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 혼자지만 따뜻하고 맛있게
김선주 지음 / 조선앤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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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말이다. 혼자 밥먹기, 혼자 술먹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여행가기 등등 이제는 무엇이든 혼자 해내는 혼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혼밥족은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한 종류라 인터넷에서 장난반 진담반으로  레벨을 나눠두기도 했다.(하지만 레벨업해봤자 뭐가 좋은건지는....) 개인적으로 혼밥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혼자는 왠지 외롭고 허전해서 싫다, 밖에서 먹는 혼밥은 특히! 라고 생각하는 부끄럼쟁이형, 두번째 혼자 먹든 둘이 먹든 먹는 것에 집중할뿐 그다지 상관없다 하는 마이웨이형, 마지막은 혼자먹는게 어때서? 혼자먹는거면 더 잘 챙겨먹어야지 하는 엔조이형. 엔조이형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파워블로거나 홈메이드 요리 실력을 일취월장시키는 준요리사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이 혼밥을 표제로 내세운 이 책은 엔조이형 혼밥족을 노린 책이라 할수 있겠다. 만들기 쉽고 일인분만 만들어도 폼나고 맛좋고 아마 영양도 좋은(욕심이려나..) 요리법들이 가득 실려있겠지? 하고 나도 이 책을 펼쳐봤다.

 

 

 

혼자 먹는다고 대충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장을 잔뜩봐서 화려하게 차릴것도 없다. 그냥 약간의 정성만 있으면 맛있고 건강하고, 또 기분까지 좋아지는 예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 저자 서문 "따뜻한 혼밥"중


 

저자의 당부를 마지막으로 한페이지에 그치는 단순한 서문을 지나면 조리도구와 여러 소스들을 소개하고 곧바로 음식사진과 요리법이 시작된다. 책의 구성은 면, 밥, 샌드위치/토스트, 샐러드 ,고기요리, 국물요리, 안주/간식, 반찬/저장식, 음료/디저트 이렇게 총 9종류의 챕터로 나뉜다. 각 챕터에서 소개하는 요리법은 간단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쉬운 요리법처럼 조리 과정 설명이 3에서 6안에 대부분 끝이 난다. 아주 본격적이지는 않더라도 재료만 있다면 그럴싸한 한끼 식사가 차려진다. 면이나 밥은 종류에 따라 취향을 탈 수있는 반면 가볍게 식사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샌드위치와 샐러드 등의 메뉴는 환영받을 것 같다. 다양한 소스가 쓰이는데 시중에 판매하는 것과 이름은 같아도 홈메이드로 쓱쓱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조합법이 함께 쓰여있어서 더 반갑다. 개인적으로 시중에 파는 샐러드 소스는 양도 너무 많고 한번 샀다가 입에 맞지 않으면 손이 잘 가질 않기 때문에 주로 발사믹 소스 하나로 버티는데 이 책에 나오는 소스들은 시도해볼만 한것 같다. 여러 파트 중에 혼자사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파트는 뭐니뭐니해도 반찬/저장식이 아니었나 싶다. 금새 만들어 금방 먹어버리는 요리들도 반갑기야 하지만 한번 만들어 여러번 사용할 수있는 반찬들의 활용도에는 약간 못미치지 않을까. 약고추장이라던가 페스토 등의 일종의 소스를 자급자족할 수도 있고 장조림이나 냉동용 계란찜등도 눈길을 끈다.

