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필사 - 나를 다시 꿈꾸게 하는 명시 따라 쓰기 손으로 생각하기 1
고두현 지음 / 토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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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 좋다. 손에 익숙한 펜으로 쓰자"

 

 

 

예전엔 작정하고 책 전체를 배껴쓰는 필사노트도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구절구절을 적어 두었던 노트가 따로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거나, 몰랐던 개념을 알려주는 부분이나 가끔은 별다른 이유없이 마음에 드는 문구를 휘갈겨 쓰고 날짜를 함께 기록해놨었다. 그땐 독서량이 많지 않아 꽤 두꺼웠던 그 노트를 몇년 동안이나 썼던 것 같다. 이제는 독서량도 늘고 읽고난후 바로바로 서평쓰는 습관을 들이려하다보니 핸드폰이나 컴퓨터의 메모기능을 자주 이용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손으로 배껴쓰던 필사노트가 사라진 상태다. 이 책을 읽고 함께 쓰면서 다시금 그때의 '손맛'을 떠올릴 수 있었다.

 

 

 

 

 

 

 

 

 

 

대학 때 현대시 강의를 들으며 만들게 되었던 시노트 이후로 시를 필사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정지용의 <호수>등을 포함해 국내외 저명한 시인들의 시와 함께 문학작품이나 여러 책속의 문구, 책의 엮은이자 지은이인 고두현작가의 시와 글귀 등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괴테, 헤르만 헤세, 셰익스피어, 무라카미 하루키, 정약용, 천상병, 도종환, 칼릴 지브란 등등 시대불문 국적불문의 다양한 작가들의 구절이 이 책안에 모여있다. 시집 혹은 잠언집같은 느낌도 있지만 제목에서 보여주듯 이 책은 대놓고 필사집이다. 작가 고두현의 개인적인 필사집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거나 좋아할 수 있는 시와 문구들을 정성껏 골라 담은 것 같다.

 

 

연필의 사각거림, 손에 익은 볼펜의 매끄러움이 주는 손글씨의 재미가 있다. 필기나 공부용으로 글씨를 쓸땐 나도 모르게 펜을 수직으로 잡고 꾹꾹 눌러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할때는 글로 정리하거나 쓰는 행위자체에 집중한다기보다 쓰여지는 글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서 손에 힘을 풀고 편안하게 쓰게되었다. 필사할수 있도로 비워져 있는 페이지가 그저 흰 공백이 아니라 가로줄, 세로줄, 모눈종이같은 체크, 구불구불한 밑줄 등등 다양하게 구성되어있었는데, 처음엔 익숙한 노트식의 가로줄로 통일한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직접 쓰다보니 일반 노트처럼 가로줄만 있는 경우보다 글씨 크기나 문단 형태 등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익숙한 펜으로 쓰다보니 검정 일색이긴 했지만 자기만의 필사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여러 색을 이용해 한껏 꾸며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6개의 마당으로 나뉘어진 책의 구성엔 많은 양의 정보나 교훈 등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중에 한 두 문장이라도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있고 글을 따라 쓰며 편안한 마음이나 재미를 느꼈다면 좋겠다. 글의 내용을 곰곰히 생각하며 써보기도하고 솔직하게 가끔은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음악에 정신팔린 와중에도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필사한 부분도 있다. 꼭 책의 전부를 필사할 필요도 없고, 책이 제시하고 있는 하나의 완전한 문장을 필사하지 않아도 된다. 본격적이고 완성적인 필사를 하고 싶다면 그것도 자신의 선택이지만, 자신이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단어 위주로 일부를 골라 쓰는 것도 필사의 한 방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의 경우를 필사라는 개념에 앞서 자기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필사라는 것은 책을 어느 정도 읽는 사람들에게 왠지 관심이 가고 시도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인데, 거창하게 '도전'이라 부를 필요없이 자기 마음이 끌리는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따라 쓰는 것으로 필사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필사의 편안함을 어필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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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작아졌어 비룡소 창작그림책 13
정성훈 글.그림 / 비룡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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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락부락 살짝은 무섭게 생기기도 한 거대한 사자, 우리가 정글의 왕이라 부르는 사자가 가젤의 얼굴보다도 작은 사이즈로 변한다면? 쫓고 쫓기던 사자와 가젤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고 있는 가젤을 뒤쫒는 사자의 모습. 그저 포식자와 먹이감으로만 보이는 사자와 가젤이 함께 뛰는 장면을 색다르게 상상하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낮잠을 자던 사자가 작아졌다. 너무나도 커져버린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사자가 실수로 개울에 빠지고, 그 개울에서 사자를 구해준 건 어제까지만 해도 사자에게 먹이감후보로 달아나던 가젤이었다. 가젤은 자신이 구해준 것이 어제 자신을 쫓아오고 자신의 엄마를 잡아먹은 사자가 맞는지 어리둥절해한다. 사자는 자신을 구해준 가젤이 화를내고 우울해하자 어떻게든 가젤의 기분이 풀어지게 만들려고 애를쓰지만 엄마를 잃은 가젤은 그런 사자의 노력에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슬퍼한다.

