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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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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안 사고 제껴야지(?) 했던 저자의 책. 보고나면 마음이 너무 물컹해지는 것 같아서 이젠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멀리하는 저자가 있다. 나에겐 이병률 저자와 이석원 저자가 그러하다. 20대 때부터 꾸준히 사모은 책들 중 책 표지가 닳도록 들고다녔던 것이 보통의 존재와 끌림이었다. 뭐에 씌인듯 이것저것 다 이뻐보이는 콩깍지 현상이 책에 씌여져 페이지를 가득채워둔 사진도 예쁜데 사람의 감정을 툭툭 쳐대는 문장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내가 모자라고 쓸모가 없는 사람처럼 여겨질 때마다 울컥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한껏 구부정해진 등을 쓸어주는 것에 매료된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한 쿠크다스 멘탈이었으니 방구석 위로의 책이 최고였던 시절이었다. 20대엔 애틋했던 문장들이었고 30대가 되니 더이상 이렇게 말캉하게 살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멀리하려했는데 또 이렇게 쟁여두게된다. 결국 이 책 또한 이석원 컬랙션 칸에 추가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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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꿈_ 누구든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법이다. 그분이 정말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행복해서 늘 그렇게 웃음을 짓는지, 단지 직업적으로 손님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을 뿐인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집 근처에 널린 편의점을 두고 굳이 길 건너 허름한 구멍가게를 찾는 친구는 그 가게 주인아저씨의 표정이 좋아서 가게된다고 말했다. 늘 웃으며 손님을 대하는 그 집 사장님을 보면 자기 기분까지 좋아진다며 활짝 웃는 친구에게서 불편을 감수하면서 가는 목적이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단걸 느낀다. 항시 활기가 넘친다고 했으나 저자는 다르게 생각을 한다. 생글생글 웃는건 기뻐서가 아니라 의도된, 그러니까 교육이 되어진 사회생활의 고정값이라는 거지. 마음을 숨기는 것이 편하고(티내면 연유를 케물어보는 이로 인해 더욱 피곤해질테니) 항상 웃는 웃상이어야 여기저기 엮이며 피곤해질 사고수를 줄일 수 있다는 건 다들 오랜 사회생활로 자연스레 익히게된 습관일 것이다. 속에 울화가 치밀어도 고정값의 사회생활용 얼굴을 써야하는 삶이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다.
나 또한 표정으로 감나라 배나라하던 서비스직에 몸 담았던 전적이 있는터라 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오죽하면 내 선임이 출근할 땐 심장을 떼어놓고 오라는 소리를 하더라구.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아예 두고 오면서 빈 껍데기로 오는 편이 더 낫더라며 언니가 옷장사도 해봤고 여기저기 서비스직에 있어봤는데 그게 니가 안 다치는 길이니 그렇게 다니자. 그래야 오래 해먹을 수 있어. 라는 말이 이 글을 보는 순간 바로 생각이 났다. 그 언니랑 일할 때 쿵짝이 잘 맞아서 출근하는게 재밌었는데 잘 사나 모르겠네. 남의 돈으로 밥벌어 먹고 사는 것에 사회생활용 가면은 이제 필수 항목이니까 당연하게 생각되다가도 이렇게 그 마음을 알은체 해주면 그리 고마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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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꿈_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꿈도 꿈 나름이라는 것을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행복을 쫒는 것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일상이 달린 일이니까. 먹고사니즘의 기본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생존과도 연결되어있으니 더 중요한 거겠지.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입에 '회사가기 싫다'를 중얼거리며 몸과 마음은 따로 노는 듯 새벽 출근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회사 출근을 찍고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게 어른인거 같기도 하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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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진실_ 왜지? 왜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걷는 이 순간이 이렇게까지 벅찰 정도로 소중하고 행복한 거지?
꽃이나 풍경을 찍어대는 엄마들.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카톡 메인으로 해두는 중년들의 자동완성 기능.
최근에 보았던 책들에서 엄마나 할머니가 했던 말들이라며 적어둔 글을 보았다. 이렇게 예쁘고 화사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나는 이제 이 멋진 봄을 몇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매해 보는 데도 질리지가 않는데 당연하게 느끼는 봄을 내년에도 보게 될까? 라는 문장을 보면 울컥해진다.
또... 나만 나이드는 줄 알았지. 또 나만 어른인줄 착각해버렸지. 내가 머리통이 굵어진 만큼 엄마의 흰머리는 더욱 빼곡해 졌고, 할머니를 빼다 박은 듯 주름도 늘어났고 더 자그마해지셨는데 나만 또 그걸 외면했지 싶어 뒷골이 쌔해진다. 나도 이러한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싶어지니 이왕 알게된 아름다움을 부디 내년에도 다같이 기뻐하며 만끽하길 바란다. 생전 알은체도 안하던 오만 잡다한 신들에게 빌어보며 무던하고 무탈한 봄을 내가 아는 이들과 가장 기쁘게 맞이 하도록 해달라고 친한척을 하고싶게만들어지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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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섬세함_ 그리고 그건 다른 말로 타인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성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섬세함도 학습이 되어야하고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요즘 많이들 하는 후천적 선한인격 만들기 같은 것이기도 하다. 돈 번 만큼 열심히 다른 쪽으로 나눔과 기부를 하는 인플루언서를 보면서 나도 그리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걸 느꼈다. 역시 보는 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실행하는게 맞나보다. 내가 대기업 오너만큼 잘 살아서 하는 기부가 아니라 티끌모아 티끌이라지만 티끌도 써먹을데가 있지 않을까 하며 하는 마음의 표시도 해보고, 이 물건 하나로 이렇게 행복한데, 다른사람에게 사주면 얼마나 더 좋아할까를 생각하며 그 값어치의 돈이 없어도 내가 당장 도로에 나앉는 일은 없을테니 돈쓰는 재미로 마음의 비용을 지불한다는 셈을 치게된다.
