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 사랑을 받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게 중요했다. 깊은 겨울의 시간을 걸어갈 때 언 발을 녹일 수 있는 따스함이, 누군가의 비난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가, 이어지는 실패와 거절의 하루를 꾹 참고 지나 보낼 수 있는 인내가,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은척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사랑은 완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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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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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가부장도 아닌것이, 엄마의 주권이 더 센 가모장도 아닌것이, 딸래미가 서열1위의 시대라니!

보통 딸만 있는 집에서는 아빠들이 기를 못 펴긴 한다.(우리집도 마찬가지. K장녀의 착한 첫째딸보다 어디서든 으르렁거리며 이구역 미친년인듯 뼈때리는 말만 해대는 막내딸이 아빠를 이겨먹긴하지.) 그런데도 그것은 때때로 이뤄지는것이지 모든 권한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는데 여기는 상황이 아예 다르다. 그래서 더 신기한데 또 납득이 가는 상황이다.

평일 저녁마다 하던 일일 시트콤이 사라진 허한 자리를 가녀장이 채웠다고 표현하는게 나로서는 최고의 비유로 꼽고 싶다.

낮잠출판 대표이며 이시대의 가녀장. 복희씨와 웅이씨는 혈연관계로 보면 엄마와 아빠이지만 출판사 대표이자 딸래미가 고용한 직원들. 업무상으로는 존칭을 사용하다가도 대화의 흐름이 가족적인 길로 빠져들때엔 딸,엄마,아빠로 바뀌는 대화체. 슬아의 필력, 복희의 살림력, 웅이의 청소력이 이 연대를 지속시켜준다. 공짜가 없는 관게. 가족에 기대지 않으며 노동에 대한 대가로 보상받는 시대. 그래서 더욱 철저하고 똑부러지는 세상이다.


📖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_ 웅이가 복희에게 중얼거린다. "우리가 잘하면 쟤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 계속 같이 살게 해줄지도 몰라."

복희도 웅이에게 중얼거린다. "맞아. 쟤는 바빠서 집안일할 팔자가 아니야. 옆에서 청소하고 밥 차리고 도와주는 사람 있어야 해. 게다가 쟤 된장국 없으면 밥 안 먹는 스타일이잖아."

웅이가 슬아를 보고 말한다. "그냥 우리를 입주 가사도무이라고 생각해줘."

복희도 슬아를 보고 말한다. "일하는 아줌마랑 아저씨한테 방 하나 주는 셈이라고 쳐."

이러한 관계도에서 한명이라도 반대를 했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조직이었다. 모두가 수긍하고 모두가 인정했기에 한 출판사의 대표이자 가녀장은 더욱 더 가열차게 글을 쓰고 감각을 곤두세울 수 있겠지. 글을 읽으며 수긍+긍정+흐뭇한 미소를 자아내지만 한편으론 진짜 저렇게 된단 말인가? 싶은 물음을 계속 쥐고있게된다. 가녀장의 확고한 신념과 그간의 행보. 그리고 복희씨와 웅이씨의 적극적인 수용의 자세가 이 조직도를 완성했겠지.

세상이 흘러가는 것에 유연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준비되어있는 복희씨와 웅이씨여서 내가 사는 동안 가녀장의 시대를 마주할 수 있어 기쁘다.


📖 복희를 공짜로 누리지 마_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복희는 음식을 만드는 데만은 천재다. 슬아는 복희의 재능을 사서 누린다. 복희는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

살림노동에 대한 월급 산정을 해준 대표. 살림을 살고있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으며, 한 집안의 살림도 겸하고있는 직장인인 나로서는 그 노동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 고 있다. 든자리 난자리의 개념보다 더한 존재이지만 가정주부라는 직업적 화폐 환산가치는 매우 낮으며, 때로는 없는 경우도 있다. 그 재능을 사서 누리는 가녀장. 이렇게 직원들의 가치를 높이 사기 때문에 가녀장은 대우받을 만 하다. 설령 된장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슬아이기 때문에 더 예민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복희씨에게 직업을 준 것 만으로도 가녀장은 한 중년의 근로에 대한 기쁨을 알게 해준 대표이다.


📖 장군 말고 장녀_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가리지 않고 하다보니 어느새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아진 사람이 되었다. 문학 같은 건 안중에 없어진 지 오래였다. 온갖 직업을 전전한 그는 이제 출판사 직원 겸 운전기사로 일한다.

...

...

