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씨네마인드
박지선.황별이.최윤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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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위해 멀티플렉스를 찾아가기보단 주말에 하는 영화소개 채널에 귀를 열어두는 편이다. 나보다 훨씬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으로 알려주는 이들의 코멘트와 함께 보고 있노라면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인지, 이건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내용인지를 알 수 있더라는 것. 어떤 이가 소개하느냐에 따라, 어떤 내용에 포커스를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느냐에따라 같은 작품도 다른 해석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러한 영화 분석 채널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갖지 못한 배경 지식을 기반으로 한 관점 분석이라는 것이다. 보통은 영화전문 유튜버, 배우, 성우, 작가가 알려주는 분석에 익숙해져 있을 즈음 범죄심리학자가 말해주는 영화 이야기. 확실히 솔깃한 이야기다.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국내 최고의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가 영화를 분석하는 콘텐츠 '지선씨네마인드'를 시작하게된다. 영화는 사건과 사고와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소재이지 않던가. 그러니 작품 하나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갈등과 내면의 심리가 숨어있을 터. 감독이 의도했던 캐릭터를 배우들이 구체화 했다면 이제는 박지선 교수가 그 인물 하나하나의 음영을 넣어주는 차례라고 보면 좋겠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명작 14편을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좀 더 디테일하고 색다른 시선에서 보는 것. 이미 아는 영화라도 다시금 궁금하게 만드는 시선이다. 미처 알지 못하고 스쳐간 이들의 심리와 내면의 갈등들. 외부 자극으로 인해 어떻게 또 변해갈지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추격자_ 피해자는 모두 피해자일 뿐이죠. 고귀한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가 따로 나눠져 있진 않다고 생각해요.

운이 좋은건지 촉지 좋았던 것인지 박지선 교수가 이야기하는 영화는 대부분 다 본 것이었다.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더라도 케이블채널에서 첫장면부터는 못 보더라도 진득히 앉아 엔딩크레딧까지 봤던 것들. 그 중 첫 장이었던 추격자. 공포물을 잘 보지 못하는 쫄보가 성인이 되고 영화관에서 보았던 폭력성이 짙은 작품. 그래서 더욱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을 바로 첫 장에서 다루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는 것.

심리분석관과 범인 간의 심리전도 팽팽했지만, 심리분석관이 범죄자의 본질과 심리를 파악해 자백을 이끌어가는 과정을 박지선 교수의 코멘트를 보니 이것이 전문가의 관점이구나 싶어진다. 지영민의 심리상태와 동네 주민들이 지영민의 단면만을 보고 해석한 인간의 단편적인 견해들까지. 비뚤어진 과시욕과 관심을 받고싶어하는 모습은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나온다. '아! 이 사람은 일반적으로 내가 아는 인간의 모습은 아니구나!' 살임범이라 지목하지 않았으나 자백함으로써 자랑하고파하고 주목받고 싶어하는 일반화되지 않은 비딱한 과욕.

나는 지영민의 심리에만 주목했었지, 미진에 대한 기본 인물 배경에 주목하지 않았 던 것 같다. 박지선 교수가 말했듯 미진의 캐릭터가 '성매매 여성'으로 지정했던 이유가 있을까? 일면식도 없던 동네 주민이었어도 지영민은 미진을 살해했을지 모른다. 그에겐 이 모든 과정에 동기가 뚜렷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마지막에 한번 더 짚어주지 않았다면 그러려니하며 넘어갔을 지정된 캐릭터의 아쉬움을 이제서야 공감하게된다.




위플래쉬_ 희생양을 통해서 플레처에대한 공포를 덜어 내고 싶었겠죠. 사회심리학에서 '공정 세상 신념'이란, 세상은 공정하기 때문에 '좋은 일은 착한 사람', '안좋은 일은 나쁜 사람'에게 생긴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말합니다. ... ...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피해자를 탓하며 불안을 줄이고자 하는 무서운 심리적 기제의 작용이죠.

올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심리학 용어, 가스라이팅. 언젠가부터 이 단어가 일상언어로 쓰이고 있음을 느낀다. 위플래쉬를 볼 때엔 플레처 교수가 학생들을 세뇌시킨다고만 느꼈지 이게 더 큰 범주로서 사람을 제 맘대로 움직 일 수도 있다는 것에 놀라게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릴때부터 일상언어처럼 습득한 '착한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한 확고한 분류법으로 내면을 알아가려 노력하기보단 직관적으로 간파하려함을 느낀다.