결국은 돌고 도는 세상이다. 그러니 내 관심과 성의가 언젠가는 돌고 돌고 돌아 이사람 저사람에게 손이 옮겨가고나면 나에게도 한번은 올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일단 퍼다줘본다. 해보면 생각보다 어깨가 으쓱하고 내가 제법 괜찮은 어른같이 느껴지는 두둥실 들뜬 마음을 얻게 됨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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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음_ 우리가 함께 보낸 그 수많은 순간들이 여전히 소중하니까, 나 자신을 그렇게 함부로 놔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참는 거지. 여전히 사랑하니까.
여전히 애틋한 마음.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탈 정도로 반짝이는 순간을 말하는 몽글거리는 감정. 친구에겐 이 것이 오랜 연인에게서 느끼는 감정이었고, 저자에겐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음악하던 이석원의 마음이라고 동음화 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만이 진짜가 아니라는 거지. 미안할때도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하니까 미안해하기도 했던 모호한 표현. 우리는 그것이 애정이도 애증이며 그냥 정이라고 한몫에 몰아 표현했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며, 싫은 것 또한 아니라는 점. 사랑하다보니 소흘해서 미안해했고, 사랑하니 욕심이 과해서 울컥 쏟아냈던 화도 있던 것 이었다. 결국 '사랑하니까'로 표현되니 반반한 사랑의 앞통수만을 바라보던 시간을 지나, 울퉁불퉁한 서운함과 얄미움의 뒷통수를 이제서야 목격하게된 꼴이라 여기고 싶다. 그래도 사랑의 본질은 그대로니까. 맨질맨질한 사랑의 표면은 이쁘게 뵈주고, 울룩불룩한 사랑의 그림자는 내가 보듬으면 되니까. 결국 변한건 없다고 여기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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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은 오래가지 않는다_ 어찌됐건 세상과의 밀당에서 승리한 대가로 내게 남겨진 사람들과, 비록 그 수는 적지만, 앞으로도 쭉 오순도순 남은 인생을 함께 잘 살아봐야겠다.
SNS에서 오랫만에 친구에게 의심없이 연락하는 방법이라고 본 글이 있다. 친구에게 선 카톡 후 답이 없다면 재빠르게 보내어야하는 셀프 안부늘어놓는 방법은 연락하는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이었다. "청첩장 건내기 아님. 돌잔치 초대장 아님. 보증 부탁 아님. 대출 요구 아님. 회원가입이나 보험 계약 요구 아님"을 먼저 알려야만 그제서야 반가워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어쩌겠어. 분기별로 연단위로 연락하는 뜸한 관계였을 때 의심을 더는 방법이 이거라면 쿨하게 말 할 수 있지 모. 나라도 그런 의심을 할 테니까. 그러니 혹시라도 언제 한번이라도 올 연락과 이따금 한번 생각이 날 듯 한 사람이라 남겨둔 연락처의 갯수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픈 사람과 먼저 연락이 오는 사람들에 만이라도 잘 지내고 있으니 너도 알아서 잘 지내자고 언제 한번 만나면 제일 반갑게 인사라도 해보자며 적당하게 거리유지와 반가움의 사정거리를 유지하길 바란다. 그래야 나도 너도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덜 받게 될 것임을 우리는 많이 배웠으니까.
저자는 매번 출간했던 에세이가 나를 향한 이야기이지만 이번엔 타인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쓰려고 애쓴 작품이라 일러두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글들에는 제법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결국 그들의 영향을 받는 나에 대한 생각들이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픈 마음이 그득한 글이다.
책을 시작하면서 알려준 노부부의 이야기나, 자신이 작가인걸 알은체하던 경비원의 이야기, 독자와의 대화에서 나눴던 에피소드들은 그들로 인해 영감을 받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던 지난날의 자신의 단상을 알려주며 '저는 이러했으니 이 글을 읽은 그대들은 부디 그런 맘이 없길 바라며 혹여 그러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덜 받는 방향으로 자신을 뉘여놓으시오.'라는 일종의 감정 가이드라인 같았다.
몸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지만 마음이 편해야만 몸도 개운하게 기지개 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더라. 그러니 힘들다면 '아이고 죽겠다'라며 혼자말이라도 툭 뱉어보고, 여력이 안되면 '이얏차!'라며 괜시리 입으로 기합도 넣어봤음 싶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그 어떤 작은 이해 하나를 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리니 가끔을 이렇게 티나게 티내보는 것으로 최소한의 이해하려는 과정을 만들어봤음 싶다.
..... 결국 주변의 소리에 많이 예민하고, 타인의 반응에 솔깃해지고, 뜬금 없는 상황에 당황하는 편이라는 점. 듣는 귀가 예민하며, 바라보는 눈망울이 깊고, 그래서 결국 주변의 상황에 많이 흔들리는 '나'였음을 이해하니 모쪼록 그렇게 살겠노라 말하는 저자와 나의 동일한 삶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