웅이가 훌훌 떠나보낸 문학을 슬아는 힘껏 붙들고 있다. 슬아를 모시는 게 어쩌면 문학을 간접적으로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고 웅이는 생각한다.

성별을 떠나고, 연령을 떠나 잘 하는 것을 하고 사는 것. 잘난체 하는게 아니라 잘난놈이니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고집과 객기를 넘어선 능력에 합당한 삶의 방식이다. 웅이씨 역시 슬아처럼 문학이 좋아 업으로 삼으려 했지만 연이 닿지 않은 것이었고, 정말 많은 직업을 거쳐온 삶에서 출판사 직원 겸 운전기사를 겸하고 있는 것이다. 웅이씨의 문학에 대한 애정이 대를 이어 슬아를 통해 표출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마음으로 더더욱 딸이자 대표를 더 열심히 붙들어주는 마음으로 가녀장을 보필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잘난놈에게 더 잘나도록 뒷받침 해주는 것. 같이 잘난놈이 될 수 있는 타이밍이다.


📖 바깥양반의 아우라_ 각자의 일로 분주했을 독자들이 집에서 발 뻗고 쉬는 대신 작가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교통체증도 감내하며 찾아온 자리다. 이 시공간은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경험이어야 할 것이다. 슬아는 강연자로서의 자신을 반쯤은 공연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멋지게 입고 강연장에 간다.

...

...

"어쨌거나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슬아의 어깨는 작지만 단단하다. 그것이 바로 가녀장의 어깨일 것이다. 웅이가 운전석과 조수석의 창문을 동시에 내린다. 부녀는 연기를 내뿜으며 밤길을 달려 집에 돌아온다.

피식 웃게만들었던 바깥양반이라는 호칭.

보통 부부관계에서 남편에게 불려지는 말이다. 아내는 안사람, 남편은 바깥양반이라하며 표현하기도 하는데 나도 바깥양반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맞벌이 부부로 살지만 몇년 전엔 남편이 자발적 퇴사를 하고 한동안 쉬며 살림을 도맡아 하던 기간이 있었다. 과한 업무와 매년 바뀌던 이름 석자 앞의 직함. 좀 더 버티다간 회사 지박령이 되어 오도가도 못할 분위기이며 많이 힘들어하던 차였기에 퇴사 후 휴식을 권했다. 그랬더니 원대한 꿈을 이뤘다며 전업주부의 꿈을 이루게 해주어 고맙다 하기도 했고, 때때로 퇴근 즈음 연락이 와서 바깥양반의 저녁메뉴 추천을 받겠다며 나에게 물어오곤 했다. 성별에서 나눠지는 안사람+바깥양반의 표현을 벗어나 경제적 활동을 하며 가계를 이끄는 아내에게 남편이 먼저 말해주었던 '바깥양반'이라는 호칭. 그걸 가녀장도 듣고 사는걸 보니 나도 잠깐이지만 가녀장의 시대를 이끄는 일원이기도 했더라.(자녀가 없다면 나는 가모장이 되는 것인가, 가녀장이 되는 것인가?)

슬아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출판사와 가정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했다. 작지만 단단한 가녀장의 어깨.

말 없이도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복희씨와 웅이씨가 있어서 슬아의 어깨가 존재했다.

📖 낭독회는 김장중에 시작된다_ 고단한 생로병사 속에서 태어나고 만난 당신들. 내 엄마를 낳은 당신들. 해가 지면 저녁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당신들. 계속해서 서로를 살리는 당신들. 말로 다 할 수 없는 생명력이 그들에게서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흘러왔다.

알 수 없는 이 흐름을 나는 그저 사랑의 무한반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이 나의 수호신들 중 하나였음을 이제는 알겠다. 기쁨 곁에 따르는 공포와 절망 앞에 깃드는 희망 사이에서 계속되는 사랑을 존자씨와 병찬씨를 통해 본다.

슬아의 필력에 존자씨도 복희씨도 직업을 얻었다. 존자씨는 복희씨의 된장스승이고, 복희씨는 낮잠출판의 어엿한 직원이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소중한 딸이고 손녀인 슬아의 손끝으로 다시금 피어올랐다. 알고는 있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그대들의 고단함. 너무나 미안해서 꺼내기 죄송스러웠던 삶. 하지만 슬아는 그 모든걸 알려주고 애썼다고 말해준다. 당연하다고 치부했을 고생스런 손길들이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슬아를 키웠기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엄마, 아빠 보다 존자씨와 병찬씨, 복희씨와 웅이씨로 다시 바라보면 울컥한 무언가가 밀려온다. 불려지는 호칭의 당연함보다 그대들의 이름이 빛나도록 살아오신 세월에 내가 이렇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덧대여질 수 있어 감사하다.

