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오피스 괴담 안전가옥 FIC-PICK 8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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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범유진 저자의 이름이 나와있어서 고른 책이다. 최근에 읽었던 '칵테일, 러브, 좀비'또한 조예은 저자의 안전가옥에서 나온 도서로서 스릴러 환상소설을 선택하는 시선이 남다른 듯 하여 이번에도 믿고 고른 안전가옥 시리즈.

일을 해 봤다면 겪을 수 밖에 없는 이 고통을 '오피스 괴담'이라는 작품집의 바탕이 된 것. 나의 일상의 대부분을 바쳐가며 월급을 받고있고, 매일같이 출근하며 '출근하기 싫다'를 부르짖는 세상을 드러내었다.

여기에 있는 단편들은 다양한 분야의 직종을 보여주고있다. 그리고 일일 드라마에서 당연하게 보는 이사장, 부사장, 임원진들이 나오지 않는 것.(공중파 드라마만 보면 이러한 직급이 발에 채일 만큼 흔해빠져보여 때로는 역피라미드 구조의 회사가 운영이 될까 싶어진다) 가장 현실감 넘치는 이유는 내 주변에서 이러한 직종의 업무를 하는 사람이 한둘은 있었다는 것에서 말이 괴담이지 사회생활 설움배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며 이야기에 스며들게 된다.



📖오버타임 크리스마스_ 나 혼자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진실이란 다수결로 정해진다. 다수의 안에, 원하는 답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눈가리고 아웅. 흐린눈으로 세상 보기. 못할거 같지? 이 구역에서 밥멀어 먹고 살려면 영혼없이 박수치는 방법과 눈꼬리 움직이지 않고 웃으며 기뻐하는 스킬, 안 좋은것도 좋다고 할 수 있는 무영혼의 쌍엄지척의 근육이 발달될 것이다. 드럽고 못해먹겠다 싶은 사회생활도 내가 죽지 않으려면 그게 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 구역 공기의 흐름이 나를 그렇게 변하게 한다는 것. 신기하고 기묘한 세상이다.


📖오버타임 크리스마스_ 힘들면 만세를 외치라고, 만세를 하면 몸이 커지잖아요. 사람은 힘들수록, 공간을 많이 차지해야 주눅이 덜 든대요.

만세를 외치게 만드는 한마디와 시름시름 앓던 선인장의 모습까지. 만세 선인장이라는 것도 이 단편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 녀석이 가시는 작아도 움츠려 살지 않으려고 제 이름을 내세워 만세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이 구역에 내 편이 되어주는 생명체가 하나는 있구나 싶은 용기를 가지게 만들었다. 사람은 힘들수록 어깨를 펴고 꼿꼿하게 살기를, 그리고 가시를 드러내어야 할 때는 빳빳하게 가시를 세워보기를 바라는 듯이 우린 만세 선인장에게 삶의 방식을 배웠다.(사무실에서 숨쉬는 인간 중에 어느 하나 배워 써먹을 구실하는 놈이 없으니 선인장에게 얻어가는 삶의 방식이다)




📖명주고택_ 떨어져도 괜찮다는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에 더해 역사에 남을 뜻깊은 행사에 조금이나마 동참할 수 있어 영광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나는 내 일을 그렇게 충실히, 열정을 담아서 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죽어서라도, 영혼이라도 한달음에 달려가 그간의 고생과 노고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일단 이렇게까지 해왔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간절함. 죽을만큼 힘들게 했더니 정말 죽어서 왔나 싶은 쓰러움까지 모든게 짠하다. 책임과 간절함. 이 프로젝트를 따와야 나만 바라보고 사는 내 식구, 내 회사 동료들의 당장 다음달 급여가 무탈하게 이체되어 나가고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는 절절함이 혼이되어 고택으로 왔나보다.

나는... 나는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살았고, 간절하게 바래온 업무의 결과가 있던가? 하루가 무탈하고, 한주가 무사하며, 분기가 물흐르듯 흐르며, 그렇게 1년이 쥐죽은듯 시간이 이동되길 바라는 무사안일의 인생으로 살아가고있음에 뒷목이 찌릿하다. 열정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이며, 바뀌어보고자 하는 의지와 성과를 위해 달려가자는 결연한 의지도 없다. 얇고 길게, 눈에 띄지 않고 목숨줄 연명하길 바라는 그림자같은 직원으로 살다보니 열정도 의지도 없는 껍데기 출근을 하고 있음에 왠지 오늘 내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여겨진다.




📖행복을 드립니다_ 아이들에게는 좋은 집과 좋은 가족이 필요하니까. 윤미는 세진이와 세윤이의 행복을 위한 메신저가 되어 줬을 분이다. 자신의 이해와 두 아이들의 행복만을 생각했지, 경준 팀장과 그 가족의 행복 따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팀장도 윤미의 사정을 무시하고 윤미의 행복에 관심 갖지 않았던 것처럼.

