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 부자 편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케다 가요코 지음, 더글러스 루미즈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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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의 시리즈를 찾아 읽은 것은 2014년, 출간 연도는 거의 10년도 전이어서 읽을 당시에도 조금 더 최신의 통계가 적용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게 기억난다. 나 같은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올해 같은 제목에 '사람/이웃/환경/부자'라는 부제를 달고 새롭게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중 '부자편'으로 다음과 같은 글귀로 시작한다. 

2000년, 세계에는 61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ㅡ
세계에는 73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100명의 마을로 축소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본문 중 10-12p)

조금은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파스텔톤의 그림과 한글 본문 아래 좀 더 작은 글씨로 영어 본문을 실은 구성은 그대로 유지된 반면 내용은 최근 버전의 통계(2016년 10월 기준)가 적용되었다. 이전 버전의 책들이 같은 제목에 1,2,3 등의 각 권마다의 내용 구분이 모호한 표제를 달고 있던 것에 비해 조금 더 내용을 파악하기 좋은 부제를 달아서 한 권마다 각자 하고자 하는 말을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본문의 내용 자체-대표적으로 본문의 글자 수-가 늘어난 것도 눈에 띈다. 

이 책은 주로 전 세계의 화폐, 경제, 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아가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한 구체적 금액을 제시하고 그 금액을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세금에 대한 말을 꺼낸다. 책에서 제시한 "만약'으로 시작하는 다양한 세금들은 몇몇 나라에선 실제 시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방법들이 한층 더 현실적이고 희망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의 초반 부분을 제외하면 이 세계를 100명의 마을로 비유하는 문구는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퍼센트(%)나 실제적 금액(주로 -억 달러의 단위)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다. 또 본문에서 세계경제에서 가장 큰 부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인 미국과 저자(엮은이)의 나라인 일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이 사람들의 생각과 실행을 촉구하는 책이란 걸 느끼게 해준다. 


책의 초반 실려 있는 한국만의 추천사를 빼더라도 책의 본문 외에 해설이 30페이지 가량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간결한 비유와 핵심적인 언급으로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본문과는 달리 해설은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한 엮은이나 경제전문가들의 주장을 펼친다. 본문의 내용에 대한 해설은 물론 현재까지 일본 또는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혹은 벌어지고 있는) 경제문제들을 언급하고 그 심각성과 해결을 위한 노력, 변화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설의 글 중에 '미와 요시코'의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글에 찬성하거나 반박하기에 앞서 빈곤문제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역시 아이들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사실 빈곤문제뿐만 아니라 온갖 문제적 상황이나 고난 등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존재는 언제나 아이들과 여성이라는 약자임은 분명하다.) 아래 본문의 말처럼 어떤 아이들은 가난 때문에 노동에 뛰어들고, 교육받지 못하고, 심지어 죽어가고 있다. 가난을 겪은 아이들은 그대로 가난한 어른이 될 가능성이 크고 이런 가난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선 그들을 위한 지원과 돈이 필요하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한 나라 내에서 돈과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고 다수의 동의와 그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주장이 필요하다. 정책에 동의하는 것(투표), 관심을 갖는 것,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한 개인이 실행할 수 있는 사회변혁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옳다.

세계의 아이들을 100명이라고 하면
그들 중 8명이 가족을 부양하거나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100명 중 9명은 다니지 않습니다.
중학교에 다녀야 할 100명 중 34명은 다니지 않습니다.
가난으로 5초에 1명의 아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본문 중 58-59p)


4년 전 처음 이 시리즈의 책을 읽었을 때도 얕은 두께에 비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란 걸 느꼈고, 지금 역시 크게 느끼고 있다. 우리 눈앞에 맞닥뜨린 여러 문제들은 단순히 한 개인의 또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 세계 곳곳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그 문제들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또한  많다. 이제 '우리'라는 개념은 한 민족, 한 나라를 벗어나 전 세계의 인류를 통칭하는 의미로 확대해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갖고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 나아가 그 해결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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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보이스 키싱
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김태령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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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너희'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화자가 있다. 등장인물과는 다르지만 언젠가 있었던 존재들, '나'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와 감정, 시선으로 지금의 '너희'를 본다. 명확히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우리'는 '너희'와의 차이를 말하지만 그 누구보다 '너희'를 잘 알고 이해하는 존재들이다. 마치 떠도는 영혼처럼 과거의 모습을 알고 무엇이든 볼 수 있으며, 말을 건네고 만질 수는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절절히 공감해주는 서술자는 책의 초반 약간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잡아주고 여러 사건들이 전개되기 전에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준다.

