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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믿는다 - 흔들리는 내 손을 잡아 줄 진짜 이야기
이지은 지음 / 허밍버드 / 2023년 9월
평점 :
저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아본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출판사 마케터로 일했고, 결혼 후 남편과 함께 호주로 이민하여 다양한 일을 하며 삶을 이어가고있다. 좋아하던 커피를 이제는 손수 내려 손님들에게 건네는 사람이 되었고, 낯선 이에게도 먼저 말을 걸기도하고,어떻게든 더 괜찮은 삶을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게되면 더이상 사랑 할 수 없다고 하던데, 저자는 그걸 이룬 사람이라 부러웠고, 또 내가 닿지 못한 목표의 끄트머리를 봐 본 사람이기에 부러움이 컸다. 그래서 약간의 질투심을 갖고 독서 시작!
📖옷장에 내 마음을 걸어 두었다_ 나는 너무나 익숙하게도 나라는 존재를, 보여지는 것들로 정의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 타인의 시선에 걸쳐지는 것들로 증명하려 했던 건 아닐까. 나이를 생각하면 조바심이 났고, 살이 찌면서 옷 사이즈는 스몰에서 때때로 라지 사이즈까지 커졌다. 내가 어디에 살건 생활은 그곳에 금새 익숙해질지라도,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는 낯설고도 막연했다.
책은 호주로 이민 후 누군가에게 듣게된 질문으로 시작된다. '왜 호주에 왔어요?'라는 물음은 태어나고, 자라왔으며 익숙함이 온 몸에 베여든 고국을 두고 온 가장 큰 결심을 묻는 것 이기도 했다. 저자는 내일, 모레, 글피... 한달? 몇년 후? 무조건적으로 살아는 가겠지만 더디게 오라 할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이 맞는 이와 결혼했고, 더 괜찮은 삶을 기대했다. 먼저 가 있는 친지가 있었기에 조금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으리라 본다. 가기 전엔 좋은 것들이 더 크게 보였을 것이고, 거기에 발을 딛고 난 후에는 아쉬움과 불편함이 더 예민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그 다양한 감정들이 이 책의 시작이다.
📖결혼은 온수매트_ 각자에게 편안한 온도를 맞추듯, 각자의 인생의 온도를 잘 맞춰야 결혼이라는 온수 매트도 잘 쓸 수 있는 것 같다. 말이 잘 통하고,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마음이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심했지만, 30년을 다르게 살아온 만큼 서로의 생활 패턴은 많이 달랐다. 식사 후에 설거지를 언제 하는지, 치약은 어떻게 짜는지, 심지어 빨래 너는 방법까지 달랐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존중하며 때로는 서로의 스타일을 닮아 갔다.
낯선 곳이었고, 혼자였다면 저자는 이민을 택했을까? 결혼을 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 시댁쪽 형님들이 먼저 자리를 잡아 생활하는 것도 이민을 택하는 것에 큰 흔들림을 주었으리라 본다. 많이 믿고 의지하는 이가 생긴 것. 같이 버틸만한 지지대를 하나 더 얻었으며, 때론 자신도 상대의 버팀목이 되어 줄 만한 큰 믿음을 서로에게 심어 준 것. 그러니 이 사람과 좀 더 오래 좀 더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의 결심이라 느껴진다.
이 단락을 보니 내 신혼이 떠올랐다. 연애기간이 짧았던 것도 아닌데 결혼은 또 다른 삶의 방향이었다. 같은 줄 알았는데 달랐고, 다른 줄은 알았으나 더 의외의 면면을 만나기도 한다. 30년 가까이 사는 방식이 달랐던 둘이다. 태어난 시대와 환경들 중 어느하나 비슷한 점이 하나 없던 이라는 것을 새삼 깨닿게 되며 똑같을 순 없으니 엇비슷하게라도 맞춰나가는 방식을 택하며 각자 지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됨을 느꼈다. 한쪽이 노력을 하면 다른 한쪽도 같이 애써주더라는 점. 그래서 이 사람이랑 맞춰 사는 것이 힘들지 않음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신혼 때 겪는 온수매트의 개별난방 온도차. 그리고 에어컨 바람의 온도차. 이건 결코 한쪽이 무조건 져 줄 수 없는게 맞지. 따로가 필요 할 땐 따로하는게 살아본 자의 리얼 조언이라 하겠다.
