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는 깊게 남는다.함민복 시인의 시와 한성옥 그림책 작가의 그림이 함께 담긴 시그림책 <흔들린다>. 시 한 편과 그림이니 쉽고 빠르게 읽었지만 유독 자꾸 남는 구절이 있었다.
흔들리지 않으려흔들렸었구나흔들려덜 흔들렸었구나(함민복, <흔들린다> 中)
외워버린 걸까 문신을 새긴 듯 남아버린 걸까 왜 이 시구가 가슴에 남을까 생각하다가 또다시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친구의 결혼식, 외국어 시험, 이어지는 알바, 감기, 어느새 다가온 11월. 이제 한숨 돌리겠다 싶었지만 달력을 넘기며 마주한 11월이 형용할 수 없는 휑한 마음을 들게 했다. 그때 책상에 올려둔 책이 다시 보였다.찬찬히, 매서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게 아닐까 감정이입이 되는 표지의 나무그림을 손으로 쓸며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분명 읽은 시인데, 분명 본 그림인데 왜 자꾸 눈물이 울컥울컥 올라오는 것 같을까.11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지만 난 11월이 행복한 적이 별로 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유일하게 빨간 날 없는 달이라 싫었고, 수능이 있어서 싫었고, 성인이 되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버린 1년이 상기되서 싫었다. 어느새 추워졌고 난 변함이 없는데 생일이라 나이는 한 살 더 먹고. 지금까지 난 뭘 한 거지?그 '뭘 한 거지?'에 지친 게 아닐까. 그래서 저 짧은 시구에 꽁꽁 숨겨 놓은 '나'가 울기 시작한 게 아닐까. 채찍은 스스로 많이 하니까 나는 칭찬을 바란다. 따뜻한 응원이라도.처음 이 시를 봤을 때 왜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고 느낀 것도 다 마음은 따뜻한 위로를 바라서 그런 게 아닐까. 표지의 흔들리는 나무가 나인 양 책을 꼭 끌어안아본다. 흔들리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산다는 건 흔들리며 중심을 잡고 흔들리며 나아가고 흔들리며 자라는 거야. 시에 기대서 좀 울고 또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