행복을 파는 곳은 행복을 반납하는 직원들이 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주말과 늦은시간 매장을 가면 거길 관리하는 직원들. 나의 평범한 행복을 위해 당신들의 소중한 일상의 일부를 반납한 사람. 당연히 사측은 그에 대한 수당을 주니까 우리가 그꺼까지 감내하며 살아야되나 하겠지만 그러한 사사로움까지 바라는 게 아님을 먼저 알리고 싶다. 근무조건과 특수한 상황을 모두 인지하고 왔으나 일에 대한 힘듦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오너의 테두리에 있더라도 부서에 따라, 직급에 따라, 고용형태에 따라 다른 대우가 있다. 수평적 관계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갑보다 을의 경우 을보다 병의 입장에서 윗선을 바라 볼 때 들어주기라도 해준다면 설움이라도 가실텐데 라는 기대와 실망의 응어리가 있다. 제 선에서 할 수 없는 상황과 입장도 알지만 들어라도 주길 바라며 이러한 사정을 한탄과 해명의 기회라도 있다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는 아랫연차들과 말단 직급들의 마음이라는게 있다. 아마 윤미는 그걸 바란게 아닐런지.혹시, 팀장은 그걸 다 들어주면 들어주었으면서 왜 하나라도 바뀌는게 없냐고 반박할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차단한걸까? 역시나 사회생활은 어렵다.(˘・_・˘)


📖오피스 파파_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 주제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특별히 잘나거나 유능해지길 바랐던 건 아니고요, 그냥 이곳의 아주 작고 작은 나사 하나라도 좋으니까 기능하는 인간으로서 취급받고 싶었어요.

가끔 그 세계가 인생의 전부이며 왕노릇을 해야 재미를 보는 인간들이 있다. 회사 밖을 나가면 뭣도 아닌 그냥 동네 아저씨 아줌마 중 한명일 뿐인데 그러한 사람의 비유를 맞추고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주며, 손과 발이 되어 자잘한 것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가 있다.(나는 살다살다 부츠 뒷굽 나간거 수선해서 찾아오라는 소리도 들었다. 면허 딴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출내기가 회사차 몰고 그걸 해와야하는 것. 꼬우면 니가 사장하던가 라고 입에 달고 살던 그 대리. 평생 구두굽 맨홀에 박히는 삶 사시라고 정성들여 기도하곤 했다)

그들도 신입사원 시절부터 그딴 행색을 하고 살았을까? 보고 배운게 그 뿐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그 구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른자가 되기로 자처한건진 알 수 없으나 그들의 그늘에 있는 새싹같은 신입들은 점점 자기 비하와 자존감 소멸로 시름시름 앓게 되더라. 일 잘하고 인정받는 걸 바라는게 아니라 그냥 사람 취급 해주길 바라는 모습을 보면 짠하기 그지없다. 나는 저런 상사는 되지 말아야지 하지만 나도 저딴 꼰대가 되어가는건 아닐까. 신입들이 슬슬 피하는 선임이 되는건 아닐까 걱정스러움이 커진다.



📖컨베이어 리바이어던_ 조금이라도 더 낫게 살아 보려고 열심히 일하지만, 입에 겨우 풀칠할만큼이라도 소득이 생기면 그동안 받았던 지원들이 바로 끊기기 때문에 더 지독한 가난으로 빠지고 만다고도 했다. 그래도 일을 안 할수는 없었다. 무엇이라호 하지 않으면 결국, 이 가난한 삶을 계속 물려줄 수밖에 없으니까.

좋아서 자처하는 고생이 어디 있으랴. 생계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재능기부도 사회생활 경험도 그런거 없다. 결국은 좀 더 먹고사는 것이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 재벌의 소시민 체험도 아니고 이걸 왜 한때의 추억이라 하겠는가. 노동자들에게 왜 굳이 그런것만 찾아서 하냐고 물으며 좀 더 공부하고 좀 더 기술 익혀서 나은 곳으로 이직하라고 쉽게 세치 혀를 놀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와 그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 천대하며 눈 내리깔며 보는 그 시선 거두길 바란다. 그대들도 이렇게 일해준는 인력이 없다면 지금의 평범한 삶도 없다는 걸 제발 인지하고 살아줬음 싶다.



📖컨베이어 리바이어던_ 사실은 겁이 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고, 딜리원에서 겪은 일들은 그저 한때의 추억,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 어울리는 경험담으로 소비하면서 그렇게 평범하고 멀끔하게 살아갈 미래가, 사실은 무척이나 연약한 껍질에 감싸인, 단 한 번 발을 삐끗하는 것만으로도 허망하게 놓쳐 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미래는 평범하고 멀끔하길 기대하지 않았음 한다. 삶은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요, 인생의 굴곡은 롤러코스터와도 같아서 번듯한 대학에 남들 다 아는 대기업을 다니더라도 평생 직장으로 살 순 없으며,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당신이 하대하며 멀리했던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한때 SNS를 떠돌던 결국 엔딩은 치킨가게라는 소리가 있겠는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무업무만 보던 이들이 퇴직하고 치킨집 차리고, 배달 오토바이 몰고 다닌다 하던 그 말. 당신은 지금도 이 소리가 웃길까? 생계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 그걸 우스개소리로 넘기지 말아주면 좋겠다. 이 또한 누군가에겐 필요로하고 절실한 기회라는 것. 새벽 밤 잠 못자고 추위와 더위에 견디며 일하는 이들이 있기에 오늘도 무탈한 당신의 일과가 있다는 것. 그렇다면 당신은 직업의 귀천이니 나발이니 그런 말 조차 꺼내지 못하겠지.

