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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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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척추는 무엇일까?


삶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놓으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여전히 명언이나 자기개발서, 성공한 사람의 에세이에 단골 멘트로 사용된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자기 자신이 삶의 중심이 아닌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의 삶의 중심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살아가게 만들까?


고등학생 '아카리'의 삶의 중심이요, 삶의 모든 것은 최애 아이돌 '마사키'이다. 조용하고 소심한 아카리는 마사키 때문에 웃고 마사키 때문에 사람들과 교류하며 마사키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아 앨범을 산다. 그런 마사키가 구설수에 올랐다. 팬을 때렸다고 한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 나빠지는 여론, 떨어지는 인기. 그 가운데서도 굳건한 팬심을 지키려는 아카리는 서서히 그녀의 척추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마사키는 은퇴를 선언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내 삶에 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최애는 어느 순간 삶에 들어와 자리를 잡더니 내 몸을 지탱하는 척추가 되었다. 그러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어떻게 살라고, 어떻게 걸어다니라고, 어떻게 세상을 보고 나아가라고.


나도 최애가 있는 사람으로서 아카리에게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최애가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카리를 이해할 것이다. 


최애를 생각하는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표현하고 있는 책 <최애, 타오르다>. 물론 진짜 최애를 대입해서 보면 한여름밤의 그 어떤 공포소설보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겠지만 가끔은 최애가 있는 나 자신이 낯설게 보인다면 한 번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는 혹은 무대와 객석에는 그 간격만큼의 다정함이 있다. 상대와 대화하느라 거리가 가까워지지도 않고 내가 뭔가 저질러서 관계가 무너지지도 않는, 일정한 간격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끝없이 느끼는 것이 평온함을 주기도 한다. - P69

그러지 마,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생각했다. 무엇을 향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러지 말아줘, 내게서 척추를 빼앗아가지 마. 최애가 사라지면 나는 정말로 살아갈 수 없다. 나는 나를 나라고 인정하지 못한다. 식은땀처럼 눈물이 흘렀다. 동시에 한심한 소리를 내며 소변이 떨어졌다. 쓸쓸했다. 견딜 수 없이 쓸쓸해 무릎이 떨렸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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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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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는 롤러코스터 옆의 진행요원처럼, 얀 마텔은 책을 읽기 시작할 독자들을 친절히 맞이하고 배웅한다. 나의 철학, 나의 고민, 나의 생각의 진수에 온 걸 환영해. 재밌게 즐기고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

작가 얀 마텔이 <파이 이야기>를 쓸 때부터 구상했다는 이 책 속엔 평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주제인 '신과 믿음', '삶과 죽음', '종교'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나도 즐겨 생각하는 주제이기에 호기심이 일었으나, 이 책은 그리 쉽게 의미를 내어주지 않는다.

롤러코스터를 처음 타면 무섭기만 무섭고 안전바만 꽉 쥔 채 다시 돌아오게 된다. 여러 번 타야 높은 곳에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기고 안전바를 놓고 소리를 지를 용기도 생긴다. 이 책도 그랬다. 처음엔 형용사로만 느껴지던 감상이 책을 한 번 다시 읽을 때마다 명사와 동사를 가지고 온전한 문장이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쉬운 책은 분명 아니다. 사실 '답'이 없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느 이야기건 한 가지 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완벽히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나 자책은 버리기로 했다. 지금 내가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는 것.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다른 듯 연결되는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인간의 시련과 고통 속 믿음에 대해 다루고, 2부에서는 믿음을 전하는 방식, 고통과 행복을 간직하는 방식에 대해 다루고 3부에서는 무엇을 믿는가에 대해 다룬다.

 

한 세기에 걸쳐 한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이 떠오르기도 하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 속에 만두소처럼 넣는다는 점에서 톨스토이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읽을 수록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얀 마텔은 책은 자동차 여행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여행은 정말 재미있는 자동차 여행이었고, 다시 하고 싶은 여행이기도 했다.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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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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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는 깊게 남는다.

함민복 시인의 시와 한성옥 그림책 작가의 그림이 함께 담긴 시그림책 <흔들린다>. 시 한 편과 그림이니 쉽고 빠르게 읽었지만 유독 자꾸 남는 구절이 있었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함민복, <흔들린다> 中)

 

외워버린 걸까 문신을 새긴 듯 남아버린 걸까 왜 이 시구가 가슴에 남을까 생각하다가 또다시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친구의 결혼식, 외국어 시험, 이어지는 알바, 감기, 어느새 다가온 11월. 이제 한숨 돌리겠다 싶었지만 달력을 넘기며 마주한 11월이 형용할 수 없는 휑한 마음을 들게 했다. 그때 책상에 올려둔 책이 다시 보였다.

찬찬히, 매서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게 아닐까 감정이입이 되는 표지의 나무그림을 손으로 쓸며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분명 읽은 시인데, 분명 본 그림인데 왜 자꾸 눈물이 울컥울컥 올라오는 것 같을까.

11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지만 난 11월이 행복한 적이 별로 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유일하게 빨간 날 없는 달이라 싫었고, 수능이 있어서 싫었고, 성인이 되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버린 1년이 상기되서 싫었다. 어느새 추워졌고 난 변함이 없는데 생일이라 나이는 한 살 더 먹고. 지금까지 난 뭘 한 거지?

그 '뭘 한 거지?'에 지친 게 아닐까. 그래서 저 짧은 시구에 꽁꽁 숨겨 놓은 '나'가 울기 시작한 게 아닐까. 채찍은 스스로 많이 하니까 나는 칭찬을 바란다. 따뜻한 응원이라도.

