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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는 늘 너를 우연히 만납니다
김준 지음, 이혜민 그림 / 글길나루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에 행간이 있다. 책 제목부터가 너무나 시다운 책이라 느꼈다. 표지가득 뽀얗게 핀 꽃밭너머로 지붕만 빼꼼이 보이는 집안에 '너' 가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속초에 여행을 갔을때 의도적으로 바다를 찾지 않아도 매일같이 바다를 볼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나와 바다는
하루에 한번 이상씩 우연한 만남을 가진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우연한 만남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너'는 누구일까? 연인? 가족? 혹은 이런
사랑한 대상에 대한 추억이나 그리움 그 자체였을까? 책을 펼치기 전부터 표지와 제목에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바라보고 생각했다.
솔직하고 절절한 사랑시들을 읽으면서 그와 함께 자리한 그림에도 시선이 참 많이 갔다. 시가 완성되고 시를 뮤즈삼아 그려진 그림들인지
그린이가 별개로 완성해 놓은 작품들 중 시의 느낌과 잘 맞는 것들을 골라 수록한것인지 그에 대한 설명은 나와있지 않지만 전자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했다. 시의 제목 또는 시의 장면장면과 그림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믿어졌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내부의 그리움과
정을 끌어내는 그림을 그려왔다는 이혜민 화가의 소개를 보니 시 이전에 그려진 작품일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책의 맨 뒤에는 시집에 수록된
그림들의 작품리스트가 따로 있어서 그림들만도 한눈에 볼수 있어 좋았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고 하셨죠/그런데 슬플 때/눈물이 대신하는 시간들이/이 남자에게도 오고야 말았네요 - 24p <남겨진 기다림의
자리보다>
부분
연인이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드러난 시가 참 많았다. 그 중 남자는 우는게 아니라고 꾸중아닌 꾸중을 들으며 자란 시골 아이는 이제
울음을 숨길수 없는 시간(아마도 어머니를 잃는 순간)을 맞이할만큼 자랐다. 눈물을 흘리며 화자가 떠올리는 장면은 소년시절 남자는 우는게 아니라
한소리를 듣고 집 담벼락에 시무룩이 앉아있던 자신이었다. 어머니가 남긴 그 한소리였다. 그때는 몰랐던 당신이 속에 숨겨둔 슬픈 눈물과 마음을
온전히 다 알기엔 남겨진 자신의 시간이 아직 멀기만 하다.
두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다는 표지 중 내게 온 것은 사람없이 하얀 꽃밭이 그려진 버전이었다. 책 안에는 수록되지 않은 작품이라 더
만족스러웠다. 대부분의 시집이 그렇듯이 수록된 그림의 사이즈는 그리 크지 않았다. 시집의 주인은 시이기 때문일까 수록된 그림들은 시의 인상을 더
깊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부수적인 장치가 됨에도 그리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두지 않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가끔 속지를 가득 채운 그림이
나오면 왠지 반가웠다. 표지에서 시집의 제목만큼이나 그림이 내게 많은 인상을 주어서 일까.

슬픔은 그대 곁에서 못 본 척 / 제게만 남기고 스쳐 가듯
가면 됩니다
- 95p
<느낌 하나도 사랑이란
기억에> 전문
사랑노래의 가사 같기도 하고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같기도 하고 일기장에 써놓고 자기만
몰래보는 연모의 시 같기도 한 글들이, 짠하기도 하고 못견디게 유치하기도하고 동시에 사랑스럽기도 하다. 사랑과 이별, 사랑받은 기억과 상실의
기억은 누구나가 가진 보편적인 기억이기에 집중해서 책을 읽다보면 울컥 치밀어오르는 부분들이 종종 있었다. 평이하다면 평이한 문장인데도 부분부분
신기하게 눈물이 났다. 그러다 다음장을 넘겼는데 시의 제목이 '울지마세요'였다. 울리고 달래는 것 모두 이 시집이 내게 한 짓이었다.
책속의 시들은 보통의 사랑과 이별과 그 후유증을 보통의
언어로 그린 시였다. 한편으론 참 평범하기 그지 없는데, 다른 한편으론 바로 그 점 때문에 평범한 사람인 내가 겪고 느낀 것들과 너무도
닮아있어서 와닿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평탄해보이는데 그 안에선 나름대로의 격정적인 요동이 있었다. 이런 애정시들로
가득한 시집은 처음 읽어봤다. 시 때문에 간질간질한 마음도 들고 몇장 걸러 나오는 그림과 시의 매칭에 감탄하며 새삼 다양한 종류의 애정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흔히들 사랑은 이별을 경계로 끝이난다고
생각한다면 시인에겐 이별 후의 후회, 그리움, 추억, 눈물, 희망과 절망까지의 모든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라지겠지만 그 누구를 사랑해도 이별 후의 남은 그리움 만은 늘 같다. 시인은 그 공통점을 포착하고 시를 쓴것만 같다. 사랑을 해본
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유치하고 끔찍하지만 달콤하기도 한 그 사랑의 후희(後嬉)를, 그리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