좀 더 리얼하고, 좀 더 다양하고, 좀 더 현실성 넘치는 다양한 분야의 현대판 노비. 회사에서 나부랭이로 불리우는 아랫계급들의 이야기다. 갑보다는 을. 을보다는 병. 폭탄 처리반이며 뒷수습 담당과 잔잔바리 해결원으로 꾸려진 회사 구성원. 누군가의 감정쓰레기통도 되어주고, 현대판 욕받이 무녀의 구실도하게되는 이들. 장소만 오피스로 정해져있을 뿐 서럽고 억울함이 가득한 괴담은 어딘가 서글프다.

뉴스에서도 봄직하고, SNS에서도 살이 덧붙여져 카더라 통신버전으로 회자되며, 결코 끝이 나지 않을 회사의 악습과도 같은 일들은 픽션이라 하기 보단 르포에 가까운 어두움을 보이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했다. 돈을 벌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으니까. 이보다 나은 환경을 기대하며 몸과 정신을 써가며 나를 갉아낸 보상을 받았다. 제자리걸음도 있고, 개미지옥같은 구덩이도 존재했다. 역시나 묵묵히 잘 버텨나가면 창창한 미래와 희망찬 내일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때문에 우리는 추위와 더위를 뚫고, 카드값 내기위해, 공과금 고지서 납부를 위해 간다. 가야한다. 가야 사람구실 한다는 소릴 듣는다.

귀신나고오 기이한 현상이어야 괴담이라는 편견을 버리기에 아주 적합한 소재들의 조합이다. 이구역 도른자들이 득실거리는 곳. 행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가 아니라 지옥은 당신 곁에 있습니다. 라고 말해주고픈 웃프고 씁쓸하며 애석한 삶의 나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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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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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안 사고 제껴야지(?) 했던 저자의 책. 보고나면 마음이 너무 물컹해지는 것 같아서 이젠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멀리하는 저자가 있다. 나에겐 이병률 저자와 이석원 저자가 그러하다. 20대 때부터 꾸준히 사모은 책들 중 책 표지가 닳도록 들고다녔던 것이 보통의 존재와 끌림이었다. 뭐에 씌인듯 이것저것 다 이뻐보이는 콩깍지 현상이 책에 씌여져 페이지를 가득채워둔 사진도 예쁜데 사람의 감정을 툭툭 쳐대는 문장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내가 모자라고 쓸모가 없는 사람처럼 여겨질 때마다 울컥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한껏 구부정해진 등을 쓸어주는 것에 매료된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한 쿠크다스 멘탈이었으니 방구석 위로의 책이 최고였던 시절이었다. 20대엔 애틋했던 문장들이었고 30대가 되니 더이상 이렇게 말캉하게 살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멀리하려했는데 또 이렇게 쟁여두게된다. 결국 이 책 또한 이석원 컬랙션 칸에 추가가 되는구나.




📖어떤 이의 꿈_ 누구든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법이다. 그분이 정말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행복해서 늘 그렇게 웃음을 짓는지, 단지 직업적으로 손님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을 뿐인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집 근처에 널린 편의점을 두고 굳이 길 건너 허름한 구멍가게를 찾는 친구는 그 가게 주인아저씨의 표정이 좋아서 가게된다고 말했다. 늘 웃으며 손님을 대하는 그 집 사장님을 보면 자기 기분까지 좋아진다며 활짝 웃는 친구에게서 불편을 감수하면서 가는 목적이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단걸 느낀다. 항시 활기가 넘친다고 했으나 저자는 다르게 생각을 한다. 생글생글 웃는건 기뻐서가 아니라 의도된, 그러니까 교육이 되어진 사회생활의 고정값이라는 거지. 마음을 숨기는 것이 편하고(티내면 연유를 케물어보는 이로 인해 더욱 피곤해질테니) 항상 웃는 웃상이어야 여기저기 엮이며 피곤해질 사고수를 줄일 수 있다는 건 다들 오랜 사회생활로 자연스레 익히게된 습관일 것이다. 속에 울화가 치밀어도 고정값의 사회생활용 얼굴을 써야하는 삶이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다.

나 또한 표정으로 감나라 배나라하던 서비스직에 몸 담았던 전적이 있는터라 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오죽하면 내 선임이 출근할 땐 심장을 떼어놓고 오라는 소리를 하더라구.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아예 두고 오면서 빈 껍데기로 오는 편이 더 낫더라며 언니가 옷장사도 해봤고 여기저기 서비스직에 있어봤는데 그게 니가 안 다치는 길이니 그렇게 다니자. 그래야 오래 해먹을 수 있어. 라는 말이 이 글을 보는 순간 바로 생각이 났다. 그 언니랑 일할 때 쿵짝이 잘 맞아서 출근하는게 재밌었는데 잘 사나 모르겠네. 남의 돈으로 밥벌어 먹고 사는 것에 사회생활용 가면은 이제 필수 항목이니까 당연하게 생각되다가도 이렇게 그 마음을 알은체 해주면 그리 고마울 수 없다.



