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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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서로 닿아있고 기대고 있는 모습을 타일에 비유한 듯 하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속에 스치듯 잠깐 나온 인물은 다음 작품의 주인공이 되기도하는걸 보면 우리는 다 연결되어있고 누군가의 조연이며 스치는 인물이지만 결국 모두가 주인공인 각자의 소설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필 크리스마스여서, 그러고 보니 추운 겨울이라서, 또 하필이면 올 해가 끝이나고있는 이 시점이라서, 결국 이 모든게 아쉽고 애틋해지고있는 중이다. 확실한 결말은 없었다. 몇마디를 더 할 듯 했지만 말을 아끼는 듯 했고, 좀 더 말해줘도 될거 같은데 그건 좀 더 기다려보자는 느낌을 준다. 아직 크리스마스 트리를 더 놔둬도 괜찮은 겨울이며 좀 더 이 계절의 기분을 쥐고있어도 괜찮을 시점이다. 그래서 다들 그리 말들을 아꼈나보다.

결국 어느하나 결론지을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어깨를 기댄 채 다닥다닥 붙어있는 크리스마스 타일과도 같은 이야기 공동체니깐. 그래서 은하의 건강은 괜찮은지, 가을이는 한가을로 다시금 불리울 수 있을지, 소봄이에게 더이상 우는 겨울이 아닐 수 있을지, 세미는 백설이를 편히 보내 줄 수 있을지를 궁금해하며 조금 멀리 이후의 안부를 미리 물어본다.

내년 이맘때엔 분명 지금의 모습과는 조금씩 달라져있을테니, 혹시 모를 내 삶과 이어지는 작은 연결고리는 없을지 살짝 기대를 가져본다.


📖 은하의 밤_ 그렇게 해서 정말 어떠한지를 곰곰이 따져보는 이 밤은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는 그저 흔한 은하의 크리스마스였다.

암 수술 후 다시 얻어낸 일상.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복직과 함께 챙겨보는 은하의 세상. 암은 있다가 사라졌고, 그 허한 자리를 메꾸려 여행도 다녀왔다. 하지만 사라진 자리는 제대로 메꿔지진 않았다. 흔적이 남아있다. 돈얘기만 하던 은하의 오빠는 은하가 거부하자 살가운 안부도 사라졌고, 조카와의 연락도 끊어진다. '나'라는 존재가 이 공간에서 필요한 무언가였었다. 그건 오로지 평범하던 일상이었을 때에 가능한 존재 이유.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모두가 기다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이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애쓰게되는 시간속에서 때때로 행복했던 순간이 쿡쿡 찌른다. 조카 겨례와 함께 이야기하던 평범한데 이젠 그리운 순간. 어른들의 돈이야기로 서먹해진 상황이라 조카는 잘못 걸었다며 이야길 하지만 그건 내심 아직 고모를 많이 보고싶고 그리워하는 아이의 시그널 이었다. 이후 다시 은하가 연락을 했을 때 고모도 전화 잘못 걸었냐는 물음에 솔직하게 아니라고 말한 후 돌아온 대답. 다행이라며 다시 예전처럼 킥킥거리던 아이의 문자 한줄.

그렇게 은하의 밤은 다시금 스르륵 녹아 암덩어리가 만들어둔 웅덩이를 채우고 메꾸고 있었다.



📖 첫눈으로_ 소봄은 닮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취한 채로 돌아온 아빠가 현관 계단을 다 올라오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엉엉 울곤 했다는 건, 그 편으로 난 방을 가진 소봄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 여덟개의 계단을 오르지 못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안타깝게도 술꾼들은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

아빠처럼 될까봐 걱정스러웠던 동생의 원성. 동생의 잔소리도 잔소리이지만 아빠의 그 모습을 보며 자란 소봄이기에 절대 그러지 말자 싶었지만 왜 그리 취해 있었는지, 그 상태로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서성였는지를 나이를 먹으며 느낀다. 어린 소봄은 그런 아빠가 미웠지만, 지금의 소봄은 그런 아빠를 알아주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미운데 짠한 감정. 이렇게 닮아가는 인생인거 알았다면 그시절의 아빠가 덜 불쌍하고 덜 외롭도록 찐득하게 붙어있을걸 싶은 마음의 눈물.


