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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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도무지 브릿마리를 좋아하기가 힘들었다. 오베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듯 브릿마리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찾을까봐 무서울 정도였다. 유별난 듯 하지만 결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을 끄집어내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능력이라면 이 고집불통 짠내는 여인에게서 나나 내 가까이의 누구라도 발견해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존재의 확인을 바라는 안타까운 여인. 교양있는 인간이라면 캔에 입을 대고 먹거나 컵받침없이 차를 마셔서는 안되며 포크, 나이프, 스푼의 커트러리 서랍 정리 순서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여인. 브릿마리는 늘 바쁜 남편 켄트의 불륜을 알아버린 후 홀로서기를 위해 직장과 살곳을 얻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으로 누구라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었으면, 더 나아가 자신을 필요로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브릿마리는 외롭고 불쌍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녀의 이런 캐릭터를 알게되면 이 책의 제목인 <브릿마리 여기있다>자체도 굉장히 짠하게 느껴질 정도랄까. 결혼 후 처음으로 집을 떠나 자신의 존재확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그녀의 곁에 많은 아이들이 모인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부족하기 마련인 아이들과의 소통은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지만 그녀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 사람이 떠나고 점차 쇠퇴해져가는 도시 보르그에서 아이들은 오합지졸 축구팀을 만들어 매일같이 공을 찬다. 브릿마리에게 축구팀의 대회출전을 위해 코치를 부탁하는데 축구의 룰은 커녕 유명한 축구팀의 이름하나 알지 못하는 그녀는 어쩌다보니 보르그 축구팀의 아이들 하나하나를 챙기고 있다.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가보니 아이들이 소리가 들리는 축구를 하고 있다. 소리가 안들리는 축구와 들리는 축구의 차이점은 직접 경험한 사람만 알 수 있다. 브릿마리는 어둠 속에 서서 귀를 귀울인다. 한 아이가 공을 잡으면 다른 팀원들이 고함을 지른다. "이쪽이야! 나 여기 있어!"
"소리가 들리면 존재하는 거라고 볼 수 있죠." 술에 취한 뱅크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중얼거린다.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서로 외친다. 자기들이 어디 있는지 설명한다. 브릿마리는 움푹 들어갈 정도로 세게 과탄산소다 용기를 누른다.
"나 여기 있어요." 그녀는 속삭이며 스벤이 곁에 있어서 그녀의 속삭임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경이로운 축구팀이다. 경이로운 경기다. (본문중 275p)

 

 

 

각기 사연있는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을 만나 조금씩(아주 조금일지도 모르지만) 유연해지는 그녀를 보는게 재미있었다. 브릿마리에게 구애하는 마을의 경찰관인 스벤과 다시 돌아와달라고 부탁하는 켄트사이에의 삼각관계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브릿마리 자체는 약간 진지하고 심각한 캐릭터인데 비해 그녀를 둘러싼 시끌벅적한 인물들과 쉴새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작품전체를 활기있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이중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도 유쾌하고, 탁월했다. 축구대회 이후의 이야기에서는 휘몰아치는 사건 진행이 약간 정신없을 정도이긴 한데, 전반부의 차분한 분위기와의 반전을 노린 작가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맨 마지막 브릿마리가 문을 두드린 집이 과연 누구의 집일지 공개하지 않은 것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늘 바라던 대로 그녀의 존재를 알아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덤

 

켄트와 브릿마리의 이름이나 두 사람사이의 과거이야기가 왠지 익숙하다 싶었는데, 작가의 전 작품인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추후 약칭 할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는 걸 책을 거의 다 읽어갈 즘에야 깨달았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할미전>에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을 다시 찾아봤는데 맙소사, 브릿마리는 <할미전>에서 이미 내게 심쿵장면을 선사했던 인물이었다. 켄트가 출근할 때 늘 그가 찾는 물건을 다른 서랍에 옮겨두고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게끔 만드는 사람, 그 장면을 본의아니게 보게 된 엘사가 질문하자 "그이가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 좋으니까"라고 속삭인 사람. 이번 책에서의 브릿마리와 <할미전>에서의 브릿마리가 너무나도 같아서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을까 의아해질 정도였다. 어쩌면 브릿마리의 이번 여행이 시작된 것도 엘사 할머니의 편지 때문일지도. 어찌됐든 다시 할미전을 훑어보고 알게된 점은 초반에 그녀를 좋아하기 힘들었다고 생각한 나는 사실은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덤2