📖어떤 이의 꿈_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꿈도 꿈 나름이라는 것을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행복을 쫒는 것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일상이 달린 일이니까. 먹고사니즘의 기본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생존과도 연결되어있으니 더 중요한 거겠지.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입에 '회사가기 싫다'를 중얼거리며 몸과 마음은 따로 노는 듯 새벽 출근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회사 출근을 찍고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게 어른인거 같기도 하고 말이지.


📖풍경의 진실_ 왜지? 왜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걷는 이 순간이 이렇게까지 벅찰 정도로 소중하고 행복한 거지?

꽃이나 풍경을 찍어대는 엄마들.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카톡 메인으로 해두는 중년들의 자동완성 기능.

최근에 보았던 책들에서 엄마나 할머니가 했던 말들이라며 적어둔 글을 보았다. 이렇게 예쁘고 화사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나는 이제 이 멋진 봄을 몇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매해 보는 데도 질리지가 않는데 당연하게 느끼는 봄을 내년에도 보게 될까? 라는 문장을 보면 울컥해진다.

또... 나만 나이드는 줄 알았지. 또 나만 어른인줄 착각해버렸지. 내가 머리통이 굵어진 만큼 엄마의 흰머리는 더욱 빼곡해 졌고, 할머니를 빼다 박은 듯 주름도 늘어났고 더 자그마해지셨는데 나만 또 그걸 외면했지 싶어 뒷골이 쌔해진다. 나도 이러한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싶어지니 이왕 알게된 아름다움을 부디 내년에도 다같이 기뻐하며 만끽하길 바란다. 생전 알은체도 안하던 오만 잡다한 신들에게 빌어보며 무던하고 무탈한 봄을 내가 아는 이들과 가장 기쁘게 맞이 하도록 해달라고 친한척을 하고싶게만들어지는 감정이다.



📖어떤 섬세함_ 그리고 그건 다른 말로 타인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성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섬세함도 학습이 되어야하고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요즘 많이들 하는 후천적 선한인격 만들기 같은 것이기도 하다. 돈 번 만큼 열심히 다른 쪽으로 나눔과 기부를 하는 인플루언서를 보면서 나도 그리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걸 느꼈다. 역시 보는 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실행하는게 맞나보다. 내가 대기업 오너만큼 잘 살아서 하는 기부가 아니라 티끌모아 티끌이라지만 티끌도 써먹을데가 있지 않을까 하며 하는 마음의 표시도 해보고, 이 물건 하나로 이렇게 행복한데, 다른사람에게 사주면 얼마나 더 좋아할까를 생각하며 그 값어치의 돈이 없어도 내가 당장 도로에 나앉는 일은 없을테니 돈쓰는 재미로 마음의 비용을 지불한다는 셈을 치게된다.

결국은 돌고 도는 세상이다. 그러니 내 관심과 성의가 언젠가는 돌고 돌고 돌아 이사람 저사람에게 손이 옮겨가고나면 나에게도 한번은 올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일단 퍼다줘본다. 해보면 생각보다 어깨가 으쓱하고 내가 제법 괜찮은 어른같이 느껴지는 두둥실 들뜬 마음을 얻게 됨은 분명하다.


📖작은 마음_ 우리가 함께 보낸 그 수많은 순간들이 여전히 소중하니까, 나 자신을 그렇게 함부로 놔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참는 거지. 여전히 사랑하니까.

여전히 애틋한 마음.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탈 정도로 반짝이는 순간을 말하는 몽글거리는 감정. 친구에겐 이 것이 오랜 연인에게서 느끼는 감정이었고, 저자에겐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음악하던 이석원의 마음이라고 동음화 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만이 진짜가 아니라는 거지. 미안할때도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하니까 미안해하기도 했던 모호한 표현. 우리는 그것이 애정이도 애증이며 그냥 정이라고 한몫에 몰아 표현했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며, 싫은 것 또한 아니라는 점. 사랑하다보니 소흘해서 미안해했고, 사랑하니 욕심이 과해서 울컥 쏟아냈던 화도 있던 것 이었다. 결국 '사랑하니까'로 표현되니 반반한 사랑의 앞통수만을 바라보던 시간을 지나, 울퉁불퉁한 서운함과 얄미움의 뒷통수를 이제서야 목격하게된 꼴이라 여기고 싶다. 그래도 사랑의 본질은 그대로니까. 맨질맨질한 사랑의 표면은 이쁘게 뵈주고, 울룩불룩한 사랑의 그림자는 내가 보듬으면 되니까. 결국 변한건 없다고 여기면 그만이었다.



📖감동은 오래가지 않는다_ 어찌됐건 세상과의 밀당에서 승리한 대가로 내게 남겨진 사람들과, 비록 그 수는 적지만, 앞으로도 쭉 오순도순 남은 인생을 함께 잘 살아봐야겠다.