이 책의 주요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실제 인물의 사연이나 성격 등은 다를지라도 두 남자의 키스 최장시간(기네스북 기록)도전과 그 도전이 있던 동네에서 30분 거리의 어느 다리에서 미성년의 한 남자아이가 스스로 투신한 일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키스 최장시간 기록은 해마다 갱신되고 있어서 과거에 갱신되었던 별개의 기록들을 찾는 게 오히려 쉽지 않다. 반면 기록은 별개로  어느 커플의 도전과 대회 등을 통한 기록 경신 뉴스와 사진들은 꽤 쉽게 검색된다. 책 속에서 크레이그와 해리의 32시간은 생리작용과 탈수, 배고픔, 근육통, 수면욕 등등 현실적인 괴로움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현재 기록이라는 일주일을 버텨낸 두 사람은 과연 그것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견뎌낸 걸지 상상도 쉬이 되지 않는다. 책에서 꽤나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사실 두 사람이 입을 맞대고 있는 동안 견뎌낸 어려움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도전을 하기까지의 이유와 그 도전을 하는 동안 겪은 감정과 관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날 타리크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패거리에게 폭행을 당한다. 헤어진 커플이자 여전한 친구 사이인 해리와 크레이그는 함께 타리크의 병문안을 간다. 크레이그는 평소 친하다기 보다 오히려 약간의 거리가 있던 타리크였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 크게 슬퍼한다. 부당한 폭력과 그로 인한 피해자인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고 그는 막연한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인간이며 평등한 인간존재라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줄 방법"(본문 중 78)을 찾고 실행하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각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때 크레이그의 슬픔과 분노에 대한 문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크레이그는 타리크의 집에 갔던 날 보았던 멍 자국과 통증에 일그러지던 미소를 떠올린다. 크레이그는 엉엉 울었다. 타리크네 거실에서 너무 울어 미안할 지경이었다.  타리크가 말했다.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다행이도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고, 갈비뼈는 아문다고, 멍자국도 흐려진다고. 하지만 크레이그는 타리크가 다쳐서가 아니라 무의미한 폭력이 너무 부당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해리가 그를 진정시키려고, 타리크가 달래보려고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크레이그는 '분노하고' 싶었다. 나오는 대로 분노하고 싶었지만 분노 대신에 주체하기 어려운 슬픔만 차올랐다. (본문 중 76p)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눈코입없이 실루엣으로 그려진 등장인물들의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글로 읽을 때는 딱히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이 커플들의 특수성을 눈으로 보여준달까. 연결된 듯 각기 떨어져 있는 등장인물들의 연관성과 옴니버스 스타일로 각 커플이나 한 인물이 각기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도 신선했다. 주가 되는 것은 크레이그와 해리 커플의 이야기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진진하다. 각기 다양한 스타일의 커플이 등장하는 가운데 쿠퍼의 이야기도 굉장히 눈에 띄었다.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굉장히 자립적이고 긍정적인(다양한 사건 사고가 있음에도) 반면에 쿠퍼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이어진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자괴적인 생각에 빠지는 그의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하기 어려운 10대의 불안정함, 어느 정보나 채팅에도 접근하기 쉬운 인터넷 환경이나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쉬운 아이들, 버거운 현실에서 고민하기 보다 한결 손쉬워 보이는 다른 환경으로 회피하는 일은 굉장히 흔한 경우라고 본다. 자신의 일을 그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고 스스로도 고민하기 보다 인터넷에서의 가짜 신상을 만들어내고 의미 없고 야한 채팅에 빠져버린 쿠퍼의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쿠퍼의 이야기는 그런 상태를 갑작스럽게 부모님에게 들통나면서 시작된다. 