전 작품들처럼 작가의 위트가 곳곳에 숨어있는 이 책의 또다른 웃음포인트는 다름아닌 작가의 등장이라고 생각한다. 작중에 꽤나 밉살맞은 캐릭터(이런 캐릭터가 한둘이 아니기는 하지만)가 프레드릭이라는 이름을 갖고 등장하는데, 후기에 역자의 스포일러로는 작가의 후기작에서는 어쩌면 주인공의 아버지로 재등장할 수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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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비안의 사진기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42
친치아 기글리아노 글.그림, 유지연 옮김 / 지양어린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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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생전에 유명한 사진가가 아니었다. 보모라는 직업을 따로 두고 일생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젊은 시절 당대의 사진가들과의 교류도 있었다고 하지만 경제적활동을 위한 작품활동을 하거나 전시회를 여는 등 전문 사진가로서의 활동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 사진을 찍어왔고 그녀가 죽은 후 남겨진 창고에서 대량의 사진과 인화되지 않은 필름이 발견되었다. 그 사진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에 의해 그 사진들이 공개되고 무명의 사진작가였던 그녀의 삶이 함께 세상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런 그녀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가 이번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어린이책으로 발간되었다. 항상 그녀의 심장 가까이에 있고 그녀의 눈을 대신해 사진을 찍어온 카메라가 이 책의 서술자이다.



그녀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녀의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동화책의 발간에 많은 흥미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아동책이라는 특성상 분량이 많지 않아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좋은 점들을 꼽자면 그래도 장점이 많은 책인것 같다. 먼저 아이들에게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책으로 적당하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꾸준히 하며 살아간 그녀의 삶이 아이들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두번째로 그녀의 이야기와 사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겐 이 책의 삽화가 색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전부 다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사진을 그대로 가져와 그림으로 그려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서 책장을 넘기며 친숙함과 낯선 두가지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저자이자 삽화를 그린 사람은 친치아 기글리아노인데, 만화작가로 입문하여 이탈리아에서 많은 어린이책을 펴냈다고 한다.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비비안이 가장 사랑한 건 나였어요.
비비안의 카메라인 나는 언제나 그녀의 심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본문중



개인적으로 이 책의 서술자가 책의 제목에도 드러나있듯이 그녀의 카메라라는 점이 참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그녀에 대해 질문을 던져도 답을 해줄 사람이 이미 없으므로 우리는 그저 그녀의 사진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사진을 찍을때면 필연적으로 함께 해야 했고 늘 그녀 가까이서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왔을 그녀의 카메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치 그녀의 대변자라도 등장한 기분이라 그 문장 하나하나에 가슴이 뛰었다. 다만 애초에 가진 기대가 워낙 컸던지라 약간은 아쉬웠다. 몇가지 상상을 더해 아이들이 읽기에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이미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어느정도 있었기에 그리 느낀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정말 이미 어느정도 알려진 그녀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와 일반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가 좋아했던 대상들- 아이들, 그녀가 살아간 도시, 가난한 사람들과 도시의 평범한 모습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삽화가 주는 묵직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비비안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듯한 카메라의 서술이 어우러져 독특한 멋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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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난 여행 같은 그림들
박준 지음 / 어바웃어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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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자유로움과 현대미술의 자유로움이 만났다. 저자가 여행 중 만났던 미술관의 짧은 후기들을 한데 묶어놓은 것 같은 예술에세이다. 짧게는 한페이지, 길어도 2,3장 정도 분량의 글이 하나의 미술관, 작품 혹은 작가 등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뉴욕과 일본이 가장 많은 것 같지만, 그 외에도 런던, 독일 등의 유럽과 베트남, 인도 등 아시아 지역, 그외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박물관들을 두루 방문했다.

