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소개하는 문구가 너무 화려하다. 영어덜트 소설 대상 / 미국·이탈리아·프랑스 등 6개국 수출 / CJ ENM 전격 영상화 가 이미 계약되어있는 신작소설. 한국과학소설이 점점 재미지고있는 요즘 얼마나 인기 있길래 벌써부터 이리 입소문이 찐하게 났나 궁금해지는 소설.

익숙한 배경이지만 SF소설 답게 많은 조건들이 상상 이상의 모습을 보인다. 일곱 사람이 하나의 신체를 공유하는 미래세상의 이야기. 안될거 같은데 될거 같은 세상을 구현한 저자의 상상력도 뛰어나지만 여건만 바뀌었지 사람 사는 세상의 갈등은 지금이나 미래나 여전하다는 점에서 익숙한 감정 서사에 편하게 이입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 짧은 페이지는 아니지만 1부만 넘어가면 2부 부터는 제법 속도가 나는 전개이니 재미나게 읽어지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시작은 7부제로서 화요일의 강지나와 수요일의 현울림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과 일주일 중 하루를 살게되는 삶에 대한 소개부터 나온다. 그렇게 인간 7부제에 순응하고 사는 인간들의 삶 속에서 순탄치 못한 보디메이트 둘의 불협화음과 결국 다음 요일인 수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과정을 1부에서 만날 수 있다. 생일 축하 선물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화인은 수인을 몸 밖으로 밀어내었다.

보디메이트로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이. 그들은 처음이 아니었다. 강지나 집에 현울림이 함께 살게 된 이유와 함께 서로를 싫어 할 수 밖에 없었던 관계, 강이룬의 등장으로 17세가 되기 이전의 셋의 시작점을 만나게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렇게 억울하게 죽을 수 없는 현울림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 강지나를 찾아나서게되고, 어린시절 첫사랑이자 잊고지냈던 강이룬을 무재라는 바뀐 이름으로 만나게된다.

결국 만나야만 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만했던 둘은 서로 다른 몸인 상태로 마주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며 미워 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하지만 어느 누구도 온전한 몸으로 살 순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내기위해 시작했던 복수극에서 울림은 주변에 정말 고마운 사람이 많고 아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된다. 그래서 울림은 선택을 하게된다.



📖목요일이라는 세상_ 시계의 분침이 시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주 살짝 자리를 옮겼을 뿐이고, 창밖의 풍경 역시 하나도 달라진 게 없지만, 울림은 낯선 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목요일이라는 세상에.

익숙했던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되고, 평범했던 것이 새삼스러워졌던 것. 하루를 한주를, 한달을, 그렇게 일 년을 온전에 내 것으로 살던 사람들에게 딱 한 줌의 일상만 남겨놓고 다 빼앗아 갔을 때 느끼는 공허함. 이전의 삶을 포기한 채 순응하며 살다가 마주하는 상황. 다시는 못 얻을 것 같은 진짜 내 것을 조금씩 되찾을 때의 기분. 과연 나에게도 7부제가 적용이 된 다면 하루가 얼마나 애틋해질까. 그리고 누리지 못하는 내일의 내가 얼마나 그리워 질 까 싶어진다.


📖기억 과부하_ "근데... ... 진실이 항상 좋은 걸까?" 무재가 불티를 힘없이 응시하며 말했다. "유이레가 바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면, 과연 유이레가 그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원하는 방향에 맞춰진 결과물. 대량의 데이터로 촘촘하게 짜여진 것에 대한 기대. 존재 자체 로서의 가치보다 결과물이 더 우선시되는 상황. 그러한 미래가 온다면 인연의 애틋함도 감정의 흔들림도 쓸모 없는 삶으로 변모하겠지. 그래도 만약이라는게 있다면 사람의 진화와 발전 과정 중에 이 항목이 가장 마지막에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와 나는 반드시_ "너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날 좋아할 거고, 나는 네가 기억을 잃고 어떤 식으로 변하든 너를 좋아할 거야. 그럼 된 거잖아."

저자도 나와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드라마 '커피프린스'의 한결의 대사를 옮겨온 게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있 든 그게 설령 내가 아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 하더라도 '너'라는 존재 자체에는 변함이 없으니 여전히 좋아할 마음이 있고, 그럴 자신이 있다는 제법 박력있고 단단한 마음의 전달. 비록 청소년기의 울림과 이룬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은 둘 이라 하여도 그 기억에는 변함이 없고, 여전히 애정하는 마음이라면 이정도의 시련 따위는 가뿐하다는 단호함에서 너희들의 사랑이 무사하겠구나 싶어진다.




인구 미래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7부제가 도입되었다는 가제로 시작된 이야기는 하나의 몸에 7명이 살아가는 부류와 비싼 환경부담금을 지불 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365인으로서의 삶 중 전자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17세가 되면 몸을 폐기 당하고 뇌만 '낙원'이라는 가상 세계에 살며 지정된 요일만 인간의 몸으로 산다는 조건으로 시작된 거라 생각했던 현울림과 강지나의 이야기는 그 이전부터 이어졌던 시샘과 질투가 쌓여 만들어진 악연이었다. 죽이고 싶은 만큼 미웠던 존재.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과했고 그게 질투로 싹이 틔워졌으며 상대만 없다면 자신은 행복 할 것이라는 착각에 가득찬 결말이 이 사단을 내지 않았나 싶어진다.

몸뚱아리만 존재한다고 사람이라 할 수 있을지, 뇌만 살려 둔 후 모든걸 소멸시켜도 죽이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 지. 그렇게 일부를 소멸시키는 명목이 진짜 환경을 위한 것인지도 생각하게된다. 일단 지금의 인구 조건을 보면 미래엔 지금처럼 풍성한 인력은 없을 듯 한데, 그에 비해 환경은 더 피폐 해져 있을 수 있으니 비례상으로도 인구 정책이 필요 할 수도 있겠다. 암튼, 그렇게 사는것이 진짜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몸을 소실당한 인간 7부제의 삶을 기반으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 갈래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몸? 영혼? 그 너머의 삶 자체? 울림은 이미 육체를 소각당한 상태인 인간 7부제 이지만 다른 요일의 영혼에게 살해당했던 것에 대한 억울함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럼 영혼의 지속적인 영생이 진짜 사람다움이라고 봐야 할까?