 

 

 

그림책의 특성상 간결한 글과 강렬한 그림(이책은 특히 선명하고 또렷한 색이 많이 쓰였다)이 주는 진한 감동이 있었다. 작아진 사자가 애를 쓰며 가젤의 기분을 풀어주려 할때의 앙증맞은 모습도 귀엽지만, 사자의 이런저런 노력에도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는 가젤의 모습과 가젤의 눈물을 닦아주며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사자의 모습은 정말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아이들의 책이고 굉장히 짧은데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고 가슴 찡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동도서에서의 강세를 보이는 비룡소출판사는 확실히 독자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그림책을 잘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해외의 그림책에 익숙한 독자가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 아동그림책의 수준이 그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걸 이 책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글과 그림을 한 사람이 했다는 것도 놀라웠다.(스토리텔링 능력과 그림솜씨를 모두 가진 작가라니.) 우리나라만의 특징적인 정서나 배경, 인물 등을 다룬 책은 아니었지만, 글과 스토리와 그림이 전부 좋았고 오히려 어느 나라에서든 공통적으로 통할 수 있는 캐릭터와 주제를 다룬 책이었다. 참고로 작가의 이력에 마치 이 책과 시리즈 작품같이 보이는 제목의 <토끼가 커졌어!> 라는 책도 발견했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는 주인공(이 책에서는 사자, 토끼가 커졌어!에서는 토끼)과는 달리 제목에서 추측할 수 없는 주요 주제(이 책에서는 진심어린 사과와 화해)가 무엇일지 궁금하고 이 책 또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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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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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며, 상처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중략) 상처는 친밀함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친하고 가까운 사람, 그것도 가까운 사람한테서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아내는 남편한테 남편은 아내한테, 어머니는 아들한테 아들은 어머니한테 가장 깊고 아픈 상처를 받는다. (본문 중 '나를 먼저 용서합니다' 14p)

 

 

