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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녹음 중 - 노래와 웃음이 함께하는 티키타카 부부의 일상
인생 녹음 중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평점 :
품절

재미난 에세이를 만났다. 아마 작년 여름 즈음이었지? 남편이 보여준 영상이 하나 있었다. 남편이 말하길 쌀알같은 부부인데 하는짓(!)이 꼭 우리같다는 말과 함께 귀엽고 웃긴게 꼭 나같다는 말을 하며 보여준 것들. 나는 남편에게만 한정적인 또라이기질(?)이라 할 만큼 엉뚱하고 기발하고 괴짜같은 면이 존재했기에 어떤 말을 하는지 대충 감이 오더라. 차 안에서 하는 이야기와 집에서 식탁에 마주앉아 하는 이야기들이 으레 하고있는 부부의 일상적인 이야기와 함께 무해하고 다정한 면들이 많이 보여서 좋았다. TV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SNS 쇼츠에 보면 이혼을 하니 마니로 안 좋은 영상들만 가득한 세상인데 이렇게 달달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면이 보이니 좋더라구. 나는 이런 잔잔한 바이브가 좋은 사람인걸 한번 더 느끼며 이 부부의 에세이가 나온다 하길래 알라딘으로 사전 예약까지하며 받아서 단숨에 후루룩 읽어버렸다.
아내는 경영학, 남편은 디자인계열. 이것부터가 우리 부부랑 많이 닮아있더라. 어째 전공까지 똑같은가 싶으면서도 11년차인 우리 부부 못지 않게 7년차이며 아직 둘이 살고있는 티키타카 부부. 일상의 대화와 차 안에서 하는 이야기와 노래 따라 부르기. 우리만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이 부부들도 그리 살고 있었어. 우리만 특이한게 아니라는 생각을하면서 영상으로 봐 왔던 것들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에세이도 읽어갔다.
일명 '결혼 장려 영상'이라는 유튜브 채널 답게 단짠단짠한 현실에서도 하루치 웃음만큼은 꼭 붙들어온 부부만의 행복 실마리의 모음. 여기에는 가슴 찡한 프러포즈와 함께 결혼식 준비과정, 사는게 만만치 않다만은 그럼에도 의지하며 살아내는 순간들, 서로 다르게 살아왔던 이들이 함께 맞추어 사는 방법, 그리고 함께 하는 것에 기쁨을 찾는 방식까지. 총 4장의 이야기들은 영상에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들까지 틈틈이 채워져있어 구독자들 뿐만 아니라 이제 막 관심이 가는 분들까지 쉽게 후루룩 읽어 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드라마 속 아침처럼_ 시답잖은 이야기도 있지만 가끔은 이 시간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가 오갈 때도 많다.
미국 드라마 속 아침 풍경이 부러워 시작된 그들의 모닝 티타임. 내가 일찍 출근하다보니 매일은 아니고, 주말 아침에 이뤄지는 홈카페로 비슷하게 이야기의 시작을 틔워본다. 주방 블루투스에 음악을 틀어두고 그날그날 다른 핸드드립 커피에 빵순이 와이프가 좋아하는 디저트들을 꺼내놓고 여유를 부려보는 시간. 8인용 긴 식탁에 굳이굳이 둘이 들러붙어서 커피잔 보고 멍때리기도하고 베란다에서 스며드는 햇살이야기로 시작하는 날씨이야기까지. 부부라고 매일매일 미주알고주알 이야길 할 순 없다. 더군다나 맞벌이 부부라면 더 그러하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메신저로 해도 되겠지만 그러한 방식보다 얼굴보고, 눈빛 읽어가며 하는 이야기가 좋다. 목소리로 전해지는 내용에 그가 바라는게 무엇인지 읽어낼 눈빛과 표정까지 얻어가는 과정. 연애를 그렇게 오래하고, 결혼생활을 제법 길게 해왔지만 내가 당신이되고, 당신이 내가 될 순 없으니까. 매번 그렇게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상대의 진심을 찾아가는 순간을 마련해보는거지.

📖건강한 마음은 집밥에서부터_ 우와! 맛있겠다! 잠깐, 이건 사진으로도 남겨야겠어.