📖 어느 오후의 부녀_ 숙련되지 않은 작업자였으면 꼬박 이틀은 걸릴 노동이다. 슬아는 웅이의 솜씨에 연신 감탄하며 말한다.

"나는 참 직원 복도 많지."

웅이씨는 손끝에 많은 달인들을 모시고 산다. 다양한 직업을 거쳐오며 살다보니 청소하는 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능으로 가녀장의 요청에 응할 수 있다. 슬아의 입맛에 따라 만들어지는 책장도 그러하고, 슬아가 갖고있지 않는 꼼꼼함으로 청소며, 운전실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웅이씨 한명을 고용함으로서 고용주인 슬아는 여러 대체인력도 함께 얻었다. 직원 복도 많고, 아빠 복도 타고난 슬아. 어쩌면 웅이씨는 감사하다는 말보다 슬아가 혼자 중얼거리는 '나는 참 직원 복도 많지!'라는 말에 더 뿌듯했을지도 모르겠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가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이의 반응은 언제 들어도 짜릿하니 말이다.

가사 노동이나 경제 활동에 대한 남녀와 연령에 대한 고정관념은 이전에도 그래왔고,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듯 하다. 좀 더 유순해지긴 했으나 뚜렷한 가녀장의 시대를 이어갈 이들이 얼마나 될까. 혼자서는 절대 이뤄 낼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무조건 딸이 집을 일으키는 조건과 나이많은 부모가 순응하길 원하는 시대를 바라는게 아니다. 이러한 형태의 가족도 있으니 유쾌하게 봐 달라는 것이며, '이노무 집구석 잘~ 돌아간다'는 식의 비꼬는 말이 안 나왔음 하는 바람이 크다. 퇴직을 하고 노년의 삶을 즐기면서 때때로 자식들이 용돈을 챙겨드릴 때 당연하게 받아들이시기보단 한번즈음 '아이고 우리 따님 고생하신 노고 감사히 받겠습니다.'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유순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는 그 순간을 바라는 마음이다.(그런 의미에서 울 아빠님 매우 칭찬해드리고 싶구만)

'가녀장의 시대'를 완독하면서 내맘대로 원하는 답을 만들었다. 각자가 잘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에 맞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며 좀 더 잘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면 가부장,가모장,가녀장의 시대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괜찮은 미래를 맛 보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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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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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은 M이모로부터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 이모는 아니지만 마음이 가던 사람. 그래서 대화를 하다보면 더욱 마음이 가는 관계들이 있다. 이 곳으로 이사를 오게된 이유도, 그녀의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지. '아주 재미있는 동네야. ... 언제 너도 한번 놀러오렴. 좋아할 것 같은데'라는 말은 몇달 후 진짜 작가의 동네로 이사를 오게 만들었다.

폭이 좁은 골목과 낮은 집들. 개 두마리가 성곽길을 따라 사이좋게 뛰어다니고, 폭우가 그치면 성곽 위로 솟은 나무들 사이에서 새들이 부산스럽게 지저귀고,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평상이나 골목의 벤치에 앉아 볕도 쬐고 적적한 서로의 일상에 말벗이 되어주는 동네.

어쩌면 이 모습들은 잊고 살아왔고 더이상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같은 동네의 모습을 닮아있다. 큐브조각들처럼 쌓아올린 아파트촌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풍경과 마음들이 모여있는 곳. 작가는 교통이 편리하고 다양한 문화생활이 가능한 곳이 아닌 이 동네를 택했다. M이모가 마지막으로 머문 이 곳이라면 자신의 마음에도 제대로 쉬게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거겠지?



마당 없는 집_ 생의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각각의 것들이 자라나면 자라나는 대로 그냥 두고 보는 것. 이것이 게으른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원예 방식이다.

