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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소년 호야 33 - 완결
후지타 카즈히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그 기념이랄까 뭐랄까 후지타 카즈히로의 전작인 ‘우시오와 토라’, 국내명 [요괴소년 호야]를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서 읽었다. 외전 1권 포함해서 전 34권. ...눈이 돌아간다...
국내 출판된 만화들을 보다보면 그놈의 편집과 검열도 편집과 검열이지만, 저 제목에 대해서도 불만 생기는 물건이 꽤 많다. 이 물건도 딱 그런 물건인데, 이런 제목을 붙인 덕분에 또 한 명의 주인공인 토라의 존재감이 표현되지를 않는다. 이 작품은 호야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시오와 토라’ 라는 친구의 이야기란 말이다.
공부에는 도저히 재주가 없지만 건강하고 용감하고 순수한 아이, 전형적인 소년만화 주인공인 우시오가 창고의 지하실에서 ‘요괴의 창’에 찔려 봉인된 최강의 요괴 토라를 만나는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진실, 요괴의 창에 얽힌 진실, 요괴와 인간에 얽힌 진실, 그리고 우시오와 토라에게 얽힌 진실.
명시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시오와 토라]에서부터 [꼭두각시 서커스]까지를 관통하는 중요한 정신적 관점 하나를 찾아볼 수 있었다.
[웃을 수 있기에 인간은 아름답다.]
인간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오, 이 아름다운 자기중심적 사고여. 우시오가 아름다운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고, 힘이 있기 때문도 아니고, 요괴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는, 웃을 수 있기에 아름답다. 비록 바라지 않던 고난에 마주치고, 원하지 않던 고통에 마주치고, 생각한 적조차 없는 괴로움에 마주치더라도 인간은 웃을 수 있다. 그것은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희망이고, 현실에 가로막히지 않는 가능성이며, 현실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그렇기에 우시오는 웃는다. 우시오와 만난 이들은 웃는다. 인간이 요괴를 버리고 - 아니, 요괴가 인간을 버리고 떠나간 현대에 있어 요괴와 인간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은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앗아가지만, 그런 그들과 마주친 우시오는 어려움과 곤란함과 무거움을 집어던지고는 싱긋 웃는다. 그리고 특유의 무대포 정신으로 달려들어 고민을 해결해버린다. 고민을 해결했기에, 해결할 수 있기에 웃는 게 아니다. 우시오는 웃고 나서 달려든다. 우시오는 단순히 소년만화의 주인공인 열혈소년이 아니다. 우시오는 싱긋 웃고서 어려움을 향해 돌진하는 가능성의 상징이며, [꼭두각시 서커스]의 마사루가 그랬듯이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자’의 자격을 지닌다.
그리고 그런 우시오의 웃음은 어쩌면 운명이라고 불러야 할 만남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호랑이 요괴, 무명요괴 토라. 토라와 우시오는 친구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그들이 만난 순간부터 그들은 두 개의 지성체가 아닌 하나의 무언가가 되었다. 그러기에 어떤 사건에 마주칠지라도 싱긋 웃을 수 있었던 우시오는 토라가 사라진 순간 웃을 수 없게 되었다. 우시오가 웃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하나의 ‘가능성’이 사라진다.
인간과 요괴 - 두 개의 지성체 사이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웃음의 가치. [우시오와 토라]는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꼭두각시 서커스]가 단순한 액션물이 아니라 무언가 깊고 진지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액션물로 봐도 아무 상관 없지만. 근데 일본이 가라앉는다는 거... 왠지 긴박감을 느끼기 힘든 소재가 아닐끼? 뭐 저질러 버리고 싶지까지야 않지만, 굳이 막고싶지도 않거든.(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