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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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도, 앞으로 쓸 글들도 네가 읽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아. 그러나 상관없이 써볼 생각이야. 결국 혼잣말에 지나지 않게 되더라도 말이지. 이 편지는 온전히 너를 향한 것, 우리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방법이자 너에게 말을 거는 나의 방식이니까. 듣지도 답하지도 않을 너에게. ​

(본문 중 17p)

이브 생 로랑이 21살 때 처음 만났고, 사업의 파트너이자 연인으로 곁을 지키다 이브 생 로랑이 세상을 떠날 때 눈을 감겨준 사람, 피에르 베르제가 이 책의 저자이다. 이 책은 이브 생 로랑이 떠난 후 장례식에서 읽었던 추도문을 시작으로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에게 쓴 편지들을 모았다.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는 일반적인 책의 판형이 아니라 시집 혹은 편지지처럼 긴 판형을 가진 책으로, 본문은 날짜를 제목처럼 두고 그 날짜에 쓴 편지글만이 실려있다. 글을 읽을 수신인이 정해져 있다는 것만 빼면 자신의 위치와 안부를 전하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어 일기 같은 글이기도 하다. 편지 하나의 분량이 여러 장으로 길어질 때도, 단 한 줄로 그칠 때도 있어 더 그렇다. 

다른 이의 일기나 편지를 엿보는 데는 기묘한 희열이 있다. 대외적인 것 말고, 여기에만 남기고픈 혹은 특정인에게만 하고픈 말들이 쓰여 있을 것 같아서, 아니면 글을 쓰는 이나 받는 이의 깊은 속마음이나 비밀이 한두 개쯤은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이 편지들에는 그다지 비밀이랄 건 없는 것 같다. 그저 두 사람이 늘 바라던 영원에 대해, 당신이 남기고 간 것들(수집품, 재산, 추억, 업적 등등)을 정리하는 과정에 대해, 젊은 날에 함께 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해, 가끔은 현실적이고 가끔은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전하며 여전히 당신이 그립다는 마음 또한 담아 쓰여있다.




마지막 편지에 남겨있는 내용을 보면, 어쩌면 이 편지들은 공개하기 위해 쓰인 글일지도 모른다. 떠나기 직전의 고통받고 힘겨워하던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싫어서, 그들이 모르는 더 멋지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모습들이 많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서, 자신과 그의 일생을 결산하기 위해, 피에르 베르제는 편지를 남겼다. 그 글이 왜 편지의 형식일까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보자면, 1. 그를 생각하며 쓰고 싶어서 2. 그가 없다는 외로움과 고통을 줄여보기 위해서 3. 가끔 자신의 마음을 전하던 이브의 편지가 떠올라서(자신도 그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서류를 정리하면서 너의 '특별한 여행'전시회 날 네가 내가 쓴 편지를 다시 읽었어.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끝까지 읽기가 힘들더군. 너는 이따금씩 그런 식으로 사랑을 전하곤 했어. 편지 말미엔 이렇게 적혀 있었지. "언제나, 앞으로도 영원히, 너의 이브." 2006년, 네가 죽기 2년 전이었어. 그 편지는, 읽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순정의 극치야. 처음부터 우리는 그 만남이 영원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잖아. 편지는 그에 관한 내용이었어.

(본문 중 1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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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만, 그의 일생이나 업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다양한 나라와 도시의 이름이 나오고, 대부분이 유명인사인 그의 주변인들의 이름도 잔뜩 나온다. 나는 책을 먼저 읽고 난 후 그들(저자와 이브 생 로랑,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그의 주변인들)에 대해 검색을 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책을 보는 걸 추천한다.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지식백과의 정보 한두개만 읽어봐도 충분하다. 그들의 인생사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편지속에서도 등장하는데 먼저 알고 있다면 '이 얘기가 그 얘기군!' 하며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물론 귀찮다면 생략해도 된다. 책에서 각주로 설명이 되어있는 부분도 있다.) 

