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이제서야 읽었나 싶은 글들. 짧은 호흡이지만 읽고 난 후엔 깊게 몰아쉬게되는 한탄. 나도 결국 이러한 인간들 중 하나겠지 라는 씁쓸함.


📖무인도의 부자 노인_ 통조림 몇 개 때문에 한 노인을 죽이려고 했을 때, 저희는 짐승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을 살려주고 나니, 그제야 저희는 사회 속에 사는 인간이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살았습니다.

다들 알고 있었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사실. 아마 저 노인은 구조가 되어도 일상으로 복귀 하더라도 여기서 약속한 금액을 치르지 않을 거라는 것. 당장의 신변 위협을 막기 위한 급급한 대응이었다. 아무런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자신이 부자인지 아닌지 어찌 알까. 그러니 나같아도 저렇게 살고자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며 암암리의 눈감아주기가 아니었을까를 가늠하게된다. 그 노인이 내가 되지 않을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 거짓말이 사람들을 살렸고, 그 거짓말이 헛되더라도 살아서 나갈 구실을 마련해두었다.


📖낮인간, 밤인간_ 인류는 여전히 낮인간이고 밤인간이었다.

밤에 좀비로 변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낮인간이었고, 낮에 좀비로 변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밤인간이었다. 서로를 나눈 경계선은 사라지질 않았고, 서로를 향한 적대심도 사라지질 않았다.

나와 같지 않음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는 것. 교류가 없음에도 단지 나와 같은 결을 띄지 않는 것 만으로도 부정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 사람의 본성이라 하기엔 너무 악랄하고, 사회화가 인간을 이렇게 변화되게 했다 하자니 모든걸 세상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 씁쓸해지는 인간관계의 방식.

여기엔 단순히 낮인간과 밤인간으로 크게 나누어 두었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별 시덥잖은 것으로도 선긋기를 하고있다. 자신이 정해둔 선 넘어에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배척하고보는 행태. 그렇게 수 많은 선을 긋다보면 자신이 그어둔 선에 언젠가 자신도 밟히게 되는걸 모르는 거겠지.

📖신의 소원_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인간처럼 똑똑해졌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소원이었다. 잭, 마르크스, 김군, 스크류지가 못미더운 이들은 그들을 죽였고, 마지막이라 했던 희망의 아이의 소원은 이와 같았다. '인간처럼 똑똑졌으면 좋겠다?' 인간.... 처럼? 그 똑똑하다는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조건과 다른 이상을 갖고 있기에 나 이외엔 모두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생명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똑똑했던 걸까? 그 모든 예상 답변을 제외하고 마지막이라 여겼던 소녀의 대답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소원이라 여긴걸까? 모든 것들이 인간처럼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이건 소원이 아니라 또 다른 재양의 시작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나도 인간이지만, 살면서 가장 무서운건 '인간 처럼-'으로 시작되는 말 이니까. 당신이 아는 것보다,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기대치를 낮춰야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확률. 암튼, 나는 그러한 확률로 사는 인간 중 하나라 그런지 천진난만한 소녀의 소원은 가장 리스크가 큰 소원이라 생각하게된다.(삶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보는 나의 견해는 이러한데, 긍정적인 사람이 이 단편을 본다면 이 소원이 가장 확신에 찬 답변으로 여길수도 있겠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그게 이 단편이 주고픈 이야기로 보였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_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무엇이든 차별을 하는 것들은 희대의 몰상식한 것들이고, 매장당해 마땅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세상에 모든 차별이 사라졌다는 말을 끝으로, 나와 다름에 놀리는 사람도 없으며, 스스로를 창피해하지도 않는 방식. 그냥 별것 아닌 당연한 일이라 했으나 절대 당연할 수 없는 현재를 기분좋게 비꼬고있다.

사회가 잘못했고, 비선 실세의 비리가 이유였고, 인류는 아무 죄가 없다. 단지 그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을 뿐이고, 차별과 멸시를 받을 근거가 없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차별을 하는 자가 벌을 받는게 당연하며 그 마음가짐 또한 엄중히 처벌해야하는 비뚤어진 성향임을 밝혔다. 그런데 우린 알면서 못한다. 아는데 못하는게 더 나쁜거 맞지 않나? 비교의 문제, 다름의 인식, 타인보다 우월한 것에서 오는 쓸모없는 자존감. 우리도 가능은 하겠다. 단지 제 머릿속으로는 수만가지 생각을 하더라도 별 신경 쓰지 않을테니 입밖으로 꺼내지도, 눈으로 타인을 훑지도, 손가락으로 특정인을 찔러 주목시키지만 않으면 된다. 제 몸 하나 제어 못하는게 가장 큰 문제겠지.


