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악어 크로커다일과 미시시피악어 앨리게이터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55
델핀 페레 지음, 이성엽 옮김 / 지양어린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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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의 차이는 무엇일까? 책의 마지막에 뜬금없이 나오는 카이만은 또 무엇인가? 이 그림책은 기본적으로 이런 질문을 갖게 만드는 게 목적인 것 같다. 앨리게이터는 사람들이 매번 자신을 크로커다일로 오해해는 것에 화가 나서 투덜대며 사촌인 크로커다일의 집에 방문한다. 그 건 자신의 탓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이들이 그 둘을 헷갈려 하기 때문이라는 크로커다일의 설명을 듣고 둘은 함께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 


그럼 이 여행에서 그 둘의 차이를 친절히 설명해주느냐? 그건 또 아니다. 교실에서 선생님마저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를 헷갈려 하는 상황에서, 지난 생일 생물도감을 선물 받은 테오도르라는 아이가 나서 그 둘을 똑똑히 구분해낸다. 하지만 딱 한 가지의 특징만을 직접 알려줄 뿐 그 후 이야기는 테오도르가 직접 설명을 하고 아이들이 직접 그 둘을 관찰하며 설명을 듣는 과정이 얼마나 즐거운지로 은근슬쩍 넘어가버린다. 결국 아이들과 친해져버린 두 악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아이들과 작별한다. 집에 돌아온 후 아이들의 안부편지를 받은 크로커다일은 흐뭇하게 미소 짓지만, 앨리게이터는 어느새 또 카이만으로 오해받고 말아 이야기는 다시 그림책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 본문이 시작되기 전 속지에 그려진 악어들.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를 과연 구분할 수 있을까? )



이 그림책을 읽고 결국 궁금해져서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 카이만의 차이가 무엇인가 찾아보았다. 기본적으로는 덩치의 차이라고 할까. 크로커다일이 가장 큰 대형종의 악어이고 앨리게이터가 중간, 카이만은  앨리게이터 계통의 악어로 셋 중에선 가장 작은 악어였다.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는 위에서 바라봤을 때 얼굴형이 뾰족하거나 넓은 차이가 있고,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아랫니가 밖으로 돌출되거나 아니거나 하는 차이점도 있다. 설명을 찾아보고 다시 한 번 그림책을 보니 역시 이 그림책은 그 둘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해줄 마음이 없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된다. 우선 그림책이라는 장르상 간략화된 두 악어의 모습은 항상 얼굴의 옆모습만을 보여주고 이빨의 모양이나 덩치 차이도 그 둘을 구분해낼 만큼의 힌트는 주지 못한다. 아이들 중 그 둘을 구분해내는 유일한 아이인 테오도르의 설명도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난후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두 악어의 등장에 책상 밑이나 교실 구석구석으로 숨어버린 아이들 가운데서 생물도감을 들고 유유히 등장하는 테오도르의 모습과 테오도르의 설명에 협력하며 두 입을 꼭 다물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두 악어의 모습이다. 어떤 지식을 알고 있다는 자신감과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장면이 유쾌하게 그려져 있고, 다른 아이들도 결국 즐거워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참 바람직하다고 할까? 그림책 속 아이들처럼 실제로도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을 이렇게 적극적이고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그림책을 읽은 아이들은 적어도 그 두 악어의 차이는 무엇인지, 카이만은 또 무엇인지 하는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 떠올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생물도감을 갖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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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대학교 - 서울대 교수들의 영혼을 울리는 인생 강연
김대환 지음 / 꿈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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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란 어떤 존재일까? 전공을 선택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쌓고, 학사나 그 이상의 어떤 증명서를 딸 수 있는 곳? 취직 전에 스쳐가는 곳? 인생에서 가장 활발하고 자유로운 시기를 보내는 대학교란 공간은 단순히 그 시기를 보내는 장소의 의미뿐이 아니라, 분명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사회에 나가기 전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킬 수 있는 인연을 만나거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자신이 다닌 서울(seoul) 대학교 내의 '소울(s oul) 대학교'를 찾기 위해 여러 학과의 교수님들과 만나 학생들에게 전해줄 '마지막 강의'를 들려달란 부탁을 청한다.