 

 

 

 

 

 

요리 책이다보니 요리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외에는 그다지 내용은 없지만 110가지 레시피들이 알차게 들어있다.요리들의 난이도는 중하정도, 생초보들이 보기엔 낯선 재료와 새로운 조합이 많을수 있고, 어느정도 요리경험이 있다면 무난하게 따라 할수 있을 것 같다. 요리 고수들이 보기에는 조금 심심할지도. 만들어보고 싶다 생각했던 요리들이 실려있어 기뻐하기도 하고, 보다보니 만들어먹고 싶다 하는 요리들을 체크해두자 제법 표시한 자리가 많다. 짧막한 글 속에서 저자가 간단한 요리를 하며 스스로 힐링 하고 있는 게 느껴지기도 했고 사진에서처럼 정갈하고 맛있어보이는 결과물이 나온다면 과연 뿌듯할만도 하다고 공감했다. 음식에 관한 직업을 가진 이가 쓴 책이다보니 실려있는 사진속의 요리는 물론 재료까지 예쁘다. 그 과정까지야 장담할 수 없지만 이 책의 사진들은 요리를 따라하고 싶은 욕구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제법 있는 것 같다. 반면  낯선 요리이름이나 재료이름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간략한 해설 한줄씩만 있었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반길 수 있는 책이되지 않을까 싶다. 푸드스타일리스트인 저자는 작업 후의 남은 재료를 활용하기도 하는데 흔하고 여러모로 쓰이는 재료부터 은근 다양한 종류의 재료들이 등장하기도 해서 부러웠다. 자신이 먹어본 음식이나 소스를 집에서 재현해보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카페나 레스토랑 등에서 사용될 법한 예쁜 비주얼의 디저트나 음료도 간간히 눈에 띄어서 카폐를 준비중인 지인에게 이 책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혼자살고 있지는 않지만 가족들의 생활스케줄이 맞지 않아 주말 저녁이 아니면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 반찬은 시간이 되는 사람이 적당히 만들어두는 편이지만 혼자 먹으려니 식사를 거르거나 대충 먹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새는 점심에 도시락을 싸가기도 하는데 샌드위치나 몇몇 표시해둔 요리들을 도전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면 안주파트에 있는 요리들을 주말을 이용해 가족들에게 차려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사진 속 정갈하고 반짝반짝 빛이나는 비주얼이 나올지는 과연 모르겠으나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을 준비해봐야겠다. 싼값에 쉽게 위로 받을 수 있는 게 바로 밥이라 했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먹방, 혼밥 등등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 그만큼 스스로 위로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찌됬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힐링을 받는다면야 누가 말리겠는가. 고로 밥먹기 좋아하는 자, 저자가 남긴 말처럼 혼자먹는다고 대충 먹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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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 다이어트 : 단맛 편 - 편하게 빼보자
이토 리사 지음, 김수연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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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은 빼고 싶고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하자니 귀찮은, 귀차니스트 다이어터들에게 공감을 살만한 만화. 본격운동 말고 살뺄 수 있는 방법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지면 보기좋은 만화. 책을 시작하면서부터 당당하게 "게으름뱅이입니다"하고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실용적이고 효과가 있을 법한 다양한 다이어트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평생에 걸친 자신의 다이어트 후기를 가볍게 하지만 솔직하고 진실되게 털어놓는다. 담백한 다이어트 성공담이나 실패담이 아니라 거의 일상생활에서 살, 다이어트 등에 관련된 일화를 만화로 풀어놓았는데 미묘하게 웃음나고, 공감가고, 가끔은 짠하기도 한 솔직한 만화에세이였다.