한 사람이 기억을 잃어도, 그를 둘러 싼 사람들이 그를 기억함으로서 존재의 이유를 얻어내는 것.

몸을 빼앗기고 기억을 잃어도, 너와 나는 틀림없이 서로를 알아보고 어김없이 서로를 사랑하게 될 거야. 라는 말 속에서 누군가을 애틋하게 아끼는 마음에는 변경된 조건과 환경에도 굳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덧+ 한 사람의 몸에 일곱의 뇌가 요일마다 바뀌는건 비록 조건이 달라지지만 영화 '뷰티인사이드'의 우진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 작품이 영상화 되면 배경은 서울을 그대로 옮겨두겠지만 그들의 옷차림은 넷플릭스 '승리호'와 많이 닮아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창비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적 약자를 테마로 한 소설이다. 아동, 장애인, 노인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금이야 원한다면 무엇을 못할까 싶은 청년기의 끄트머리에 있는 성인이지만 이 사회적 분류가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음을 알고있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질 수도 있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인의 수순으로 흘러 갈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된다. 천년만년 이 상태로 유지 될 수 없다면 언젠가 나도 겪게 될 사회적 약자의 삶을 들여다보며 가시를 세우고 살았던 적은 없는지. 악의를 갖고 살며 누군가의 심장을 죄의식 없이 찔러댄건 아닌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완독 후 이대로 살아도 될 것인가를 두고 단답형 없는 자기대답을 바라게된다.



밤은 내가 가질게_ 본인의 이름보다 '나무야'라고 더 많이 불리워지는 나무반 담임선생님. 원아 중 한명은 학대를 받는 듯 하다. 유심히 살펴야하는 원생이 있는 교사는 애기 선생님이라하는 보조 교사도 돌보듯 가르쳐야하는 입장. 마냥 한 아이만 케어 할 수 없는 환경. 직장에서는 아이들을 돌봐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구멍이 많고 손이 많이 가는 언니를 케어하듯 곁에서 수습을 해야하는 입장. 모친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가족이니 당연히 감내해야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강아지 봉사활동을 가는 언니. 많은 개 중 나이많고 사랑을 덜 받는 개가 눈에 밟혀 데리고오고파하는 사람. 개를 케어하는 언니를 케어해야만하는 입장. 누가 누굴 돌봐야하는지, 왜 계속 자신은 돌봄의 주체가 되어야하는지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침마다 아이의 몸을 수색하듯 살피며 학대의 흔적이 없는지를 봐야하는 입장. 연고없는 아이의 법적 엄마와 떼어놓는게 맞는지를 시스템에 맞춰 복지국으로 인계하며 다음 일은 모른척 하며 제 소임의 선을 긋는게 맞는지를 따지지만 119에 바로 신고를 하게되고, 또 언니와 언니에게 딸려있는 늙은 개를 케어하는 일을 또 순순히 받아들인다. 결국 내가 해야하는 일이었고, 내가 떠앉는게 맞다고 생각하게되는 여린 존재들이다.

📖밤은 내가 가질게_ 다른 사람을 괴롭히겠다는 일념으로 어떻게 그렇게까지 부지런해질 수 있었을까.

생각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더라. 굳이 자신의 수고로움을 더해서 남에게 흠집을 내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 그 정성이라면 다른 선택을 할 텐데 굳이 그리 애를 써가며 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보다 괴롭힘을 즐기며 자신이 우위에 있는양 즐기는 태세를 갖춘 이는 상상 이상으로 많다.




고요한밤, 거룩한밤_ 아내는 주워온 개만 남겨 둔 채 생을 마쳤다. 유독 추운 겨울의 어떤 날. 보일러는 고장이났고, 가스는 새고있어 수리가 필요했다. 당장 먹을 쌀도 없고 밖이나 집안이나 별반 다를게 없는 한기가 가득한 냉골에 그와 개만 남겨졌다. 파지 줍는 일을 하지만 종일 해도 손에 쥐어지는건 만원 한장도 안되는 금액. 그마저도 없는 날이 더 많아 동사무소에 국가 지원 요청을 하러 갔으나 자식이 있다며 법으로 어찌 안된다고 한다. 자식놈이라 해봐야 아들 하나가 있지만 저놈은 지 아비를 쏙 빼닮아버렸다. 컹컹컹 거리는 것이 전 주인에게 목소리를 뺏겨서 제대로 울음도 한번 못 내는 것이 아내를 닮았다. 개를 주워와 깨끗이 씻겨 한 이불을 덮던 아내. 추운날 밖에 내어두기도 어려우니 따뜻한 온기를 나누며 포옥 안고 있는 것이 어째 남은 여생은 그와 한이불 덮기보단 개를 택한 듯 하다. 말도 못하고 울음도 내지 못하는 것이 꼭 자신을 닮아 더 애틋하게 보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내와 개가 서로를 보듬던 시절이 계속 떠오르는 그. 아내도 없고, 집안의 온기도 없다. 50년만의 한파라 하더니 아내 없는 겨울은 매년 더 시려운 듯 하다. 금니라도 팔아야 할까. 금니 하나면 쌀 한포정도는 사겠지. 금니를 떠올리니 또 아내생각이 난다. 이 밤 한방을 쓰는 개를 보니 아내 생각이 나고, 입안에 맨질거리는 금니를 핥아도 아내 생각이난다. 춥고, 그립고, 또 후회되고, 이런 순간이 화나고 모든게 교차하는 고요한밤이자 거룩한밤이며 화나도록 그리운 밤이다.