등장인물 전원이 게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특수하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르이기도 하고, 요즘 웹을 중심으로 점점 많이 접할 수 있는 비엘이라는 장르와도 조금 다른 것 같다. 성소수자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다수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점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며 심하게는 혐오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차이가 결코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커플들의 시작과 로맨스에 함께 두근거렸고, 타리크가 당한 부당한 폭력에 같이 분노했다. 작가가 언급한 이전 세대의 게이와 지금 세대의 게이는 분명 변화가 있었다. 물론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소외감, 소수라는 특수성 등 변하지 않은 점이 더 많겠지만 약간은 달라졌다. 그리고 그 변화에 작가는 앞으로의 기대를 걸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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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 미드나잇 -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를 위해 하루 15분 차분한 글쓰기
단디 편집부 지음 / 단디(도서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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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해버린 책. 넘기는 페이지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글과 그림이 가득했다. <한글쓰기>, <영문쓰기>, <한문쓰기>로 나누어져 있는 본문은 글자가 어떤 언어로 되어 있든 조화로운 그림과 함께 제시되어 있는데,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그림이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감명 깊었다. 솔직히 만년필로 필사하지 않고 차분히 읽기만 해도 정말 좋았던 책이다. 중간중간 쉬어가듯 선만 그어진 페이지나 마치 컬러링북처럼 그림만 잔뜩 그려진 페이지도 있어서 마냥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기에도 지루함이 없고 매력적이었다. 책에 실린 글귀는 유명인사들의 명언이나 작품의 일부를 실었는데 그 작가(혹은 화가, 예술가 등등)에 연관된 그림이나 글의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을 섬세하게 고르고 신경 쓴 게 티가 날 정도여서 개인적으로 한 페이지마다의 구성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글의 출처는 페이지 오른쪽 상단에 쓰여있는데 본문 배치를 거스르지 않고 깔끔한 글씨체로 쓰여있어 글을 읽고 바로바로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영문쓰기>나 <한문쓰기>의 경우에는 영어나 한자로 원문이 오른쪽 페이지에 쓰여 있고, 왼쪽 페이지에 우선적으로 한글 해석과 그림을 싣는 경우가 많았다. 한글 해석이 있어 내용을 살피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빈 공간에 한글로도 다시 글씨를 써 볼 수 있다. <영문쓰기>와 <한문쓰기> 모두 분량이 상당히 적었는데  <한문쓰기>의 경우 한문과 그림이 어우러져 분위기가 예뻐서 보기는 좋았지만 만년필로 따라 쓰는 양에는 그다지 아쉬움이 없었다. 반면 <영문쓰기>는 분량이 적어서 좀 아쉬웠달까.  파트가 시작되고 첫 부분에 영어 노트에 필기체 알파벳을 따라 써볼 수 있는 연습 구간이 있었는데, 실제 본문은 전부 필기체라기보단 다양한 폰트로 쓰여있었다. 그래서 필기체 글씨로 본문을 따라 쓸 수 있는 양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필기체를 따로 배우지 않은 세대라 영어의 인쇄체가 더 익숙하고, 특히 만년필로 쓰는 영어 필기체에 약간의 로망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다른 필사 노트처럼 쓰여있는 글귀를 내 글씨체로 다시 쓰는 것도 좋았지만 마치 펜글씨 교본처럼 회색으로 쓰인 글자 위를 그대로  선을 긋듯 따라 쓰는 재미도 쏠쏠했다. 단점이라면 글과 삽화 외의 공백이 꽤 널찍하게 있음에도, 책의 완성도나 구성이 너무 취향이라 함부로 빈 공간에 글씨를 채우기 아깝다는 점... 그래서 개인적으론 책에 쓰는 글씨는 회색 글씨를 따라 쓴 경우가 많고 그 외에 내 글씨체로 써보고 싶은 글귀는 소심하게 연습장에 필사를 따로 해본다거나 가끔가다 본문의 공간 배치를 잘 살펴서 빈 공간에 써보곤 했다. 


 