피에르 베르제의 말처럼 예술가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서 이브 생 로랑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를 기억하고, 그가 만들어낸 패션을 이어가려 애쓰는 재단이나, 그의 옷을 사랑하는 이들 역시 많이 남아있다. 그가 떠난 후로도 꾸준히 사랑을 보내는 연인도 있었다. 그들의 인생을 결산하고 싶었다던 편지에서 이브 생 로랑에 대한 감탄과 찬사와 자랑과 사랑은 있지만, 정작 글쓴이인 피에르 베르제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다. 그 역시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수많은 업적을 이룬 사람이지만 그의 앞에 붙는 수식어 중 '이브 생 로랑의 연인'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유명하며 가장 오랜 시간 자리했다고 한다. 이브 생 로랑의 업적과 인생에 대해서는 두 편의 영화와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지만, 그의 연인이자 든든한 파트너에 대해서는 주목도나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그는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자랑스러워하며 열렬한 사랑꾼으로 남기를 바랐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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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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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의 팬이라면 어느 페이지를 펴도 행복해질 수 있는 책. 사실 사심을 그대로 전하자면, 전시회 도록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풍부한 삽화의 양만 보더라도 충분히 구매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재작년에 알폰스 무하의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그림과 이름은 익숙해져 있는데도 그 화가나 그림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게 없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알수록 더 보인다고, 알폰스 무하와 그의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그와 그의 그림들이 좋아졌다. 그 기억이 점점 멀어질 때쯤 반갑게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림이 풍성했으면 좋겠다, 책형이 조금 크니 그림도 큼직하게 볼 수 있겠다 하는 기대가 있었고, 좋은 기억으로 남은 무하 전시회에서 얻었던 정보를 되새기거나 그 이상의 정보를 추가하기에도 좋은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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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는 비로소 포스터 화가, 삽화가로서뿐만 아니라 보석 디자이너, 조각가, 실내 장식가로서도 그 재능을 알리게 되었다. 이제 파리 유행의 정점에서 사람들은 무하라는 이름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실로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여주며 아르누보의 '총체 예술' 이념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독창적인 아르누보 예술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본문 중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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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령의 나이임에도 무하는 <슬라브 서사시>를 제작하는 거의 20년 동안을 식사하고 잠자며, 잠깐 갖는 티타임을 뺀 아홉 시간 내지 열 시간을 꼬박 작업실에서 보냈다. <슬라브 서사시>는 그야말로 수도승에 가까운 그의 성실한 노동과 열의의 결과였다. (본문 중 249p)


체코 태생이지만, 파리와 미국에서 더 큰 사랑을 받은 화가.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화가이면서 포스터, 광고, 삽화, 보석디자인, 실내장식, 조각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재능을 발휘했던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워커홀릭. 그의 삶을 따라 진행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은 정말 지독한 일중독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 덕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수나 <슬라브 서사시>같은 대작의 작업과정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저 대단하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재능도 넘치지만 성실함도 넘치는 사람. 그에게 그림은 일이자 곧 삶이었겠지만 힘들진 않았을까.






이제 무하의 포스터는 거리를 메우고 그의 장식 패널은 값싼 목로주점의 먼지 낀 벽에서, 가난한 학생의 허름한 하숙방에서 혹은 고급 주택의 응접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의 포스터와 장식 패널은 다시 비단 천에 그리고 엽서에, 작은 과자 상자, 도자기 접시에도 인쇄되었다. 그의 작품은 굳게 닫힌 미술관의 유리문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이 닿는 거기에, 눈이 머무르는 어느 곳에나 있는 대중을 위한 예술이 되어가고 있었다. ​(본문 중 92-3p)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하의 작품은 아무래도 파리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의 연극 포스터와 광고용 상업포스터 및 삽화들이 아닐까. 풍성하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부드럽고 풍만한 몸매의 아름다운 여성들, 꽃과 화려한 장식 및 배경이 들어가 있는. 이 책에서는 파리에서의 전성기 작품들은 물론, 무하의 삶 전반을 다루고 있어 미국 이주 후의 작품, 결혼 후 조국으로 돌아가 민족과 고국에 헌신하는 작품 활동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실려있어 좋았다.