저 사람은 지금까지 내가 살며 느낀 사회적인 동향으로 볼 때엔 나쁜 사람의 범주에 가깝다고 느끼는 순간 부터 해가 될 까봐 미리 선긋기하며 이 선을 넘어선 안 된다며 자기방어의 태세를 갖춘다. '나'를 기준으로 나보다 나쁜 사람이어야 내가 사는데에 덜 손해 본다는 뜻을 품는 거지.

생각해보면 세상은 공정하기 때문이라는 미사여구보단 내가 공정하기 때문에 라는 단어가 숨어있다는걸 느낀다.




위플래쉬_ 언어폭력 역시 신체적 폭력 못지않은 수준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정서적 학대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피해자는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리게 될 뿐만 아니라 사회성이 떨어지는 후유증을 겪기도 합니다. 사회의 규칙을 깨려 하는 반사회성, 혹은 사회적 참여를 회피하려는 비사회성을 띠게 되기도 하고요.

사전적 정의를 보면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합 할 때에 쓰는 수단이나 힘을 말하는 것이 폭력이다. 일반적으로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무기로 억누르는 힘도 이르는데에 언어와 상대를 마주할 때 조성하는 분위기까지 포함해야 됨을 느낀다. 이러한 것이 반복되다보면 자동 반사 능력처럼 그 존재에 대한 이름만 명시해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하겠지. 가끔 이러한 것을 일삼는 존재들을 보면 자신이 군림하고자하는 욕망도 커 보인다.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내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 강압적이고 독재적으로 통치하려하는 반대적인 성향. 과연 이러한 인물들은 모두 원하는 결말로 끝이 났을지 궁금해진다.

올드보이_ 자기 정체성이 곧 복수가 되기에 이른 두 사람은 복수에 몰입할수록 원래의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 회복이 근본 목표였다면 두 사람은 복수를 실패했다고 봐야겠죠. 진작 아물었을 수도 있는 상처가 더 깊어졌을 뿐입니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교양과목 심리학 교수가 했던 말인데 당시에는 교수가 몹시도 아량이 넓은 사람인가보다라며 나이들면 다 저렇게 변하는 것인지, 심리학 교수라서 이해의 폭이 넓은가 싶어하며 흘려들었던게 살다보니 그 말이 맞았단걸 한참 후에야 느낀다.

이 영화와 완전 맞아떨어지는 문장은 아니겠지만 복수와 용서는 참으로 멀게만 느껴지는 간극이긴 하다.

복구 오롯이 나의 분을 삭히기 위해 충분한 도구 일지, 나를 갉아먹기에 알맞은 독 일지는 분명 알고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화로 둘러싸여있으니 보이지 않겠지. 나를 다스리는 것 또한 큰 공부가 필요하고 긴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다 안다고 여겼지만 어떠한 코멘트가 붙느냐에 따라 다각도로 해석되는 인간의 내면을 보고있자면 내가 놓치고 있던 심리와 찰나가 숨겨진 듯 하여 놀라웠다.(이전에 봤던건 수박 겉 핥기 식의 흐린눈으로 봤던거라 반성했네) 사람이어서 가능했겠다는 추측과 사람이길 포기한 너머의 숨은뜻에 내가 알고있던 인간의 다면성을 배우는 한 권이 되었다. 박지선 교수가 고심하고 분석했던 14편의 영화 외에도 새로이 개봉될 영화에 어떠한 코멘터리가 붙을 수 있을지 비교해보면서 독자로서 팬으로서 신작 분석 요청 리스트를 꾸려봐도 재밌을 듯 하다.

◎위즈덤하우스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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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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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암기과목이어 노력만 하면 점수가 잘 나오던 파트였다. 이해하고 해석하려하기보단 이미 지나온 과거의 이야기들 이기에 통으로 외워 시험을 보던 과거의 기억들. 툭하면 와르르 쏟아지는 시대별 사건 나열도 가능한 사람인데 내 머릿속에는 공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한국사의 문화와 사상적 측면에서 슬픈 비극의 한 단락이 비어있는채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과거이며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되는 흔적이다.