 


그에 대한 교수님들의 대답은 제각기였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학생들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걱정하고 염려해주고 있었다. 한 학과의 교수나 한 대학의 스승이라는 것보다 왠지 인생의 선배로서 청춘들에게 인생에 대한 조언을 들려주는 느낌이다. 물론 특정과에 관련한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지만, 질문자는 매번 전공에 관한 질문을 필수로 집어넣지 않았고 답변자 역시 대부분 과에 관련된 지식이나 전공자들의 진로와 미래라는 한정된 틀안에서 대답하지 않았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전체적으로 과에 상관없이 '대학'이라는 곳의 의미, 그 안에서 행해져야 하는 진정한 교육, 또는 학생들이 졸업 전에 얻어 갈 수 있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비전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느꼈다.


이 책은 교수님들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터뷰를 본문으로 하며, 그 앞뒤로 <연구실에 들어서며>와 <연구실을 나서며>라는 소제목을 달고 전자는 인터뷰 시작 전의 기대감과 교수님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후자는 인터뷰가 끝난 후 그 내용을 요약하거나 자신의 소감을 더해 그 여운을 남긴다. 이 부분의 조금 아쉬운 점은 진행자의 서문이나 논리 정연한 요약 글이라는 느낌보단 조금은 감상적이고 사색적인 글인데다가 같은 인터뷰를 듣더라도 내가 느낀 인상 깊은 점이나 감상과는 조금씩 다른 부분이 보여서 저자가 쓴 마무리에 항상 공감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글의 분량이 길지는 않아서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는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인터뷰의 시작과 끝을 이어주는 스토리를 만들어주어서 조금 더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고 느꼈다. 


또 각 교수님들의 본문 사이에 자리 잡은 <s oul spot>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서울대학교'라는 특정 장소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보니 이 코너에서는 서울대학교 재학생이라면 흔하게 지나다녔을 곳곳에 대한 소개와 저자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은 서울대학교 출신이 읽으면 애교심이 쑥쑥 자라날 것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이나 그들이 다니는 동안 직접 느끼고 체험했을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캠퍼스가 제법 큰 학교라면 하나씩은 있다는 연못과 인기 있던 교내 카페, 학생들의 버스킹이나 공연이 열리는 장소, 학생들의 의견과 행동으로 변화한 공간 등등 실제적인 공간은 다르겠지만 서울대학교가 아니더라도 있었을법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다닌 학교의 몇몇 장소들이 떠올랐다. 책 뒤표지에 쓰인 한 줄 리뷰처럼 고등학생이 이 책을 읽는다면 본문의 내용에 더해 캠퍼스를 거니는 상상을 하며 정말 '대학'에 다니고 싶어지지 않을까.
 



  공부는 왜 하고, 돈은 왜 벌고, 예술은 왜 할까? 사실 이 중 어떤 것도 무덤에 가져가지는 않잖아. 내 생각에는 열심히 해서 다 나눠주고 되돌려주기 위해서인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자네에게 해 준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야. 내가 알고 있는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해 이야기해 주고 나는 빈털터리가 되는 거지. 그럼 그다음에 자네는 또 자네의 보따리를 다른 곳에 풀어내겠지? 딱딱한 강의실의 한계를 넘는 것, 어쩌면 그게 바로 진짜 공부야.

(본문 중 102p, 인생이라는 이름의 무대 - 자연과학대학 수리과학부 김홍종 교수)

  우리 삶에서 경쟁력의 근본 혹은 기반은 바로 몸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  영국 사상가 존 로크는 살아가는 데 있어 다섯 가지 힘이 필요하다고 했어. 체력, 창조력, 위기 극복 능력, 적응력, 그리고 지력이야. 여기서 중요한 건 체력이 가장 으뜸이라는 점이지.

(본문 중 211p, 몸과 마음이 동시에 꾸는 꿈 -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강준호 교수) ​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하고 그것을 책임지는 것'은 모두에게 깃들어 있는 고유한 능력입니다. 다만 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지요. 실력이 출중한 인재일수록 이 고유한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책임은 더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 인재들에게 깊이 성찰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문 중 227p, '깡 to 용기',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

 -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 강명구 교수) 