📖고요한밤, 거룩한밤_ 그는 죽은 아내의 육신에 떠돌던 온기가 다 그리웠다. 마치 물위에서 기름이 겉돌듯, 생명이 다한 아내의 육신에서 겉돌면서 서서히 잦아들던 그 온기... 자신을 소스라치게 했던 그 온기만... 그 온기만 있어도 그는 오늘 밤을 무사히 얼어 죽지 않고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권위적이었지만 가부장적이었지만 그땐 정말 왕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두가 떠났다. 집안에서만 왕이었지 집밖에선 폐지를 줍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큰소리 치면 다 받아주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동사무소에서의 외침은 허공을 향하듯 아무도 받아주며 달래주는 이가 없다. 그의 밤은 더이상 거룩하지 않다. 좀 더 다정했더라면, 좀 더 나긋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그는 이래도 저래도 다 받아두전 아내가 그리울 뿐이다.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_ 이 건물 전체가 학원으로 들어 차 있다. 학교가 내실 있다는 말보다 학원 때문에 이 동네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경화는 이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자신의 아들도 가르쳤으며 동네 아이들의 기본기를 다져줬고, 아들을 우수한 성적으로 키워냈다. 이렇게 학원을 키워나가는데에만 집중 할 수 있었던 건 경화와 아들을 서포트해준 친정엄마의 노력과 결과물로 내비쳐지는 아들의 성적 덕도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경화는 엄마와 아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돈을 벌어야하는 장사치이기도 하다. 이름난 학원빌딩 옆 허름한 건물이 치매센터로 새로 들어선다는 것. 혐오시설은 아니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반가울 수 없다. 구급차량이 수시로 드나들 것이며 아이들의 집중도를 저해한다는 생각을 하면 학원장의 입장으론 달갑지 않다. 반대를 하는 학원 대표가 되는게 맞지만 경화와 손주케어를 담당하던 엄마가 치매의 징조가 보인다. 경화에겐 딛고 서 있는 위치보다 처해진 상황이 그녀를 움직였다. 더이상 반대 할 이유가 없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엄마를 케어 할 수 있다면 남들에겐 혐오시설이라 하더라도 경화는 찬성을 던져야했다. 처해진 상황이 그녀를 바꿔놓았다. 누굴 탓하리. 그렇게 된 것을.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_ 카메라가 있고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제 처지가 달라졌어요. 그때도 지금도 저는 아무 생각이 없고 이런 제가 한심하고 답답하고 부끄러워요. 부끄럽다고요. 이제 와 부끄럽다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요.

언제부턴가 이러한 시설이 혐오로 묶여졌을까. 10년 전의 그곳과 지금의 그곳의 달라진 점으로 나오는 사진들이 있다. 과거에는 결혼식장이 지금은 장례식장으로 바뀌었고, 과거 유치원은 현재의 노인 돌봄센터로 바뀐 곳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경화는 처한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약은 구석이 여실히 드러나 얄밉다 할 지라도 어느 누가 그 상황이 되어도 꼿꼿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혐오의 정도는 어디까지라고 봐야 할까. 과거의 혐오와 지금의 혐오 범위도 달라졌고 사회가 생각하는 폭도 달라졌다. 당신은 어디까지를 혐오라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이기적이라 한들 우린 그러한 상황에 놓이면 다들 똑같은 입장 전환을 할 텐데 무조건적인 반대를 고수 할 수 있을까를 계속 묻게된다.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 할 수 없다. 제 뱃속으로 낳은 자식의 속도 알 길이 없다는데 평생을 자기 잣대로 살아온 타인을 어찌 이해하랴. 다만 그 상황에 나를 대입해보며 그 순간의 나라면 어찌 할 것인지,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보며 버티고 살아갈지를 궁리해보는 과정이 덤으로 얻어졌다 출판사에는 이 책이 출간된 계기를 이렇게 적어두고있다.

지난 3년 간의 코로나-19 상황은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사회적 약자들이 얼마나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 드러냈다. 이들을 향해 평소라면 쉽게 드러내지 못했을 혐오의 말들도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적 약자가 살아가는 모습은 그 나라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데,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곳곳에서 불길한 징후가 감지된다. 위기의 시대에 연결과 연대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공존’만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포용적이고 관용적인 세상을 만드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좀 더 부각이 되긴 했지만 이전의 삶에서도 혐오와 외면과 멸시는 늘 존재했다. 하지만 더이상의 혐오 과잉은 불필요한 과한 정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나오는 '밤은 내가 가질게'의 단편만 봐도 그러하다. 나무반 교사를 골탕먹이고자 굳이 시간을 내고 정성까지 들여 괴롭히는 그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에너지인가를 생각해본다. 나와 의견이 다르고 성향이 다름을 인정하기보단 다른 방향으로 걷는 이를 두고 볼 수 없다는 듯한 행동을 보면 혐오를 벗어난 감정과잉이 기반된 오지랖도 이 축에 속하겠다. 밀착된 관계에서 살짝 물러나도 될텐데 굳이 내 삶속에 투입시키지 않아도 될 인물까지 등장시키는 과한 자기영역 확장성.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상과 오롯이 내가 말하는 것이 제일 명확한 해답이라는 생각부터 버렸으면 좋겠다.

