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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평점 :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가 일러스트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국제공모전을 통해 모여든 수천 명의 지원자 중 얀 마텔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일러스트 작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를 선택했고, 두 사람은 이메일로 소통하며 <파이 이야기>의 그림을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40여 점의 일러스트가 만들어졌고,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는 2002 맨부커상 수상작으로도 유명하지만, 이안 감독이 만든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더 유명하다. 나는 영화가 나온 2013년 무렵에 <파이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때는 따로 감상문이나 리뷰를 적지 않을 때라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무엇을 느꼈는지 알 길이 없다.
한 가지 의문만 남았다. 왜 종교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파이가 자신의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과 바다 위에서의 이야기는 도무지 섞이지 않았다.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그 기억만 남은 채 4년이 흘렀고, 우연한 기회에 다시 <파이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일러스트 작가 토키슬라프 토르야나크는 파이의 시선으로 소설을 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림이 대부분 1인칭 시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파이의 형 라비가 파이를 보고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그려진 것이다. 생동감이 훅 느껴져서 라비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 일러스트는 좀 더 파이의 입장에서 글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일까, 겉도는 것 같던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미는 책을 다 읽고 나서 겉표지를 벗겨냈을 때다. 하얀 겉표지를 벗겨내자 생명력이 넘쳐나는 파란색 표지가 나타났다. 바다가 연상되는 에너지로 가득 찬 표지에 깜짝 놀라며, 정확히 알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 책은 꼭 겉표지를 벗겨서 책장에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꼭 책을 다 읽은 뒤에 겉표지 속에 감춰진 생명력 넘치는 파란 일러스트를 감상했으면 좋겠다. 분명 뭔가 꿈틀거리는 생동감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읽은 <파이 이야기>는 종교적 믿음과 삶의 여정,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 등의 시선으로 이해했다. 오딧세우스를 연상하게 하는 파이의 여정. 나 역시 세상이라는 바다에 버려진 파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생각으로 <파이 이야기>를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