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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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은 M이모로부터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 이모는 아니지만 마음이 가던 사람. 그래서 대화를 하다보면 더욱 마음이 가는 관계들이 있다. 이 곳으로 이사를 오게된 이유도, 그녀의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지. '아주 재미있는 동네야. ... 언제 너도 한번 놀러오렴. 좋아할 것 같은데'라는 말은 몇달 후 진짜 작가의 동네로 이사를 오게 만들었다.

폭이 좁은 골목과 낮은 집들. 개 두마리가 성곽길을 따라 사이좋게 뛰어다니고, 폭우가 그치면 성곽 위로 솟은 나무들 사이에서 새들이 부산스럽게 지저귀고,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평상이나 골목의 벤치에 앉아 볕도 쬐고 적적한 서로의 일상에 말벗이 되어주는 동네.

어쩌면 이 모습들은 잊고 살아왔고 더이상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같은 동네의 모습을 닮아있다. 큐브조각들처럼 쌓아올린 아파트촌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풍경과 마음들이 모여있는 곳. 작가는 교통이 편리하고 다양한 문화생활이 가능한 곳이 아닌 이 동네를 택했다. M이모가 마지막으로 머문 이 곳이라면 자신의 마음에도 제대로 쉬게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거겠지?



마당 없는 집_ 생의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각각의 것들이 자라나면 자라나는 대로 그냥 두고 보는 것. 이것이 게으른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원예 방식이다.

마당이 없는 주택이지만 옥상이 있는 주택이기도 하지. 애초에 품었던 원대한 텃밭 농부의 꿈은 이루지 못 할 지라도 작약과 장미. 몇 종류의 허브와 딸기, 대추토마토를 보면 고작? 이라는 생각도 하겠지만 옥상 농부는 그 마저도 행복이고, 이름모를 무성하고 푸르른 잡초 또한 나름의 싱그러움을 주는 눈요기의 새로움이라 해두고 싶다. 쟤네들도 이름이 있겠지만 우리가 모를 뿐이고, 바람에 날려온 씨앗일수도 있고, 새가 몰래 물어다놓고 갔을 수도 있는 작은 흙더미. 거기에 바람과 빗물이 키운 풀들이라 생각하면 이 녀석의 삶의 의지는 몹시 대단하고 박수받아도 될 만한 가치있는 삶이겠더라.

마당이 없는 집이지만 작은 화분들이 있고, 화분들에 화려한 꽃나무들은 없더라도 큰 관심 없이도 잘 자라주는 이름모를 풀꽃들의 대견함도 가진 곳이다. 멀리 차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보이는 산의 풍경은 사계절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않는 것 만으로도 여기 오길 잘했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듯 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머리속에 존재하는 형상이 있다. 꽃은 꽃집에 가야하고, 과일을 직접 따먹는 즐거움은 체험 농장에만 가야 된 다는 생각들. 내 손을 뻗었을 때 쉽사리 닿을 곳에 이러한 것들이 있다는 생각하면 마당없는 집은 마당만 없는 집이란 결론을 내어보며 나를 더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만들게 해주었다. 나도 마당없는 집을 찾아봐야하나?


슬픔이 가르쳐준 것_ 사람들이 그토록 서투른 말들을 건네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겐 봉봉이라는 친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살고있는 존재가 있다. 작가의 삶 일부를 함께한 봉봉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의 초입에 나온 M이모 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임이 확실해보인다. 사는 데에 일밖에 모르던 나의 절친한 P를 보아도 그녀의 존재속에 개는 반려동물 그 이상의 의미로 크게 자리잡고 있더라. 때때로 내가 놀리듯 개가 분리불안이 온게 아니라 견주가 분리불안으로 난리친다고. 걔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텐데 애닳는 맘은 알겠지만 어지간히 하라며 잔소리하기도 했던 나였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에도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해 안타까워한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이 생명을 두고 멀리 갈 수 없다며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는 대신 자신의 차까지 배로 싣고 제주일주를 한다고 했다.

내가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고, 아직 키워 본 적이 없다보니 그 친구들이 주는 사랑의 크기도 가늠이 안되긴 한다.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랑에 대한 교감은 사람 대 사람으로 이뤄지는 것과 또 다른 동물과 사람간의 큰 마음의 울림이 있겠지. 사랑도 줬고 슬픔도 다 주고간 봉봉. 봉봉 덕에 작가는 위로가 주는 단어의 크기와 무게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모두 이별에 대한 위로를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겪어는 봤을 테지만 모두가 그 일에 대한 당사자가 아니니 우린 모두 짐작만 해 볼 뿐이다. 가늠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려운 슬픔의 깊이이니 선배들은 경사보다 조사에 더더욱 빠지지 않아야한다고 했고, 위로랍시고 아무말이나 늘여놓지 말고 그냥 진득하니 앉아있고 머물러주라고 했었나보다.