 

대형 미술관에서는 고흐, 고갱, 피카소 등 이미 세상을 떠난 유명 화가의 작품을 보기도하지만, 아직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미술작품을 더 많이 다룬 것 같다. 비틀즈 존 레논의 아내로 더 유명한 오노 요코, 우리나라에서는 민음사출판사의 책 표지 및 삽화의 일러스트로 큰 사랑을 받은 나라 요시모토, 그 유명한 '샘'을 만들어낸(?) 현대미술가 뒤샹, 얼굴은 몰라도 이름이나 작품은 한번쯤 봤음직한 앤디 워홀 등등 미술에 대해 관심이 없더라도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굵직한 작가들을 거쳐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활발한 활동과 각 나라에서는 잘나간다는 현대미술가들을 잔뜩 만나볼 수 있다. 한 작품당 자세한 설명과 감상, 해석들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많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어 좋았다.

 

 

작품들은 캔버스안에만 그려진 그림에 한해지지 않고, 조각, 설치 미술, 뻥 뚫린 천장이나 도시 한가운데 설치된 거대한 거울 등 그 한계가 없어보인다. 그에 쓰여진 해석은 자유롭게, 가끔은 그때의 감정이나 여행의 피로를 덧붙여 제멋대로 개인적인 감상들이 있기도 하는데 사실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의 우리의 모습들과 비슷해 아주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게 미술이야? 하고 의아할 정도의 작품에 대해 똑같은 의문을 내놓기도 하고, 그럼에도 미술계에서는 이 작품이 얼마에 팔렸고 이런이런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며 가볍게 같이 수다 떠는 것처럼 뒷얘기를 해주는데,실제 작품을 앞에 두고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키득거리며 나도 나만의 망상과 해석을 줄줄 풀어놓아주고 싶었다.

 

 

 

책의 목차를 보면 <미술관에서 꾼 꿈>,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 <길위의 미술관> 이렇게 크게 세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공통적으로 여행 중 방문한 미술관에서의 작품들을 다루지만 제목에서도 살짝 드러나듯 각자 집중하여 보고 느꼈던 부분에 따라 구분한 것 같아 보인다. 두번째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에서는 작품 속 인물(실제인물이든 그림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든)의 이야기를 풀어주고 그 인물에 이입해 글을 쓴 부분이 돋보인다. 간혹 유명한 작가의 경우 끝내 그 이름은 밝히지 않은채 그의 생과 작품에 대해서만 옛날얘기 들려주듯 풀어내기도 하는데 그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정 답을 모르겠다면 책 맨뒤의 수록작품목록을 보면 된다. 은근히 예술에 대한 상식을 늘릴 있는 책이다. 세번째 길위의 미술관에서는 말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미술관 말고도 길위에서 마주칠수 있는 작품(벽화, 대형 조형물,루브르박물관의 외형자체나 베를린 장벽의 남아있는 조각들 등)을 보여준다.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한 유럽 등 서양미술을 벗어나 아프가니스탄, 예루살렘 등의 방문기도 있어 색다른 작품들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미술관은 때로 명상의 공간이다. 여자이건 남자이건, 젊건 나이가 들었건, 직장을 다니건 구직자이건 누구에게나 필요한 장소다. 보고싶은 그림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바로 자신이다."(본문중 242p)

 

 