이곡이 원나라 황제에게 공녀 제도를 없애 달라 창한 서신을 보고 소설로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허주은 작가. 작가가 아니었다면 나 또한 기억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아픈 역사를 외면하고 살았을 듯 하다.

국가가 부강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그 고통을 고루 감내하는게 당연한걸까 싶으면서도 가장 따스한 부모의 품을 떠날 수 밖에 없던 꽃같은 아이들의 청춘은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책과 마주 할 수 있었다.


📖 울부짖는 딸들이 명나라 선덕제의 명령에 따라 배에 실려 머나먼 나라로 향한다고 했다. 그때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육지 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이 이야기의 중심. 꽃다운 여인들이 팔려가듯 끌여가야만 했던 시대. 딸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든 숨겨야만 했고, 나라는 그 숨겨둔 처자들을 어떻게든 끄집어내 나라를 위한답시고 타국으로 보내버린다. 원하지 않은 애국을 강요했다. 그 슬픔과 고통은 당연히 각자가 감내해야 할 아픔이었다.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나라는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진 않았다.



📖 종사관 나리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고...... .

환이는 제주로 내려와 몇년간 떨어져 지낸 동생 매월과 재회를 한다.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던 이유. 노경심방에게 딸을 부탁해야만 했던 민 종사관. 아버지의 부재는 당신이 수사하던 사건으로 인해 해를 입은것이라 판단을 하며 부친이 써 놓은 일지를 통해 사건이 일어난 시초를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여인들의 실종. 그리고 사망. 한 두명이 아닌데에도 세상은 개의치 않다는 듯 흘러간다. 환이는 아버지 뿐만 아니라 열세명의 처자들이 사라졌고, 살해되었음을 알게된다. 노경 심방을 비롯하여 마을의 촌장이라는 문촌장이나 홍목사도 아이들이 믿고 의지할 어른들은 모두 손을 놓은 듯한 태도에 환이 못지 않게 이 글을 읽는 나도 울컥울컥 한다. 어찌 할 수 없는 인재(人災)인가 아니면 어떠한 배후가 있기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외면의 시선들인가 헷갈리게된다.

그리고 종사관은 복선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간 써왔던 일지를 환이에게 전달해달라 부탁을 한다. 아마 자식을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을 읽은 복선이기에 어떻게든 이 내용을 환이에게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자신도 어떤 이의 금쪽같은 자식이니 나의 부모 만큼이나 애틋해하는 아비의 눈을 종사관의 시선에서 느꼈겠지.

📖 우리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몇 톨의 애정을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굶주린 어린아이 둘이었다. 한 사람이 베푸는 사랑에는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월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자매다. 이 수사가 끝날 때까지 밧줄의 매듭처럼 엮인 사이다.

자매라면 믿고 의지할 유일한 가족인데 내가 생각하는 자매의 모습과 살짝 다르다. 환이와 매월도 성향이 다르듯 나의 언니와 내 성향도 정 반대. 세상 선하고 화가 없는 언니와 진득한 맛이없고 화르륵 타오르기도하는 괄괄한 나. 그래도 언니가 많이 보듬어주고 양보해주며 감싸준 덕에 현실 자매여도 투닥거림없이 잘 지내고있음에 감사해진다.

아무래도 부모의 사랑은 한정적이나 자식들이 나눠갖기에는 모자람이 있겠지. 노경심방에게 맡겨진 매월은 아비의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고, 늘 곁에 있을 환이를 시샘했을 것이다. 어찌 할 수 없는 매월의 기운이 있어 할망에게 자라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 아이니깐. 받아도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사랑과 몇년간 만남이 없어 더욱 멀어졌을 자매사이. 어미도 아비도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의지하고 살아갈 사람은 환이와 매월 그녀 둘 뿐이어서 어떻게든 붙들고 살아야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행방으로 시작된 이야기지만 자매들의 이야기로 파생되어 나와 다른 성향의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방식도 배운다.



📖 그의 바람은 가희가 아름다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명나라 사절이 훔쳐 갈 미모를 다시는 갖지 못하도록.