​이 책의 맨 마지막 본문은 저자와 교수님 간의 인터뷰 형식의 글이 아니라 강연 형식의 글로 채워져있다. 앞서 조금은 말랑말랑한 인터뷰 형식의 글을 읽다 보니 어찌 보면 단순히 질문자의 존재만 사라졌을 뿐인데도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조금은 딱딱한 글처럼 느껴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대학교육의 철학과 역할 역시 나날이 발전하고 혁신되어야 할 필요성을 말하며 그 안에서 서울대학교에 기대하는 역할과 비전을 설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소 정석적인 글이었지만 교육자로서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의 철학이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논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글을 읽으며 '대학'과 '공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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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핀 청년시인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이상.박인환 지음 / 스타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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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맨 처음 실린 윤동주의 시 두 편. 『서시』와 『자화상』, 둘 다 분명 교과서에서 봤던 기억이 확연한데 왜 그때는 이런 감상과 느낌이 없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재작년쯤부터의 버릇인데 시집을 사면 시 하나하나 낭독하며 읽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얇디얇은 시집 하나를 읽는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 책은 젊은 시인 세 명의 시를 한데 모아 묶었다. 무려 123편의 시가 실린 이 책은 며칠이나 걸릴까 약간의 걱정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윤동주의 시와 4부에 실린 그의 주변인들이 남긴 추모글을 읽으면서는 영화 <동주>를 떠올렸다. 영화 속 동주의 역할을 맡은 강하늘의 목소리로 낭송해주던 '아우의 인상화'나 '쉽게 씌어진 시'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느낌. 윤동주의 시집은 읽을 때마다 특히 마음에 드는 시가 매번 바뀌곤 하는데 이번에는 '아우의 인상화', '편지', '어머니'등 가족과 관련한 시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추모글 중 '아우의 인상화'에서 자라면 "사람이 되지"하고 대답했던 그의 동생 일주가 남긴 글이 있었다. 시인의 인간적인 사생활의 편모라도 남길 책임을 가져 붓을 잡았다는 그의 글이 이 책에서 윤동주에 대해 가장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붓끝을 따라온 귀뜨라미 소리에도 벌써 가을을 느낍니다』 라고  한 나의 글월에 『너의 귀뜨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준다. 고마운 일이다』라고 답장을 주신 일이 기억 됩니다.  (… 중략 …) 십년이 흘러간 이제 그의 유골을 상재함에 있어 사제로써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으며 시집 앞뒤에 군 것이 붙는 것을 퍽 싫어하던 그였음을 생각할 때, 졸문을 주저하였으나 생전에 무명하였던 고인의 사생활을 전할 책임을 홀로 느끼어 감히 붓을 들었습니다. 이로하여 거짓 없는 고인의 편모나마 전해지면 다행이겠습니다.  

  1955년 2월. 사제(舍弟) 일주(一柱)  근지(謹識)

 

 - 4부 윤동주 추모글, '선백(先伯)의 생애' 중 97-98p

이상의 시는 매번 보아도 낯설고 매력적이다. 제멋대로의 띄어쓰기와 온갖 도형 및 방점, 온전히 해석하기엔 그 해석마저 주관적인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 그의 시는 붙잡고 있다 보면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간다. 최근 좋아하게 된 '이런시'와 '사과'라는 시가 실려 있어 개인적으로 좋았다. 윤동주와는 달리 추모글 대신 그의 생가를 시작으로 그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듯 가이드 글을 실어 넣은 것도 인상적이다. 그가 태어난 곳, 부모님의 집과 큰아버지의 집, 결혼 후 생활했던 곳이나 다방을 차렸던 장소 등등 지금은 그 자취가 거의 사라졌지만 그 장소가 생각보다 내게 익숙한 장소들이었음에 놀랐다. 심지어 금홍과 싸우고 쫓겨나면 찾아가곤 했다던 박태원의 집은 이전 직장에서 정말 코앞인 장소였다. 