처음 이 시를 봤을 때 왜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고 느낀 것도 다 마음은 따뜻한 위로를 바라서 그런 게 아닐까. 표지의 흔들리는 나무가 나인 양 책을 꼭 끌어안아본다. 흔들리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산다는 건 흔들리며 중심을 잡고 흔들리며 나아가고 흔들리며 자라는 거야.

시에 기대서 좀 울고 또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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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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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가 일러스트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국제공모전을 통해 모여든 수천 명의 지원자 중 얀 마텔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일러스트 작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를 선택했고, 두 사람은 이메일로 소통하며 <파이 이야기>의 그림을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40여 점의 일러스트가 만들어졌고,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는 2002 맨부커상 수상작으로도 유명하지만, 이안 감독이 만든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더 유명하다. 나는 영화가 나온 2013년 무렵에 <파이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때는 따로 감상문이나 리뷰를 적지 않을 때라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무엇을 느꼈는지 알 길이 없다.

한 가지 의문만 남았다. 왜 종교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파이가 자신의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과 바다 위에서의 이야기는 도무지 섞이지 않았다.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그 기억만 남은 채 4년이 흘렀고, 우연한 기회에 다시 <파이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일러스트 작가 토키슬라프 토르야나크는 파이의 시선으로 소설을 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림이 대부분 1인칭 시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파이의 형 라비가 파이를 보고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그려진 것이다. 생동감이 훅 느껴져서 라비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 일러스트는 좀 더 파이의 입장에서 글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일까, 겉도는 것 같던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미는 책을 다 읽고 나서 겉표지를 벗겨냈을 때다. 하얀 겉표지를 벗겨내자 생명력이 넘쳐나는 파란색 표지가 나타났다. 바다가 연상되는 에너지로 가득 찬 표지에 깜짝 놀라며, 정확히 알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 책은 꼭 겉표지를 벗겨서 책장에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꼭 책을 다 읽은 뒤에 겉표지 속에 감춰진 생명력 넘치는 파란 일러스트를 감상했으면 좋겠다. 분명 뭔가 꿈틀거리는 생동감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읽은 <파이 이야기>는 종교적 믿음과 삶의 여정,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 등의 시선으로 이해했다. 오딧세우스를 연상하게 하는 파이의 여정. 나 역시 세상이라는 바다에 버려진 파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생각으로 <파이 이야기>를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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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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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음악을 아주 많이 듣는다. 출근길, 퇴근길, 무료히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카페에서, 데이트 할 때, 헤어진 연인이 무진장 보고 싶을 때. 그러다보면 음악에 이야기가 담기기 시작한다. 흔한 유행가가 지울 수 없는 노래가 되기도 하고, 가장 신나는 노래가 가장 슬픈 노래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가슴속에 그런 노래 하나쯤은 있는 거잖아요. 나는 영화 <주토피아>의 OST 'Try everything'이 그렇게 슬프다. 최선을 다해 바꾸고 싶었지만 결국 너와 나의 사이는 바뀌지 못했고 우리는 그대로 안녕이었기에...

여튼 누구나 가슴속에 그런 노래 하나쯤은 있는데, 이 책의 작가 '박상'의 가슴속엔 그런 노래가 매우 많다. 이탈리아 어느 지역의 텅 빈 대합실에서의 노래, 연인과의 여행에서 들었던 노래, 셀프 인테리어의 고된 노동을 잊게 해준 노래 등. 시대를 넘나들고 세계를 아우르는 그의 음악취향과 음악에 얽힌 이야기는 사람을 훅 빠져들게 만들었다.

 

 

'유머 감각은 포기하면 안 되겠지만(p.14)'라고 작가가 말했듯, 작가의 모토는 유쾌, 유머, 개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이 재밌었다. 음악은 살짝 뒤로 하고 유쾌한 글만으로도 하루의 스트레스와 고단함이 풀리고 어느새 낄낄거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비극적인 순간에도 '이 순간에 음악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하는 작가를 보며 '이 맛에 사는 거지!'라던 커트 보네거트가 떠올랐다.

낄낄거리며 읽는 데도 완독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떤 음악을 듣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추억을 떠올리는지 궁금해서 하나하나 들으며 읽었기 때문이다.

영화 <비긴어게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댄(마크 러팔로)과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한 기기의 노래를 이어폰 두 개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분배기'를 이용해 노래를 들으며 뉴욕을 돌아다니는 장면이다. 이 노래는 어떨 때 들었고 이 노래는 이래서 좋아하고~. 그 장면을 보며 나도 후에 꼭 연인이 생기면 저걸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그 분배기를 이용하진 않았지만, 책이라는 분배기를 통해서 얼추 그 장면을 따라한 느낌이었다. 작가의 쓸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록음악에서는 그의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그가 음악 속에 저장해놓은 추억과 생각은 진지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했다. 

 

 

뭘 듣는지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돼. (영화 <비긴어게인> 中)

그래서일까.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가 부쩍 친밀해진 느낌이었다. 웹툰처럼 작가의 글을 한 주에 한 편 씩이라도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이 끝나는 게 못내 아쉬웠다.

글을 쓰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여행'을 꼭지로 많이 삼는다. 그런 이들에게 워너비가 될 수 있는 책일수도 있겠다.

 

모든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음악은 마음을 열고 들을 때 비로소 빛나는 보석인 것이다. (p.89)

추억은 과거 한때 아름다움의 순간 포착이고,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회한의 부작용이 있어서 아픈 것 같다. 잠시 흐뭇해하다 한숨이 나올 만큼 아픈 걸 알면서도 우리들은 또 아름다운 순간들을 수집하고, 추억을 저장할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 싶다. (p.28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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