📖나는 꽤나 승진이 하고 싶었다_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든, 마음에 들지 않든 단지 내 인생 어느 시점에 잠시 입고 있다가 갈아입을 옷일 뿐이다. 좋은 게 항상 좋지 않고, 힘든 일이 언제까지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다.
시작은 좋아서 했던 것이고, 그 당시는 더 잘 하고픈 마음이 컸고,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스스로를 위한다고 했으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외면 할 수 없는 눈치 엄청 보는 인간이었던 것. 그래서 잘 하고 있다는 티를 내고픈 부단한 노력이었었다. 그러니 에너지 분배 따윈 신경쓰지 않고 열중했을 저자를 보니 정말 나 같은 사람이 여기 한명 더 있구나 싶어졌다. 아닌척 해도 업계에서 나를 향한 볼멘소리 한톨 없길 바라며, 잘한다는 격려와 동경의 눈빛만을 기대하며 못하는 것 없는 만능인을 자처했다. 그러니 좋아하던 것도 물리게 되는 거다. 급히 마신 물에 체하듯 입안 가득 머금은 욕심이 화를 불러 온 것이리라. 헌데, 이러한 욕심 없이 사는 사람도 있을까? 즐기며 일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감도 있지만 인정받을수록 더 커지는 자존감도 무시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승진이나 돈처럼 보여지는 것에서 보상이 뚜렷해지는 것들로 나의 허기를 채울 수 밖에 없음에 공감한다. 그렇다보니 그땐 죽을 듯 힘들어도 지금에서야 보면 그 또한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며 예쁘게 미화시킨 후 정돈하여 나의 멋드러진 과거라고 부를 수 있게되었다. 저자의 그 마음이 잘못된게 아니었음과 나의 과거 또한 그르친 마음이 아님을 알아주기로하자.
📖일 앞에서 더 순진해지고 싶은 마음_ 직장인 보다는 직업인이 되고 싶다. 내게 '워라밸'이 좋은 삶이란 근무 시간과 퇴근 시간 이후의 삶이 칼같이 분리될 때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내가 나를 위해서 살고 있다고 느낄 때였다. 일주일에 25시간만 일한다고 워라밸이 좋은 게 아니라, 투잡을 하며 50시간을 일해도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후자가 내게는 훨씬 더 밸런스 좋은 삶이었다.
직업인이라는 말보다 직장인이 더 입에 붙는다. 어떠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비중을 두기 보다 내가 버티고 있는 장소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것. 어떤 회사 다니는지가 더 관심이 가는 세상이다. 공기업 대기업이야 물론 좋지. 평생을, 천년만년 나를 먹여 살려 줄 수 있을 듯한 굵직한 기업체라면 나도 환영이다. 속물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인걸 어쩌겠나. 돈을 한번 벌기 시작하니 끊기가 어려웠다. 고등학생 시절 아르바이는 대학을 가서도 멈출 수 없었고, 빨리 돈벌며 쓸모있는 놈이 되고파 졸업 전에 취업을 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세번째 직장으로 오기까지 퇴사 후 입사를 하는 텀을 보면 채 한달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조급했고 조마조마했다. 한템포 쉬는 타이밍을 줘도 될텐데 퇴직금도 남아있겠다 나라에서 취업을 위해 챙겨주는 수당도 꼬박꼬박 들어오지만 쫓기듯 회사를 알아보고 내가 앉을 자리를 긁어모았다. 시간이야 어떻든 일단 돈을 벌 수 있고, 내가 일한 만큼의 무언가를 받아 갈 수 있다는 과정이 행복했다. 몸이 축나는 건 나중 일이었다. 지금 이 회사에선 안 올 것 같은 마의 10년을 채웠다. 회사 고인물이 되었다. 욕심이 사라지고 의욕도 사라지고있는데 초심과 더불어 일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던 이전으로 돌아가는게 가능 할까?