여행의 도중에 미술관방문은 어떤 작품을 보고 해석할때 그 여행의 과정이나 감정 등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 같다. 가장 쉽게 감상하는 방법이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투영하여 보는 것이다. 예를들어 우울할때 보면 짙푸른 바다가 그려진 그림이 한없이 무서워보일 수 있고, 기분 좋을때 보면 청량한 기운에 끌려 밝은 색의 바다에 달려들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무궁무진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그래서 더 재미있는게 현대미술의 묘미가 아닐까. 최근의 미술작품들은 미니멀하게 혹은 반대로 비비 꼬아서 보여주고 관객들의 생각과 상상을 더 끌어내려는 재미난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책속에 소개된 작가만의 미술관 중에 내가 실제로 가본 미술관은 두세곳 정도 있었고, 보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하는 미술관도 하나 생겼다. 책속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일본 가나자와에 있는 21세기 미술관, 뻥뚫린 천장과 '세상의 근원'이라는 시커먼 반구의 구멍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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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비 야마다 지음, 매 베솜 그림, 피플번역 옮김 / 주니어예벗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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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생각'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환상동화. 만화 캐릭터같이 생긴 어린 주인공이 왕관을 쓴 달걀같이 생긴 '생각'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야기다.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건 큼직한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 초반에 '생각'을 위주로 조금씩 채색이 되어있고 배경이나 주인공 까지도 흑백으로 그려져 있던 것이 점차 범위가 넓어져 마지막에는 페이지의 모든 부분이 채색되어진다. 처음 만난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겁이나 혼자만 간직하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그 생각이 점차 나만의 생각이 아니게 될 정도로 퍼져 결국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이 책의 내용과도 맞아떨어져 글과 그림의 조화나 효과를 잘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상동화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생각자체를 하나의 캐릭터로 시각화 한 점도 있고, 생각과 주인공의 주변 배경이 평범한 길이나 실제 장소 등이 아니라 풀, 나무, 시계, 동물등이 주로 등장하는 특정 배경을 형성하고 있어서 더 자유롭고 유연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 장 한 장 엽서로 간직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은 마법과 같은 힘을 갖고 있었어요.
'생각'은 내 곁에 있을 때면 나는 기분이 더 좋아지고 더 큰 행복을 느꼈거든요. (본문 중)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그 사람들이 무엇을 알겠어? 이건 '내 생각'인데.
'내 생각'에 대해 나만큼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남들과 다르고 이상해도, 조금은 말이 안 될지 몰라도 뭐 어때? 괜찮아. (본문 중)


나는 '생각'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어요.
'생각'은 나를 활기차게 만들어주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어줬어요. '생각'은 나에게 크게, 좀 더 크게 생각해 보라며 용기를 주었어요. (본문 중)

 

 

 

단순하지만 정말 명백한 사실. 사람은 자기 생각이 있을때 더 활기 넘치고, 남이 뭐라하던 내 생각을 나만큼 잘 알고 좋아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어려워한다. 책의 주인공처럼 남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받아주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일것이다. 나 자신의 생각 역시 곧 나일텐데 우리는 항상 망설이고 우물쭈물거리다 입을 다물어버리곤 한다. 그만큼 자기자신을 표현하는데 소극적이라는 것이고, 책에서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생각이 밖으로 나와 세상을 바꿀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안타깝기만 한데, 이 책은 그런 소심한 사람들에게 응원을 전하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의 통통튀는 생각을 밖으로 꺼냈을 때 세상을 변화시킬 무언가로 점점 더 커질수 있다는 기본독자(어린이)를 위한 교훈도 물론 있겠지만, 크게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작게는 나에게 행복감과 즐거움을 주는 생각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않는 나보다 책을 읽으므로써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하고 내 해석과 의견을 갖게되는 그 과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생각만 하는 것보다 이처럼 서평으로 남기거나 남들과 이야기하면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지거나 확대되고 때론 변화되기도 한다. 그런 생각들은 모여서 또 내가 되기때문에 결국 그렇게 내가 변화하면 나의 세상도 변화되는 것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책을 받고나서 굉장히 여러번, 틈나는대로 자주 읽으며 이 서평을 썼다. 짧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의 동화책은 역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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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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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홀로 세탁소를 운영하며 살아가던 명정에게 해외로 나가 살고 있던 아들의 사망소식이 전해진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아들의 이름으로 택배가 도착했다. 처음엔 아들의 사망소식에 대한 실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지만 그 기대는 금새 사그라진다. 그 택배에 들어있던 것은 인공지능 로봇, 그것도 괴짜 사장의 자기만족을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유형의 샘플 중 하나로 십대 중반의 아시아형 외모를 지닌 로봇이었다. 명정이 준 은결이라는 이름을 갖게된 로봇은 명정의 세탁소에서 그의  말벗이나 소소한 보조를 하며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다.