그의 삶 후반부에 그려낸 그림들은 역사를 함께 다루고 있어서인지 무하 특유의 분위기는 살아있으되, 스토리와 무게감이 있는 작품들이 아주 많다. 이 그림들은 무하라는 화가의 전체 삶을 보았을 때 자신에게도 더 큰 의미가 있는 작품들일 것만 같아 낯설지만 왠지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된다. 전시회에 가서 봤을 때도 인상적이었던 작품 <브르노 남서 모라비아를 위한 국민 연합 복권>은 특히 본문에서도 도슨트처럼 생생한 해설을 더해주어서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었는데 전시회를 한 번 더 다녀온 느낌. 무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겐 아름다운 그림들에 반할 기회를 주고, 무하를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겐 그의 삶과 다양한 작품들을 폭넓게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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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책을 권합니다 - 북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책방 이야기
노희정 지음 / 소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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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와 '곰곰히' 매번 헷갈렸는데 이젠 확실히 기억할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 넘게 책방 지기를 해오는 중인데 그 책방의 이름이 '곰곰이 생각하다'에서 따온 곰곰이 책방이라고 한다. 어린이 청소년 도서를 전문으로 하고, 독자 맞춤형 북 큐레이션은 물론 다양한 강좌 및 행사를 주최하고(개점 당시 무려 국내 최초로 강의실이 있는 책방이었다고 한다), 회원제로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등등 특징이라 할만 점들이 참 많은 책방이다.




곰곰이 책방이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곰곰이 책방만의 북큐레이션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책을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책을 잘 선정해서 독자들이 인생에서 곰곰이 책방과의 인연을 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닌 책에 대한 애정이 북큐레이션에 담겨 있다는 것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그날까지 이 일을 즐겁게 할 것이다. ​(본문 중 54p)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책방을 운영해오면서 탄탄하게 쌓아온 데이터베이스(독자별/주제별/상황별 추천도서 목록이라던가 독서강좌에 관한 자료 등등)에 자부심을 갖고,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본 시스템이나 북큐레이션 방식에 대한 자신 있는 소개가 이어진다. 그 후 이어지는 여러 프로그램들의 소개도 그렇다. '책방을 살린/시행착오를 거친'이라는 간단한 수식으로 담담하게 이름 붙였지만 꽤 오랜 기간을 들여 장단점을 알아낸 모든 경험을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해 모두에게 알려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껏 읽어온 서점 관련 책들은 자신의 책방 개점 스토리와 그 책방만의 특징, 운영 노하우를 에세이로 가볍지만 즐겁게 다룬 책들이 많았는데 이 책은 뭔가 다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방을 소개하고 자랑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큐레이션과 책방 운영의 노하우와 경험 자체를 공유하는 데 더 목적을 둔 글 같았다. 들어가는 글에 쓴 것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듯, 자세하고 진지하게 쓰인 글이었다. 그래서인지 솔직한 마음으로 이 책은 책방 운영 에세이가 아니라 성공적인 책방 운영 사례 보고서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세세하게 나누어진 목차를 보면 그런 인상이 조금 더 진해진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중반 이후의 본문은 대부분 책방 운영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먼저 이야기하고 더 구체적인 곰곰이 책방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실제로 운영하면서 고민했을 여러 요소들을 언급하고 곰곰이 책방 이외에도 그 요소에서 성공적인 사례들, 즉 그 부분이 잘 되어있는 다른 서점들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장소와 이름을 직접적으로 공개) 좋은 서점을 만들고 좋은 북큐레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서점과 북큐레이션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고 본문에서도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본인의 책방 이외의 다양한 서점들을 같이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신선했다. 곰곰이 책방은 물론 본문에 등장하는 다양한 책방들이 궁금해져서 책을 읽다 말고 서점들의 이름을 검색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좋은 의미로 내 예상과는 다른 책이었다. 책과 책방에 대한 애정, 진지함이 느껴졌고, 이미 겪어본 선배로서 꼼꼼하게 조언해 주려는 마음이 보여서 참 좋았다.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의 서점의 모습에 대한 고민과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단순히 곰곰이 책방이 궁금하고 북큐레이션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에 이 책을 집었다면 생각보다 묵직하고 세세한 이야기에 조금 의아해지거나 딱딱하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독립 책방과 그 책방들의 다양한 북큐레이션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혹은 책방 운영에 대한 로망을 품은 예비 책방 지기로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북큐레이션과 책방 운영에 대한 자세한 조언과 함께 많은 배움을 얻어 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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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일 - 작은도서관의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양지윤 지음 / 책과이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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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 그대로 <사서의 일>에 대한 '일지'를 적은 책은 아니다. 10년 넘게 한 도서관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는 사서가 그 도서관에 발을 들인 첫 순간부터 시작해 여러 고비를 넘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거쳐 성장하고 깨달았던 나날을 '일기'처럼 남긴 책이다. 사서의 일을 중심적으로 소개하거나 글을 썼다기보다는, 자신의 일상과 도서관 운영의 부분들(사서로서의 마음가짐 등도 포함해서)을 연결 지어 쓴 글이 많았다. 역자로서 활동하기도 하고 글쓰기의 미혹에 빠진 후 꾸준히 글쓰기 취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 등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본문의 필력이 상당하다. 재미있는 건 여유시간에 읽을 책을 찾아헤매는 내용을 적은 부분이나, 휴가 기간 읽을 책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한 이용자들에게 책들을 소개하는 부분이 특히 솜씨 있게 잘 쓰여 있어서 북 큐레이션 쪽으로 재능이 있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어쩌면 다년간 쌓인 큐레이션 경력 덕분인 걸까?