SNS에서 오랫만에 친구에게 의심없이 연락하는 방법이라고 본 글이 있다. 친구에게 선 카톡 후 답이 없다면 재빠르게 보내어야하는 셀프 안부늘어놓는 방법은 연락하는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이었다. "청첩장 건내기 아님. 돌잔치 초대장 아님. 보증 부탁 아님. 대출 요구 아님. 회원가입이나 보험 계약 요구 아님"을 먼저 알려야만 그제서야 반가워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어쩌겠어. 분기별로 연단위로 연락하는 뜸한 관계였을 때 의심을 더는 방법이 이거라면 쿨하게 말 할 수 있지 모. 나라도 그런 의심을 할 테니까. 그러니 혹시라도 언제 한번이라도 올 연락과 이따금 한번 생각이 날 듯 한 사람이라 남겨둔 연락처의 갯수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픈 사람과 먼저 연락이 오는 사람들에 만이라도 잘 지내고 있으니 너도 알아서 잘 지내자고 언제 한번 만나면 제일 반갑게 인사라도 해보자며 적당하게 거리유지와 반가움의 사정거리를 유지하길 바란다. 그래야 나도 너도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덜 받게 될 것임을 우리는 많이 배웠으니까.


저자는 매번 출간했던 에세이가 나를 향한 이야기이지만 이번엔 타인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쓰려고 애쓴 작품이라 일러두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글들에는 제법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결국 그들의 영향을 받는 나에 대한 생각들이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픈 마음이 그득한 글이다.

책을 시작하면서 알려준 노부부의 이야기나, 자신이 작가인걸 알은체하던 경비원의 이야기, 독자와의 대화에서 나눴던 에피소드들은 그들로 인해 영감을 받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던 지난날의 자신의 단상을 알려주며 '저는 이러했으니 이 글을 읽은 그대들은 부디 그런 맘이 없길 바라며 혹여 그러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덜 받는 방향으로 자신을 뉘여놓으시오.'라는 일종의 감정 가이드라인 같았다.

몸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지만 마음이 편해야만 몸도 개운하게 기지개 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더라. 그러니 힘들다면 '아이고 죽겠다'라며 혼자말이라도 툭 뱉어보고, 여력이 안되면 '이얏차!'라며 괜시리 입으로 기합도 넣어봤음 싶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그 어떤 작은 이해 하나를 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리니 가끔을 이렇게 티나게 티내보는 것으로 최소한의 이해하려는 과정을 만들어봤음 싶다.

..... 결국 주변의 소리에 많이 예민하고, 타인의 반응에 솔깃해지고, 뜬금 없는 상황에 당황하는 편이라는 점. 듣는 귀가 예민하며, 바라보는 눈망울이 깊고, 그래서 결국 주변의 상황에 많이 흔들리는 '나'였음을 이해하니 모쪼록 그렇게 살겠노라 말하는 저자와 나의 동일한 삶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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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정원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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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진 아이는 주인공 정훈. 무언가 뾰루퉁한 표정과 눈썹을 보이고 있지만 또 어찌보면 똑부러지고 당찬 구석도 있어뵈고, 옳고 그름에 대해 FM이 되어 있는 듯한 빤듯해보이는 아이.(표준어가 아닌거 알지만 이 친구를 표현하기엔 반듯보다 빤듯이 어울린다) 그 시절에 나도 그러했던건 아니었나 돌아보게되는 초등4학년의 생각이 넘치는 일상 이야기다.




이 책은 사춘기에 접어들 시기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편견과 차별, 불평등과 처음 겪게되는 상황들을 풀어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른들이 당연하게 만들어 둔 차별과 편견들을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시선으로 보며 겪게되는 에피소드들이다. 표정과는 다르게 에피소드들의 제목들은 한결같이 '~는 소중해'로 적힌 걸 보면 자신은 좋지만 이걸 타인에게 표현해도 되는게 맞는지, 혹시 유별나게 나만 좋아하는건 아닌지, 내 표현이 다른이에게 불편함을 주는건 아닐지를 생각할 아이의 깊은 고민의 연결고리를 따라가게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우산은 소중해' 단편. 하교 시간 우산이 없는 어린 학년 동생에게 선뜻 우산을 건네주는 정훈. 비를 맞더라도 그 편을 택했던 건 자신이 저학년 시절 이름모를 언니에게 우산을 얻어 썼던 기억덕분이라는 것을 마지막 그림에서 느낄 수 있다. 누군가의 호의와 배려 덕에 내리는 빗물 만큼이나 슬펐을지도 모를 순간이 감사했고 기분좋았던 터라 정훈은 언젠가 그 날이 오면 똑같이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비록 이 친구가 우산에 그린 물감이 수성이라 옷이 다 물들었고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았더라도 우산을 빌려준 누나를 위해 예쁜 그림을 그려주고싶어했을 이름모를 동생의 정성을 알기에 그날의 정훈은 어른의 정훈이 되더라도 소중한 기억으로 평생을 살 지 않을까 싶어진다.





준서의 부재. 할머니의 사망. 정훈은 준서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짜장라면 간식을 먹었던 기억이 있어 할머니도 그리워지고 준서의 슬픔을 어떻게 위로 할지를 고민한다. 다같이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조금 덜 슬퍼하도록 친구들끼리 모여 함께 짜장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 이 친구들만의 위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좋았던 순간을 복기하며 할머니와 함께했던 순간 만큼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함께했던 기억으로 채워보길 바라는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슬픔을 나누고 덜어내어 함께 먹어낸 친구. 새학기에 맺어진 짝꿍의 인연이 이렇게 개인의 가족사의 슬픔을 채우는 소중한 우정으로 확장되었다.