연민하는 마음과 보듬어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좋다. 따숩다. 하지만 모든걸 포용하라는 과한 기대를 바라진 않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 놓였으니 나보단 그대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를 묻는 결말이 아니면 좋겠다. 한쪽만의 희생을 바라는 것? 그게 진짜 공존하는 세상이고, 공존하는 소설이 바라는 이상향인지를 생각하게된다.(결국은 답을 못 맺음)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나를 믿는다 - 흔들리는 내 손을 잡아 줄 진짜 이야기
이지은 지음 / 허밍버드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아본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출판사 마케터로 일했고, 결혼 후 남편과 함께 호주로 이민하여 다양한 일을 하며 삶을 이어가고있다. 좋아하던 커피를 이제는 손수 내려 손님들에게 건네는 사람이 되었고, 낯선 이에게도 먼저 말을 걸기도하고,어떻게든 더 괜찮은 삶을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게되면 더이상 사랑 할 수 없다고 하던데, 저자는 그걸 이룬 사람이라 부러웠고, 또 내가 닿지 못한 목표의 끄트머리를 봐 본 사람이기에 부러움이 컸다. 그래서 약간의 질투심을 갖고 독서 시작!



📖옷장에 내 마음을 걸어 두었다_ 나는 너무나 익숙하게도 나라는 존재를, 보여지는 것들로 정의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 타인의 시선에 걸쳐지는 것들로 증명하려 했던 건 아닐까. 나이를 생각하면 조바심이 났고, 살이 찌면서 옷 사이즈는 스몰에서 때때로 라지 사이즈까지 커졌다. 내가 어디에 살건 생활은 그곳에 금새 익숙해질지라도,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는 낯설고도 막연했다.

책은 호주로 이민 후 누군가에게 듣게된 질문으로 시작된다. '왜 호주에 왔어요?'라는 물음은 태어나고, 자라왔으며 익숙함이 온 몸에 베여든 고국을 두고 온 가장 큰 결심을 묻는 것 이기도 했다. 저자는 내일, 모레, 글피... 한달? 몇년 후? 무조건적으로 살아는 가겠지만 더디게 오라 할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이 맞는 이와 결혼했고, 더 괜찮은 삶을 기대했다. 먼저 가 있는 친지가 있었기에 조금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으리라 본다. 가기 전엔 좋은 것들이 더 크게 보였을 것이고, 거기에 발을 딛고 난 후에는 아쉬움과 불편함이 더 예민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그 다양한 감정들이 이 책의 시작이다.


📖결혼은 온수매트_ 각자에게 편안한 온도를 맞추듯, 각자의 인생의 온도를 잘 맞춰야 결혼이라는 온수 매트도 잘 쓸 수 있는 것 같다. 말이 잘 통하고,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마음이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심했지만, 30년을 다르게 살아온 만큼 서로의 생활 패턴은 많이 달랐다. 식사 후에 설거지를 언제 하는지, 치약은 어떻게 짜는지, 심지어 빨래 너는 방법까지 달랐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존중하며 때로는 서로의 스타일을 닮아 갔다.

낯선 곳이었고, 혼자였다면 저자는 이민을 택했을까? 결혼을 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 시댁쪽 형님들이 먼저 자리를 잡아 생활하는 것도 이민을 택하는 것에 큰 흔들림을 주었으리라 본다. 많이 믿고 의지하는 이가 생긴 것. 같이 버틸만한 지지대를 하나 더 얻었으며, 때론 자신도 상대의 버팀목이 되어 줄 만한 큰 믿음을 서로에게 심어 준 것. 그러니 이 사람과 좀 더 오래 좀 더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의 결심이라 느껴진다.

이 단락을 보니 내 신혼이 떠올랐다. 연애기간이 짧았던 것도 아닌데 결혼은 또 다른 삶의 방향이었다. 같은 줄 알았는데 달랐고, 다른 줄은 알았으나 더 의외의 면면을 만나기도 한다. 30년 가까이 사는 방식이 달랐던 둘이다. 태어난 시대와 환경들 중 어느하나 비슷한 점이 하나 없던 이라는 것을 새삼 깨닿게 되며 똑같을 순 없으니 엇비슷하게라도 맞춰나가는 방식을 택하며 각자 지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됨을 느꼈다. 한쪽이 노력을 하면 다른 한쪽도 같이 애써주더라는 점. 그래서 이 사람이랑 맞춰 사는 것이 힘들지 않음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신혼 때 겪는 온수매트의 개별난방 온도차. 그리고 에어컨 바람의 온도차. 이건 결코 한쪽이 무조건 져 줄 수 없는게 맞지. 따로가 필요 할 땐 따로하는게 살아본 자의 리얼 조언이라 하겠다.




📖나는 꽤나 승진이 하고 싶었다_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든, 마음에 들지 않든 단지 내 인생 어느 시점에 잠시 입고 있다가 갈아입을 옷일 뿐이다. 좋은 게 항상 좋지 않고, 힘든 일이 언제까지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다.

시작은 좋아서 했던 것이고, 그 당시는 더 잘 하고픈 마음이 컸고,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스스로를 위한다고 했으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외면 할 수 없는 눈치 엄청 보는 인간이었던 것. 그래서 잘 하고 있다는 티를 내고픈 부단한 노력이었었다. 그러니 에너지 분배 따윈 신경쓰지 않고 열중했을 저자를 보니 정말 나 같은 사람이 여기 한명 더 있구나 싶어졌다. 아닌척 해도 업계에서 나를 향한 볼멘소리 한톨 없길 바라며, 잘한다는 격려와 동경의 눈빛만을 기대하며 못하는 것 없는 만능인을 자처했다. 그러니 좋아하던 것도 물리게 되는 거다. 급히 마신 물에 체하듯 입안 가득 머금은 욕심이 화를 불러 온 것이리라. 헌데, 이러한 욕심 없이 사는 사람도 있을까? 즐기며 일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감도 있지만 인정받을수록 더 커지는 자존감도 무시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승진이나 돈처럼 보여지는 것에서 보상이 뚜렷해지는 것들로 나의 허기를 채울 수 밖에 없음에 공감한다. 그렇다보니 그땐 죽을 듯 힘들어도 지금에서야 보면 그 또한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며 예쁘게 미화시킨 후 정돈하여 나의 멋드러진 과거라고 부를 수 있게되었다. 저자의 그 마음이 잘못된게 아니었음과 나의 과거 또한 그르친 마음이 아님을 알아주기로하자.