마당이 없는 주택이지만 옥상이 있는 주택이기도 하지. 애초에 품었던 원대한 텃밭 농부의 꿈은 이루지 못 할 지라도 작약과 장미. 몇 종류의 허브와 딸기, 대추토마토를 보면 고작? 이라는 생각도 하겠지만 옥상 농부는 그 마저도 행복이고, 이름모를 무성하고 푸르른 잡초 또한 나름의 싱그러움을 주는 눈요기의 새로움이라 해두고 싶다. 쟤네들도 이름이 있겠지만 우리가 모를 뿐이고, 바람에 날려온 씨앗일수도 있고, 새가 몰래 물어다놓고 갔을 수도 있는 작은 흙더미. 거기에 바람과 빗물이 키운 풀들이라 생각하면 이 녀석의 삶의 의지는 몹시 대단하고 박수받아도 될 만한 가치있는 삶이겠더라.

마당이 없는 집이지만 작은 화분들이 있고, 화분들에 화려한 꽃나무들은 없더라도 큰 관심 없이도 잘 자라주는 이름모를 풀꽃들의 대견함도 가진 곳이다. 멀리 차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보이는 산의 풍경은 사계절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않는 것 만으로도 여기 오길 잘했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듯 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머리속에 존재하는 형상이 있다. 꽃은 꽃집에 가야하고, 과일을 직접 따먹는 즐거움은 체험 농장에만 가야 된 다는 생각들. 내 손을 뻗었을 때 쉽사리 닿을 곳에 이러한 것들이 있다는 생각하면 마당없는 집은 마당만 없는 집이란 결론을 내어보며 나를 더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만들게 해주었다. 나도 마당없는 집을 찾아봐야하나?


슬픔이 가르쳐준 것_ 사람들이 그토록 서투른 말들을 건네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겐 봉봉이라는 친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살고있는 존재가 있다. 작가의 삶 일부를 함께한 봉봉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의 초입에 나온 M이모 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임이 확실해보인다. 사는 데에 일밖에 모르던 나의 절친한 P를 보아도 그녀의 존재속에 개는 반려동물 그 이상의 의미로 크게 자리잡고 있더라. 때때로 내가 놀리듯 개가 분리불안이 온게 아니라 견주가 분리불안으로 난리친다고. 걔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텐데 애닳는 맘은 알겠지만 어지간히 하라며 잔소리하기도 했던 나였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에도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해 안타까워한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이 생명을 두고 멀리 갈 수 없다며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는 대신 자신의 차까지 배로 싣고 제주일주를 한다고 했다.

내가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고, 아직 키워 본 적이 없다보니 그 친구들이 주는 사랑의 크기도 가늠이 안되긴 한다.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랑에 대한 교감은 사람 대 사람으로 이뤄지는 것과 또 다른 동물과 사람간의 큰 마음의 울림이 있겠지. 사랑도 줬고 슬픔도 다 주고간 봉봉. 봉봉 덕에 작가는 위로가 주는 단어의 크기와 무게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모두 이별에 대한 위로를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겪어는 봤을 테지만 모두가 그 일에 대한 당사자가 아니니 우린 모두 짐작만 해 볼 뿐이다. 가늠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려운 슬픔의 깊이이니 선배들은 경사보다 조사에 더더욱 빠지지 않아야한다고 했고, 위로랍시고 아무말이나 늘여놓지 말고 그냥 진득하니 앉아있고 머물러주라고 했었나보다.



마흔 즈음_ 진짜 생일이 아닌데도 생일상을 준비해준 할머니와 가짜 생일파티가 뭐냐고 타박하는 대신 친구들 편에 기꺼이 선물을 들려 보내준 친구들의 보호자가 지닌 다정한 마음에 대해서 이따금 나는 생각해본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내가 여전히 인간의 선의를 믿고 있는 건 이런 기억들이 내 안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따수운 사람들 속에서 자란 사람이었기에 작가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선한 시선과 반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구나. 역시나 좋은 사람들 곁에 있다면 나 역시도 자동으로 물들어 간다는게 정말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글 이었다.

가짜 생일 파티라니! 그런데 모여든 마음과 축하의 한마디들은 가짜가 아니라 더욱 마음 몽글몽글해진다.

나의 생일도 애매하고 어수선한 친구관계로 눈치게임하는 학기초라 태어나서 생일파티는 딱 한번 했던걸로 기억한다. 생일파티에 초대는 많이 받아봤어도 정작 내가 주인공이 되던건 진짜 손가락에 꼽히는 것. 친구관계가 넓과 활달한 편도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을 빌려서 많은 친구들과 테이블을 붙여 생일파티하던 게 셈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80년대 후반 태생들은 알거다. 롯*리아에서 생일파티 예약을 하면 거기 직원 언니 오빠들이 풍선도 불어서 벽에 붙여놔주고 인원수에 맞춰서 길게 테이블을 붙여서 햄버거를 케익처럼 쌓아주는게 그 시절 최고의 파티 룸이었다.)