만년필의 매력은 뭘까. 이 책은 단순히 필사를 위한 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제목에서부터 어필하듯 만년필을 사용하길 권하고 있다. 책의 맨 앞엔 '왜 만년필인가'와 '만년필 사용 팁'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먼저 쓰여있다. 직접 만년필로 글씨를 써본 소감을 말하자면 연필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종이에 거칠게 쓸리는 쇳조각의 느낌과 그에 상반되게 부드러운 선으로 그어지는 잉크의 느낌이 오묘했다. 원래 글씨를 좀 흘려쓰는 버릇이 있는데 만년필로 쓰니 보통 펜으로 썼을 때의 글씨체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나는 게 신기했다. 잉크를 갈아주면 평생도 쓸 수 있는 것이 만년필이라고 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써온 만년필이 있다면 펜은 물론 그것을 통해 쓴 글씨에도 과연 애착이 생길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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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잡학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속뜻 사전 잘난 척 인문학
이재운 지음 / 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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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고유어(토박이말)와 외래어로 나뉜다. 그중  외래어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한자어'이고, 그 밖에는 외국어에 어원을 두지만 우리 식으로 읽히고 쓰여 우리말화된 '귀화어'와 외국어인 걸 알지만 변형 없이 마치 우리말처럼 자주 쓰이는 '차용어'가 있다. 우리말의 갈래는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순수한 토박이말보다 한자어를 비롯한 외래어(그중에서도 일본어 등에서 차용되었으나 쓰지 말아야 할 잘못된 외래어)의 잦은 사용을 지적하며, 우리가 어원도 모른 채 사용하는 외래어와 우리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이 책은 이번에 이름을 바꿔 증보판으로 출간되었는데 1994년 초판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총 4번의 증보를 거쳤다고 한다. 일반의 사전과 다른 점이라면 개념 설명과 예시가 아니라 본뜻(어원 등의 내용 포함), 바뀐 뜻을 구분해 설명해주고 보기 글을 보여준다는 것, 그리고 쓰지 말아야 할 일본어 등을 목록에 추가한 점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이 사전에서는 '바께스'를 쓰지 말아야 할 일본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그 외에도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들을 알려주며 바꿔 사용하길 권한다. 또 단어뿐 아니라 '끈 떨어진 망석중', '삼천포로 빠지다', '입에 발린 소리' 등 우리말에서 자주 사용되는(혹은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관용표현도 함께 실려있다. 표준어를 기준으로 모든 우리말을 담기 위한 사전이 아니라 자주 쓰이고 잘못 쓰이는 우리말의 어원을 파악하기 위한 사전이라는 점에서 실려있는 표현의 범위가 다양하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쓰여있는 일러두기에서도 '이 책에 수록한 우리말의 범주는 순우리말, 합성어, 한자어, 고사성어, 관용구, 일본어에서 온 말, 외래어, 은어를 포함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첫 번째 미사일에 명명한 '노동 1호'라던가, 복사기의 상표에서 유래되어 지금은 복사나 복사기의 뜻을 지닌 일반명사로 쓰인다는 '제록스' 등의 단어는 굳이 왜 수록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았을 때 우리글이 생기기 이전에(그리고 생긴 이후에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한자어를 쭉 사용해왔기에 영향을 받아 우리글에도 한자어를 사용한 단어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현대에 와서는 예전에 비해 한자어의 사용이 많이 감소한 반면 일본어, 유럽권 언어의 사용이 늘어났다. 한자어는 어떤 한자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어원이나 본뜻을 짐작하기 쉬운 것들이 꽤 있었는데, 유럽권 언어에서 파생된 단어는 어원이 된 단어의 본뜻과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거나 어원이 된 단어가 가진 다양한 뜻 중 하나의 뜻으로만 고정되어 사용하는 경우가 꽤 있어서 단어의 뜻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본뜻의 설명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있었고, 설명이 부족하다 싶은 부분도 아예 몰랐던 어원이라 재미있고 신기했던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자어 기반의 사자성어나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아수라장 등의 단어는 내가 알던 본뜻과 같았고, 애로사항 등으로 사용되는 '애로'라는 단어는 영어 'error'에서 나온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한자어로 구성된 단어였다. 책 한 권의 분량이다 보니 그래도 맨 후자의 경우가 가장 많아서 꽤 재밌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한 번에 싹 읽어버리기엔 어렵지만 국어공부 겸 교양 공부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나갔던 책이다. 다 읽고 난 후 몇 가지 떠오르는 단어들을 소개하자면 '가시나'와 '낙서', '사랑하다'를 뽑겠다.

