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며, 상처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중략) 상처는 친밀함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친하고 가까운 사람, 그것도 가까운 사람한테서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아내는 남편한테 남편은 아내한테, 어머니는 아들한테 아들은 어머니한테 가장 깊고 아픈 상처를 받는다. (본문 중 '나를 먼저 용서합니다' 14p)

 

 

힐링을 바라며 책을 펼쳤는데 첫번째 이야기부터 '상처'에 대해 말한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말, 참 많이 들었고 나 또한 자주 생각하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뒤에 하나를 덧붙인다. '상처주지' 않는 사람도 없다는 것. 정말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지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상처에 주목한다. 내가 남에게 받은 상처만큼, 나도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아득해진다. 내게 상처받은 누군가, 그중에서도 작가의 말처럼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받았을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렸다. 인상깊은 첫번째 글을 읽고 한참이나 다음장을 넘기지 못했다. 4부로 나뉘어진 여러편의 짧은 글들이 한 편 한 편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거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이 책은 작가가 2003년 열림원에서 출간했던 정호승의 <위안>이라는 에세이의 개정증보판이다. 새로운 표지와 구성, 새로운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2003년엔 일어나지 않았을 더 가까운 현대의 큰 사건들은 겪은 자신과 독자를 위로하는 글을 말미에 덧붙였다.(세월호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등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달라진 외양으로 다시 나타난 이 책은 작가의 지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위로와 위안을 건네려는 그 핵심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작가의 시와 동화를 주로 읽었던 터라 작가의 종교적인 면모에 그리 익숙하진 않았지만, 하나의 종교적인 입장으로서의 위로를 건내는 것이 아닌 그저 그런 면모 또한 가진 한 사람으로서 진솔하게 건내는 위로가 담겨있어 읽는데에 있어서 불편이나 부담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자연에는 위안의 힘이 있다. 인간을 위로하는 어머니같은 사랑의 힘이 있다. 하루를 다사다난하게 사는 우리에겐 늘 자연이 주는 위로와 위안의 손길이 필요하다 고통스러울 때 인간은 자연을 통해 위안을 받는다. 인간이 자연을 통해 위안을 받을 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때다. (본문 중 '꽃에게 위안받다'100p)

 

 

<1부 십자가를 품고 가자>, <2부 꽃에게 위안받다>, <3부 우리는 언제 외로운가>, <4부 첫눈 오는 날 만나자>로 이루어진 구성에서 작가는 내내 독자들을 위로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의 상처를 주시하고 자신을 위로해주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다양한 그 '무엇' 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 사람과 자연이 주는 위안이 가장 강력하다는 걸 작가는 책 전반적으로 계속해서 주장한다. 2부와 3부에서는 자연을 비롯하여, 자신에게 위안을 주었던 사람들(역사적 시인들, 가장 가까운 형, 시인 선배나 동기, 성철스님이나 마더 테레사같은 현대 성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자주 나온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맨 처음 착각에 의해 이 책을 알게되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문구를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라는 구절과 혼동해버린 것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라는 글로 시작되는 <저녁에>라는 시는 그 '별'한글자 말고는 동일한 단어하나 없는 데도 난 철석같이 내가 아는 그 시의 구절을 따와 제목을 지은것이라 마음대로 생각해버린 것이다. 익숙한 것에는 무조건 관심이 가는 성미 덕에 반갑게 책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니 정호승 시인의 책이란다.(그때 나는 시인이니까 다른 시에서 제목을 따왔을 수도 있지-하고 끄덕였는데 시인이 본인의 시를 차용했을거라는 생각은 하질 못한 모자란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제목의 시가 책 속에 실려있었다. 물론 정호승 시인의 작품으로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쓴 시라고 한다.

 

책의 말미에서 '별'은 '나 자신'임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상처와 고통, 위안과 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이 모든 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상처와 그를 회복하고자 하는 위로(또는 위안을 주는 대상)는 '어느 별에서'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좋거나 나쁜 것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자연히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니 너무 괴로워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라는 '별'에 언제고 고통과 상처가 찾아오면 그 위로 또한 따라올거라는 뭉근한 한마디를 건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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