그러한 서운함을 어른들이 헤아려주고 가짜 생일파티라는 설명에도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해주라고 아이들에게 눈을 맞춰가며 따숩게 이야기 했을 것을 떠올려보면 마음의 울림은 크고 화려한 물질보다는 진심이 그득히 품은 그 마음 자체 라는걸 다시한번 느낀다. 가짜 생일파티에 참석한 진짜 친구들은 지금 작가처럼 다들 마흔 즈음이 되었을텐데 그들의 아이들이 이러한 가짜 생일파티를 하게된 친구가 있다하면 똑같이 이야길 해주겠지? 선한 마음과 고운 시선은 내리사랑과 같은 결이니 미루어 짐작해더라도 오차없이 다 같은 맘일거라 확신을 하고싶다.



사람의 마음에는 눈에 띄진 않지만 고유의 결과 길이 나있다. 손끝에 살짝 스치기만해도 아리도록 상처를 내는 사람이 있고, 계속 쓰다듬고싶어지는 여리고 풍성한 모질로 기분좋아지게하는 사람의 마음. 직접 손으로 느낄만큼의 직관적이진 않지만 우리는 안다. 손끝의 촉감만이 이 감촉을 느낄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는 참 부드럽고 포근해지는 마음을 갖고 있다. 어쩌면 봉봉의 등털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은 짐작도 해본다.

전단지를 붙이러 이 동네까지 걸어 올라와 잠시 한숨을 돌리는 이에게 물이라도 건네주지 못한게 내심 미안했다는 생각. 길에서 파지줍는 노인에게 우리집에 종이 많다며 약속시간을 잡아두고 챙겨주는 발걸음. 집을 수리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노고에 감사함을 챙겨주고파 봉투에까지 가지런히 넣어두는 정성. 자신의 슬픔이 채 아물진 못했으나 동네 지인의 강아지를 맡아서 챙겨주는 시선. 눈이 가득 쌓인 집앞을 치우기 전에 작은 눈사람 하나를 챙겨놓고 시작하는 마음만은 아직 어린이인 다큰 어른.

곁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같이 물들고, 동요되어 기분좋아질 듯한 존재. 물질적인 아름다움보다 사람의 행동하나하나가 어여삐 보일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것들이다. 악하고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하는 삶 속에서 참 예쁘게 자란 어른의 마음을 보았다. 진득하니 주변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이 감정이 행복의 또다른 감각임을 배웠다.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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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병률 지음 / 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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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예약을 해서 구입했다. 그만큼 또 알게모르게 나는 작가의 책을 기다렸나보다. 전작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은게 2019년 9월 이맘때였으니깐 3년만에 펴낸 신작이었다. 알라딘 서점 에세이 담당 MD님은 이 책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일에 관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그리고 사랑이 주는 공기에 관해 쓴 산문이라고 소개했다.


시인에게 사랑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삶이고, 사람'이라 말해주었다. 작가만의 감성이 있다. 그 감정을 오롯이 녹혀낸 산문집이다.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이 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확하며 어떠한 것이 모자란지는 비교 불가한 것. 자기에게 최적화된 사랑을 찾는 일련의 과정과 순간의 마음들을 담아두었다.


이번 책에도 작가의 사진이 함께 기록되어있다. 때때로 그는 글을 쓰는 작가인지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인지 헷갈릴정도이다. 잘 쓴 글과 함께 잘 찍은 사진들. 글에도 사진에도 작가의 감성이 가득하다. 한장 한장 넘기는 페이지의 글이 적다 한들 후다닥 넘겨버릴 수 없는 경험을 또 해 볼 듯 하다. 사진에 한참을 머물고, 단어 하나하나에 남겨진 여운을 매만지며 아껴 읽어야겠다.





손 잡아주지 못해서_ 손을 보는데 마음이 미어지는 사람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손만으로 그 사람의 많은 걸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 어쩌면 손에 보이는 것은 얼굴 표정일 수도 있으며 사연일 수도 있으며 마음일 수도 있는 것.

... ...

언젠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말해주겠노라. 참 많이도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때가 지금이 아닌 것은 나 당신을 오래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도, 나중에 명백히 말하겠노라.