힐링을 바라며 책을 펼쳤는데 첫번째 이야기부터 '상처'에 대해 말한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말, 참 많이 들었고 나 또한 자주 생각하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뒤에 하나를 덧붙인다. '상처주지' 않는 사람도 없다는 것. 정말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지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상처에 주목한다. 내가 남에게 받은 상처만큼, 나도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아득해진다. 내게 상처받은 누군가, 그중에서도 작가의 말처럼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받았을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렸다. 인상깊은 첫번째 글을 읽고 한참이나 다음장을 넘기지 못했다. 4부로 나뉘어진 여러편의 짧은 글들이 한 편 한 편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거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이 책은 작가가 2003년 열림원에서 출간했던 정호승의 <위안>이라는 에세이의 개정증보판이다. 새로운 표지와 구성, 새로운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2003년엔 일어나지 않았을 더 가까운 현대의 큰 사건들은 겪은 자신과 독자를 위로하는 글을 말미에 덧붙였다.(세월호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등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달라진 외양으로 다시 나타난 이 책은 작가의 지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위로와 위안을 건네려는 그 핵심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작가의 시와 동화를 주로 읽었던 터라 작가의 종교적인 면모에 그리 익숙하진 않았지만, 하나의 종교적인 입장으로서의 위로를 건내는 것이 아닌 그저 그런 면모 또한 가진 한 사람으로서 진솔하게 건내는 위로가 담겨있어 읽는데에 있어서 불편이나 부담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자연에는 위안의 힘이 있다. 인간을 위로하는 어머니같은 사랑의 힘이 있다. 하루를 다사다난하게 사는 우리에겐 늘 자연이 주는 위로와 위안의 손길이 필요하다 고통스러울 때 인간은 자연을 통해 위안을 받는다. 인간이 자연을 통해 위안을 받을 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때다. (본문 중 '꽃에게 위안받다'100p)

 

 

<1부 십자가를 품고 가자>, <2부 꽃에게 위안받다>, <3부 우리는 언제 외로운가>, <4부 첫눈 오는 날 만나자>로 이루어진 구성에서 작가는 내내 독자들을 위로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의 상처를 주시하고 자신을 위로해주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다양한 그 '무엇' 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 사람과 자연이 주는 위안이 가장 강력하다는 걸 작가는 책 전반적으로 계속해서 주장한다. 2부와 3부에서는 자연을 비롯하여, 자신에게 위안을 주었던 사람들(역사적 시인들, 가장 가까운 형, 시인 선배나 동기, 성철스님이나 마더 테레사같은 현대 성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자주 나온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맨 처음 착각에 의해 이 책을 알게되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문구를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라는 구절과 혼동해버린 것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라는 글로 시작되는 <저녁에>라는 시는 그 '별'한글자 말고는 동일한 단어하나 없는 데도 난 철석같이 내가 아는 그 시의 구절을 따와 제목을 지은것이라 마음대로 생각해버린 것이다. 익숙한 것에는 무조건 관심이 가는 성미 덕에 반갑게 책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니 정호승 시인의 책이란다.(그때 나는 시인이니까 다른 시에서 제목을 따왔을 수도 있지-하고 끄덕였는데 시인이 본인의 시를 차용했을거라는 생각은 하질 못한 모자란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제목의 시가 책 속에 실려있었다. 물론 정호승 시인의 작품으로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쓴 시라고 한다.

 

책의 말미에서 '별'은 '나 자신'임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상처와 고통, 위안과 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이 모든 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상처와 그를 회복하고자 하는 위로(또는 위안을 주는 대상)는 '어느 별에서'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좋거나 나쁜 것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자연히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니 너무 괴로워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라는 '별'에 언제고 고통과 상처가 찾아오면 그 위로 또한 따라올거라는 뭉근한 한마디를 건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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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다이아나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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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다이아나>는 유명한 고전 <빨간머리앤>을 오마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는 소녀들의 우정과 성장을 그려내는데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작품을 따라잡기 힘들다면 함께가면 되지?- 하는 느낌이었달까. 주요 등장인물인 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이 되어 처음 만나는 장면이 빨간머리앤의 한장면과 굉장히 닮아있어서 재미있었다. 주인공 다이아나는 '앤의 친구인 다이아나'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이 책의 주인공답게 '앤'과 매칭되는 인물이다. 호스트가 직업인 젊고 아름다운 티아라의 딸이자 화려한 옷차림에 마른 몸, 예쁜 얼굴과 노랑머리의 다이아나는 일본어로 큰구멍이라 쓰는 이름때문에 같은 반 남자아이인 다케다에게 놀림을 받는다. 빨간머리 앤의 경우 머리색으로 놀림을 받고 성격대로(?) 혼자서 꿋꿋하게 보복을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앤의 친구 다이아나'와 매칭되는 아야코가 등장한다. 넉넉한 집안의 교양있는 부모님을 둔 얌전한 아이인 아야코는 두 사람사이를 중재시키면서 다이아나에게 '빨간머리앤의 다이아나'를 언급한다. 빨간머리앤이라는 이야기가 <서점의 다이아나>라는 책속의 현실로 자연스레 발을 내딛는 장면이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앤과 다이아나처럼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다이아나, 네 엄마 공주님같다.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거 처음 먹어봐."