📖인간 재활용_ 죄송합니다. 참, 아쉽게 됐습니다.

돈이 많다고 인생의 운 마저도 많이 가졌다 할 수 없었다. 두석규 회장은 불의의 교통사고가 나 사망한 딸을 살리려 한다. 타인의 시체들을 조각해 관에 넣어 주술을 걸면 다시 환생 할 수 있다? 헌데 그 확률은? 그렇게 3분의 1의 확률, 7분의 1의 확률, 23분의 확률, 또 안되면 그보다 더한 경우의 수를 덧덴 확률. 그 많은 확률의 1이 되지 못한 딸의 조각난 시체는 또 그렇게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또 조각이나 더 많은 확률 중 하나의 환생을 바라게된다. 끌려오든 죽여오든 다른 시체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리고 그들 속의 사정은 모른채.

조각나고 뜯기고 형체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살리고픈 부정이야 오죽하겠냐만 그렇게 해서 살린들 감사하다 여기게 될까? 자신의 유일한 신체는 한줌 뿐이고 다른 이들의 것으로 얻어사는것. 일단 뺏기지 않고픈, 다 움켜쥐어야 속이 시원한 아빠이기 이전에 다 끼고 살아야하는 재력가의 선을넘는 욕심이겠지.

📖흐르는 물이 되어_ 뭐야? 과부하가 걸려도 폭발해도 별거 아니잖아? 얼른 공장을 복구해서 다시 가동해야지!

인류의 욕심. 의존하게되는 상태. 생의 유일함이라 여기는 기대치. 별거 아니라 여기는 확고한 믿음. 자신이 온전히 깨끗해 질 것이라 여기는 자기중심적 사고. '나'만 깨끗하게 정화되는게 아니다 '나'마저도 깨끗하게 정화되어 사라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 어느 한 명은 아닐거라 장담하겠지만 어차피 같은 인간, 같은 족속이다. 이 상황이 코앞에 왔을 때 다들 같은 생각을 하게 될 테니 나는 그나마 나은 생각과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라 열외시키지 말길. 너나나나 결국 닥쳐보면 다 같은 생각만 할 뿐이다.

노동하는 작가의 소설집이라는 문장을 덧붙여 저자를 소개하고있다. 국문을, 문예창작을 배우지 않았고 다른 업을 이어가며 글을 쓴 사람. 그것만으로도 그를 지칭하느 프레임은 눈에 띈다. 거기다가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사람이라는 소개는 더욱 이 글이 특별 할 수 밖에 없을을 우위에 두려 애쓴다. 그런데 굳이 그러한 애쓰는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아도 글은 기가막히다. 호흡은 짧으며 거기에 말하고자하는 내용은 확실히 전달이되고, 지루할 틈 없이 몰아부치긴하나 각각의 인물들이 어떠한 성격을 띄고, 어떠한 갈등을 이루는지. 결국 어찌 되어 이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딱딱딱 나눠서 알려주고있다. 그야말로 기승전결이 확실하며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확실히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력. 이는 환상소설이라 하기도, 일반 소설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SF소설이라 해도 될만하지만 과하게 몰입하지 않았기에 특정분야에 흥미 없는 사람에게도 읽혀지는 것에 거부담이 없었다.

낯선 디스토피아든 세계관이라 하든 딥하게 빠져드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에 드는 문장 모음집이었다. 눈앞에 놓여진 세상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있노라면 꼭 이러한 문장으로 세상이 뒤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게 딱 '회색 인간'이 가진 세상의 농도였다. 출간일이 2017년이더라. 그때의 내가 봤다면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2025년의 내가 보며 감탄하는 이유는 세상이 마냥 아름답지 않기도 하거니와 내 눈앞에 놓여진 시대의 흐름을 보고 있자면 이 꼴이 좌우 대칭을 이루지 못하고 어딘가 찌그러진 채 돌고있어 결국에는 누군가에 의해 꼬여버린 세상이 이런 꼴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에 감탄을하며 이틀만에 문장을 삼키듯 보게 만들었다.

몇몇의 단편은 이 책을 읽은이와 긴 대화를 나누며 더 파고들었음 어떨까는 생각하게 만들었다. 각각의 단편이 주는 키워드를 가지고 때때로 멍하니 세상을 보며 저자의 이야기에 외전, 또는 후일담 방식으로 이야길 이어가도 괜찮겠다는 나름의 독자 첨삭을 해볼까 싶어진다.

이 작품 다음으로 출간된 책을 골라야하나, 최근 출간된 신작을 읽어야하나 즐거운 고민에 빠지는 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