의 시선과 말투에선 당신은 아이를 품을 수단에 불과한 것이고, 남성이자 아버지라는 존재가 함께여야만 온전한 사람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살아오면서 많은 가족 구성 조합을 만나봤다. 사람 구실 못하는 부모도 많이 봤고, 온전한 가정속에서 계속 어긋나기만한 자식들도 많았다. 한때 방송매체에서 보여주던 단란한 가족이라고 그려냈던 아빠/엄마/오빠/여동생의 조합도 지금생각하면 그냥 다양한 경우의 수 중 일부인데 그게 올바른 해답인양 강요해왔었다. 편부모이든, 조부모의 보살핌이든, 온전한 부모의 아래에서 자라는 자녀이든. 그건 다양한 가족의 형태라는 거지.


남성이 가족 구성원에 존재한다고 핏덩이가 인간화 된다는 과정은 언제 들어도 기괴하며 비 효율적인 생명탄생 과정이다. 이건 마치 남성이라는 인간만 있다면 모든 생명체와 결합하여 인간이 만들어진다는 것과 다를게 뭐 있나 싶은 삐딱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단편속에서 아빠 없이 자라는 아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시선을 받고 자랄지 걱정이 가득해진다.


덫‣ 단편 '머리'로 예습이 되었던 기괴함은 '덫'을 만났을 때 조금 덜 놀라게 해주었다. 하지만 문장을 모아 장면으로 떠올려 본다면 아마 잔인함은 '덫'이 더 강렬했다. 가족도 필요 없다. 당장 쥐어지는 황금이 더 우선이었다. 피를 뚝뚝 흘리는 동물이든, 가족이든, 그렇게 죽어나가는 아내나 아이도 그냥 황금을 얻어내는 것에 대응하는 제물로 여기는 이의 눈빛은 문장에서도 서슬퍼런 모습을 품고 있다. 인간의 물욕은 짐승따위, 가족따위,식인따위 모든걸 뛰어넘는 절대적인 존재로 앞세워졌다. 돈에 눈이 먼다는 것, 돈에 눈이 뒤집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자를 표본삼아 한 말로 정의하고싶다.



열편의 단편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발상으로 시작된 이야기들이 많았다. 내가 자주 접하던 소재의 이야깃거리들이 아니라서 집중해서 읽게 되었고, 그리고 짧은 이야기의 끝맺음속에서 뒷 이야기는 멋대로 상상하며 구현하기에 충분하도록 적절한 시점에서 마침표를 찍어두었더라.


옛날 옛날에~ 로 시작되는 이야기들 중에 은비까비에 나오지 못하고, 배추도사 무도사에서도 다루지 못한 아주 조금 무섭고 어려운 전래동화의 느낌을 주는 단편들도 있었다. 과학소설로 분류가 되어있지만 내가 읽어온 SF소설과는 또 다른 뿌리를 내민 소재였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싶으면서도, 이렇게 되어도 괜찮을까 싶은 걱정도 한웅큼 남겨둔다. 그저 둥글게 살고싶고, 모나는 것 없이 두루뭉술하게 흘러가길 바라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 모든 소재의 이야기들이 현실에 없길, 이후의 삶에서도 나타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해본다.


이제 큰일났다. 변기만 보면 뭐가 꿈틀 올라오는게 아닌지 걱정이 되고, 어두컴컴할 때 불현듯 눈이 떠진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리면 어쩌지 싶고, 낯선이가 건내주는 물건을 함부로 만져선 안될거 같으며, 건물주가 되는게 가정 파탄의 수순이 일반적이구나 여기면 어쩌지 싶은 쫄보의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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