순간 티아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목을 뒤로 젖히며 깔깔 웃었다.

"어머나, 얘 진짜 웃긴다. 너 정말 재미있다!"

티아라가 등을 찰싹 때려서 하마터면 다코야키가 목에 걸릴 뻔 했다. 다이아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고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를 꼭 닮은 반짝임으로 세상을 사로 잡는 아름다운 여자가 되리라. 어른이 된 다이아나 옆에 있어도 잘 어울리는 자신이 되고 싶다고, 아야코는 따끈따끈한 타코야키를 오물오물 먹으면서 훈훈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본문 중 43p)

 

 

 

초등학생 다이아나와 아야코의 만남, 그리고 우정을 쌓아가는 그 과정이 엄청나게 귀엽다. 어린 아이들의 유행이라던가 독서형태라거나 단순한듯 하지만 복잡한 행동 패턴도 눈에 참 잘 들어왔다. 두 사람의 대조되는 외양은 그녀들보다 그녀들의 어머니의 취향이 한껏 반영되어 있던 터라, 두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서로의 모습을 선망의 대상처럼 생각하고 두근거려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알아간다. 초등학생인 두 사람은 부모의 영향을 받고 아직 완성되기 전의 모습이라 내가 보기엔 다이아나와 아야코보다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예는 두 사람의 엄마들이었다. 외양만은 부인할수 없이 자신의 엄마를 꼭 닮은 두사람이었지만 원래 자신에게 없는 모습을 바란다는 말처럼 취향이나 동경하는 인물이 서로의 엄마로 교차되어 있어 인물관계도 상으로도 흥미로운 구조를 보였다.

 

어려서부터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갔던 다이아나는 꾸준히 책읽기를 좋아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서점에서 일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다이아나는 고등학생일때 여러 서점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책을 구입하곤 했는데, 서점은 고등학생이 된 다이아나의 동급생들이 훔친책을 가방에 몰래 넣는 등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나중에 일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다이아나에게는 진로와도 결부되는 꿈(서점에 취직)과 별개로 어려서부터의 꿈은 2가지가 더 있었는데 하나는 성인이 되는 순간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첫번째는 좌절되지만 그 결과는 결국 두번째 꿈을 맞딱드리게 하는 요소로 남게된다.


 

 

 

다이아나라는 캐릭터의 이름말고 <빨간머리앤>의 이야기를 끌어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두 소설의 키워드는 '소녀'와 '성장' 그리고 '우정'이다. 다이아나와 아야코의 우정은 그 마음은 변치 않았지만, 사소한 계기로 인해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만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이후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교차적으로 전개된다. 이 서평에서는 아야코의 이야기에 대해 많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아야코의 이야기가 더 내게 와닿았던 부분도 있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스스로에게 '저주'같이 느껴지는 장애물과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 역경을 파헤치는데 이중구조로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비밀숲의 다아아나>라는 책이다.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우리는 이 책에서 두 명의 다이아나를 짐작할 수 있다. <빨간머리앤>의 다이아나, <서점의 다이아나>의 주인공인 다이아나. 그런데 저자는 책속에서 또 다른 다이아나를 등장시킨다. <비밀숲의 다이아나>라는 제목의 동화책은 아야코의 아버지가 제작에 참여한 책으로 책의 저자는 이 책으로 데뷔를 해서 대박을 내고 그 후로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야코의 집에서 이 책을 만나게된 다이아나는 <비밀숲의 다이아나> 속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주인공 '다이아나'의 모험과 역경을 물리치는 모습을 선망한다. 다아아나 역시 그 책의 문구와 '저주를 깨트리는 방법'을 내내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해 용기내어 성장하고자 노력한다.

