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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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져들면 진득하니 다 읽고나서야 속이 후련한 저자 파고들기. 작년 말과 올해 초는 진득하게 조예은 월드에 젖어있는 느낌이다.

이전에 출간된 작품이지만 최근작 부터 읽게되어 이제서야 마주한 트로피컬 나이트. 역시나 표지가 심상치 않다.




고기와 석류_ 썩은고기를 먹고, 사람을 씹으며 그렇게 사는 석류. 옥주는 지금껏 간병인으로 살아왔지만 결국 남은건 혼자였고, 자신을 간병해줄 이가 없음에 괴물인 석류를 보살피는 것. 암으로 죽든 누군가에게 갉아먹혀 죽든 죽는건 매한가지이니 곁에 남아있다가 죽고나면 자신을 갉아먹을 석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 혼자보다 그 편이 나음을 선택한 옥주의 서글픈 마지막.



릴리의 손_ 차원과 차원의 틈. 서로 마주 할 일 없는 세상과 세상사이에 칼로 그은듯 잘려진 단면으로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인냥 낯선 세상으로 흘러가는 인물. 연주의 잘려진 손을 잡았던 릴리. 연주의 이름으로 살며 그 세상에 맞춰사는 릴리를 보는 연주. 연주로 사는것에 익숙해진 릴리. 물은 어디로 가고 어디로든 흐르듯 세상도 그리 될 테니 어떻게든 닿을거라는 믿음. 모든 순간 어떻게든 감각이 기억하고 곁에 있을거라는 안도.



새해엔 쿠스쿠스_가까운 데에 사는 사촌이며 또래라서 항상 비교의 대상인 유리와 연우. 고모와 엄마는 자신의 주된 자랑이 자식들 자랑뿐이었고, 그것이 가장 큰 자부심과 체면이었다. 쟤도 가니까 너도 가야지. 쟤가 하니까 너도 해야지. 그런식의 비교와 더 잘난 자식으로 키우고픈 마음. 어르고 혼을 내보다 결국엔 사랑한다는 말로 회유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욕망의 한 마디. 고모의 자랑이자 전부였던 연우는 사라졌고, 그렇게 어릴적 보았던 모로코의 쿠스쿠스를 먹으러 갔다. 성인이 된 후에도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길 바라던 엄마와 유리. 연우보단 조금 늦었지만 유리도 그 끈을 끊어낸다. 그리고 연우가 보내온 사진들과 메세지들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며 탈출을 시도한다. 엄마들에겐 최악의 반항이라 생각하겠지만 본인들에겐 최선의 숨구멍이었다.


가장 작은 신_ 먼지바람으로 둘러싸인 세상. 사이렌처럼 울리는 재난 알림. 집 밖으로 나가기 무서운 상황. 자발적 고립. 나만 집 안에 있으면 괜찮을거야. 나머지는 택배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문 앞까지 알아서 챙겨주니까 그렇게 내 사정거리 안에서만 살아도 된다 여기는 수안. 자발적 단절을 하며 사는 동창이 최고의 호구가 될거라며 다단계 영업을 하는 미주. 모든 감각이 예민할대로 예민해진 수안은 자신을 상대로 영업하는 걸 알면서도 틈을 내어준다. 그간 외로웠고 심심했고 고요했었으니까. 그렇게 먼지의 신이랍시고 다단계 대가리에 붙들려있던 미주를 구하는 수안. 호구잡힌거 알면서 미주에게 자리를 내어주었고, 먼지바람이 위험한걸 알면서도 밖으로 나와 미주를 찾은 이유. 수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온 더 큰 이유가 있었던 것.




먼저 '칵테일, 러브, 좀비'와 '꿰맨 눈의 마을' 읽은 후 뒤늦게 접한 '트로피컬 나이트'라 그런가 어딘가 하나씩 아쉬운 부분이 있다. 총 8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이 책에서 일부는 결론을 독자에게 맡긴 듯한 이른 마무리로 아쉬운 감정이 있다. 특히나 앞부분의 단편 두 작품이 그러했다. 소외받은 아이들을 그렸고, 외로움과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를 무겁거나 암울하지 않게 표하려 했던 면은 새로웠으나 좋은 결말이나 기분좋은 끝맺음은 없을거라는 걸 알기에 결말을 읽는이들에게 넘겨버린듯한 느낌이 들었다.(행복한 결말은 되려 이질적이고, 그렇다고 어둠의 밑바닥까지 긁어내기엔 또 서글픈게 있으니 일단 상황은 던져주되 슬픔의 수거는 셀프입니다! 요런 기분이랄까?) 그래서 이번 단편 모음집들은 전부 이렇게 끝나려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새해엔 쿠스쿠스는 어른이지만 양육자에겐 여전히 미성숙하여 당신들의 손이 닿아야만 될꺼라고 여기는 이들로 인해 스스로 상처를 내는 존재가 그려진다. 이걸 보면 할로우 키즈 - 새해엔 쿠스쿠스 - 고기와 석류로 이어지는 우리 세대들의 인생 미리보기가 되는건 아닐까 싶어지는 단면을 마주하게된다. 호러는 귀신이나 알 수 없는 형체의 악한 무언가가 나와서 두려운게 아니었다. 있을 법한 이야기들 속에서 나도 어느새 거기에 익숙해져 이게 행복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삶 자체가 되어버린게 무섭고 두려운 거였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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