저자는 '지혜의 집'이라는 작은 도서관을 온전히 운영하게 되면서 도서관리(수서부터 대출반납, 장서점검, 폐기까지), 다양한 문화행사와 사서의 추천도서 코너 운영, 매년 겪는 도서관 운영평가 등등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문화행사 등에 있어서는 재능기부나 봉사자들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만, 도서관을 온전히 혼자 꾸려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최근에 코로나로 인한 도서관 휴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론 그 부분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거리 두기 단계가 이리저리 변화를 겪는 동안 도서관도 휴관을 반복했다. 불편하고 답답했던 건 도서관 이용자 뿐 아니라 운영자도 마찬가지였다. 도서관의 기본 기능을 되살려 일상을 되찾고 싶었던 마음 역시 같았다.


혼자 도서관을 운영하느라 힘들다며 입버릇처럼 징징대곤 했지만, 사실 내 옆에는 이렇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자원활동가들이 있다. 해마다 독서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역사 교실에서 재미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이. 그리고 이날, 지혜의 집에는 손재주 좋은 조력자가 또 한 명 생겼다. 이들이 든든히 지혜의 집 뒤에 버티고 있는 한, 내 '사서의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 중 176p)

지금은 '정지'가 아니라 '일시정지'인 상태라고. <이슬라>에서도 그랬듯, "부메랑처럼" 일상의 시간은 되돌아올 거라고. 그때를 기다리며 변함없이 도서관에서의 일상을 성실하게 이어가야 한다. 서가의 먼지를 털고 신간을 구입하고 내년의 계획을 짜면서. "되돌아온 시간의 역습"에 당황하지 않도록 말이다. (본문 중 321p)