📖일 앞에서 더 순진해지고 싶은 마음_ 직장인 보다는 직업인이 되고 싶다. 내게 '워라밸'이 좋은 삶이란 근무 시간과 퇴근 시간 이후의 삶이 칼같이 분리될 때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내가 나를 위해서 살고 있다고 느낄 때였다. 일주일에 25시간만 일한다고 워라밸이 좋은 게 아니라, 투잡을 하며 50시간을 일해도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후자가 내게는 훨씬 더 밸런스 좋은 삶이었다.

직업인이라는 말보다 직장인이 더 입에 붙는다. 어떠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비중을 두기 보다 내가 버티고 있는 장소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것. 어떤 회사 다니는지가 더 관심이 가는 세상이다. 공기업 대기업이야 물론 좋지. 평생을, 천년만년 나를 먹여 살려 줄 수 있을 듯한 굵직한 기업체라면 나도 환영이다. 속물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인걸 어쩌겠나. 돈을 한번 벌기 시작하니 끊기가 어려웠다. 고등학생 시절 아르바이는 대학을 가서도 멈출 수 없었고, 빨리 돈벌며 쓸모있는 놈이 되고파 졸업 전에 취업을 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세번째 직장으로 오기까지 퇴사 후 입사를 하는 텀을 보면 채 한달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조급했고 조마조마했다. 한템포 쉬는 타이밍을 줘도 될텐데 퇴직금도 남아있겠다 나라에서 취업을 위해 챙겨주는 수당도 꼬박꼬박 들어오지만 쫓기듯 회사를 알아보고 내가 앉을 자리를 긁어모았다. 시간이야 어떻든 일단 돈을 벌 수 있고, 내가 일한 만큼의 무언가를 받아 갈 수 있다는 과정이 행복했다. 몸이 축나는 건 나중 일이었다. 지금 이 회사에선 안 올 것 같은 마의 10년을 채웠다. 회사 고인물이 되었다. 욕심이 사라지고 의욕도 사라지고있는데 초심과 더불어 일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던 이전으로 돌아가는게 가능 할까?




📖우산 쓰고 가면 돼요, 멋있어_ 시작하는 것보다 그만두는 게 항상 더 겁이 난다. 그래서 그다음엔 뭐 할 건데? 계획은 있어? 쉬었다 다시 할 수 있을까? 단지 좀 쉬고 싶어서 선택했지만, 굳이 누가 묻지 않아도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불안했다.

나는 겁이 많다. 계획형 인간이며 생활 반경이 매우 좁은 사람이다. 이민은 꿈도 못 꾸는 경주마 같은 시야를 가진 채 살아왔다. 어린시절 이사는 몇번 했으나 지역을 이동한 건 고작 한번 뿐. 대학도 직장도 다 거기서 거기인 버스 한 두번만 타면 닿는 곳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껏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계획이 바뀌거나 시뮬레이션이 돌려지지 않은 상황을 맞딱드리면 당황스럽다. 연습되지 않는 과정은 주저하게된다. 그래서 저자가 말해주는 직장생활과 이민 후 파트타임을 하며 느껴온 감정에 공감이 되었다. 다른 경로로 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 그게 나다. 일탈도 꿈꿔보지만 어째 나이가 들 수록 더 겁이 난다. 이럴 땐 내 어깨를 잡고 휙- 방향을 틀어주는 남편의 존재가 감사하다. 우야든둥 되게 되어있다는 모토로 사는 사람 덕에 살짝은 유연해지고 살짝은 느슨해지는 삶도 야금야금 배워가는 중이다. 연애 5년과 결혼 9년 동안 많이 말캉해진 신념이지만 때때로 혼자 이걸 정하게 될 때는 아직까지도 두렵다. 우야든둥 되게 되어있다는 모토를 떠올리며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되는거고, 안되는 거면 조금 쉬었다 해도 된다는 마음을 배워가는 것. 하..... 나도 성인이고 어른인데 아직 이런 삶의 유연함은 낯설다.



후루룩 읽었다.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도 있고, 나랑 닮은 듯 다른 삶의 영역을 가진 저자의 행보에 대단함은 박수받아 마땅한 결정들이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것도, 익숙한 사람들과 생활반경을 두고 처음 말을 배우기 시작하던 그 때 처럼 언어와 세상을 마주 한다는 것, 못하는 것이라 손사레 치기 보단 해야만 한다는 뚜렷한 목표를 앞에 두고 어떻게든 해 냈다는 것. 그건 나와 너무 다른 점 이었다. 이렇게 믿을 구석이 찐한 사람이라면 믿을만하지. 그리고 의지하고싶고 곁에 두고픈 진짜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간 나는 익숙함에 느적거리며 숨가쁨을 모르고 살았다. 삶의 큰 굴곡없이 몇년을 둥둥 떠있듯 힘 안들이고 살아오며 잔꾀만 늘어난게 아닌가 싶어진다. 나이는 먹었지만 나이먹으며 같이 먹어야 할 사람의 진짜 됨됨이를 잊고, 경력이 쌓이면서 같이 성장해야 할 인품도 놓고 산게 아닌가 싶어졌다. 그렇다. 예쁜 책이 참 예쁜 말로 나를 반성케 했다. 나는 나를 믿어 본 적이 없고, 흔들리는 나를 단단하게 매어 둘 생각도 없이 방치한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도 저자의 나이 정도 닿으면 나를 믿을 만한 구석이 생길까? 의심 하기 전에 좀 믿음직한 인간으로 남은 2023년을 만들어 볼 생각을 하며 인생 노잼시기라며 볼멘소리 하던 나를 꾸짖어본다.