박인환은 앞의 두 시인에 비해 조금 새롭게 알게 된 느낌이 강하다. 물론 그의 이름과 '목마와 숙녀'라는 시는 교과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이나 생의 마지막 이야기는 낯설기만 했다. 유복한 집 출생으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운영하고 언론인(기자)으로 활약하며, 퇴직 후 미국 여행을 다녀오고 <아메리카 시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평소 술을 그리 잘 마시지 못하던 그가 이상과 그의 시를 사랑한 나머지 그의 추모회를 열어 사흘간의 폭음 끝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사인도 참 독특하다. 시에 자주 등장하곤 하는 그의 '청순한 아내'와 2남 1녀의 아이들을 두고 갈 정도로, 천재적인 시인 '이상'을 잃어 동시대를 함께 더 살아가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된 걸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수록된 시 뒤로 이상과 마찬가지로 그의 발자취를 쫓는 글이 실려있다. 교보문고 빌딩 뒤쪽에 있는 박인환 생가 터 표석은 나도 본 적이 있는데, 그 표석의 문구가 두 군데나 틀린 곳이 있다는 게 놀랍고 한심했다. 책에 쓰인 대로 그 표석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관련자들이 보고 수정해주길 바란다. 그밖에 해설에서 아쉬운 점은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만으로 그를 기억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정작 시에 대한 해설이 부족했던 점이다. 그의 시가 지닌 특유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표현이나 감성적인 특징들은 조금 보이지만,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은  그의 시에 대한 정보가 워낙에 적어 일반적인 시집에 실린 것 같은 해설을 조금 원했기에 이런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세 사람은 전부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제목대로 '못다핀 청년시인'들이다. 그 불행한 공통점을 제외하고 그들을 엮는 인연은 무엇이 있을까. 윤동주와 박인환이 모두 이상의 팬이었다는 것 정도? 어쩌다 이 세 사람을 묶어 청년시인이라는 이름 하에 한 권의 책이 나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각 시인이 만들어낸 시의 인상이 너무나도 달라서 세 권의 책을 연달아 읽는 기분마저 들었다. 못다 피운 그들의 시와 인생이 이제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조금이라도 더 크게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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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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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그리 찾아보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꽤 여러 권 읽었던 것 같다. 추리소설이 한층 더 잘 팔린다는 더운 여름,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중 하나인 '11자 문자 살인사건'이 재출간되었다. 하드커버에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그의 책이 늘 그렇듯 좋은 가독성과 술술 진행되는 사건의 전개에 빠지듯 읽어갔다. 제목에서 언급되는 11자 문자는 다음과 같다. 서늘한 느낌이 절로 드는 살인 예고장의 문자이다. ​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monologue 1 중, 8p)



위의 문자가 쓰인 범인의 첫 번째 모놀로그를 뒤로하고, 본편의 이야기는 추리소설 작가인 여자 주인공 '나'의 애인 가와즈 미사유키가 살해당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전반은 가와즈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가 남긴 말과 그의 유품을 건네받는 과정에서 일어난 수상쩍은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 후 일어나는 연쇄적인 살인사건 등을 담당 편집자이자 친구인 후유코와 함께 취재라는 명목하에 적극적인 추리에 나서는 '나'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진행은 빠르고 주인공 '나'의 추리와 함께 독자가 보기에도 무언가 수상한 허점들을 틈틈이 남겨가며 사건은 계속 벌어진다. 



그리고 책의 후반에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은 이 책의 소개에서 밝혔던 두 가지 시사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절대적인 선인과 악인이 없는 살인사건이 가능한가, 최선은 과연 모두에게도 선인가 하는 질문들. 전자에 관해 생각했을 때 나는 살인사건에서 선인은 없을 수 있지만 악인이 과연 없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아마도 불가능하리라는 쪽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 마음으로 가해자가 곧 악인이 되는 뻔한 공식을 깨뜨리는 좀 더 파격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어서인지 요트 여행에서부터 이리저리 얽힌 이야기는 그저 각 인물들의 합리화 과정 같았달까. 악인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대답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결국엔 한 사람이 죽었고 그 인물을 죽인 범인은 악인인가 하는 질문에 내 대답은 역시 '악인이다'라는 입장이다.

