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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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가부장도 아닌것이, 엄마의 주권이 더 센 가모장도 아닌것이, 딸래미가 서열1위의 시대라니!

보통 딸만 있는 집에서는 아빠들이 기를 못 펴긴 한다.(우리집도 마찬가지. K장녀의 착한 첫째딸보다 어디서든 으르렁거리며 이구역 미친년인듯 뼈때리는 말만 해대는 막내딸이 아빠를 이겨먹긴하지.) 그런데도 그것은 때때로 이뤄지는것이지 모든 권한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는데 여기는 상황이 아예 다르다. 그래서 더 신기한데 또 납득이 가는 상황이다.

평일 저녁마다 하던 일일 시트콤이 사라진 허한 자리를 가녀장이 채웠다고 표현하는게 나로서는 최고의 비유로 꼽고 싶다.

낮잠출판 대표이며 이시대의 가녀장. 복희씨와 웅이씨는 혈연관계로 보면 엄마와 아빠이지만 출판사 대표이자 딸래미가 고용한 직원들. 업무상으로는 존칭을 사용하다가도 대화의 흐름이 가족적인 길로 빠져들때엔 딸,엄마,아빠로 바뀌는 대화체. 슬아의 필력, 복희의 살림력, 웅이의 청소력이 이 연대를 지속시켜준다. 공짜가 없는 관게. 가족에 기대지 않으며 노동에 대한 대가로 보상받는 시대. 그래서 더욱 철저하고 똑부러지는 세상이다.


📖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_ 웅이가 복희에게 중얼거린다. "우리가 잘하면 쟤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 계속 같이 살게 해줄지도 몰라."

복희도 웅이에게 중얼거린다. "맞아. 쟤는 바빠서 집안일할 팔자가 아니야. 옆에서 청소하고 밥 차리고 도와주는 사람 있어야 해. 게다가 쟤 된장국 없으면 밥 안 먹는 스타일이잖아."

웅이가 슬아를 보고 말한다. "그냥 우리를 입주 가사도무이라고 생각해줘."

복희도 슬아를 보고 말한다. "일하는 아줌마랑 아저씨한테 방 하나 주는 셈이라고 쳐."

이러한 관계도에서 한명이라도 반대를 했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조직이었다. 모두가 수긍하고 모두가 인정했기에 한 출판사의 대표이자 가녀장은 더욱 더 가열차게 글을 쓰고 감각을 곤두세울 수 있겠지. 글을 읽으며 수긍+긍정+흐뭇한 미소를 자아내지만 한편으론 진짜 저렇게 된단 말인가? 싶은 물음을 계속 쥐고있게된다. 가녀장의 확고한 신념과 그간의 행보. 그리고 복희씨와 웅이씨의 적극적인 수용의 자세가 이 조직도를 완성했겠지.

세상이 흘러가는 것에 유연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준비되어있는 복희씨와 웅이씨여서 내가 사는 동안 가녀장의 시대를 마주할 수 있어 기쁘다.


📖 복희를 공짜로 누리지 마_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복희는 음식을 만드는 데만은 천재다. 슬아는 복희의 재능을 사서 누린다. 복희는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

살림노동에 대한 월급 산정을 해준 대표. 살림을 살고있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으며, 한 집안의 살림도 겸하고있는 직장인인 나로서는 그 노동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 고 있다. 든자리 난자리의 개념보다 더한 존재이지만 가정주부라는 직업적 화폐 환산가치는 매우 낮으며, 때로는 없는 경우도 있다. 그 재능을 사서 누리는 가녀장. 이렇게 직원들의 가치를 높이 사기 때문에 가녀장은 대우받을 만 하다. 설령 된장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슬아이기 때문에 더 예민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복희씨에게 직업을 준 것 만으로도 가녀장은 한 중년의 근로에 대한 기쁨을 알게 해준 대표이다.


📖 장군 말고 장녀_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가리지 않고 하다보니 어느새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아진 사람이 되었다. 문학 같은 건 안중에 없어진 지 오래였다. 온갖 직업을 전전한 그는 이제 출판사 직원 겸 운전기사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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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이가 훌훌 떠나보낸 문학을 슬아는 힘껏 붙들고 있다. 슬아를 모시는 게 어쩌면 문학을 간접적으로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고 웅이는 생각한다.

성별을 떠나고, 연령을 떠나 잘 하는 것을 하고 사는 것. 잘난체 하는게 아니라 잘난놈이니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고집과 객기를 넘어선 능력에 합당한 삶의 방식이다. 웅이씨 역시 슬아처럼 문학이 좋아 업으로 삼으려 했지만 연이 닿지 않은 것이었고, 정말 많은 직업을 거쳐온 삶에서 출판사 직원 겸 운전기사를 겸하고 있는 것이다. 웅이씨의 문학에 대한 애정이 대를 이어 슬아를 통해 표출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마음으로 더더욱 딸이자 대표를 더 열심히 붙들어주는 마음으로 가녀장을 보필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잘난놈에게 더 잘나도록 뒷받침 해주는 것. 같이 잘난놈이 될 수 있는 타이밍이다.


📖 바깥양반의 아우라_ 각자의 일로 분주했을 독자들이 집에서 발 뻗고 쉬는 대신 작가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교통체증도 감내하며 찾아온 자리다. 이 시공간은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경험이어야 할 것이다. 슬아는 강연자로서의 자신을 반쯤은 공연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멋지게 입고 강연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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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슬아의 어깨는 작지만 단단하다. 그것이 바로 가녀장의 어깨일 것이다. 웅이가 운전석과 조수석의 창문을 동시에 내린다. 부녀는 연기를 내뿜으며 밤길을 달려 집에 돌아온다.