티 없이 맑고 예쁘게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털끝 하나 다치는 일 없이 세상의 고난은 피해서 무탈히 자라주길 바라는 간절함인데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어떻게든 숨겨야했고, 피눈물나는 마음으로 해를 입혀서라도 흉진 얼굴로 살 지언정 끌려가지 않도록 했어야하는 마음. 부모라면 천냥 빚을 져서라도 평생을 당신이 고생하며 아프더라도 그 모든건 자기 선에서 끝내려 했으리라. 애 끓는 부정(父情)이 때론 다른 방향을 향하기도 하는데 그게 이 이야기의 큰 산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 "나도 아직은 확실히 몰라. 다른 세계의 메아리가 들린다는 것밖에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매월의 말은 노경심방 곁에 살며 굿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는 일을 하고 있기에 느끼는 기운은 아닐 것이다.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뜻도 있을 것이고, 모르고 지나치는 소외된 자들의 울음은 늘 존재하다는걸 일러주고 싶은 문장이다.

굳이 제주에서 이 일이 일어났겠냐만은 이야기의 중심을 제주의 작은 마을로 둔게 고립되고 소외받으며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 작은 무리의 부류를 뜻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이며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계집애라는 편견과 어린놈이 어른들 하시는 말씀에 따를 것이지 뭐가 그리 토를 달겠냐는 훈수를 둔다면 아무도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지 못할 것이다. 영영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반까지 환이가 일러주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 환이가 매월이보다 좀 더 오래 아버지 곁에 있어서라기보단 환이의 시점에서 듣는 이야기여서 그럴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본다. 자주 보지 못한 매월이여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없는 건 아닐터. 다만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라고 보고싶다. 행복했던 기억을 자주자주 꺼내어 보듬어주는 환이의 성향과 마음 한 켠에 잘 담아두고 누가 볼 새라 아끼고 싶은 매월이였던 점. 같은 뱃속에서 나온 딸들이라도 생김새와 성격이 다른 것 처럼 부모를 회상하는 방식도 다른 것이니 애틋함의 깊이를 키재기 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다.


후반부로 가면 아빠찾는 딸들의 애끓는 마음을 벗어나 내 자식만이라도 잘 먹여살리고픈 욕망으로 가득한 비뚤어진 부성도 나타난다. 내 자식들 만큼이나 같은 땅을 밟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모두 귀한 존재들이다. 제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위한답시고 해왔던 행동은 결코 옳은 사랑의 방식은 아니라 말해주고싶다.

400페이지가넘는 두툼한 두께를 보면 쉽사리 도전할 소설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흥미가 가며 상세한 묘사는 영상으로 보여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건 멀티플렉스관에서 보는 영화보다는 방 안 불 다 꺼두고 모니터의 빛만으로 집중하며 보는 넷플릭스의 어둡고 스산한 기운의 영상미가 겹쳐보이기도 하다. 중반의 다소 지루해지는 타이밍도 있지만 결국 환이와 매월이는 해 낼 거라는 확신을 갖고 보면 완독 할 수 있다고 일러주고 싶다.

역사관련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청소년이라면 분명 집중해서 읽을 소설. 이번 겨울방학에 부모와 아이 모두 도전해볼만한 한 권.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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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람 - 글 쓰는 직장인 장한이 작가의 사람 그리고 관계의 매듭
장한이 지음 / 이다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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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해가 바뀌면 이 회사의 직장인 나부랭이로 산지 꽉채운 10년, 회사 고인물이자 이미 어지간한 일이 손에 익을대로 익어 머리를 안 쓰고 시간과 몸이 반응하는대로 사는 껍데기 직장인이다. 20대 초반엔 대기업 인턴으로 이리저리 눈칫밥도 그득히 먹어봤고, 동업자 오너들이 니꺼내꺼 하는 탓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직원 전체 권고사직도 당해보았고, 계약직으로도 일해봤으니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더라.

작가도 역시 직장인이다. 정말 끼인 세대로서 중간관리자이며 함부로 퇴사도 할 수 없는 생계형 직장인. 뭐, 나도 다를바가 없지. 그래서 더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으나. 이 한줄. '결국은, 사람' 이 한마디로 모든걸 정리 했더라.