개인적으로는 다이어트에 굳이 집착하고 열망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그렇다고 누구나 인정하고 스스로 만족할만큼 완벽한 몸매를 가졌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생각하지 않는가? 아 살좀 빠졌으면 좋겠다, 좀만 더 날씬했으면 좋겠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건강, 미용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번번이 다이어트를 시도한다. 이 책의 작가도 마찬가지다. 거금을 들여 피부과에서 하는 마사지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다이어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마음껏 먹고(이정도로 마음껏 먹으면 결국 찐다는 걸 알면서도), 예쁘게 보여야 할 특별한 날(책에서는 시상식)을 앞두고 급하게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열심히 다니지 않을 걸 알면서도 1년짜리 문화센터 수강권을 끊는다. 어디선가 들어본것 같지 않은가? 디테일은 다르더라도 나도 이래본적 있던것 같아... 하며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 외에도 백화점에서 옷사이즈에 따라 구간 이름이 다르다던가, 성형외과 선생님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가 살을 빼는것과 아름다워지는 것은 다른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나, 유행처럼 한동안 퍼졌던 다양한 다이어트법에 대한 수다라던가 다이어트라는 일관된 주제로 소소한 이야기가 많다. 가장 짠했던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이혼하고 난 후 살이 빠졌다는 씁쓸한 고백. 가볍게 읽기에 좋지만 아주아주 솔직한 이야기들뿐이라 읽고나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참 많았다. 만화로 읽는데도 수필을 읽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책과 같이 출간된 매운맛편도 읽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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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4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정윤희 옮김, 규하 그림 / 인디고(글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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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고도 일러스트레이터 규하의 특유그림체가 지킬앤하이드의 미스테리한 분위기와 굉장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런던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와 음울한 분위기, 흉흉한 소문을 뿌리고 다니는 하이드는 한짝이라도 되는듯 자연스러웠고 고상하고 선한 지킬박사의 이미지와 더욱 극적으로 대비되었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 일러스트와 짧은 문장 몇개로 보여준 에필로그같은 페이지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어릴때 읽었던, 이제는 희미한 기억속의 지킬앤하이드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수라백작에 가까웠던것 같다. 뭔가를 마시고 인격이 바뀐다는 설정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두개의 인성이나 인격이라기보단 한 사람이 두사람을 연기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연기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이라는 대비되는 성향이 극적으로 발현되어 지킬과 하이드라는 분리된 인격이 탄생한다. 하이드의 탄생이 어떤 실험과 약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과 성격 뿐아니라 외모까지도 완벽히 변화한다는 점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목격자가 있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하이드였다. 하이드가 잠적하고 지킬박사는 여러가지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다 결국 자신의 집에 은거하게 된다. 그를 걱정한 집사와 친구에 의해 잠겨버린 박사의 문이 뜯겨지고 방안에는 하이드의 시체와 모든 전말이 쓰여있는, 박사의 친구에게 남긴 편지가 발견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이로 인식되는 지킬과 하이드란 두 인물이 있다. 하이드는 작은키와 기괴한 인상의 소유자로 안좋은 소문에 휩싸이며 평판이 나빴는데 어느날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잠적해버린다. 지킬박사는 큰키에 차분한 인상으로 자선과 사교를 누릴줄 알고 누구나 친해지고 싶어지고 싶을 정도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다. 이 두사람이 서로의 집에 드나들 정도의 친분을 갖고있으며 하이드가 지킬박사의 유산을 받게될 상속자라는 것을 알게된 변호사 어터슨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터슨은 래니언와 함께 지킬박사와 친밀한 친우관계인데 하이드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그 후에 지킬박사의 변화와 사건의 진행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게되는 유일한 사람이다.


 

헨리 지킬의 외향에 선한 면이 드러났다면 에드워드 하이드의 외향에서는 사악함이 보였지. 게다가 내가 여전히 악한 본성을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이라 생각한 탓인지, 하이드의 몸에는 쇠퇴와 기형적인 면까지 있었다네. 그럼에도 거울 속에 비친 하이드의 추악을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기보다 오히려 반가웠어. 아무리 사악한 모습이라도 이 역시 나 자신의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일세.-본문 중 153p


 