📖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_ 받으세요, 과장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있던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은 안 변하잖아요. 그런 건 영원히 그대로 잖아요.

챙겨주고픈 마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 때 당신의 슬픔을 헤아려주지 못해 나는 내도록 마음이 쓰였습니다.' 의 이유가 확실히 들어나는 부분이었다. 당신은 다른 이들의 슬픔에는 가장 먼저 찾아가 힘이되어주었으면서 왜 정작 자신의 일에는 그리 무뎠나 싶은 거지. 그걸 바라보는 입장이니 오죽해서 이러겠냐 싶은 것도 있지만, 미련하게 흘러가도록 냅두지 말고 당신의 위로의 몫을 찾아 먹도록 하고픈 주변인의 오지랖이라고 치자.

오지랖에 앞서 나도 받기만 했던 사람이니 마음을 주어야 속이 후련할 것이라는 진심도 살짝 얹어서 말이다.


📖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_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누가 날 사랑하면 그 사람을 나쁘고 나쁘게 해칠 것이다" 같은 말을 적고 있던 세미의 방 문간에 나타났다. 그리고 개는 멀거니 세미를 바라보았다.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렇게 마음의 슬픔에 저항해가던 세미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설기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둘은 한동안 서로를 살폈다. 괜찮을까, 마음을 주어도 사랑해도 가족이 되어도 괜찮을까, 날 아프게 하지 않을까. 이윽고 먼저 다가와 안긴 것은 세미가 아니라 설기였다.

내가 개를 키우지는 않지만 이 단편의 제목과 설기가 세미에게 포옥 안긴 것만 봐도 앞뒤 상황을 재는 것보다 부턱대고 그저 위로해주고 받아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부재. 그리고 위로받았던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 이것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시 됨을 알 수 있다. 내 삶에 들어와주어 행복했고, 덕분에 꽉찬 그리움도 알았으니 이제는 마음을 다해 행복했던 그 시절을 곱씹어가며 살아갈 힘을 줬다고 여기고 세미도 과장도 그렇게 버티듯 살아가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꽉찬 해피엔딩의 결말도 아니고, 왜 그래야만 하나 싶은 슬픈 엔딩도 없다. 그냥 그렇게 끝이 난다. 그래서 그 단편속에서 이야길 하던 이들은 은하스럽고, 소봄스럽고, 지민스러운 식의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크리스마스 타일이라는 책 제목이 주는 온도는 따숩고 행복하다. 뭔가 소원을 빌어보면 이뤄 질 듯한 기분좋은 공기가 감돌며 몽글거리는 행복함에 뿌듯해지는 날이지만 또 어찌보면 흔하디 흔하도록 굴러가는 1년중의 하루일 뿐이다. 유별나게 화려한 하루를 만들어 보고싶다가도 무던하고 무탈하기만 하길 바라는 내가 뭐라고 싶어지며 그저 잘 흘러가길 바라던 내 모습이 많이 보인다. 나와 같은 맘인지 작가는 이야기에 모두 현실감이 가득 차 있도록 문장을 만들어 두었다.

이들도 그렇지만 나도 별반 다를게 없는 인생이라 크리스마스전날까지 가득한 기대와 행복을 바라며 살아가겠지. 눈을 뜬 당일엔 새드엔딩만 아니길 바라며 그 하루를 살아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작고 소소한 행복과 반짝거리는 기쁨이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쥐고 있어 본다. 미련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한번 더 품어보기로 한다. 사람 일은 모르는거잖아?

◎ 창비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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