📖우산 쓰고 가면 돼요, 멋있어_ 시작하는 것보다 그만두는 게 항상 더 겁이 난다. 그래서 그다음엔 뭐 할 건데? 계획은 있어? 쉬었다 다시 할 수 있을까? 단지 좀 쉬고 싶어서 선택했지만, 굳이 누가 묻지 않아도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불안했다.
나는 겁이 많다. 계획형 인간이며 생활 반경이 매우 좁은 사람이다. 이민은 꿈도 못 꾸는 경주마 같은 시야를 가진 채 살아왔다. 어린시절 이사는 몇번 했으나 지역을 이동한 건 고작 한번 뿐. 대학도 직장도 다 거기서 거기인 버스 한 두번만 타면 닿는 곳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껏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계획이 바뀌거나 시뮬레이션이 돌려지지 않은 상황을 맞딱드리면 당황스럽다. 연습되지 않는 과정은 주저하게된다. 그래서 저자가 말해주는 직장생활과 이민 후 파트타임을 하며 느껴온 감정에 공감이 되었다. 다른 경로로 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 그게 나다. 일탈도 꿈꿔보지만 어째 나이가 들 수록 더 겁이 난다. 이럴 땐 내 어깨를 잡고 휙- 방향을 틀어주는 남편의 존재가 감사하다. 우야든둥 되게 되어있다는 모토로 사는 사람 덕에 살짝은 유연해지고 살짝은 느슨해지는 삶도 야금야금 배워가는 중이다. 연애 5년과 결혼 9년 동안 많이 말캉해진 신념이지만 때때로 혼자 이걸 정하게 될 때는 아직까지도 두렵다. 우야든둥 되게 되어있다는 모토를 떠올리며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되는거고, 안되는 거면 조금 쉬었다 해도 된다는 마음을 배워가는 것. 하..... 나도 성인이고 어른인데 아직 이런 삶의 유연함은 낯설다.
후루룩 읽었다.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도 있고, 나랑 닮은 듯 다른 삶의 영역을 가진 저자의 행보에 대단함은 박수받아 마땅한 결정들이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것도, 익숙한 사람들과 생활반경을 두고 처음 말을 배우기 시작하던 그 때 처럼 언어와 세상을 마주 한다는 것, 못하는 것이라 손사레 치기 보단 해야만 한다는 뚜렷한 목표를 앞에 두고 어떻게든 해 냈다는 것. 그건 나와 너무 다른 점 이었다. 이렇게 믿을 구석이 찐한 사람이라면 믿을만하지. 그리고 의지하고싶고 곁에 두고픈 진짜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간 나는 익숙함에 느적거리며 숨가쁨을 모르고 살았다. 삶의 큰 굴곡없이 몇년을 둥둥 떠있듯 힘 안들이고 살아오며 잔꾀만 늘어난게 아닌가 싶어진다. 나이는 먹었지만 나이먹으며 같이 먹어야 할 사람의 진짜 됨됨이를 잊고, 경력이 쌓이면서 같이 성장해야 할 인품도 놓고 산게 아닌가 싶어졌다. 그렇다. 예쁜 책이 참 예쁜 말로 나를 반성케 했다. 나는 나를 믿어 본 적이 없고, 흔들리는 나를 단단하게 매어 둘 생각도 없이 방치한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도 저자의 나이 정도 닿으면 나를 믿을 만한 구석이 생길까? 의심 하기 전에 좀 믿음직한 인간으로 남은 2023년을 만들어 볼 생각을 하며 인생 노잼시기라며 볼멘소리 하던 나를 꾸짖어본다.
📖허밍버드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완독 후 기록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