어른으로서 생각이 많아지는 '어린이는 소중해' 어린이가 소중한 만큼 어린이가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픈 할아버지의 1인 시위. 그리고 아이들은 먹고싶은 빵을 구입하기위해 추운 곳에서 1인 시위하는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과 부탁의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들. 편의점에서 따뜻한 유자차를 드리며 부탁을 하는데 노키즈존에서만 파는 맛있는 빵을 대신 구입해달라 말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지만 아이들이 맘편히 먹으러 가기 어려운 곳. 그 상황을 통해 요즘 세상의 노키즈월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이들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과 동반한 어른들의 주의를 필요로하는 노키즈 존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싫어하는 세상으로 바꾼 것 같아 미안스러워진다. 동반한 유아를 케어하길 원하는 마음에서 주의가 필요한 곳임을 알리는 노키즈존이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질까 걱정이 되기도한다.

나도 겪어낸 시절이었다. 이젠 기억도 희미한 10대의 초입. 생각이 커진 만큼 마냥 아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고, 또 그렇다고 중고등학생 언니들같은 외형적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라 더 혼란스러운 시기. 내 마음을 훤히 드러낼 만큼 표현하는 것 마저 부끄러운 시기라 뾰루퉁하기도하고 심드렁한 표정이지만 이 친구들의 속내는 말캉하고 따뜻하다. 내 어린시절을 반영한 듯한 정훈의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하고 새치름함에 귀여운구석이 보인다.

정훈이 좋아하고 소중해하던 것들을 옅보면서 내 어린시절도 떠올리고, 정훈과 같은 시기를 겪을 나의 조카들의 성장과정도 빗대어보며 이 친구들이 많은걸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공감하는 구석을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내가 그랬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어지는 성장의 과도기를 조금은 유연하게 흘러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픈 공감의 책이다. '너희들의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라는 마지막 문장을 끼워넣고 싶을 만큼.

📖 미디어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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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맨 눈의 마을 트리플 22
조예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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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도 어찌 이리 기가막힐까. 꿰맨 눈의 마을이라는 신간 발매와 함께 눈내리는 마을 표지. 책을 읽기 전엔 몰랐지. 그 눈과 그 눈의 경계를. 내가 이토록 한국판타지 소설을 좋아했던 적이 있나 싶지만 SF소설에 발을 들여놓고 난 후 자연스레 판타지 소설까지 영역을 확장한게 아닐까 싶어진다. 마냥 만화같지도 않으면서 탄탄한 구성과 함께 조만간 넷플릭스나 티빙에서도 3연작 시리즈로 나올수도 있겠다 싶은 그런 기대감까지.

이야기는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지만 독립적이지 않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 인물들이 겹쳐서 처음부터 정주행하듯 읽기를 권해본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내용이라 훅훅 읽어지는 속도감까지 더해지니 생업이 있는 직장인 나부랭이는 본업 끝낸 후 틈틈히 읽으며 사흘만에 읽어지더라. 각잡고 주말을 빌려 읽었다면 하루만에도 완독이 가능한 전개속도이다.


꿰맨 눈의 마을 / 히노의 파이 / 램 의 단편에 더불어 저자의 에세이와 작가이자 기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작품 해설집으로 총 5개의 이야길 갖고있다.

해설집의 이다혜 기자가 3개의 단편을 배열하기를 현재-먼 과거-가까운 과거 순으로 배열된 것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현재-과거-미래의 구성이라는 점에서 공감하는 바이다.

이야기는 2066년 6월 6일 새빨간 달이 뜬 멸망한 세계로부터 도시가 물에 잠겨 바이러스와 저주병을 피해 방주같은 타운으로 숨어든 이들의 둠스테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속에서 사람들은 익히 아는 지금의 모습을 잃은 채 '저주병'이라고 통칭하는 현상이 발현되는데 아무데나 눈이며 입이 생겨나고 있지 않아야 할 곳에 생기는 손이나 기관들로부터 흉측한 모습에 전염을 걱정하며 마을 밖으로 쫒아낸다. 교차 감염의 여부나 생존 확률은 물론이고 추적관찰 따위 필요치 않으며 세상밖으로 밀어내기 바쁘다. 그렇게 서로를 감시하게된다.



📖꿰맨 눈의 마을_ 하지만 그거 알아? 결국 중요한 건 시간과 쪽수야. 누가 다수를 차지하느냐.

그렇더라. 시간과 쪽수를 기점으로 격리가 되느냐 일반화가 되느냐의 차이를 두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무뎌졌고, 확산세가 커져 우리가 기준을 두는 일반인과 비 감염인의 수치를 넘어선 후가 되면 그게 결코 일반화라 할 수 없는 수순으로 이어지는 걸 봐온 시점에서 보니 꿰맨 눈의 마을은 지금의 세상과 많이 닮아있어 웃프기도 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감염자를 쫒아낼 때 쥐어주는 미트파이와 콜라는 코로나 시대를 겪어온 우리가 보기엔 격리자에게 주는 생존 식량과도 같았다. 램처럼 먹고 버텨내면 다행인거고, 그러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며, 우린(일반인) 최선의 배려를 해 준 셈이니 탓하지 말라는 뉘앙스도 풍겨온다.