 

 

낙서는일본 에도시대에 힘없는 백성들의 항거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민초들의  소리를 적은 쪽지를 길거리에 슬쩍 떨어뜨려놓은 것을 '오토미 부시(落文)'라 한 데서 유래한다.  (본문 중 109p)
본래 '생각하다'는 뜻인데 그 중에서도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
생각 사'에 '헤아릴 량'을 쓴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본문 중 256p)


내가 생각하기에 현재의 젊은 세대(10~30대)는 일제강점기에 마구잡이로 들어온 일본어의 영향권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중장년층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일본어나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은 모르거나 낯설다 느낄 정도이고 오히려 이 책에는 실리지 않은 만화나 게임에서 사용되는 감탄사나 회화용 짧은 표현, 그리고 다양한 신조어 등을 더 자주 접하고 사용한다. 한자어의 경우에는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 표현이 한자어인지 아닌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반면 유럽권 언어(특히 영어)는 어려서부터 배우고 회화를 중요시하는 환경에서 자라 친숙하게 느끼고 우리말에 자연스레 섞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가 열려있는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언어가 섞이고 영향을 주고받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말을 소중히 생각하고 제대로 사용하며 보존하자는 취지 또한 아주 중요하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한 번쯤 내 언어생활과 우리말에 대한 지식수준을 파악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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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잘 모르는데요 - 나를 위해 알아야 할 가장 쉬운 정치 매뉴얼
임진희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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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성인이라면 자신이 나라에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 세금이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여기까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정치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고 당당히 말해도 된다. 우리가 낸 세금이 모여 나라의 살림살이가 마련되고  그 '한정된 살림살이를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과 그 내용'이 바로 정치라고 이 책은 말한다. 인문계 고등학교 문과 선택과목이었던 '정치' 말고 우리는 살면서 '정치'라는 단어를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 정치인들, 정치를 잘한다 혹은 못한다 등의 표현은 익숙하지만 자기 입에서 나오는 일은 영 낯설다. 그동안 어디선가 들려오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인 탓인지, 삶에 매우 가깝고 꽤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정치라는 것에 우리는 함부로 발을 디디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몇 번이고 정치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정의를 내린다. 읽다 보면 '정치는 뭐다-'하고 스스로 정의 내리기는 역시 어렵겠지만, 우리가 은연중에 한 번쯤은 생각해본 것들, 일상생활에서 겪어온 다양한 행위들이 그 정치란 것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의 학생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이 책은 큰 목록만 보면 마치 정치학개론 대학 강의의 목록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정치'하면 떠올리기 쉬운 것들 - 세금, 정당, 선거, 법, 예산, 지차제 등등(주로 책의 2, 3장 안에서 다룬 목록들이다)이 나열되어 있다. 마치 숙제처럼 '심화'라는 이름을 단 목록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지루한 강의처럼 각 단어들의 의미론적 설명을 하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시각자료(그림, 그래프, 표 등)와 가장 최신의 사례, 사건들을 많이 다루고 있고, 자신의 후배들에게 들려줄  정치에 관한 책을 쓰겠다던 포부처럼 어렵지 않게 쓰려고 노력한 게 느껴진달까. 전체적인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부분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사례들이 자주 등장하자 책을 읽을 때 흥미를 잃지 않고 관심 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각 나라들의 세금 걷는 기준이나 참 자주 바뀌는 한국 정당들의 이름들 등등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고 있던 내용들, 궁금하지만 딱히 물어볼 데 없던 질문들에 대답을 들은 것 같아 조금은 시원해진 마음도 있었다. 주의 깊게 듣지 않았지만 자꾸만 귓가를 스쳐가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서도 텍스트로 천천히 읽어나가자 이제서야 점점 더 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최근 있었던 혹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이 내포한 부정적, 긍정적 평가를 숨김없이 이야기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딱히 밝지만은 않은 현 상황에 대해 더 자각하게 만들어주고 읽는 내내 조금은 암울하게 만들어버리는 감도 있었다. 정치의 각 요소들을 떼어다 놓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많이 다루며 설명하다 보니 각 파트가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도 받았고, 법과 예산 부분은 낯선 만큼 좀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책의 첫 부분부터 느꼈던 것이 책이 아닌 강의로 내용을 전해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인데, (내용이 낯선 만큼 그리고 저자가 전문 교수나 작가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글보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의 육성을 통해 들었다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 혹은 이 책을 통해 정치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말하고 싶어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읽고 이야기하기에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정치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니 그들과 함께 한다면 더욱 활발한 토론장이 되지 않을까. 나처럼 한번 읽고는 좀 어려웠다 싶은 사람들을 위해 해설 강연회 같은 자리가 있어도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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