사람 때문에 버틴적도 있었고, 사람 때문에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도 더러 있다. 아마 나 만큼이나 작가도 많은 일들이 있었겠다 싶어 공감과 함께 동질감을 얻고싶어 이 책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특권이십니다_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 좋은 상사는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흠을 애써서 찾아내기보다는 좋은 점을 더 들여다보고 활용할 줄 안다면 직원들과 더불어 회사가 발전하지 않을까. 단점을 부각할수록 상처를 남기고, 장점은 강조할수록 점점 더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말귀 잘 알아먹는 사람에게 칭찬하면 얼마나 더 잘하겠냐 싶다만은 평생토록 타인에게 상처되도록 비수꽂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게 참 안되더라. 때때로 눈은 웃고있지만 머릿속으로는 ' 저 입을 꿰메버려야 더이상 말을 안 하지.'라는 독한 생각을 하곤 한다.(하지만 절대 입밖으로 꺼내진 못한다)

어린시절 선생님에게 바라던 물개박수 칭찬이나 과한 리액션이 그득한 쓰담쓰담을 기대하는 연령은 지났다. 다만 내가 해낸 몫에 대해서는 인정해주었으면 한다는 점이 어른이며, 직장인으로서 바라는 기대치의 한마디이다.

그러니 '고생했다', '애썼다', '잘 넘어갔다', '다음번에도 지금처럼만 해라', '이제 이 업무는 OO씨 맡겨도 되겠다' 정도의 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 두해 회사밥 먹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척하면 척이니 이정도의 말로써도 회사생활 잘 하고 있음을 해석 할 능력은 갖고 있으니 말이다.


숫자가 아니라 물 흐르듯_ 직장에서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사실, 선의를 앞세운 진심이 상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수시로 배운다.

정말 공감하는 문장.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사실'에 한참동안 생각을 해본다. 모두가 내가 생각하는 것 처럼 행동하지도 않고, 내가 생각하는 것 처럼 이해하지도 않는 다는 걸 늘 베이스로 깔아두고 대해야 함을 느낀다. 선의가 당연시 되기도하고, 되돌아 오지 않는 배려에 맘이 상할때도 분명있었다. 그렇게 서운한 꼭지들을 모아놓고 있다보면 내 속만 더부룩해지더라. 그러니 우리는 돈벌려고 모인 사람들이 가득한 회사의 소속된 일부라는 것을 까먹지 말고 나이가 주는 계급이나 연차가 알려주는 직급에서 해야 될 것 같은 의무적인 성향의 차이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흐르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한다.


마지막 점을 찍어주세요_ 하지만 어느 조직에도 '따듯한 마음'은 리더의 요건으로 두지 않는다. 조직에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발휘하느냐 마느냐 역시 리더의 선택일 뿐이다.

리더의 요건들. 리더십, 책임감, 통찰력, 실행력, 도전정신, 도덕성, 유연한 사고장식, 거기에 덧붙여 내가 보아온 리더들은 공감능력, 배려, 오너를 향한 적극적인 구애(?), 상향적 소통(오너와 이사진들을 향한), 하향적 공감(부서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내가 덧붙여 본 항목들에는 따뜻한 마음이 일정부분 필요한데 그게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큼을 느낀다. 한 사무실을 사용하면서 내가 소속된 부서의 부서장 뿐만 아니라, 타 부서의 부서장들의 행동을 참 많이 비교하게된다. 구성원들과 얼마나 소통하느냐에 따라서 극명한 온도차를 경험한다. 그렇다고 말이 많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세세한 가정사를 알고있지 않더라도 동료의 안색을 보고 한마디를 할 수도 있고, 직원이 업무적으로 통화를 하다 큰 소리가 났을 경우 어떤 일이 있어서 그런지를 궁금해하는 정도? 그것으로도 구성원들은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유심히 봐주고 있음을 느낀다. 이 말을 또 잘못 해석해서 립스틱색깔이 바뀐건지, 머리카락을 잘랐다던지에 대한 외모 틀린그림찾기가 아니라는 점도 일러주고 싶다.


선택적 소울리스_ 소울리스좌는 영혼 없이 일하는 표상으로 떠올랐지만, 누구보다 충만한 열정을 담아 할 건 다 하는 직장인이다. 열정의 유효기간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알고 최적의 효율을 찾아 일하기 때문에 더더욱 빛이 난다. 직장인에게 선택적 소울리스는 환영받아 마땅한 트렌드다.