 

저자는 '마르고 닳도록 반복되어온 로봇의 감정발생서사'라는 말을 하며 조심스러워했지만 나로서는 처음 만나본 이야기였다. 물론 영화(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 T나 I등)나 만화(20세기소년의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가 그린 P)등 다양한 장르에서 접해본 적이 있지만 소설로서는 처음이었다. 로봇이 주인공인 이야기지만 그 로봇은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 로봇자체가 강조되기 보다는 로봇과 비교되는 인간만의 특이점이 더 두드러지며 결국 이 책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탁소라는 배경도 작품 내에서 인간 삶에 대한 비유로 여러번 이용되는 장치중 하나이다. 사람이나 삶에 대한 묘사 중 세탁소라는 배경과 결부되어 자연스럽게 비유한 문장들이 눈에 띈다. 은결이 배웠다는 세제 한스푼이 가르쳐준것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처음 그것을 세탁소 내의 스포팅 머신이나 건조기 정도로 여기던 명정은, 이름을 준 뒤로는 모셔놓은 손님 대하듯 하다가 보름쯤 지나 심신이 안정되고 상황에 익숙해지자 이윽고 사소한 일들을 맡기며 편안히 다루기 시작한다. 은결의 존재를 신기해하던 동네 주민들은 방송이 나갔을때 한두 주쯤 반짝 관심을 보이고어느덧 익숙해진다. 일상의 일부가 된다. 일반인이 잔일에 부려먹기에는 다소 기능이 과하다 싶은 고가의 로봇보다 중요하거나 피곤한 일들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빨래처럼 일상 곳곳에 널려있다. 세상은  한통의 거대한 세탁기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젖은 면직물 더미처럼 엉켰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닳아간다. 단지 그뿐인 일이다.  (본문 중 29p) 

 

인간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로봇덕에, 그동안 당연하게만 받아들였던 가치관들과, 온몸의 근육에 배어 있어 의문을 가져본 적 없는 습관들 하나하나가 새삼스레 당혹스러워지며, 무엇보다 인간으로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실상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본문 중 53-4p) 


 

 

이 책의 이야기는 사실 큰 기복이 없다. 명정과 은결 가까이에 있는 주변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몇몇 사건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그들의 이웃으로서 혹은 방관자로서 바라보는 은결의 시선과 머리속은 고요하기만 하다. 아니 새로운 학습이 일어나거나 여러 복합적인 상황이 벌어질때 은결의 머릿속은 복잡한 연산을 거치고 상황 분석등을 위해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나 겉으로는 잠시간 행동을 멈추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것이 없이 정적이다. 프로그래밍되어 있으나 자체 학습이 가능한 로봇의 머리속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하고 싶다- 등의 의지를 가지게 되는 과정은 꽤 고루하지만 차근차근 끈기있게 이어진다.

 

주인공이 느끼는 격렬한 감정이나 주인공이 휘말리는 크나큰 사건은 없더라도 주변인물들이 그를 대신해 더욱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서 매력적이다. 초등학생때부터 세탁소를 드나들던 시호와 준교는 주변 인물중에서도 은결과 가장 깊게 연결되어 있는데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휘둘리고, 미숙하고,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특정상황에서 인간이기에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은결은 명정의 표현대로라면 시호에게 '연심'을 품음으로서 점차적으로 충동과 변덕, 즉 인간다운 감정이나 제멋대로인 점을 점차 갖게 된다.

 

 

인간은 관계를 위해 적절한 빈말과 거짓말을 잘 이용하는 존재이다. 로봇인 은결은 인간의 그런 행동들을 보고 배우며 딱딱한 사실만으로 이루어진 답변외에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맞장구를 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런 부분에서 은결이 말하는 예쁩니다-라는 대답이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그가 연심일지도 모를 마음을 처음으로 갖게 된 시발점이 된 상황에서 한번, 인간에 더욱 가까워진 로봇으로서 어린 여자아이에게 한번. 그 두번의 말 모두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다정함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라 은결이 더이상 그저 로봇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은결이 저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스스로 지각하고 있다는 점도 자칫 감정발생의 과정에서 흔들릴수 있는 이야기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병모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 데 이런 스타일의 책이라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계속 읽고 싶어진다. 이야기의 진행과 마찬가지로 평온하게 끝마친 소설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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