세상은 모두 자신을 기준삼아 옳고 그름을 나누게된다. 그렇게 자신과 다름에 있어서는 인지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결국 혐오의 시선을 깔아두게된다. 다른 사람이 그러면 몰라도 나는 아니다 라고 부정하며 청렴을 내세우는 이는 몇이나 될까. 나 또한 나와 다른 결의 사람을 마주 할 때엔 일정부분의 혐오를 갖고 본다는 걸 알고있다. 그래서 저자가 깔아준 아포칼립스판이 무섭다. 상생보단 혐오와 배제의 비중이 커지는 인간으로 진화될게 빤해보이는 나도 어줍잖은 인간이니 머리는 그러지 말자고 하는데 의식과 상관없이 행동이 타인을 밀어내고 있을까봐 이런 세상이 제발 책 속에만 있어주길 바라게된다.

구구절절 늘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루하지 않으며, 등 뒤에 눈이 생기거나 목 언저리에 입이 생긴다 한들 묘사되는 것이 호러의 무게를 두지 않아 읽는 것에 눈살찌푸리게 만들지 않아 편히 볼 수 있는 단편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소설 판권 누가 사서 영상 제작해줄지 무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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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퓨테이션: 명예 1~2 세트 - 전2권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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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과 명성을 이야기하는 단어인 레퓨레이션. 세상에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를 뜻하는 명예를 굳이 또 한번 언급하는 걸 보면 중의적인 무언가가 있음을 언급하는 듯 하다. 레퓨레이션을 사전으로 찾아보면 또 이러한 설명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 또는 어떤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의견. 사람들이 어떤 사람 또는 어떤 것을 생각하는 방식.

평판과 명성이 누군가에겐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명함이 될 수도 있고, 또 타인들이그것으로 일면식도 없는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지기도 한다는 것. 자신이 원하는 명성은 어느정도이며, 타인들이 바라보는 방식은 선은 어디까지라 보아야 할지를 생각해보며 이 표지의 여성이 원하는 권위는 무엇일지를 생각해본다.


제법 현실적인 소재이며 한번쯤 생각해보았던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피햬는 저명인사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 SNS에만 올리고 팔로워 수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여러 계정을 넘어가며 다다른 이에게 불쾌한 이미지나 메세지를 무차별적으로 전송하며 일면식 없는 이를 향한 날이 선 공격들. 생각보다 다양하고 두려운 방식의 혐오의 압박은 기본적인 삶의 평온까지 잃게 만든다. 이제 그 극한의 단계에 선 이 표지의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한다.


시작은 '시체는 계단 가장 아래에 있었다.'로 시작한다. 이야기는 사건일 일어난 날을 먼저 언급한다. 앞서 말한 그 시체인 마이크(타블로이드지 기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여성 하원 의원인 엠마 웹스터. 그리고 그녀의 딸인 플로라와 전남편 데이비드, 데이비드의 새 아내 캐럴라인. 엠마의 지역구 주민이자 혐오의 액션을 서슴치 않는 백스터. 2권 후반에 나오는 엠마의 교수였던 마커스 제이미슨까지.

그녀는 왜 시체를 마주했던 것인지. 그리고 왜 그런 일이 그녀의 집 안에서 일어난 것인지를 이전의 이야기부터 날짜별로 각각의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따라가기로 한다.


📖 P49_ 그런데 당신이 더 주목받게 되는 게 플로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역 뉴스에 등장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이렇게나? 잡지 표지 모델이라니? 스스로를 너무 표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는거 아닌가?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거 아니야?

데이비드는 엠마의 유명세도 중요하지만 그 화살이 딸 플로라에게도 이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사건을 수면위로 끌어올려 이들을 지키는 법안을 추진하다보니 아무래도 반대 세력이나 그로 인해 처벌을 받게된 이들이 엠마와 엠마 주변을 노릴거라는 생각에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렇다. 관심은 무조건적인 옹호와 함께 무조건적인 비난이 같이 오게된다. 때때로 비율만 달라질 뿐 이 양면적인 시선은 늘 공존하는 것이 문제이기에 그걸 모르지 않는 데이비드는 엠마에게 에두르지 않고 말하지만 그녀에겐 대수롭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다.



📖 P88_ 유명해지는 일을 굳이 피하려 들지 않았고 자신의 대의에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위험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플로라는 엄마가 페미니스트의 이상을 옹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플로라는 괜히 약 올리려고 자기가 안티페미니스트라고 떠들고 다니는 동급생 남자아이들 외에는, 실제로 안티페미니스트를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엄마가 수위를 조금 낮추길 바랐다. 엄마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이 좋을지 몰라도 플로라 눈에도 TV에 나온 엄마는 짜릿한 흥분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남들과 다르길 원하는 건 아니었다. 열네 살 플로라는 남들과 조금고 다르고 싶지 않았다.