 

두 사람은 각자의 저주를 깨트리고 다시금 서로의 우정을 회복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본문에서 직접 언급된 부분인데 앤과 다이아나의 우정의 비결에는 서로의 입장이 달라져도 늘 그 자리를 지켜주었던 다이아나라는 인물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다이아나'와 매칭되는 인물인 아야코는 흔들리는 자신의 중심을 잡고 다시금 자신의 친구 다이아나의 곁으로 먼저 다가선다. 약간은 어색하지만 늘 서로를 생각하고 있던 두사람의 우정에는 변화가 없다는걸 느낄수 있는 장면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었다.


 

 

 

  "정말 좋은 소녀 소설은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수 있어요, 손님. 어린 시절에든 어른이 되어서든. 매번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으니까요."

뛰어난 소녀소설은 어른이 되어 읽어도 역시 재미있다. 하토리 선생님의 말이 옳다. 그 시절에는 공감할 수 없었던 감정을 내 손바닥 보듯 알게 되는가 하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조역의 빛나는 매력에 푹 빠지기도 한다. 새로운 발견을 얻는 동시에 자신의 성장도 깨닫게 된다. 어린시절에 키운 우정 역시 책갈피를 끼운 곳을 펼치면 책을 덮었을 때의 기억과 분위기가 되살아나듯 몇 살이 되어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몇 번이든 다시 읽을 수 있고, 몇 번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몇번이든 또 만날 수 있다. 다이아나는 서점이 세상에서 재회와 출발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라서 좋아 하는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축복과 희망을 손님들에게 선사하는 그런 책방을 차리고 싶다. (본문 중 320p)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아이였을 때부터 시작해서 자라나는 성장과정을 모두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책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바로 이 책과 <빨간머리앤>의 경우가 그렇다. <빨간머리앤>은 앤이 입양되는 순간부터 학창시절, 처녀시절을 거쳐 학교 선생님이 되고 연애와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되는 과정까지를 모두 보여준다. <서점의 다이아나>에서는 아야코와 다이아나의 초등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된 20대 초반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긴시간동안 다양한 경험과 사건이 생겨나고 그것이 얽히고 설켜 지루할 틈이 없이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두 소녀에게는 저마다의 장점과 단점, 강함과 약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있었다. 순수한 소녀시절을 거쳐 22살의 어엿한 성인이 될때까지 두 사람은 스스로에게 걸린 저주를 깨뜨리고자 아주 열심히 고분분투하고 있었다. 절로 응원해주고 싶은 두 소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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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
김준 지음, 이혜민 그림 / 글길나루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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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에 행간이 있다. 책 제목부터가 너무나 시다운 책이라 느꼈다. 표지가득 뽀얗게 핀 꽃밭너머로 지붕만 빼꼼이 보이는 집안에 '너' 가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속초에 여행을 갔을때 의도적으로 바다를 찾지 않아도 매일같이 바다를 볼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나와 바다는 하루에 한번 이상씩 우연한 만남을 가진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우연한 만남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너'는 누구일까? 연인? 가족? 혹은 이런 사랑한 대상에 대한 추억이나 그리움 그 자체였을까? 책을 펼치기 전부터 표지와 제목에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바라보고 생각했다.