각자의 인생에 스쳐가는 타인1, 타인2로 여기던 사람을 내 사정거리의 등장인물로 바꿀 때. 그리고 그 사람들과 눈맞춤이 아니라 피부로 직접 닿으며 나의 감각을 전하는 시초가 손이라 생각된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가장 흔한 스킨십이 될 수도 있는 손잡기.

손을 맞잡는 것, 깍지를 끼는 것, 손등을 매만지는 것, 손끝을 툭툭 건들여 보는 것, 그리고 차마 직접 닿을 수 없는 상황이라 시선으로 상대의 손을 쓸어내리기도 하는 것. 그 모든것에는 각기다른 감정과 마음의 쓰임이 존재한다.

손을 보고 마음이 미어질 수 있다는 건 그간 나눴던 대화나 눈맞춤으로 한참동안 나눴던 그 감정의 끝이 상대의 손에 머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장 쉬운 손잡기인데 가장 어려운 스킨십이 되어버린 둘. 언젠가를 빌미로 언제 한번은 꼭 당신의 손을 잡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꺼내어 보겠노라 다짐을 하지만 기약없는 다짐인걸 알고있다. 필요로 할 때 손 잡아 주지 못한 미안함을 독백으로라도 뱉어보며 진심은 그게 아님을 내비쳐본다. 상대도 분명 알고 있겠지.




​나를, 당신을, 세상을, 세계를_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바다에 가자는 말은 사실은 사랑한다는 말이며, 노을을 보러 가자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이며, 깊은 밤 불쑥 산책을 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는 것도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단어 그대로 사용하는 횟수가 줄어드는걸 느낀다. 혹시나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싶은 앞선 걱정과 함께 내맘과 같지 않은데 나만 둥둥 떠다니며 고백해버리면 지금의 이 사이도 없는 것이 되어버릴까 싶은 불안감도 여전하다. 그러니 내가 했을 때 행복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툭툭 내어보며 바다를 가보자, 노을이 예쁘대,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라는 말로 슬쩍슬쩍 마음을 비쳐본다.

이러한 마음을 작가는 글로 남겨주셨고, 적재님은 노래 '별 보러 가자'로 마음을 표현 해 놓으신 듯 하다.

일말의 숨김 없이 직설적으로 말해도 좋을 나의 남편에게도 오늘 써 먹어 봐야겠다. 이제 날도 선선해지고 하니 밤 산책 가보지 않겠냐고.




당신이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_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잃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기억하겠지만 사랑을 기억하는 편이 제일 나을 겁니다. 살아갈 힘을 남기자면 그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묘한게, 한번 끓여놓으면 쉬이 식지 않는 두툼한 주전자처럼 뭉근하게 지속되는 지속성이 제법 탁월하다는 것. 이 것 또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보온성이 좋은 감정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던 순간의 열정도, 지속하는 지금의 따뜻함도,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그 사랑에 마침표를 찍어 둘 중 어떤이의 부재가 되는 순간이더라도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길게 지속될 것임을 안다. 그 온기 덕에 나는 살아가고있고, 이후의 삶도 살아 낼 여력을 만들어 줄 듯 하다. 없어도 사는 데에 지장은 없겠지만 있으면 버텨낼 재간을 부리게 해주니 나에겐 제법 쓸만한 무언가로 정해두고 싶다. 그대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살면서 가장 행복해하며 사랑한 순간을 긁어모아 오라 하고싶다. 흩뿌려놓으면 별거 아닌 잔챙이 같아도 모아서 양손 가득 움켜지면 제법 포근함하니 당신에게도 누리게 해주고싶다.

​타인을 사랑하는 감정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씀씀이도 모두다 사랑인거다. 하늘 위에 쏟아질 것 처럼 가득한 별들에도 각각의 이름이 있고, 이리저리 이어보며 하나로 합쳐놓은 걸 별자리로 부르는 것 처럼, 각각의 마음들도 사랑이고 함께 나누고 마음을 확인하며 선을 이어보는 일련의 과정도 사랑이다. 그래서 서로 뻗어낸 손이 닿아 이어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나보다. 내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잡아주어 알아주니 말이다.