집밥을 강요한 부모도 없었고, 집밥을 중요시여기는 남편도 아니었다. 나는 근무시간 이외에 출퇴근 시간도 남편보다 곱절로 긴 상황이라 집밥보다는 고생 덜 하게 배달이나 나가서 먹는걸 말하는 남편이다. 헌데 내가 자처하는 집밥의 삶이다. 한 끼라도 제대로 먹고싶고, 행복하게 먹고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아침은 출근하는 차 안에서 쉐이크나 과일로, 점심은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그러니 저녁만큼 소중한 한 끼가 없다. 오랜시간 식당일을 해오신 친정엄마의 솜씨를 완벽하게 닮지는 못했지만, 어깨넘어로 배운 것 + 맞벌이 부부의 딸로 살면서 일찍 주방일에 뛰어든 것. 그리고 이쁘게 차려먹고싶고, 맛있는걸 갈망하는 먹순이라 SNS를 통해 습득하게된 잔지식이 오늘날 집밥 만렙의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가리는 것 없고, 까탈도 없는 사람이라 뭘 해주면 다 잘 먹는 사람. 그래서 남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몇년동안 집밥 사진으로 빼곡하게 채워져있다. 귀찮아서 매일매일 업로드 못하는게 문제이긴 하다. 아무리 맛있게 한들 잘한다고 칭찬과 응원을 해주는 사람의 말 한마디와 리액션, 싹싹 긁어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없다면 주방일도 빨리 흥미를 잃었을지 모른다. 역시나 한 사람만 신난다고 행복한게 아닌가봐. 즐겁헤 해주고, 행복하게 받아들여주는 이른바 쿵짝이 잘 맞아야 한다는 걸 나의 경우도, 여기 티키타카 부부에게도 해당이 되니 이렇게 밥을 짓게되나보다.

📖저희 부부도 싸우다마다요_ 다시 연결하고 화합하려는 모든 행위는 선한 쪽이다. 우리는 산과 악 사이 중간 어디쯤 불확실한 곳에서 선해지고자 애를 쓰는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모난 곳을 부드럽게 다듬어 잘 덮어주어야 한다.
타고난 성향과 기질이 있다. 거기에 윤활제 같은 융통성도 포함이다. 싸워서 이겨먹을 생각이 없는 사람과 어떻게는 내 화를 표출해서 해소하려는 사람의 대면. 뭐가 이길까? 한껏 위협적인 상태로 몸을 불려 이른바 래서판다가 화내는 몸짓을 하더라도 상대가 한없이 귀여워하거나 화를 돋울 만큼 맞받아치는 능력을 빗겨가버리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연애때도 그랬고, 결혼생활에서도 큰소리가 안 난다. 잘못을 빨리 인정하는 편. 그리고 싸워봤자 마음만 상하니 해결책을 먼저 모색하는 방식. 남편 말이 맞더라. 싸워서 뭐할거냐고. 그래봤자 마음만 상하는데. 휘어지기 보다 부러지는 편을 선택해온 나같은 사람이 무조건 옳지 않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 부러지기보단 살짝은 느슨해지며 그 찰나동안 다른 방식으로 나와 상대 모두 다치는 일 없이 유순하게 해결해가는 방식을 가르쳐준사람. 그러고보면 똑같은 성향이라 생각했는데 은근 다른 면이 많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_ 남편에게는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다.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매일 아침, 관심을 듬뿍 담은 눈으로 상대를 관찰하면서 시작된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와 칭찬을 식물에 물 주듯 흘려 넣는다. 내가 뾰족하게 가시 돋친 말을 할 때에도 한결같다. 억센 채소를 약불에 푹 삶고 조리듯 나를 안고 달랜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내 마음도 찜기 속 숨이 팍 죽은 양배추처럼 야들야들하고 투명해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대문자F라 했지만 정작 나는 대문자T인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후하지 못하며 나를 갉아먹어 사는 사람. 한결같이 반듯해야하는 삶을 살다보니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 속이 곪아있다. 헌데 배우자는 나와 반대의 성향이라는 점. 그 면들 덕에 내가 지치지 않고 살아감을 느낀다. 칭찬에 인색한 나에게 한 없이 예쁘다 해주고 잘한다는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도전에 망설일 때 일단 해보라며 뒤에서 지켜봐주는 캐릭터. 자전거도 이 사람에게 처음 배웠던 것 처럼. 뒤에서 잡아 줄 테니 일단 가보라는 말로 돌아갈 곳을 마련해주는 존재.