줄거리보다는 지킬과 하이드의 대조적인 설정과 지킬박사가 남긴 편지에서 스스로 써내려간 속마음과 마치 관찰보고서 같았던 묘사가 매우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억눌러놓았던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보게된다면 나 역시 지킬처럼 그 모습을 반가워할 수 있을까. 지킬과 하이드가 서로 상반된 존재임은 맞지만 순수함으로 따지면 달랐다. 하이드가 오로지 악으로 이루어졌다면, 지킬은 선과 악을 한몸에 지닌 보통 사람이었고 악의 본성을 스스로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하이드가 가진 본성이 어느것이든 오로지 하나의 성향만을 백퍼센트 드러내고 있는 그 모습에는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함을 알고 있기에) 일종의 동경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질만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을 백프로 드러내고 살지 못한다. 특히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거나 터부시되는 것이라면 속으로 꽁꽁 감춰두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 반대적인 성향 역시 누구에나 있는 것이라 이랬다저랬다하는 자신에게 헷갈리거나 무언가 결정할때 고민하는 일도 빈번하다. 크게는 선과 악으로 분리되는 그 양면성을 분리하면 완전해지고 편안해질거라는 지킬박사의 가설과는 다르게 지킬과 하이드는 파멸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그 분리가 불완전한 탓도 있겠지만 온전히 하나였던 인물을 둘로 나누면서부터 그 파국은 예정되었던 것은 아닐까. 자기 안의 것은 어느 정도 겉으로 드러나거나 속으로 숨겨질 수 있지만 소설 속 이야기처럼 온전히 분리되거나 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이드는 결국 지킬이었지만 지킬은 하이드라는 분리된 상태에서만 그를 인정했다. 자신에게 종속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하이드로 변했을때 자신에게서 그 악한 본성들이 완전히 떨어져나갔으리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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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2 사계절 1318 문고 105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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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내용 중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1권에 비해 다이나믹하고 빠른 전개에 숨을 죽여 읽어내렸다. 채령과 수남이 고비를 넘기고 변화를 맞을때마다 짜릿함과 짠한 마음들이 오갔다. 특히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수남의 성장과 깨달음에 함께 울먹였다. 강휘와 수남이 타지에서 조선의 현실과 독립에 대해 터놓는 솔직한 이야기(그들이 강력하고 간절한 독립군이 아니더라도 그 시대의 조선을 살았던 젊은이로서 울분과 막연함을 느꼈다는 것 등)들도 와닿았다. 두사람이 서로로 인해 변해가는 과정(7살 무렵부터 마음을 이어온 수남의 경우 지고지순하다는 표현도 맞지만)이 훈훈하고 사랑스러웠다.

수남과 채령의 18살부터 25살까지는 인생의 격변기라 해도 손색없고, 수남에게 있어서는 황금기라 칭해도 좋을 것 같다. 다만 그 시기가 끝나갈 무렵 책의 분량이 아주 조금 남았다는 것과 주 무대가 혼란기인 조선으로 돌아온 것에 일말의 불안을 느꼈다. 빠르게 읽어가면서 머리속에서는 계속 이런생각이 맴돌았다. 채령과 수남 둘 중 한 사람은 결국 혼자 남을 것이며, 일본의 항복과 조선의 해방, 한국전쟁과 그 사이의 많은 시간을 거쳐 현대까지의 이야기를 과연 이 적은 분량으로 풀어낼 수 있는걸까.


결국 이 이야기는 비극이었다. 전쟁을 거쳤던 그 시대의 불운한 삶이야 흔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수남에게 이입되어 읽어냈던 만큼 그녀의 사연에 안타까움이 너무나 컸다. 채령은 독립 후 아버지의 재산을 복구시키고 대학교수 생활을 하는 등 과거이상의 부귀를 누리는 듯 했지만 역시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형만과 곽씨의 묘에 찾아가는 장면 이후로 채령의 이야기는 겉모습과 행보로만 이어질 뿐 수남에 비해 많은 것이 생략되어있다. 자신이 가장 큰 변화와 고난을 겪어야했던 미국에서의 생활을 수남에게 가장 찬란했던 미국에서의 생활로 덮어버리고 그녀는 자신의 일생을 치밀하게 계획하고자 했다. 죽기 직전 다큐멘터리에 출현한 것도 친일 명단에 들어있는 아버지의 오명을 씻고싶다는 명목하에 행한 것이었다. 한평생 아가씨로 살아왔던 그녀로서 그 행동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며 타고난 기질이 발휘된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행복했을까. 진심으로 자신의 삶에 덧칠된 수남의 삶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리라 믿었을까.