📖허밍버드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완독 후 기록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가정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공동체. 사회복지사가 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게되고 여기에 모인 아이들은 형제처럼 의지하기도하고 또 현실남매들처럼 투닥거리기도하며 청소년기를 겪게된다. 만 18세가 되면 그룹홈을 떠나 스스로가 보호자가 되어 세상으로 나와야 하는데 부모가 자신들을 다시 데리러 올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그룹홈을 나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감사하게도 나는 이러한 고민을 겪지 않는 유년기를 보냈다. 조부모의 손에 자라지도 않았으며 풍족하지는 않았다 한들 부모 모두가 있는 가정에서 무탈히 자라왔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보편적이라 할 수 없는 귀한 상황임을 세월이 흘러서야 느끼게되었다. 가족이 아이들을 보호해준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가족과 분리된 채 보호해야만 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 그런세상도 존재한다는 것.

이야기는 그룹홈에 살던 민서, 솔&설, 해서의 이야기에서 시간이 흘러 그룹홈을 떠나 각자 독립한 어른의 민서,솔,해서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어느날 부모에게 버림받는 것,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 다른 남자와 가정을 꾸린 어머니가 있다는 것. 아이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보살핌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 10대시절 가장 큰 상처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이러한 과거가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자신들의 부모처럼 살지 않기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게된다.




📖31P_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아빠의 전화번호가 없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어떻게 아빠 번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한 번도 가진 적 없었는데. 하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없는 건 이렇게 슬프구나. 내겐 슬퍼할 기회조차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빠라는 사람이 있었지만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던 시간들이다. 민서를 두고 떠났고, 그룹홈을 퇴소 할 때까지 데리러 오지 않은 사람이다. 복지사선생님이 알려주어 부고를 접했지만 이미 친권을 포기한 사람이기에 법적으로 남남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 민서에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어린 민서로 돌아가 슬퍼하는 느낌이었다. 민서가 성인이 된 후 딱히 보호자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지만 과거의 어린 민서에겐 보호자 없던 그 순간이 아직도 큰 슬픔이며 눈물덩이리였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50P_ 정확히 말해서 이상하기보다는 나쁜 사람이었다. 내 생각에 해서 언니는 한번 떠나서 돌아오지 않은 아빠보다 주변에 머무르며 상처 주는 엄마를 더 미워해야 하는 게 맞는다. 나는 기억에도 없는 엄마보다는 아빠가 더 싫었다. 애초에 미워할 대상을 알아야 미워할 게 아닌가.

그룹홈을 통해 같이 자란 해서는 엄마처럼은 살기 싫으니 완벽한 가정을 꿈꿨다. 상대는 가벼운 만남이었지만 해서는 금새 사랑에 빠졌고, 혼자 큰 미래를 꿈꿨으며 임신까지한다.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 더 우선시 되는 민서나 나같은 경우엔 보여지는 세상이 빤한데 오랜기간 지겨본 사람도 아닌데 마음을 주고, 아이를 갖는다는게 이해되지 않는 해서였다. 또 달리보면 불완전한 가정이라 여겼을 자신의 삶에 빠른 안정을 찾기위해 사랑이 급급했고, 남들이 봐도 문제없을 가정이라는 합을 꿈꿨을 해서의 계획이 짠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삶이었기에 빨리 아이를 가져 자신이 못 받은 사랑도 듬뿍 주고,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유년시절도 치유하고픈 마음이 큰 해서. 이야기의 초입이지만 이미 답이 나와있는 듯한 행보에 엄마처럼 살기 싫지만 엄마처럼 결정을 하게될까 두려운 해서의 삶이 비춰지는 듯 해 마음이 쓰였다.


📖76P_ 너도 알잖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거. 부모 좀 있다고 태어날 때부터 나보다 옳은 인생이래? 내 부모 내가 선택한 적 없고 지들도 똑같잖아. 갈 데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살았지만 고맙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내 마음 안다고 이해하는 척하는 것도 싫고 거기서 살았던 생각하면 쪽팔리고 끔찍해.

그룹홈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다른 가정의 아이들처럼 자라도록 지원받게되는데 주거지의 정보도 공개되지 않으며 기본적인 배움의 공백도 없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으나 한창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 감정선을 면면히 살펴보진 못한다. 아이들은 더 많은 어른들의 시선과 싸워야했다. 진짜 부모와의 갈등과 부모 대신하는 사회복지사와의 마찰. 그룹홈을 나온다 한들 단정히 끝맺음을 하고 헤어진게 아니니 달라질게 없는 관계의 어그러짐이겠다. 사회복지사가 온전히 보듬고 토닥여주더라도 역할을 대신할 뿐이지 원래 해 주어야하는 존재의 주체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도움을 바란적도 없고, 도움이 되었던적도 없다고 여기는 해서의 마음은 어떻게 해야 잘 아물어질 수 있을까.


📖161P_ 나는 언젠가 들었던,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잘 받고 잘 준다는 말이 떠올랐다. 딱딱하게 굳은 내 표정을 어떻게 생각한 것인지 솔 언니가 내게 말했다. 갚지 않아도 된다고. 돌려받기 위해 준 게 아니고.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된다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이런 게 익숙해질 수 있을까. 내가 이상한 걸까.

사랑을 하게되면 이따금 듣게되는 말이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잘 준다'는 말. 받아본 만큼 돌려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이야기하는데 이 또한 보편화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말해주고싶다. 사랑을 넘치게 받았기에 욕심이 지나쳐 나눌 줄 모르는 사람도 있고, 항상 모자란 사랑의 마음 덕분에 나만은 그러지 않아야겠다 다짐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민서에게 들려주고싶었다. 나의 것을 타인에게 준다는 것.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눠 갖는다는 것. 돈이든 마음이든 모아오며 지나온 수고로움과 감정의 고됨을 감수하고서도 하고픈 마음과 행동의 움직임은 배워온 방법이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대로 하면 되니 잘 하고 있는 것임을 확신이 들도록 답해주고싶어진다.


