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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 미드나잇 -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를 위해 하루 15분 차분한 글쓰기
단디 편집부 지음 / 단디(도서출판) / 2018년 4월
평점 :
첫눈에 반해버린 책. 넘기는 페이지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글과 그림이 가득했다. <한글쓰기>, <영문쓰기>, <한문쓰기>로 나누어져 있는 본문은 글자가 어떤 언어로 되어 있든 조화로운 그림과 함께 제시되어 있는데,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그림이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감명 깊었다. 솔직히 만년필로 필사하지 않고 차분히 읽기만 해도 정말 좋았던 책이다. 중간중간 쉬어가듯 선만 그어진 페이지나 마치 컬러링북처럼 그림만 잔뜩 그려진 페이지도 있어서 마냥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기에도 지루함이 없고 매력적이었다. 책에 실린 글귀는 유명인사들의 명언이나 작품의 일부를 실었는데 그 작가(혹은 화가, 예술가 등등)에 연관된 그림이나 글의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을 섬세하게 고르고 신경 쓴 게 티가 날 정도여서 개인적으로 한 페이지마다의 구성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글의 출처는 페이지 오른쪽 상단에 쓰여있는데 본문 배치를 거스르지 않고 깔끔한 글씨체로 쓰여있어 글을 읽고 바로바로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영문쓰기>나 <한문쓰기>의 경우에는 영어나 한자로 원문이 오른쪽 페이지에 쓰여 있고, 왼쪽 페이지에 우선적으로 한글 해석과 그림을 싣는 경우가 많았다. 한글 해석이 있어 내용을 살피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빈 공간에 한글로도 다시 글씨를 써 볼 수 있다. <영문쓰기>와 <한문쓰기> 모두 분량이 상당히 적었는데 <한문쓰기>의 경우 한문과 그림이 어우러져 분위기가 예뻐서 보기는 좋았지만 만년필로 따라 쓰는 양에는 그다지 아쉬움이 없었다. 반면 <영문쓰기>는 분량이 적어서 좀 아쉬웠달까. 파트가 시작되고 첫 부분에 영어 노트에 필기체 알파벳을 따라 써볼 수 있는 연습 구간이 있었는데, 실제 본문은 전부 필기체라기보단 다양한 폰트로 쓰여있었다. 그래서 필기체 글씨로 본문을 따라 쓸 수 있는 양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필기체를 따로 배우지 않은 세대라 영어의 인쇄체가 더 익숙하고, 특히 만년필로 쓰는 영어 필기체에 약간의 로망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다른 필사 노트처럼 쓰여있는 글귀를 내 글씨체로 다시 쓰는 것도 좋았지만 마치 펜글씨 교본처럼 회색으로 쓰인 글자 위를 그대로 선을 긋듯 따라 쓰는 재미도 쏠쏠했다. 단점이라면 글과 삽화 외의 공백이 꽤 널찍하게 있음에도, 책의 완성도나 구성이 너무 취향이라 함부로 빈 공간에 글씨를 채우기 아깝다는 점... 그래서 개인적으론 책에 쓰는 글씨는 회색 글씨를 따라 쓴 경우가 많고 그 외에 내 글씨체로 써보고 싶은 글귀는 소심하게 연습장에 필사를 따로 해본다거나 가끔가다 본문의 공간 배치를 잘 살펴서 빈 공간에 써보곤 했다.

만년필의 매력은 뭘까. 이 책은 단순히 필사를 위한 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제목에서부터 어필하듯 만년필을 사용하길 권하고 있다. 책의 맨 앞엔 '왜 만년필인가'와 '만년필 사용 팁'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먼저 쓰여있다. 직접 만년필로 글씨를 써본 소감을 말하자면 연필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종이에 거칠게 쓸리는 쇳조각의 느낌과 그에 상반되게 부드러운 선으로 그어지는 잉크의 느낌이 오묘했다. 원래 글씨를 좀 흘려쓰는 버릇이 있는데 만년필로 쓰니 보통 펜으로 썼을 때의 글씨체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나는 게 신기했다. 잉크를 갈아주면 평생도 쓸 수 있는 것이 만년필이라고 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써온 만년필이 있다면 펜은 물론 그것을 통해 쓴 글씨에도 과연 애착이 생길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