마흔 즈음_ 진짜 생일이 아닌데도 생일상을 준비해준 할머니와 가짜 생일파티가 뭐냐고 타박하는 대신 친구들 편에 기꺼이 선물을 들려 보내준 친구들의 보호자가 지닌 다정한 마음에 대해서 이따금 나는 생각해본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내가 여전히 인간의 선의를 믿고 있는 건 이런 기억들이 내 안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따수운 사람들 속에서 자란 사람이었기에 작가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선한 시선과 반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구나. 역시나 좋은 사람들 곁에 있다면 나 역시도 자동으로 물들어 간다는게 정말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글 이었다.

가짜 생일 파티라니! 그런데 모여든 마음과 축하의 한마디들은 가짜가 아니라 더욱 마음 몽글몽글해진다.

나의 생일도 애매하고 어수선한 친구관계로 눈치게임하는 학기초라 태어나서 생일파티는 딱 한번 했던걸로 기억한다. 생일파티에 초대는 많이 받아봤어도 정작 내가 주인공이 되던건 진짜 손가락에 꼽히는 것. 친구관계가 넓과 활달한 편도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을 빌려서 많은 친구들과 테이블을 붙여 생일파티하던 게 셈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80년대 후반 태생들은 알거다. 롯*리아에서 생일파티 예약을 하면 거기 직원 언니 오빠들이 풍선도 불어서 벽에 붙여놔주고 인원수에 맞춰서 길게 테이블을 붙여서 햄버거를 케익처럼 쌓아주는게 그 시절 최고의 파티 룸이었다.)

그러한 서운함을 어른들이 헤아려주고 가짜 생일파티라는 설명에도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해주라고 아이들에게 눈을 맞춰가며 따숩게 이야기 했을 것을 떠올려보면 마음의 울림은 크고 화려한 물질보다는 진심이 그득히 품은 그 마음 자체 라는걸 다시한번 느낀다. 가짜 생일파티에 참석한 진짜 친구들은 지금 작가처럼 다들 마흔 즈음이 되었을텐데 그들의 아이들이 이러한 가짜 생일파티를 하게된 친구가 있다하면 똑같이 이야길 해주겠지? 선한 마음과 고운 시선은 내리사랑과 같은 결이니 미루어 짐작해더라도 오차없이 다 같은 맘일거라 확신을 하고싶다.



사람의 마음에는 눈에 띄진 않지만 고유의 결과 길이 나있다. 손끝에 살짝 스치기만해도 아리도록 상처를 내는 사람이 있고, 계속 쓰다듬고싶어지는 여리고 풍성한 모질로 기분좋아지게하는 사람의 마음. 직접 손으로 느낄만큼의 직관적이진 않지만 우리는 안다. 손끝의 촉감만이 이 감촉을 느낄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는 참 부드럽고 포근해지는 마음을 갖고 있다. 어쩌면 봉봉의 등털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은 짐작도 해본다.

전단지를 붙이러 이 동네까지 걸어 올라와 잠시 한숨을 돌리는 이에게 물이라도 건네주지 못한게 내심 미안했다는 생각. 길에서 파지줍는 노인에게 우리집에 종이 많다며 약속시간을 잡아두고 챙겨주는 발걸음. 집을 수리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노고에 감사함을 챙겨주고파 봉투에까지 가지런히 넣어두는 정성. 자신의 슬픔이 채 아물진 못했으나 동네 지인의 강아지를 맡아서 챙겨주는 시선. 눈이 가득 쌓인 집앞을 치우기 전에 작은 눈사람 하나를 챙겨놓고 시작하는 마음만은 아직 어린이인 다큰 어른.

곁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같이 물들고, 동요되어 기분좋아질 듯한 존재. 물질적인 아름다움보다 사람의 행동하나하나가 어여삐 보일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것들이다. 악하고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하는 삶 속에서 참 예쁘게 자란 어른의 마음을 보았다. 진득하니 주변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이 감정이 행복의 또다른 감각임을 배웠다.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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