사서라는 직업을 꿈꾸면서 사람들은 어떤 것을 기대할까. 책, 혹은 책에 둘러싸인 환경에 혹해서 도서관 사서가 되는 길에 접어드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공부도, 취업도 생각만큼 쉽지 않고, 겨우 도서관이라는 환경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과연 과거의 자신이 꿈꾸던 사서의 모습과 일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책의 말미에 추천사처럼 쓰인 다른 이의 글이 한편 있는데, 글 안에서 저자가 도서관과 함께 성장하는 모습에 대해 자신이 '꿈꾸고 바라던 온전한 사서의 삶'을 살고 있다며 질투하는 내용이 있다. 쉽지 않겠지만 남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잘 해내고 있는 저자가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계약직으로 있던 2년간의 이야기나, 작은 도서관이라서 해낼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는 것, 매년 겪는 어려움이나 즐거움 등등 사서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 혹은 도서관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공감할 거리가 참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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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냥이 컬러링북 - 행운을 부르는 꽃, 냥이 그리기
박자경 지음 / nobook(노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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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링북이라 좋았고 고양이라 더 좋았다. 색연필과 플러스펜을 거쳐 수채화까지 관심을 갖게 되어서 다양한 컬러링 취미의 세계로 입문하자 예쁜 그림들과 컬러링북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이 책은 막 수채화 컬러링이 재밌다고 느낄 때 알게 되었고, 동물의 털 표현이 많이 어려울 것 같았지만 최애 동물인 고양이가 꽃과 함께 그려진 그림들이 너무 예뻐 보여서 도전하고 싶었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모두 수채화가 아닌 한국화 작품들인데 수채나 색연필로도 컬러링 할 수 있도록 도안이 그려진 종이를 선택했다고 한다. 화지 위에 스케치를 옮기거나 먹지를 이용하는 등 도안을 여러 번 활용하는 팁도 있는데 스케치 작업은 섬세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주의 사항이 있지만 같은 도안을 성공할 때까지 여러 번 사용하고 싶다면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또 이 과정은 세필선 그리는 연습이 되기 때문에 추후 미술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목차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지만, 이 책 속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실제 모델이 있다. 표지를 장식한 고양이의 이름은 루리이며 책의 말미에는 작업하는 집사의 곁을 맴도는 루리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예부터 그림 속 고양이와 목단, 나비의 조합이 풍요와 장수를 상징한다는데, 누가 그리더라도 화사할 수밖에 없는 이 꽃냥이 조합은 감상하기에도 좋고 의미까지 좋으니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에도 정말 좋을 것 같다.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가 꽃에 둘러싸인 그림을 선물 받는다면 굉장히 특별할 것 같지 않으가. 가족과 지인 중에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괜히 그들의 얼굴과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한국화는 조금 낯설 독자들을 위해 한 파트를 통해 한국화를 소개해 주는 점도 좋았다. 난 한국화 물감이 따로 있다는 것도, 그 물감들의 이름이 참 예쁘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생각해 보면 동양화라고 하면 조금 덜 낯설고 그중에도 한국화가 있는 것은 당연하며 그에 걸맞은 재료와 화법이 있는 것도 당연한 건데, 수채화에 너무 익숙해서인지 취미활동에 한국화 물감을 사용한다는 생각은 못 해본 것 같다.(그러고 보니 올해 알게 된 신선미 작가님의 그림책들-개미 요정 시리즈 등-도 한국화인가?!) 수채화도 이제 시작해놓고 이 책을 보고 나니 한국화 물감에도 자꾸 관심이 가서 큰일이다.


본문에서는 그림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제외하면 컬러링 하는 방법과 과정에 대한 분량이 많다. 붓의 종류와 물감의 색이름이 낯설 수 있기 때문에 차례를 참고해 '꽃냥이 컬러링북 사용 설명서'와 '한국화에 대하여'를 먼저 읽고 '꽃냥이' '꽃그림' 부분으로 오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책 속 작품 중에 '벚꽃과 루리'를 수채화로 컬러링 해봤다. 한국화 물감과 수채화 물감의 성질이 얼마나 다른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수채화로 채색했을 때 물을 많이 섞은 물감을 흡수하는 느낌이 좀 더디다고 해야 할지 수채화용 종이와는 또 다른 느낌의 종이였다. 하지만 채색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고, 두께도 충분히 두꺼워서 채색 후에 뒷면은 조금 울더라도 다음 페이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벼르고 벼르다 주말에 거실에 책과 재료들을 흩어놓고 즐겁게 컬러링 했다. 망할까 봐 조마조마해서 과정샷을 찍어가며 작업했다. 대표 사진은 아리따운 원본과 이목구비에 디테일한 선을 조금 더 첨가해 마무리한 내 컬러링 완성작 사진으로. 큰 붓이 없어서 배경은 차마 못 하고, 흰색 물감으로 눈동자와 수염 등 섬세한 털 표현도 더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와서 정말 뿌듯했다.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여기 서평에도 함께 첨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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