저자가 말한 한결같은 사랑에 집중적 노출 효과. 이런게 아닐까. 어린시절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의 허기. 성장과정에서 얻어내지 못했던 자존감. 그걸 이 나이에 얻어내다보니 이러한 감정을 겪게 해주는 사람에게 더 잘 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된다. 역시나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상대를 더욱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며, 그 사람 옆에 있어도 내가 부끄럽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쓰게 만든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조언_ 누구의 조언도 듣지 마세요.
다 같을 순 없고, 다 내맘 같지 않다는 걸 많이 깨우치던 결혼준비과정. 나는 또래에 비해 조금 이른 결혼이었다. 20대 중반에 결혼했음에도 이른 편이었다. 대학 동기들 중에서도 두번째였고, 그 즈음 회사 여직원 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놈이 가장 먼저 청첩장을 돌리는 걸로 이목을 얻었다. 그러니 세상 떠들석하고 화려하고 특별하게 하고팠으며 어떤 이들에게 조언을 받더라도 또래가 아닌 적어도 10년 이상 차이나는 직장인 선임이나 SNS에서 밖에 얻을 수 없었다. 왜 하냐는 말부터, 조금이라도 늦게 해라,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른다, 다이아 프로포즈는 받았냐, 명품 가방은 당연히 받고 가는거 맞지? 집은 해온대? 라는 말로 사람의 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아니라 부의 척도를 물어보는 사람들. 그시절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명품 가방보다는 나랑 같이 가주는 공연이나 책방 데이트로 돈 써주는게 더 좋았고, 한쪽이 오롯이 감당하는 집보다는 각자 번 돈 모아서 대출 없이 작은 집에서부터 내 명의로 시작하는게 더 뿌듯한 사람이었다. 부모에게 손 벌리기 보다 떳떳하게 내가 번 걸로 기댈 구석 안 만드는게 후련했던 사람. 스드메의 화려함? 우리부부는 첫 만남이 내 첫 직장이었던 웨딩홀 직원과 웨딩스튜디오 포토그래퍼의 만남이었기에 그 허울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간단하지만 딱 해야 할 것만을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고보니 재력 줄재기나 기싸움 모두 그들의 입맛에 맞춰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역할 분배부터 경제권 쥐기도 그러했다. 둘이 사는데 니꺼 내꺼 하다보면 싸움나기 딱 좋고, 엉덩이 가벼운 사람이 먼저 하는게 속편한 내 성향과 받았으면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의 빠릿한 눈치로 한 사람이 음식하면 정돈은 상대가 해주었고, 빨래 개어 차곡차곡 쌓아두면 어느새 다가와 아코디언처럼 주르르 쌓아 턱으로 받치고 한달음에 옮겨주는 쿵짝맞는 삶의 바통넘기기. 이러한 방식은 아무도 조언해주지 않았다.
그래, 지들이 나랑 살거 아닌데 저 인간들 말 들어봤자 뭐하겠어. 나는 나대로 사는거지!

📖잠자리에 들며_ 함께 한 오늘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함꼐 나눈 웃음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내일은 얼마나 더 큰 기쁨으로 가득찬 하루가 될지를 이야기한다.
휴대폰 없이 잠들기로 했던 이 부부는 잠들기까지 그 공허한시간을 제법 다양한 방법으로 채워갔다. 남편이 말도안되는 구연동화를 해 주었던 파트가 있는데 티키타카 부부의 상상력으로 뻗어간 고등어이야기가 있었다면, 우리집 양반은 휴대폰 불빛을 천장으로 쏘아 손가락으로 그림자 놀이를 해주는 날들이 있었다.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꿈찔꿈찔 놀라며 깨는날이 이어지던 어떤 날엔 자기전에 손그림자 놀이로 비둘기며 강아지며 토끼를 만들어 꿈속에서 동물들이랑 놀고있으라며 우리 엄마아빠도 안 해주던 잠자리 동물극을 꾸려주기도 했다.