내가 사랑해서 행복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마음이 놓이고, 내 사랑이 당신의 언저리에 닿아 있음을 느껴서 감사한 것. 설령 원하는 결말이 아니더라도 그때 타오르던 나를 더 아껴주고 북돋워 줄 수 있는 힘을 남겨 놓는 것. 사랑의 온도를 꺼트리지 않는 것. 그 마음을 가르쳐주려도 오랫동안 단어를 가다듬어 책으로 내어주신 듯 하다. 사랑에 헛헛해지는 순간이 오면 이 책으로 마음 좀 뎁혀놓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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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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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청소년 문학이라고 청소년만 읽을 수 있게 제재하는 것도 아니니 살짝 설익은 어른인 나도 참 재밌게 읽었고 다음 회차에 뽑힐 작품도 기대를 하게 되더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느끼게 될지. 그리고 그들보다 조금 먼저 어른이 된 내가 가진 생각은 그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지를 생각하며 읽으면 또 다른 재미의 구석을 찾아 낸 듯 흥미로워진다.


부모의 보살핌 대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정인. 학교에서 근로를 허락한 알바생이기도하고, 때때로 폐지를 주워 빈지갑을 채우는 중학생. 세세하게 이 친구의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고 몇몇 단어만으로도 느껴지는 고단함과 빠듯함.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은 한번뿐인 수학여행의 설렘을 기다리는데, 정인에게는 통신문에 적힌 354,260원 이라는 금액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세 시간을 아르바이트 하는 정인에겐 시급 9,160원으로 알바를 하고, 알바가 없는 날이면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가방 가득 폐지를 주워 빈 지갑을 메꾼다.

그렇게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세 번, 틈틈히 폐지를 주워 꼬박 한달을 일해야 채워질까 말까한 금액이다. 나 같아도 설레겠다. 이렇게까지 돈을 써가며 간다면, 단 며칠간에 그 금액을 홀랑 써버리면 당장 다음날부터 이뤄질 고된 일상에 눈이 질끔 감기고 깊은 숨이 몰아 쉬어질 설레임 같은 것.

읽을수록 어찌 이리도 셈이 밝은 아이가 있나 싶다. 정인의 처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어른이라면 어린녀석이 돈만 밝히는 속물처럼 볼 수도 있겠다만 이렇게 정인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걸 보니 급하게 영글어버린 아이 같아 안쓰러움만 커지더라.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그 모든걸 알아서 다 쥐고있는 모습을 보자니 살짝 불안함도 느껴졌다. 정인의 곧은 생각을 툭툭 치면서 어떻게든 꿰어보려는 헬렐 벤 샤하르가 슬그머니 들러 붙은 것 때문. 윤기나는 검은 털과 금빛의 눈. 고양이의 털인지, 건물사이의 어둠인지, 아니면 고양이에게 숨어있는 인간의 그림자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래도 헬렐은 악마니까 막 퍼주듯 정인을 돕진 않겠지.


49P_ 할머니도 늘 '세상에 났으면 밥값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니까. 도대체 밥값이란 건 뭐길래 아끼면 아낄수록 더 버거워지는 걸까? 한 사람이 세상에 나서 먹는 밥값을 다 셈함면 그게 그 사람의 인생값일까?


내가 느끼는 밥값의 구실이라 하면 인간다운 최소한의 정도 즈음 되겠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밥값에는 제 그릇에 넘치는 욕심이 있어서는 안되고, 제 한몸 편하자고 남들에게 폐를 끼쳐서도 안되고, 육신이 건강하다면 생산적인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고, 기본적인 도의를 지키는 주체 정도?

(생각해보니 안되는 것들이 참 많네. 또 어찌 보면 내가 지금껏 먹어온 밥값을 금전적으로 계산한다면 집이며 차며 신용까지 최대한 담보를 잡아서 가장 큰 금액으로 대출을 해야 될 지도 모르는데,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것을 구별해 선한 사람으로 살면 된다는 거니깐 할머니의 밥값 계산법은 어찌보면 헐하게 정산된것이라 감사하게 여겨야겠다.)

정인에게는 모든 정산법이 돈과 연계되어있다. 복지사가 챙겨주는 물품은 할머니에겐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이라 인식 할 수도 있겠고, 고물상에서 후하게 처주는 폐지값도 어쩌면 나중에 다 돌려 갚아야 하는 밥값의 복리 이자로 머릿속에 맴돌수도 있겠다. 아이에겐 타인이 주는 호의도 결국 자신의 처지로 인해 받은 추가 수당 같은 셈법이니 말이다.

어른이 되고보니 정인보다 밥값 못하는 어른이 참 많았다. 그에 비해 정인은 빨리 영글고 시기에 맞지 않게 익어가는 듯 하지만 제법 단단하고 묵직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듯 해서 이정도의 친구라면 몇 년 후의 정인은 밥값을 선불계산하고있는 청년으로 자라지 않을까 싶다. 할머니가 손주를 참 잘 키우셨고, 손주는 알아서 잘 컸구나 싶은 아줌마의 참견과 괜한 뿌듯함.