선택적 소울리스라는 말이 반가웠다. 영혼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목소리만 낸다고 했던 나의 이전 상사가 떠오른다.(미화된 설명이지 실제로는 더욱 극명하게 깎아내려주더군) 업무 특성상 월말에 수십군데의 거래처와 전화를 정말 많이 한다. 반갑지 않지만 반갑다고 말하고, 고맙지 않지만 고맙다고 말해야하는 위치. 지칠대로 지쳐있지만 목소리는 하이톤이고, 데면데면하지만 억양은 다정하도록 유지하는 법을 세월이 알려주었다. 상대방과 화상통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는 문제없이 해결한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게 내 소신이다. 최소한의 행동으로 최대한의 목표치를 이끌어 낸다면 이것만큼 효율 극대화도 없고, 그저 내 모습을 보는건 나와 마주하고있는 모니터 뿐이니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자. 그래야만 멀쩡한 정신으로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된다.

매일 죽상을 하고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텔레토비 햇님처럼 까르르 웃으며 살 이유도 없음을 인지시켜주고 싶다.


필살기가 있습니까_ 직장인에게 호기심은 큰 무기다. 직장생활은 하루하루가 다사다난하고 매 순간이 경쟁이다. 잠시 방심하면 뒤처지기 일쑤다. 급변하는 세상에 맞춰 끊임없이 자신에게, 선배에게, 상사에게 질문해야 성장할 수 있다. 소심하게 쭈뼛거리는 시대는 지났다. 불치하문, 즉 자신보다 아래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궁금증은 참지 말고 쌍방 간 묻고 답해야 윈윈할 수 있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굳이 숨길 필요 없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면 인간은 성장한다.

호기심이라는 큰 무기는 필살기가 되기도 하지만 자폭장치가 될 수도 있다고 작가의 의견에 반박하고싶다. 질문해야 성장을 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질문했다가 그것도 모르고 여기에 왜 앉아있냐며 짓밟힐수도 있다. 모두가 너의 질문과 물음에 궁금해하고 알고싶어하고 더 배우고자하는 새싹같은 맘에 우쭈쭈해주며 다정하고 상세히 가르쳐 줄 것이라는 100%의 확인은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숙지하고 들어가야하는 회의 시간에 백지상태의 너의 지식을 채우고자 한다면 쫒겨나지 않은 것에 다행이라고 여기자.

그러니 누울자리 보고 발 뻗으라는 말 처럼 우리가 눈칫밥먹으며 버틴 세월의 데이터를 굴려가며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서 호기심을 작동시키길 바란다. 최악의 상황에만 발현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상사나 동료, 거래처사람들이든 궁금한것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 대부분 잘 가르쳐 줄 것이다. 어떤 부류는 자신의 TMI까지 와르르 쏟아내며 알려주기도 할 것이며, 또 어떤 부류는 자신의 스킬을 제외한 팩트만 전달하기도 할 것인데 전자든 후자든 일단 듣고나면 내것이 되기는 분명한 자료들이다.


나의 레퍼런스 체크_ 나의 단점이 비단 이뿐일까. 내 안에 넘치는 단점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한다. 상사와 후배가 전한 단점의 포장을 풀어 날것 그대로 마주해본다. 오늘은 또 얼마만큼의 단점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녔는지 수시로 들여다본다.

나를 자랑스러워 하기엔 단점이 참 많은 인간이다. 잘 하려고 애쓰긴 하지만 어쩜 그리 허점이 많은가 싶기도하다. 그럼에도 회사라는 집단에서 소속되어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다는것이 신기할때가 많다. 혼자서는 이뤄내기 어려 운 것들, 혼자라면 자각하지 못했을 것들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깨닫고 바로잡아보기도 한다. 늘 배워야하고, 감탄하고, 비교하는 삶이긴 하나 그렇게 만드는 이들이 없다면 오만한 인간으로 살게 분명하다. 혼자 사는 사회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나를 배제해야하는 곳도 아니다. 적절하고 적당한 그 정도가 필요한 무리.

쿵짝이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저 멀리서 상대의 목소리만 들려도 치가 떨리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다 겪어보니 이유가 있었다. 다름을 겪어보기도하고, 공감을 얻기도 했으며, 동질감에 신이 나기도한게 회사라는 무리이며 팀원이라는 조직이었다. 어찌그리 겹치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는가 싶을 정도로 신기하면서도 나는 그들에게 또 어떤 감각으로 느껴질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데 세대와 직급의 다름으로 오는 견해들은 또 얼마나 다양하겠냐는거지.