여기저기 알게 모르게 비공식적인 잠데르센 양성소가 있는건가 싶은 남편들의 극한 N잡 후기를 보면 남편들은 아내랑 사는게 아니라 다 큰 딸 하나를 장모에게 인계받아 키우고 있는건 아닌지 비질비질 웃음을 흘리게된다.
아내와 남편이 직접 쓴 40여 편의 일상 기록은 언제든 꺼내보려고 진즉 적어두었던 일기처럼 보이기도하고, 아직 업로드 되지 않은 영상꾸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잘 적혀있다. 잘 살고있고, 많이 행복하다며 미사여구를 줄줄이 꿰어가며 적어둔 글이 아니라 적당히 담백하고 적당히 단맛이 도는 사람 사는 이야기라 어느 파트를 펼쳐 읽더라도 자극적이지 않아 좋았다.
거기다가 단순하지만 귀엽고, 담백하지만 오래 여운이 감도는 그림체는 영원히 얼굴 공개 없이(?) 이렇게 환상에 젖게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판타지적 요소가 곁들여져있기도하다. 아내덕후로 영상 계정을 담아두던 저자인데, 그러고보면 내 블로그는 일정부분 남편덕후로서의 기질이 다분한 사진과 글들이 있는거 같아 가수 덕질 이전에 남편덕질력이 충만한 본투비 덕후의 삶 처럼 여겨지기도한다.
우리 부부는 5년의 연애 + 결혼 11년차의 부부다. 결혼을 한 후 이듬해 부터 블로그를 통해 야금야금 써온 나의 일주일치 일상 이야기. 그래봐야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평범한 직장인 나부랭이의 일과인데 틈틈이 섞여있는 일상이야기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읽어봐주시고(매주 화요일 오전 8시 자동 업로드. 웃긴건 업로드 되자마자 조회수가 쭉쭉 올라가는게 신기한 구경거리라는 점) 아직도 신혼처럼 살고, 사는게 행복해보인다는 이야길 많이 들어왔다. 연애 할 때는 닮았다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어왔고(둘다 얼굴이 순박한 곰상이라 했다) 둘이 살면 싸울 일도 없어 보인다는 무서운 소리도 들었다. 싸울일이 왜 없겠는가. 헌데 한 사람이 아르르 거리며 성난 시츄처럼 짖어대도(=나) 다른 한 사람이 만물을 꿰뚫어보듯 선한 보살의 표정을 지으면 도무지 전투력이 샘솟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의 톤만 들어도 단박에 알아차리고 모르게 하고싶어도 숨길 능력을 상실해버린 이 사람과의 사는 재미. 나는 결혼 잘 한거 같은데, 당신은 망해서 어쩌냐고. 그러면 남편은 거기에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한다. 장모님이 반품은 받아주는데 환불은 안된다고 했으니까 어쩌겠어. 내가 고쳐써야지 라는 말로 나랑 사는 것에 책임감(!)을 갖고 데리고 살기로 했다며 셀프 토닥토닥 거리는 어이없고 웃음이 새어나오는 사람과의 관계.
30년 가까이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만나 결혼해 이해 못할 것들 투성이 이지만 그럼에도 맞춰 사는 재미. 싫다고만 하기보다 덕분에 새롭게 해볼 기회가 많아 진 걸 복이라 여기며 사는 약간은 무던하고 또 조금은 긍정적인 사람의 에너지.
우리는 녹음이라는 좋은 아카이브 방식을 놓치긴 했지만 일상 이야기에 끼워보는 사진과 함께, 내가 주르르 적어두는 글들로 우리만의 애틋한 이야기를 촘촘하게 채워보고 가득히 담아놓는걸로 그렇게 쭈욱 살고싶어진다.
우리도 우리 나름의 인생 기록을 하고있었던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