74P_ "난 네 운명을 바꿔 줄 수 있다니까."

"바꿀 수 있다면 그게 운명이에요? 구청에서 개명 신청하는 것도 아니고."


헬렐의 유혹에 이 녀석은 뭐이리 단호한가? 원래 이 시기의 아이라면 한번정도 혹하는 마음에 헬렐의 달콤한 말과 환상에 스르륵 넘어가며 진득하니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리는 반성의 시간도 가져보고, 유혹을 뿌리친 후 다시금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전래동화같은 결말을 기대해야하는데 시작부터 대쪽같다. 그래서 정인이 맘에 든다. 그래그래. 요즘 친구들이 이렇게 똑부러져요! 오랜 시간 살아온 헬렐의 능력치에 부합하지 않는 새로운 상대이니 근성 넘치는 이 모습을 보고 얼마나 이겨먹고 싶을까.

나중에라도 구청에 가면 피식 웃을지도 모르겠다. 구청 민원 창구에 개명 신청을 받고, 다른 한켠에는 운명 교체 신청을 받는 창구라니! 거기엔 헬렐이 사람을 채용하려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정인이는 똑부러지다가도 아이같은 생각이 불쑥 튀어나오는 영락없는 중학생 이구나 싶어진다.



좋지만 좋지 않은 것. 나에게 좋을 수도 있지만 남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며 즐겁진 않으려는 제법 확고한 신념. 정인은 그렇게 잠깐은 즐거울지 몰라도 부당하게 얻어지는 이득과 행복에는 영 관심이 없어보인다. 할머니의 밥값지론이 아이에게 크게 다가왔나보다.

소원도 뭘 알아야 빈다고 했던 정인이니, 하고싶은 것도 뭘 해본 아이라야 할게 늘어나겠지. 자신을 한번씩 약올리던 태주였지만 그거야 정인이만 못들은체하고 마음에 담아주지 않은다면 굳이 머리써가며 몸써가며 악마에게 부탁을 해서 괴롭힐 이유따윈 없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헬렐은 넘어올듯 넘어오지 않고, 지금껏 해왔던 인간들의 유혹방식과는 사뭇 다른 정인을 어떻게든 꾀하고픈 눈빛이다.나약한 고양이 같지만 결국 악마니까. 한 번 즈음은 정인을 낭떠러지로 내몰아 웃음지을 눈을 가진 자 임을 계속 주시하게된다.


230P_ "그치만 이건 진짜가 아니에요. 어쩌면 나중엔 제가 만약에를 찾을 수도 있고, 파우스트라는 사람이랑 상담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한 번 더 진짜를 살아 볼게요."



'만약에~'로 시작된 인간의 요청은 헬렐를 부르는 주문과도 같았다. 인간이 한 선택에 헬렐은 그걸 구체화 시켜주었고, 말하는대로 이뤄진 현상을 누린 인간은 헬렐에게 마음을 먹히고 말겠지. 그걸 맛 보고 더이상 먹지도 누리지도 않겠다는 단호함은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주체로서 참 대단하다고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었다.

원래 한 잔은 너무 많고, 천 잔은 너무 적다고 했다. 악마의 셈법이 맞았다. 처음의 시도는 어려웠고, 반복되며 익숙해지다가 그 이상의 것을 탐하며 그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고 더욱 악해지는게 악마가 만들어놓은 인간의 사용법이었다.

그럼에도 정인은 '여기까지'임을 이야기했고, 환상이 아닌 진짜를 살겠다는 말은 지금껏 헬렐이 만나온 인간과는 또 다른 부류임을 확신하게 했다. 매의 눈보다 매서운 금빛의 고양이 눈이 휴가 중 점찍은 달콤한 인간다웠다. 아주 찐하고 재미난 휴가를 보낸 헬렐은 얼마나 더 많은 가정을 세워 인간을 꾀할지는 모르겠으나 헬렐의 악마 인생사 중 최초로 이긴 인간으로 남을 순 있겠지만 최후의 인간만은 아니길 빌어본다. 인생사가 재미난 이유는 모두 각자의 소설을 하나씩 쓰고 있기 때문이니 정인보다 더 올곧고 반듯한 아이는 알게 모르게 더 많다는 걸 슬그머니 흘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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