때때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느낀다. 으레 그래왔던 것 처럼 일상 속에 있어왔던 것이라 여기는 것이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는 특별함이라 생각하면 보편적이며 당연한것이라는 말은 다 가지고 사는 자들만이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축복받았다고 해야 할까. 머리통이 굵어지고나서야 느낀 것은 나를 버리지 않았으며 놓치지 않은 감사한 부모의 양육이다.

솔, 설, 해서, 민서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의도하지도 않았던 과정이다. 그러니 이 아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세상은 남겨진 자들에게만 이유를 묻고, 더 나은 결과만을 기대한다. 양육권을 포기한 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것도, 폭행과 흉기를 휘두르는 보호자에게서 분리되어 여기까지 오게된 아이들의 심리를 살피는 것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일단 격리하여 아이들을 떼어냈고, 그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교육과 생활을 영위 하도록 지원한 후 법적 성인이 되었을 때 자립지원금을 쥐어주며 퇴거를 허락하지만 통보라는 말이 더 어울리도록 내보내어진다. 트라우마, 사회부적응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다. 더 큰 일만 벌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조용히 청소년기를 보내고 어른이되면 알아서 살아야하는 세상에 몰린 덜 영근 이들. 걱정과 우려가 가득한 일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를 만들고 또 살아가도록 연대하여 사는 셋이 기특해진다. 부디 완벽이가 이 셋을 어떻게든 살아내도록 하는 힘의 근원이 되어주면 좋겠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완독 후 작성된 기록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풀어낸 이야기가 열거하는 단어는 많고, 마침표를 찍어낸 문장은 단숨에 읽기엔 버거울 정도로 길고 세밀히다. 뭐랄까,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숨참기 시합을 하기위해 얼굴만 물속으로 들이밀어 눈을 뜬 그 순간 내 모습이 이 단편들을 들여다보는 시야와 일치한다. 쫀쫀하게 짜여진 문장들의 세상에 나는 천장에서 얼굴만 쑤욱 쑤셔넣고 둘러보는 느낌이다. 덕분에 모든 사건들이 내 눈에 다 들어온다. 그래서 아쉽다. 단편이라 더 궁금해진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모르던 이들의 평범했던 이전의 시간도 궁금하고, 여기서 멈추기보단 진짜 끝을 보고싶은 다음의 수순이 기대가되는데 입에 착착 감기는 타이밍에 끝이 난다.아쉬움에 쩝쩝거리며 또 언제즈음 새로운 이야길 툭 하고 던져줄지 기다려보게된다.




📖 니니코라치우푼타_ 할머니와 엄마가 막연히 짐작했던 미래에는 포함되지 않았을 게 분명한 장면들. 우리에게 실제로 닥쳐온 미래는 재해와 기근과 신종 바이러스의 주기적 출몰이 고착화된 세계에서의 각자도생과, 인류가 더 이상 인류를 이어갈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그 진행에 가속도가 붙은 초고령사회 정도였다.

입밖으로 내기도 어려운 단어 니니코라치우푼타.어머니는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지만 사라진 틈 사이로 딸에 대한 기억을 나름의 방식으로 메꿔놓는다. 옛날에 만난 적 있다는 그 '니니코라치우푼타'를 만나고 싶다고 채근하는 어머니. 치매의 노모이니 의식의 여부와 상관없는 생떼라고 여겨도 무방하겠지만 특수분장을하며 사는 딸은 그 말을 허투루 흘릴 수 없다. 그렇게 보고싶다고 채근하는데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어찌어찌 짜 보면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할 수 있는 한, 내 능력 안에서 최대한의 도리 정도. 이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내가 덜 미안하겠지 싶은 자기 방어라 봐도 되겠지만 내 어머니도 할머니가 되었구나 싶고, 당신과 내가 함께 기억하는 것들이 빨리 소진되어가는 듯 해서 더 애쓴건지도 모르겠단 씁쓸한 마음이 든다.



📖노커_ 어차피 가정폭력으로 점철된 불우한 유년기라든지 가난이나 질병 등의 개인사를 전시해주고 사회복지 체제의 그늘에 가려져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다며 동정심을 실컷 유발한 다음 헤드라인은 '묻지 마 폭행'정도로 내보낼 테니까.

출판사에선 저자의 책이 5년만의 신작으로 어쩌면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보았던, 혹은 상상도 못했던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 사고들을 볼 때 엠바고 상태로 함구하고있다가 딱 시기에 맞춰서 출간 한게 아닐까 싶은 의혹이 들 정도로 닮아있음에 놀랍고 무서워진다. 어깨빵을 당한 딸이 가격한 자를 쫒아가는건 특별날게 없는 행동인데 이러한 행위로 인해 그의 얼굴을 본 후 주저앉게되고 울음이 터지고 실어증으로 말을 잃어버린다. 인지하던 언어의 기억을 소실하여 무얼 본건지 알아낼 재간이없다. 인간인지 인간이아닌지도 모를 미지의 존재는 이 단편이 끝날때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불특정다수를 겨냥한 행위. 이건 최근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향한 살인예고와 마구자비 폭행과 닮아있다. 정서적불안, 질병, 가정환경, 교육조건을 들먹이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다며 그렇기에 '묻지마 폭행'으로 치부 할 수 밖에 없다 하기에는 그들의 모든 행동에 악이 가득 차 있어 더욱 화가난다. 앞서 말한 조건에 의해 악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탓하기엔 너무 관대한 대응이다.



📖노커_ 그런데 말이 언제 소통의 도구이긴 했던가? 우리는 평생 서로룰 이해할 수 없으며 말은 이해보다는 오히려 오해의 도구가 아니었나? 아무에게 돌을 던지거나 아무의 목을 매달아 까마귀밥으로 걸어놓는 무기의 일종이며, 특히 현란한 말이야말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입속의 혀처럼 부리다 그 가치와 흥미를 상실했다고 판단하는 즉시 도륙내기를 일삼던 독재자들의 필수 재능 아닌가?