피식 웃게만들었던 바깥양반이라는 호칭.

보통 부부관계에서 남편에게 불려지는 말이다. 아내는 안사람, 남편은 바깥양반이라하며 표현하기도 하는데 나도 바깥양반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맞벌이 부부로 살지만 몇년 전엔 남편이 자발적 퇴사를 하고 한동안 쉬며 살림을 도맡아 하던 기간이 있었다. 과한 업무와 매년 바뀌던 이름 석자 앞의 직함. 좀 더 버티다간 회사 지박령이 되어 오도가도 못할 분위기이며 많이 힘들어하던 차였기에 퇴사 후 휴식을 권했다. 그랬더니 원대한 꿈을 이뤘다며 전업주부의 꿈을 이루게 해주어 고맙다 하기도 했고, 때때로 퇴근 즈음 연락이 와서 바깥양반의 저녁메뉴 추천을 받겠다며 나에게 물어오곤 했다. 성별에서 나눠지는 안사람+바깥양반의 표현을 벗어나 경제적 활동을 하며 가계를 이끄는 아내에게 남편이 먼저 말해주었던 '바깥양반'이라는 호칭. 그걸 가녀장도 듣고 사는걸 보니 나도 잠깐이지만 가녀장의 시대를 이끄는 일원이기도 했더라.(자녀가 없다면 나는 가모장이 되는 것인가, 가녀장이 되는 것인가?)

슬아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출판사와 가정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했다. 작지만 단단한 가녀장의 어깨.

말 없이도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복희씨와 웅이씨가 있어서 슬아의 어깨가 존재했다.

📖 낭독회는 김장중에 시작된다_ 고단한 생로병사 속에서 태어나고 만난 당신들. 내 엄마를 낳은 당신들. 해가 지면 저녁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당신들. 계속해서 서로를 살리는 당신들. 말로 다 할 수 없는 생명력이 그들에게서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흘러왔다.

알 수 없는 이 흐름을 나는 그저 사랑의 무한반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이 나의 수호신들 중 하나였음을 이제는 알겠다. 기쁨 곁에 따르는 공포와 절망 앞에 깃드는 희망 사이에서 계속되는 사랑을 존자씨와 병찬씨를 통해 본다.

슬아의 필력에 존자씨도 복희씨도 직업을 얻었다. 존자씨는 복희씨의 된장스승이고, 복희씨는 낮잠출판의 어엿한 직원이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소중한 딸이고 손녀인 슬아의 손끝으로 다시금 피어올랐다. 알고는 있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그대들의 고단함. 너무나 미안해서 꺼내기 죄송스러웠던 삶. 하지만 슬아는 그 모든걸 알려주고 애썼다고 말해준다. 당연하다고 치부했을 고생스런 손길들이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슬아를 키웠기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엄마, 아빠 보다 존자씨와 병찬씨, 복희씨와 웅이씨로 다시 바라보면 울컥한 무언가가 밀려온다. 불려지는 호칭의 당연함보다 그대들의 이름이 빛나도록 살아오신 세월에 내가 이렇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덧대여질 수 있어 감사하다.

📖 어느 오후의 부녀_ 숙련되지 않은 작업자였으면 꼬박 이틀은 걸릴 노동이다. 슬아는 웅이의 솜씨에 연신 감탄하며 말한다.

"나는 참 직원 복도 많지."

웅이씨는 손끝에 많은 달인들을 모시고 산다. 다양한 직업을 거쳐오며 살다보니 청소하는 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능으로 가녀장의 요청에 응할 수 있다. 슬아의 입맛에 따라 만들어지는 책장도 그러하고, 슬아가 갖고있지 않는 꼼꼼함으로 청소며, 운전실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웅이씨 한명을 고용함으로서 고용주인 슬아는 여러 대체인력도 함께 얻었다. 직원 복도 많고, 아빠 복도 타고난 슬아. 어쩌면 웅이씨는 감사하다는 말보다 슬아가 혼자 중얼거리는 '나는 참 직원 복도 많지!'라는 말에 더 뿌듯했을지도 모르겠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가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이의 반응은 언제 들어도 짜릿하니 말이다.

가사 노동이나 경제 활동에 대한 남녀와 연령에 대한 고정관념은 이전에도 그래왔고,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듯 하다. 좀 더 유순해지긴 했으나 뚜렷한 가녀장의 시대를 이어갈 이들이 얼마나 될까. 혼자서는 절대 이뤄 낼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무조건 딸이 집을 일으키는 조건과 나이많은 부모가 순응하길 원하는 시대를 바라는게 아니다. 이러한 형태의 가족도 있으니 유쾌하게 봐 달라는 것이며, '이노무 집구석 잘~ 돌아간다'는 식의 비꼬는 말이 안 나왔음 하는 바람이 크다. 퇴직을 하고 노년의 삶을 즐기면서 때때로 자식들이 용돈을 챙겨드릴 때 당연하게 받아들이시기보단 한번즈음 '아이고 우리 따님 고생하신 노고 감사히 받겠습니다.'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유순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는 그 순간을 바라는 마음이다.(그런 의미에서 울 아빠님 매우 칭찬해드리고 싶구만)

'가녀장의 시대'를 완독하면서 내맘대로 원하는 답을 만들었다. 각자가 잘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에 맞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며 좀 더 잘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면 가부장,가모장,가녀장의 시대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괜찮은 미래를 맛 보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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