완독 후 또 한번 감탄하는 삶이다. 재밌지만 어렵다. 신기하지만 고민도 많다. 그렇지만 흐린눈하며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 바로 인간 대 인간이다.

때로는 다정하게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하고, 때로는 먼발치에서 관전하듯 보며 적당한 거리를 가늠하며 지내보자. 이러든 저러든 나에게 다 쓸모있는 존재들이니 인간관계 스펙트럼의 또 한면을 채워보며 이 자의 가장 배워봄직한 무언가를 빠르게 스캔하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득이 될 것만 쏙쏙 뽑아내다보면 결국 이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충분하니 말이다.


◎ 이다북스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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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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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서로 닿아있고 기대고 있는 모습을 타일에 비유한 듯 하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속에 스치듯 잠깐 나온 인물은 다음 작품의 주인공이 되기도하는걸 보면 우리는 다 연결되어있고 누군가의 조연이며 스치는 인물이지만 결국 모두가 주인공인 각자의 소설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필 크리스마스여서, 그러고 보니 추운 겨울이라서, 또 하필이면 올 해가 끝이나고있는 이 시점이라서, 결국 이 모든게 아쉽고 애틋해지고있는 중이다. 확실한 결말은 없었다. 몇마디를 더 할 듯 했지만 말을 아끼는 듯 했고, 좀 더 말해줘도 될거 같은데 그건 좀 더 기다려보자는 느낌을 준다. 아직 크리스마스 트리를 더 놔둬도 괜찮은 겨울이며 좀 더 이 계절의 기분을 쥐고있어도 괜찮을 시점이다. 그래서 다들 그리 말들을 아꼈나보다.

결국 어느하나 결론지을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어깨를 기댄 채 다닥다닥 붙어있는 크리스마스 타일과도 같은 이야기 공동체니깐. 그래서 은하의 건강은 괜찮은지, 가을이는 한가을로 다시금 불리울 수 있을지, 소봄이에게 더이상 우는 겨울이 아닐 수 있을지, 세미는 백설이를 편히 보내 줄 수 있을지를 궁금해하며 조금 멀리 이후의 안부를 미리 물어본다.

내년 이맘때엔 분명 지금의 모습과는 조금씩 달라져있을테니, 혹시 모를 내 삶과 이어지는 작은 연결고리는 없을지 살짝 기대를 가져본다.


📖 은하의 밤_ 그렇게 해서 정말 어떠한지를 곰곰이 따져보는 이 밤은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는 그저 흔한 은하의 크리스마스였다.

암 수술 후 다시 얻어낸 일상.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복직과 함께 챙겨보는 은하의 세상. 암은 있다가 사라졌고, 그 허한 자리를 메꾸려 여행도 다녀왔다. 하지만 사라진 자리는 제대로 메꿔지진 않았다. 흔적이 남아있다. 돈얘기만 하던 은하의 오빠는 은하가 거부하자 살가운 안부도 사라졌고, 조카와의 연락도 끊어진다. '나'라는 존재가 이 공간에서 필요한 무언가였었다. 그건 오로지 평범하던 일상이었을 때에 가능한 존재 이유.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모두가 기다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이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애쓰게되는 시간속에서 때때로 행복했던 순간이 쿡쿡 찌른다. 조카 겨례와 함께 이야기하던 평범한데 이젠 그리운 순간. 어른들의 돈이야기로 서먹해진 상황이라 조카는 잘못 걸었다며 이야길 하지만 그건 내심 아직 고모를 많이 보고싶고 그리워하는 아이의 시그널 이었다. 이후 다시 은하가 연락을 했을 때 고모도 전화 잘못 걸었냐는 물음에 솔직하게 아니라고 말한 후 돌아온 대답. 다행이라며 다시 예전처럼 킥킥거리던 아이의 문자 한줄.

그렇게 은하의 밤은 다시금 스르륵 녹아 암덩어리가 만들어둔 웅덩이를 채우고 메꾸고 있었다.