자신의 생밖에는 증거가 없다는 수남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같던 형만도, 사랑했던 강휘도, 나라가 해방된 후 함께 지내던 술이네와 끔찍한 경험을 겪어야 했던 분이도, 인생을 나눠가진 채령마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난후 뒤섞인 그녀들의 삶을 증명해줄 사람은 오직 한명 수남 본인뿐이었다. 수남은 마지막으로 채령의 조작된 삶을 되짚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강피디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마침 채령의 자서전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강피디는 수남의 이야기를 듣고 채령의 이야기가 아닌 수남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해방과 전쟁 후 벌써 60여년이 흘렀다. 친일파에 대한 형벌과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사과 및 배상청구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못한채 지지부진 아직까지 진행되고있다. 이책에서처럼 뒤섞이고 조작된 기록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후대로 갈수록 당시의 증거는 기록으로만 남아있게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록과 더불어 사람이 남아있다. 당사자가 사라지기 전에 해결해야 할일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전쟁과 식민지시대의 폐해를 주로 다루고자 한 책은 아니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을 주인공으로 둔 책으로 그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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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사계절 1318 문고 104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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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령과 수남의 만남 전까지는 그저 배경설명에 가까웠다. 일제강점기 매국이니 친일이니 따지지 않고 돈을 모아 성공하려는 채령의 아버지 형만와, 남편의 연애사와 여러번 반복된 아이의 상실을 겪은 어머니 곽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 채령. 소작을 하며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위에 언니들을 잔뜩 둔채 막내로 태어난 수남. 타고난 호기심과 고개너머 가고싶은 미래를 꿈꾸던 7살배기 수남은 어미와 떨어지기 싫어 울고불던 다른아이를 대신해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하고 대담하게 묻는다. 그 질문하나가 파란만장한 모험의 시작이었다. 7살이 18살이 될때까지 겪어낸 집안일과 채령의 변덕, 강휘에게 느낀 동경과 사랑, 채령을 따라간 일본유학시절은 그녀의 삶의 1부이자 행복기였다.

수남과 채령의 외모가 닮은 것은 그저 우연이었지만 그들의 성격은 전혀 달랐다. 신분과 처지가 달라 그런 것도 있을테지만 수남은 태생적인 호기심과 적극성을 남들보다 두배는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를 7살 나이에 집을 떠날거라는걸 알고도 질문을 뱉었고 기회가 닿을때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무엇이든 배워나갔다. 누가 먼저 가르쳐 주지도 이게 네게 필요한 것이다 강요한 것도 아닌데 조선글과 일본어, 영어까지(특히 언어적인 면에서) 두루 섭렵해가는 수남은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다. 신분이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여러 것들에 대해 불평을 가지지도않고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것에 만족하며 욕심내지 않는 성정의 수남이 유독 언어와 공부에는 관심과 정성을 쏟는다. 이런 노력은 결국 수남이 더 큰 무대를 자유로이 누빌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수남과 채령의 이야기가 시작되기전 마치 영화의 에필로그처럼 먼저 전개되는 현대에서의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자작의 딸. 현대에서 나온 그 두명은 과연 누가 누구일지 1권 마지막에 교묘하게 얽어놓은 전개에 뒷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작가의 글에서 풀어놓은 두 주인공의 무대는 조선과 일본땅만이 아니었다. 하얼빈과 바이칼 호수, 멀고 먼 미국땅까지 여정이 아직 남아있다. 소년소녀에서 청년이 된 주인공들이 어떤 생을 거쳐 현재에 다다를지 너무 궁금해져 1권을 내려놓자 마자 2권을 잡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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