 

 

 

솔직하고 절절한 사랑시들을 읽으면서 그와 함께 자리한 그림에도 시선이 참 많이 갔다. 시가 완성되고 시를 뮤즈삼아 그려진 그림들인지 그린이가 별개로 완성해 놓은 작품들 중 시의 느낌과 잘 맞는 것들을 골라 수록한것인지 그에 대한 설명은 나와있지 않지만 전자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했다. 시의 제목 또는 시의 장면장면과 그림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믿어졌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내부의 그리움과 정을 끌어내는 그림을 그려왔다는 이혜민 화가의 소개를 보니 시 이전에 그려진 작품일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책의 맨 뒤에는 시집에 수록된 그림들의 작품리스트가 따로 있어서 그림들만도 한눈에 볼수 있어 좋았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고 하셨죠
/그런데 슬플 /눈물이 대신하는 시간들이/이 남자에게도 오고야 말았네요 - 24p <남겨진 기다림의 자리보다> 부분

 

연인이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드러난 시가 참 많았다. 그 중 남자는 우는게 아니라고 꾸중아닌 꾸중을 들으며 자란 시골 아이는 이제 울음을 숨길수 없는 시간(아마도 어머니를 잃는 순간)을 맞이할만큼 자랐다. 눈물을 흘리며 화자가 떠올리는 장면은 소년시절 남자는 우는게 아니라 한소리를 듣고 집 담벼락에 시무룩이 앉아있던 자신이었다. 어머니가 남긴 그 한소리였다. 그때는 몰랐던 당신이 속에 숨겨둔 슬픈 눈물과 마음을 온전히 다 알기엔 남겨진 자신의 시간이 아직 멀기만 하다.

 

 

 

두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다는 표지 중 내게 온 것은 사람없이 하얀 꽃밭이 그려진 버전이었다. 책 안에는 수록되지 않은 작품이라 더 만족스러웠다. 대부분의 시집이 그렇듯이 수록된 그림의 사이즈는 그리 크지 않았다. 시집의 주인은 시이기 때문일까 수록된 그림들은 시의 인상을 더 깊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부수적인 장치가 됨에도 그리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두지 않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가끔 속지를 가득 채운 그림이 나오면 왠지 반가웠다. 표지에서 시집의 제목만큼이나 그림이 내게 많은 인상을 주어서 일까.
 

 

 

 

 

슬픔은 그대 곁에서 못 본 척 / 제게만 남기고 스쳐 가듯 가면 됩니다

-
95p <느낌 하나도 사랑이란 기억에> 전문

 

 

 

사랑노래의 가사 같기도 하고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같기도 하고 일기장에 써놓고 자기만 몰래보는 연모의 시 같기도 한 글들이, 짠하기도 하고 못견디게 유치하기도하고 동시에 사랑스럽기도 하다. 사랑과 이별, 사랑받은 기억과 상실의 기억은 누구나가 가진 보편적인 기억이기에 집중해서 책을 읽다보면 울컥 치밀어오르는 부분들이 종종 있었다. 평이하다면 평이한 문장인데도 부분부분 신기하게 눈물이 났다. 그러다 다음장을 넘겼는데 시의 제목이 '울지마세요'였다. 울리고 달래는 것 모두 이 시집이 내게 한 짓이었다.
 

책속의 시들은 보통의 사랑과 이별과 그 후유증을 보통의 언어로 그린 시였다. 한편으론 참 평범하기 그지 없는데, 다른 한편으론 바로 그 점 때문에 평범한 사람인 내가 겪고 느낀 것들과 너무도 닮아있어서 와닿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평탄해보이는데 그 안에선 나름대로의 격정적인 요동이 있었다. 이런 애정시들로 가득한 시집은 처음 읽어봤다. 시 때문에 간질간질한 마음도 들고 몇장 걸러 나오는 그림과 시의 매칭에 감탄하며 새삼 다양한 종류의 애정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흔히들 사랑은 이별을 경계로 끝이난다고 생각한다면 시인에겐 이별 후의 후회, 그리움, 추억, 눈물, 희망과 절망까지의 모든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라지겠지만 그 누구를 사랑해도 이별 후의 남은 그리움 만은 늘 같다. 시인은 그 공통점을 포착하고 시를 쓴것만 같다. 사랑을 해본 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유치하고 끔찍하지만 달콤하기도 한 그 사랑의 후희(後嬉)를, 그리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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