📖 첫눈으로_ 소봄은 닮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취한 채로 돌아온 아빠가 현관 계단을 다 올라오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엉엉 울곤 했다는 건, 그 편으로 난 방을 가진 소봄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 여덟개의 계단을 오르지 못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안타깝게도 술꾼들은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

아빠처럼 될까봐 걱정스러웠던 동생의 원성. 동생의 잔소리도 잔소리이지만 아빠의 그 모습을 보며 자란 소봄이기에 절대 그러지 말자 싶었지만 왜 그리 취해 있었는지, 그 상태로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서성였는지를 나이를 먹으며 느낀다. 어린 소봄은 그런 아빠가 미웠지만, 지금의 소봄은 그런 아빠를 알아주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미운데 짠한 감정. 이렇게 닮아가는 인생인거 알았다면 그시절의 아빠가 덜 불쌍하고 덜 외롭도록 찐득하게 붙어있을걸 싶은 마음의 눈물.


📖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_ 받으세요, 과장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있던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은 안 변하잖아요. 그런 건 영원히 그대로 잖아요.

챙겨주고픈 마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 때 당신의 슬픔을 헤아려주지 못해 나는 내도록 마음이 쓰였습니다.' 의 이유가 확실히 들어나는 부분이었다. 당신은 다른 이들의 슬픔에는 가장 먼저 찾아가 힘이되어주었으면서 왜 정작 자신의 일에는 그리 무뎠나 싶은 거지. 그걸 바라보는 입장이니 오죽해서 이러겠냐 싶은 것도 있지만, 미련하게 흘러가도록 냅두지 말고 당신의 위로의 몫을 찾아 먹도록 하고픈 주변인의 오지랖이라고 치자.

오지랖에 앞서 나도 받기만 했던 사람이니 마음을 주어야 속이 후련할 것이라는 진심도 살짝 얹어서 말이다.


📖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_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누가 날 사랑하면 그 사람을 나쁘고 나쁘게 해칠 것이다" 같은 말을 적고 있던 세미의 방 문간에 나타났다. 그리고 개는 멀거니 세미를 바라보았다.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렇게 마음의 슬픔에 저항해가던 세미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설기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둘은 한동안 서로를 살폈다. 괜찮을까, 마음을 주어도 사랑해도 가족이 되어도 괜찮을까, 날 아프게 하지 않을까. 이윽고 먼저 다가와 안긴 것은 세미가 아니라 설기였다.

내가 개를 키우지는 않지만 이 단편의 제목과 설기가 세미에게 포옥 안긴 것만 봐도 앞뒤 상황을 재는 것보다 부턱대고 그저 위로해주고 받아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부재. 그리고 위로받았던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 이것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시 됨을 알 수 있다. 내 삶에 들어와주어 행복했고, 덕분에 꽉찬 그리움도 알았으니 이제는 마음을 다해 행복했던 그 시절을 곱씹어가며 살아갈 힘을 줬다고 여기고 세미도 과장도 그렇게 버티듯 살아가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꽉찬 해피엔딩의 결말도 아니고, 왜 그래야만 하나 싶은 슬픈 엔딩도 없다. 그냥 그렇게 끝이 난다. 그래서 그 단편속에서 이야길 하던 이들은 은하스럽고, 소봄스럽고, 지민스러운 식의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크리스마스 타일이라는 책 제목이 주는 온도는 따숩고 행복하다. 뭔가 소원을 빌어보면 이뤄 질 듯한 기분좋은 공기가 감돌며 몽글거리는 행복함에 뿌듯해지는 날이지만 또 어찌보면 흔하디 흔하도록 굴러가는 1년중의 하루일 뿐이다. 유별나게 화려한 하루를 만들어 보고싶다가도 무던하고 무탈하기만 하길 바라는 내가 뭐라고 싶어지며 그저 잘 흘러가길 바라던 내 모습이 많이 보인다. 나와 같은 맘인지 작가는 이야기에 모두 현실감이 가득 차 있도록 문장을 만들어 두었다.

이들도 그렇지만 나도 별반 다를게 없는 인생이라 크리스마스전날까지 가득한 기대와 행복을 바라며 살아가겠지. 눈을 뜬 당일엔 새드엔딩만 아니길 바라며 그 하루를 살아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작고 소소한 행복과 반짝거리는 기쁨이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쥐고 있어 본다. 미련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한번 더 품어보기로 한다. 사람 일은 모르는거잖아?

◎ 창비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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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 사랑을 받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게 중요했다. 깊은 겨울의 시간을 걸어갈 때 언 발을 녹일 수 있는 따스함이, 누군가의 비난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가, 이어지는 실패와 거절의 하루를 꾹 참고 지나 보낼 수 있는 인내가,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은척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사랑은 완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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