타인의 죽음에 관여하여 어느 정도 주도적인 행동을 했는가와 그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느냐는 두번 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최선이라는 이름으로 한 결정에 누군가는 진심으로 동의하고, 누군가는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또 누군가는 분위기에 압도당해 그저 끌려갈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한 희생은 '최선'이라는 말로 무마될 수 있는 문제일까. 개인적으로 '최선은 모두에게 선인가'라는 질문에는 즉시 아니라는 대답을 돌려줄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늘 최선의 선택을 하길 원하고 그 과정에서 익숙하게 다수결의 논리를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다수의 의견이 늘 옳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희생당하는 소수의견이 있음을 알고 소수가 언제가 다수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있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 사건에서 이 설명이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비슷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에서 결정하게 된 '최선'이란 과연 믿을 수 있는 선택일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가가 던진 이런 화두를 독자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자신만의 답을 내리길 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고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리기 위해 범인을 찾는 탐정이나 경찰을 주인공으로 두지 않고,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아닐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사건의 전말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누군가를 벌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질문을 하나 남기고 침울해진 기분으로 혼자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소설의 이 마지막 장면에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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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 부자 편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케다 가요코 지음, 더글러스 루미즈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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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의 시리즈를 찾아 읽은 것은 2014년, 출간 연도는 거의 10년도 전이어서 읽을 당시에도 조금 더 최신의 통계가 적용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게 기억난다. 나 같은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올해 같은 제목에 '사람/이웃/환경/부자'라는 부제를 달고 새롭게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중 '부자편'으로 다음과 같은 글귀로 시작한다. 

2000년, 세계에는 61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ㅡ
세계에는 73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100명의 마을로 축소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본문 중 10-12p)

조금은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파스텔톤의 그림과 한글 본문 아래 좀 더 작은 글씨로 영어 본문을 실은 구성은 그대로 유지된 반면 내용은 최근 버전의 통계(2016년 10월 기준)가 적용되었다. 이전 버전의 책들이 같은 제목에 1,2,3 등의 각 권마다의 내용 구분이 모호한 표제를 달고 있던 것에 비해 조금 더 내용을 파악하기 좋은 부제를 달아서 한 권마다 각자 하고자 하는 말을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본문의 내용 자체-대표적으로 본문의 글자 수-가 늘어난 것도 눈에 띈다. 

이 책은 주로 전 세계의 화폐, 경제, 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아가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한 구체적 금액을 제시하고 그 금액을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세금에 대한 말을 꺼낸다. 책에서 제시한 "만약'으로 시작하는 다양한 세금들은 몇몇 나라에선 실제 시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방법들이 한층 더 현실적이고 희망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의 초반 부분을 제외하면 이 세계를 100명의 마을로 비유하는 문구는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퍼센트(%)나 실제적 금액(주로 -억 달러의 단위)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다. 또 본문에서 세계경제에서 가장 큰 부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인 미국과 저자(엮은이)의 나라인 일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이 사람들의 생각과 실행을 촉구하는 책이란 걸 느끼게 해준다. 


책의 초반 실려 있는 한국만의 추천사를 빼더라도 책의 본문 외에 해설이 30페이지 가량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간결한 비유와 핵심적인 언급으로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본문과는 달리 해설은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한 엮은이나 경제전문가들의 주장을 펼친다. 본문의 내용에 대한 해설은 물론 현재까지 일본 또는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혹은 벌어지고 있는) 경제문제들을 언급하고 그 심각성과 해결을 위한 노력, 변화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설의 글 중에 '미와 요시코'의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글에 찬성하거나 반박하기에 앞서 빈곤문제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역시 아이들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사실 빈곤문제뿐만 아니라 온갖 문제적 상황이나 고난 등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존재는 언제나 아이들과 여성이라는 약자임은 분명하다.) 아래 본문의 말처럼 어떤 아이들은 가난 때문에 노동에 뛰어들고, 교육받지 못하고, 심지어 죽어가고 있다. 가난을 겪은 아이들은 그대로 가난한 어른이 될 가능성이 크고 이런 가난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선 그들을 위한 지원과 돈이 필요하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한 나라 내에서 돈과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고 다수의 동의와 그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주장이 필요하다. 정책에 동의하는 것(투표), 관심을 갖는 것,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한 개인이 실행할 수 있는 사회변혁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옳다.

세계의 아이들을 100명이라고 하면
그들 중 8명이 가족을 부양하거나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100명 중 9명은 다니지 않습니다.
중학교에 다녀야 할 100명 중 34명은 다니지 않습니다.
가난으로 5초에 1명의 아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본문 중 58-59p)


4년 전 처음 이 시리즈의 책을 읽었을 때도 얕은 두께에 비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란 걸 느꼈고, 지금 역시 크게 느끼고 있다. 우리 눈앞에 맞닥뜨린 여러 문제들은 단순히 한 개인의 또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 세계 곳곳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그 문제들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또한  많다. 이제 '우리'라는 개념은 한 민족, 한 나라를 벗어나 전 세계의 인류를 통칭하는 의미로 확대해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갖고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 나아가 그 해결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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