소통의 도구로 큰 의미로 시작되었지만 옆으로 기생한 말의 혹덩어리는 타인을 긁어내기에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도구였고 쉬우면서도 간편한 무기가 되었다. 일면식은 없으나 그저 내키는대로 내 눈 앞에 있다고 저격당함에 마땅함으로 맞춰지기엔 말은 무섭고 위험한 수단이다. 말을 못 건네니 노커의 존재를 알릴 길도 없고, 노커의 존재를 부정하기엔 나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타인이 모두 적으로 보이는 상황. 사건 수사 요청자와 악플러의 관계가 이들간의 대립 정도라 보면 적절할까? 세상 선한척 한 꺼풀의 가면을 쓰고 다니며 일상을 누빌 노커. 그러다 실체의 악이 필요하면 말로 사람을 쥐락 펴락 할 수도 있는 독을 쥔 자 정도겠지. 노커에 대한 정확한 인물묘사가 안 된게 여러 의미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꺼풀 벗겨진 악으로 찬 자신의 얼굴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던 이의 독기어린 모습을 마주할 수도 있겠으며, 진짜 악마의 얼굴을 마주한 걸 수도 있겠다. 노커의 모든 가능성은 열어둔게 더 무서워지는 순간이다.



📖있을 법한 모든 것_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도, 선 넘는 관삼이나 무례한 참견을 동반하지 않고도 타인과의 관계 형성은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기며,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 길 없는 영화 속 남자가 첫번째 답장을 받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뢰가 들어온 로맨스소설. 얼마나 스트레스였길래 고민하다 잠든 꿈속에서 이런 걸 다 겪을까. 어디서 한번은 듣거나 보거나 겪어봤을 듯한 플롯의 연결고리. 그래서 너무 그럴듯한 타이밍이니 영화 시나리오로 안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씬을 넘어간다. 호텔 청소부와 객실 손님의 쪽지 담화. 절대 없을 법한 조합의 대화방식. 문장 몇줄에 마음이 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섣불리 마음을 줘버리는건 아닌가 싶은 망설임을 보며 수많은 영상과 글에서 만난 방식이지만 그만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것도 없지. 남자일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젊은이인지 아무런 정보 없이 있을 법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어가는 장면의 전환.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고, 애정어린 작은 행동에 반응하며 어떻게든 핑크빛으로 물드는 엔딩을 바라게된다. 현생에는 없더라도 소설이나 영화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회로를 가득 밀어부치게된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_ 참견하지 말라고 일일이 반반학 다음, 뒤이어 어떻게 인간도 아닌 게 가족이 되느냐는 시비를 걸어오는 데에도 상대를 해주었지만, 이제는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못 들은 척하고 지나쳤다.

과거 가정통신문으로 받아보았던 물자 절약 실천하기 사항들을 복창하며 그 시절 우리는 하라면 해야했고, 하기싫어도 해야했던 세태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국민학교를 입학하여, 초등학교에서 졸업한 나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저학년때의 기억. 사사로운 개인사까지 모두 공개를 해야하는 관계의 집단으로 그게 어떻게 우리가 공유할 사안인지를 묻고싶었으나 묵살될게 뻔해 목구멍에서 맴돌았던 기억이 가득하다. 그렇게 물자를 절약하고 싶다면 이 갱지와 선명하지도 않는 잉크자국들. 나르고 분배하는 인력까지 이 자체가 물자 낭비가 아닐까 싶었던 생각은 나눠주는 이는 모르고, 받는 아이들만 공감했던 기억같아 피식거리게된다. 옛날에는 다 그러고 살았다고 말하기엔 아쉬운 소외됨이 떠오른다. 수치심과 절약을 맞바꾸었기에 이지경이 되었나 싶기도한 것. 그렇게 옛날을 들먹거리다보면 결국 태초까지 이어질 것이며, 진짜 에너지 절약의 최후 수단과 최대의 효과는 인류 멸망이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나도 인간의 부류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결론에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애매하기만 하다.



📖이동과 정동_ 국경을 넘는다고 하여 즉시 질병과 가난과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대기자 펼쳐져 있는 건 아님을 알면서도, 통행의 자유마저 없어진 만큼 세상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경로는 줄어드니,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는 사람들의 원념이 술통 속의 효모처럼 부풀어오르는 건 당연하다.

노커가 묻지마 폭행과 살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동과 정동은 코로나시대를 겪어온 이와 소설 페스트를 읽은 이가 가장 많이 공감할 내용이었다. 전염병이 진득하게 머르고 있는 도시. 교차감염 우려하여 도시간의 이동은 완벽히 차단된 시대. 이전의 사회활동방식은 깨어졌고, 비대면 방식으로서의 전환과 항상 타인을 의심하게되는 과정을 통해 다들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지 않겠냐는 기대로 탈출을 원하게된다. 이 곳 처럼 전염병에 찌들어 있는 곳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바이러스를 가득 쥐고 오는 타인이 내 반경으로 들어오는 것은 반대하지만, 내가 새로운 공간을 찾아 가는 것에는 진입 거부가 없길 바라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암울의 시대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음을 느낀다. 인류가 겪는 디스토피아적 삶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겪어봤음직하며 들어봤음직한 소재들이다. 누구 하나 예외로 둘 것 없이 살면서 서너개 정도는 '나도 그런데...'로 혼잣말을 했을 단편이다. SF적 소설이라 하기엔 현실에 많이 닿아있고, 또 허구라 하기엔 요즘 일어나는 일들에 겹쳐보이는 구석이 많다. 거기다가 씁쓸함마저 짙게 느껴지는 주제들이라 개운치못하다. 세상이 마냥 무지개처럼 화사하고, 빛날 수 없다는 걸 실감하도록 정신 번뜩드는 모든 가능성이기에 완독의 뿌듯함보단 무거운 기운이다. 표지의 화사한 색감의 디자인에 눈치없는 다채로움이었다고 애먼 핀잔을 주게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