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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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7월 1일.

로마로 돌아왔다.

정말 무엇 하나 변한 게 없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영원하다고 할 만하다.

어제 일어난 일이 오늘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아반티'(전쟁 중까지는 파시스트 당기관지, 전후에는 사회당 기관지)에는 오늘 이런 기사가 실렸다.

"노동자들은 밝은 얼굴로 등을 쭉 펴고, 보다 강하고 활기찬 걸음으로 정치적, 윤리적 회복을 구가하고 있다."

새로운 수사법이 유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빨리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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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2월 8일

우리 국내 망명자들이 자주 가는 레스토랑 급사에게 50대쯤 되는 한 미국인 소령이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조건은 젊은 여자가 아니라 서른 살 정도가 좋겠고, 조용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결혼 경험이 있을 것, 더욱이 미망인이라면 그보다 더 나을 것이 없겠다고 했다.

이 미국인 소령에 의하면 이런 조건을 달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란다. 50대의 이 미국인은 한마디 덧붙였다.

"가정의 평화,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빈첸초라는 급사는 물론 이런 고객의 희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며칠 후 적당한 여자를 찾애냈다. 세련되고 훌쭉한 미인으로 성실하고, 품위 있고, 더구나 미망인이었다.

그 소령은 이 미망인의 집에 거의 매일처럼 갖은 선물을 들고 방문했다.
그러나 미망인은 1주일에 한 번은 소령과 함께 남편 묘소를 찾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온통 검은 색으로 몸을 감싼 젊은 미망인은 죽은 남편 묘소 앞에 꿇어앉아 꽃을 바치며 조용하게 훌쩍이는 것이었다.
미국인 소령은 그 옆에서 겸허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같이 기도했다.

빈첸초는 우리에게만 살짝 말해주었다.

"사실 저 여자는 미망인이 아니랍니다. 그 무덤도 모르는 사람의 것이고요. 그렇지만 누가 뭐라겠소. 우선 살고 봐야죠."

(1944년, 로마도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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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 14일

미제 통조림 고기는 기쁘게 먹겠다.
그러나 거기에 따라온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접시에 남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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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 8일

모든 신문 지상에 다음 기사가 실렸다.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스탈린 원수에게 훈장을 보내다."

이것으로 임금과 코뮤니스트가 사촌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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