너무 다른 성햐의 엄마와 딸. 엠마는 자신의 딸이 언론에 드러나는 걸 바라지 않았지만 지역사회에서 그게 어디 쉬울까. 쟤는 하원 의원 딸이래. 쟤네 엄마가 가디언 표지에 나온 그 사람이잖아. 쟤네 엄마랑 쟤는 왜 저렇게 달라? 라는 식의 시선. 세상에 플로라는 없고, 엠마의 딸. 하원 의원의 딸이라는 닉네임만 붙게되며 시기와 질투를 넘어선 위험한 따돌림까지 받게된다. 그러니 자신을 드러내고픈 엄마와 자신을 군중속에 숨기고픈 딸의 상반된 입장을 보면 확실히 화려하게 비춰지는 삶의 이면에는 항상 그늘이 있고, 그 피해를 받는 사람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또래로 인한 따돌림. 플로라가 행한 정당치 못한 행위. 따돌림으로 인해 하게된 우발적 보복행위라고만 하며 죄가 없을음 주장 할 순 없다. 그간 이어진 악의적인 따돌림은 질타를 받아 마땅하고, 정확히 우발적이라고 해야 할지 플로라 내면의 의도적인 마음이 존재했다고 할지는 명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것은 범죄였다.

이제 플로라를 지키기 위한 엠마의 행동과 그 사건의 냄새를 맡은 기자 마이크. 사이의 이야기. 그리고 마이크가 왜 엠마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 했는가를 따라가는 것이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다.




📖 P53_ 그렇게 해주는 것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표면적으로는 엠마의 무죄를 믿는 것이, 플로라와 엠마, 데이비드는 물론 캐럴라인인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외도녀라는 딱지가 벨크로처럼 그녀에게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그게 싫었으니까. 그녀는 엠마만큼이나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는 엠마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명예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어쩌면 인간의 진실된 내면일지도 모르겠다. 배려와 양보, 타협보다는 헌신의 마음을 더 크게 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명예에 흠이 나는 걸 좋게 받아들일 순 없다. 이른바 내가 쌓아온 이미지는 나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예시이며 나를 이루는 또 다른 자아이기 때문이다.

엠마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캐럴라인. 엠마가 안쓰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켠에는 어떻게든 엠마가 별 탈 없이 이 사건을 빠져나와야만 그녀와 이어진 자신의 가족들이 무탈하고, 근심을 덜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엠마는 무죄를 받아야했다. 범죄자의 전남편과 딸을 가족으로 둔 사람으로 일컫어 질 순 없다. 지금도 그녀는 플로라를 가르쳤던 가정방문 강사였던 걸 떠올리면 그 어떤 좋은 닉네임은 없다. 거기에 재를 뿌리듯 범죄자인 전부인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라는 단어까지 추가할 필료는 없다. 생각해보면 엠마보단 자신을 위해서 무조건적인 무죄입증에 힘을 싣어야하는 가장 절실한 사람이었다.


P244_ 이번 사건에 이르기까지 제가 경험해온 공포를, 그 어떤 여성도 경험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제가 온라인상의 글로, 문자로, 사무실로 발송되는 편지로 수많은 괴롭힘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마이크 스톡스의 신문사로부터 스토킹당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사망할 일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일면식도 없는 이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다는 것은 물론 무조건적인 질타와 마녀사냥 식의 악의적인 태도. 스토킹과 협박. 꾸준한 범죄의 노출. 그건 유명하다고 감내해야하는 삶은 아니다. 염산테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항상 세척을 위해 주변엘 물을 두어야 하는 삶이라면, 꾸준히 자신을 스토킹하듯 뒤를 밟아가며 사진을 찍고 협박하는 일상이 이어진다면 모두가 은둔하듯 살아야 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기본적인 삶의 평온을 받납해야 한다면 그게 진짜 사는데에 목적을 두고 싶을까?

이야기는 으레 엠마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2022년 12월의 레이철 이야기를 보면 순간 욱하고 울컥하는 이야기를 마주한다. 마이크가 죽기 전 엠마와 나눴던 이야기와 그리고 그 이후 이야기를 통해 알게된 사진들. 한 사람을 향한 보이지 않는 시선과 흔적, 집착은 끝이 없음을 알려주며 씁쓸하게 끝이 난다.


역시나 법정 스릴러는 시간에 따라 더욱 고조되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맛이 있다. 엠마가 숨겨온 진실. 진실속에 지키고싶었던 진짜 목적. '명예'가 우선이었던 엠마는 결국 삶의 모든 것이 '명예'의 범주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하나 놓을 수 없었고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 긴 법정싸움으로 갔던것으로 보여진다.

넷플릭스를 통화 영상화가 확정된 원작이니 시간에 따라 당당함과 두려움을 오고가는 그녀의 감정표현을 잘 해줄 배우의 케스팅이 가장 중요해보인다. 또 하나의 영상화 과정에서 주목하고픈 것은 엠마를 둘러싼 얼굴없는 SNS속 글의 주인들이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에서 느끼는 기쁨. 타인의 고통과 절망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면, 불행의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 희열을 느끼는 샤덴프로이데에 빠진 이들. 그 단역들의 자극적인 영상이 이야말로 울화통을 유발하는 존재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엠마의 재판과정을 보는 언론과 시민들. 그 군중속에 숨어있었을 엠마의 안티들의 표정에 주목하는 영상을 기대해본다.

📖 이 책은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완독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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